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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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에 대하여 출판사들이 무자비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거나, 심지어 계약서를 비웃으며 돈을 떼먹었다는 얘기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출판사와의 계약 실수로 원저작자의 당연한 권리가 허공에 날아가버린 예는 무수합니다.
일례로 슈베르트는 17살의 나이에 '파우스트' 1부의 여주인공을 테마로 하여 <물레 잣는 그레트헨>을 작곡했고, 최초의 걸작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몇 년 후 이 작품을 출판할 수 있게 되었는데 문제는 출판에 관련된 구체적인 계약서에 관심이 없었던 슈베르트가 악보 출판업자의 말만 믿고 그냥 알아서 계약서를 작성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물레 잣는 그레트헨>은 꽤 큰 인기를 얻었고 악보도 널리 팔렸지만, 슈베르트는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죠. 슈베르트는 자신의 곡을 담은 악보가 아무리 많이 팔려도 돈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더 기막힌 일은 자기가 작곡한 작품인데 그 작품에 대한 권리를 영구히 주장할 수 없도록 계약서가 작성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다른 출판업자로 바꿀 수도 없었던 것이었죠. 이런 일들은 20세기 전까지 비일비재했습니다.
출판사와 작가와의 계약 중 가장 황당한 사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중편 <도박꾼>을 쓸 때에 대한 계약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에 쪼들린 나머지 매우 멍청한 계약을 하나 했는데, 1달 내에 작품을 완성해서 출판업자에게 넘기지 않으면 출판업자가 도스토예프스키가 향후 써낸 모든 작품에 대한 판권을 갖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여간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장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인을 하고 말았죠. 1달 중 첫 1주일을 그냥 어영부영하면서 날려 보냈고, 이를 보다 못한 친구의 주선으로 여류 속기사를 소개받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작가와 속기사는 묘하게도 서로 죽이 잘 맞아서 함께 의기투합하여 계약일 이전에 부지런히 소설 원고를 완성합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의 마지막날, 도스토예프스키가 원고를 넘겨주러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일부러 출판사 사장은 자리를 비우고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출판업자를 만날 수가 없으니 완성된 원고를 건네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고, 이를 빌미로 출판업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들에 대한 권리를 빼앗아 버리겠다고 작정을 했던 것이죠. 악당이 따로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애당초 계약서를 이상하게 작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소설을 완성했던 여류 속기사는 (순진한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달리)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처음부터 아예 공증인을 대동하고 출판사에 가도록 하고, 만일 출판업자가 만나주지 않을 경우 "작가는 분명히 약속 기한 이전에 원고를 완성하여 넘겼다"는 것에 대한 공증을 받아 놓을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죠.
훗날 이 속기사와 작가는 무려 20 살 이상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는 남편이 <죄와 벌>, <백치> 등의 걸작을 써내도 별로 돈이 되지 않자, 작가에게 제대로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출판업계의 관행에 분노한 나머지 아예 출판사를 따로 차리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이렇게 작가(의 아내)에 의한 직접 출판은 <악령>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발표된 <미성년>, <까라마조프의 형제> 등의 작품을 계속하여 직접 출판하기에 이르고, 과거와는 벌어들이는 액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직접 출판하게 되자 매우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어서) 크게 놀랐다고 하죠. 도스토예프스키 부인의 직접 출판이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자, 톨스토이 부인 역시 남편의 저작권 포기 선언 등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남편의 책을 출판하기로 하고 도스토예프스키 부인을 찾아와서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작가와 출판사와의 관계가 정립된 것은(즉 계약금 + 판매 부수에 따른 인세), 딴은 단 한 사람의 작가가 치열하게 노력하고 능수능란하게 수완을 발휘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에밀 졸라'였죠.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원작 소설 [테레즈 라캥]은 이 사람의 데뷔작입니다. 사실 데뷔작에 대한 평가는 보잘 것 없죠.) 에밀 졸라는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낙방한 후, 서점(& 출판사) 견습 직원으로 취업하여 소설과 희곡, 시 등을 쓰는 많은 작가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작가들로부터 원고를 받아서 출판사에 넘기는 심부름을 하러 다니는 게 일이었죠. 우연인지 혹은 필연인지, 혹은 운명인지 - 이렇게 본래 출판사 사원으로 출판계의 밑바닥에서 일을 시작한 에밀 졸라는 이후 전 세계를 진동시키는 거물 작가로 성장해 버립니다. 20권짜리 연작 소설의 7권 <목로주점>, 9권 <나나>, 13권 <제르미날>이 잇달아 히트하고 걸작으로 인정받으면서, 많은 독자들이 이 작가의 연작 소설을 죄다 구매하여 읽으려고 들었습니다. 꾸준히 많이 팔리는 책을 계속 써내는 작가가 된 것이죠.
에밀 졸라는 청소년 시절부터 출판업계 밑바닥에서 작가를 만나고 다니면서 일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명예'에 대해서만 큰 관심을 갖고 있고 경제적인 이득을 챙기는 것에는 매우 서툴러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출판사가 얼마만큼 이윤을 남기고 있는지, 더 나아가 작가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출판사로부터 돈을 더 받아낼 수 있는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죄다 꿰뚫고 있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유능한 실무가였고, 새로 소설을 완성하여 출간할 때마다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챙길 수 있도록 출판사와 협상하면서 조건을 맞춰 갔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 에밀 졸라는 매우 협상하기 힘든 상대였지만, 어떻든 독자들이 찾는 작품을 써내는 작가이므로 이 사람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었죠.
에밀 졸라는 [원저작자의 저작권]과 원저작자가 출판사에 허락하는 [출판권]의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였고,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더라도 원저작자의 저작권만큼은 계속 원저작자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작품의 판매 부수가 많을 수록 해당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많아질 수 있도록 인세에 대한 개념과 구조를 정립하였죠. 더 나아가 이 사람은 자신의 협상 내용을 주변의 문필가들에게 널리 알려서, 자신의 계약 과정이 다른 작가들의 계약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서머싯 몸이 도스토예프스키를 평한 글을 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일에 도박여행을 갔을때 작품을 써주기로 하고 선불로 돈을 받아놓고,
그 돈을 받고-> "인세 더 안주면 굶어죽을 지경이니 더!" 라고 하며 아예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아내기도 하더군요 ^^
그 돈은 다시 도박으로 날려버리는 사이클이 계속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부인이 남편의 도벽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죠.
거의 자신을 학대하는 듯이 보이는(프로이트는 실제로 그렇게 봤습니다) 재산상실 때문에.
그리고 더 웃긴건 먹고 살 돈이 있을 땐 죽어도 안나오던 글이 죽을것처럼 가난해서 굶을 땐 포텐 대폭발이 났다는 거...
작가와 출판사의 절친한 관계는 꽤 많이 알려졌는데, 그 반대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런 일화도 있었군요.
요즘에 저작권을 출판사가 아예 가져가 버리는 걸 보면 좀 무섭기도 합니다. (돈 문제 이전에 창작의 권리 문제가)
요새도 '저작권을 출판사가 아예 가져가 버리는' 사례가 있던가요? 소개 좀 ...
p.s. 작화만 수주 받는 '외주 스튜디오' 같은 것 말고 말이지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매우 가난하게 산 작가로 잘 알려졌는데, 그 이면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참 기구한 인연이라고 할까? ^^
창작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겠지만, 과거에는 이런 참담한 사례가 있었다니...
출판 계약... 지금의 모든 작가는 에밀 졸라에게 감사해야 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