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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을 봤는데, 좀 놀랐다. <쥬라기 공원>도 아니고 킹콩이랑 티라노가 왜 싸우지? 요즘에는 영화를 짬뽕하는 게 유행인가 보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를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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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떤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킹콩> 소감문을 보다가 뜬금없이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가 튀어나와서 의아했습니다만, 이쪽 세계를 모르시는 분이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솔직히 전 이 두 영화를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참 신선한 관점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영화는 모두 크리쳐가 주인공이고, 그 크리쳐들이 치고 받으며 싸우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AvP>를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요. 기실 이 영화에서 사람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관객들이 기대하는 건 에일리언과 프레데터가 얼마나 피 터지게 잘 싸우나 이거니까요. 그러니 굳이 배우를 들여서 제작비를 늘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이러면 스타에 의존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배우 때문에 크리쳐가 가리는 일도 없습니다.

드라마요? 드라마는 영화든 3D 애니메이션이든 이야기만 잘 꾸미면 됩니다. 어느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영화라고 해서 드라마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연기가 죽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잇달아 흥행한 <슈렉>이나 <아이스 에이지>, <네모를 찾아서>를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고 해서 드라마에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은 크리쳐를 전면에 내세워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안 나오는 영화는 이상해 보이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애초에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니까요. 가령, 말하는 동물이 있다고 합시다. 이걸 영화로 감상하는 것과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건 다릅니다. 전자는 시각효과가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어색하겠지만, 후자는 매우 자연스럽죠. 따라서 감독은 안심하고 에일리언과 프레데터를 앞에 내세울 수 있습니다. 사람을 뒤로 빼도 되고요.

더군다나 애니메이션은 시각효과 문제에서 한층 자유롭습니다. <AvP>는 생명체가 나오기 때문에 기계가 나오는 영화보다 시각효과 처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CG를 이용하면 티가 날 수도 있고, 동작이 큰 장면을 찍기가 힘들죠.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에일리언과 프레데터가 붕붕 날아다녀도 티가 안 날 겁니다. 질감 문제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요즘 3D 애니메이션은 실사와 그림의 과도기에 있다고 할 정도로 섬세하거든요. (그렇다고 섬세함만 찾다가 <파이널 판타지>가 되면 곤란)

다만, 3D 애니메이션으로 할 경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선입견이 들기 쉬운데, 영화도 R등급을 받지는 않았으니 상관 없다고 봅니다. 애니메이션이 PG-13 등급이 아니라는 건 어느 정도 치명타가 될 수 있겠지만, 저예산 영화보다는 인기를 끌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걸 마음껏 보여줄 수 있잖습니까. 애니메이션이라면 에일리언과 프레데터가 땅에 붙어서 칼질만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누가 모험 삼아 3D 애니메이션으로 <AvP> 안 만드나 모르겠군요. 아주 제격일 것 같은데. 요즘 3D 애니메이션이 각광을 받는 상황이니 이런 크리쳐 SF로 영역을 넓히는 시도도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