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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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상륙한 8톤짜리 변성 프리온 보균자. 이래서 외국 동식물은 철저히 검역해야…]
“그런데 왜 그렇게 죽은 아파토사우루스들이 많을까, 리처드? 왜 그 공룡들이 한 마리도 어른이 되지 못한 걸까? 그리고 이 섬에는 육식공룡들이 왜 그렇게 많은 걸까?”
“글쎄요, 자료가 더 필요하긴 하지만…….”
“아냐, 필요없어. 자네, 연구소를 살펴보았나? 우린 이미 답을 가지고 있어.”
“답이 뭔데요?”
레빈이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프리온이야.”
말콤은 눈을 감았다. 레빈은 얼굴을 찌푸렸다.
“프리온이 뭔데요?”
말콤은 한숨을 쉬었다. 레빈이 다시 물었다.
“아이언, 프리온이 뭡니까?”
“저리 가게나.”
말콤은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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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대화는 소설 <잃어버린 세계>에서 나온 겁니다. 고생물학자 리처드 레빈과 수학자 아이언 말콤이 공룡들의 섬 이슬라 소르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죠. <잃어버린 세계>는 공룡의 멸종이 주제인데, 레빈은 유전공학으로 되살린 공룡 생태계에서 그 해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말콤은 연구 기록을 살펴본 결과, 공원 관리자들이 새끼 육식공룡에게 먹이를 주느라 양고기를 주었다는 걸 알게 되고, 양에게서 변성 프리온이 옮아 병에 걸린 공룡들이 수두룩하게 생겼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이슬라 소르나는 완벽한 공룡 생태계가 아니고, 여길 관찰해봤자 멸종 원인은 찾지 못한다는 거죠. 좀 허망한 결말이기도 한데, 그렇게나 열심히들 공룡을 관찰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한다는 소리가 질병이라니, 책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그 동안 열심히 삽만 펐다는 겁니다.
여하튼 오랜만에 저 대목을 다시 보니까 감회가 새롭더군요. 저걸 읽을 당시만 해도 프리온이란 게 위험한 물질인가 보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프리온이 뭔지 압니다. 미국산 육우가 광우병에 걸렸고, 그 고기가 우리나라로 들어온다고 난리가 났기 때문이죠. 광우병 파동이 한 차례 지나간 지금은 좀 조용한데, 그렇다고 프리온이란 단어의 공포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설정상 최고의 고생물학자라는 리처드 레빈이 프리온이 뭔지 몰라 말콤에게 물어보는 장면은 이해가 잘 안 가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연구 수준이 좀 낮은 취급을 받는 동물학자 새러 하딩도 프리온이 뭔지 잘 아는데, 제일 잘 나가는 고생물학자가 그걸 모르다니…. 연구 분야가 달라서 그런가요. 하지만 고생물학자나 동물학자나 생물학은 기본적으로 배울 테고, 프리온이 어떤 물질인지도 자연히 알게 되지 않나요. 최근, 그러니까 1960년대에 발견했으니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일개 대학생도 아니고 학자 타이틀까지 달고 다니는 사람이 이러다니, 으음.
※ 작중 레빈은 섬을 돌아다니다가 프리온에 감염된 혹은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프로콤프소그나티드에게 살짝 물립니다. 레빈은 그 때문에 자기가 뇌조직이 죽는 쿠루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새러 하딩은 잠복기가 일주일이니 나중에 치료하면 된다고 하고요. 어렸을 때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읽었는데, 광우병 공포를 겪고 나니 레빈은 아마 십 년 후에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