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청- 쿠르젠 외곽
운없게도, 폭격기들 중 한 대만 남기고 해방군의 임기응변에 당해버렸다. 남은 한 대가 성공적으로 투하해 주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쿠르젠은 멍청한 1선 사령관의 도움으로 해방군 소유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쿠르젠 서북쪽으로 좀 빠진 곳에 있는 이멜반에 투입된다고 한다. 이번에는 중앙군들의 반격로를 터 놓기 위해 그 쪽의 해방군 진지를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임무를 받았다.

라이너 로센버그- 쿠르젠 제 1녹지
살짝 머리를 내밀었다. 앞쪽에서 수도 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왼팔도 어깨 밑은 좀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전차에 기대고 서서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한 탄창을 비우고 또 탄창 하나를 비우고 나자 우연의 일치였는지 잠시 중앙군들의 공세가 시들해졌다. 그 틈을 타서 우리 보병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나도 그 행렬에 들어가 숲 쪽으로 뛰어갔다.

전차들도 더 이상의 정지사격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기동하기 시작하여 중앙군이 더 이상 화력집중을 하지 못하도록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중앙군의 보병들이 우리 쪽으로 사격을 해대며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나무에 기대고 서서 적들 쪽으로 사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네 명 씩이나- 내 총알에 맞아 고꾸라졌다. 순간 손이 떨렸다. 내가 처음으로 ‘확실히’사람을 쏴 죽인 것이다!

탄창을 교환하고 나서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가 텅 빈 듯 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기분이 이렇게 공허하다니- 순간, 시가지에서 우리를 철저히 유린하던 중앙군들이 생각났다. 나도 이제 그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죄책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계속 나무에 기댈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 보병들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중앙군의 공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할 수 없이 다시 아픈 팔을 이끌고 뛰기 시작하였다.

“모두 수송차량으로- 계속 사격하며 이동하라!”

헬멧으로 교신하는 것은 이런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불가능했다. 마치 고대 전쟁이라도 하는 듯 전차 위에 앉아있던 전차장들과 아까의 45 소대장이 손짓을 해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허둥대며 올라타기 시작했고, 매우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아 뒤통수를 관통당해버린 병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이 차량에 타자 일제히 시동이 걸리고 곧바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도망갈때만 쓸모가 있구만, 이 빌어먹을 잔디밭.”

어느 소대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옆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총알이 차량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들렸다. 잠시후 운전석에서 우리 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위로 올라가서 엄호사격을 한다! 빨리 준비해!”

조금도 아니고 ‘매우’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차 지붕 위로 몸을 내밀어야 했다.

모청-이멜반 해방군 방어기지
ARS와 개조한 군화 덕분에, 들키지 않고 초소 가까이까지 갈 수 있었다. 혼자 떨어져 있는 병사 한 명이 보였다. 뒤에 있는 나머지 분대원들에게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낸 다음, 전등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린 후에 뒤쪽으로 다가갔다.

뭔가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잠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들켰나 싶어 조금 서둘러서 왼쪽 옆구리를 찔렀다. 제대로 찔렸는지 다행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피가 바닥에 고이기 전에 시체를 어두운 쪽으로 옮기고 군복 속을 샅샅이 뒤졌으나 쓸만한 것이라고는 신분증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일단 챙겨두기로 했다.

우리 분대 말고 따로 투입되었던 분대에게 교신을 시도했다. 잠시 반응이 없다가 목소리가 들렸다.

“나사 2번 준비 완료. 나사 1번 응답하라.”

우리 분대에서 먼저 통신을 시작했으나, 먼저 말한건 저쪽이었다. 우리도 응답했다.

“나사 1번 준비 완료. 지금부터 진입을 시도한다.”

이제부터- 정신없이 일이 진행될 것이다. 지붕에 구멍을 뜷고 꼭대기층 계단으로 진입할 것이다.

라이너 로센버그- 쿠르젠 녹지 서쪽 경계선
차 지붕에 달린 기관총이라곤 달랑 두정 뿐이었다. 맨 뒤쪽에 앉아있던 두 명이 기관총을 들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대원들은 각자 휴대하던 소총으로 대응해야 했다.

우리가 먼저 속도를 냈기 때문에, 중앙군이 우리의 사정거리에 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방군과 중앙군이 쉴새없이 서로에게 쇳덩어리를 쏟아붓고 있었지만, 여전히 녹지는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아슬아슬하게 지켜졌던 평화 덕에 키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나무들이 저 멀리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었다. 차량들이 짓밟고 지나갔던 자리만 빼면, 잔디들 역시 위에 누워서 잠을 자고 싶을 정도로 포근해 보였다.

잠시 환상에 젖어 있다가, 운전석에서 또 고함이 들려왔다.

“얼마 있지 않아서 중앙군이 우리를 따라잡는다- 전차들끼리 싸우고 있을 동안 괜히 그쪽으로 총알 낭비하지 말고 우리도 알아서 보병수송차들만 맡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총알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내 귀 옆을 지나가고 포탄 하나가 내가 탄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폭발하였다. 아까부터 중얼대던 그 병사가 다시 소리쳤다.

“얼마 있지 않기는 얼어죽을- 벌써 따라잡았잖아! 저기 보이는구만!”

곧바로 우리측에서도 사격이 시작되었다. 한 병사가 쏜 유탄이 운좋게 우리와 가장 가까웠던 중앙군 수송차를 하나 완전히 날려버렸다. 그 뒤로 따라오던 수송차들도 우리측의 총알 세례를 받아 운전수가 죽거나 바퀴가 부서져 뒤쳐졌다. 바퀴가 부서진 차량들이 뒤따라오던 나머지 차량들과 충돌하여 폭발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

“바퀴만 쏘자구! 바퀴-”

다른 차량에 타고 있던 병사 한 명이 좋아라고 소리쳐댔다. 그러나 팔에 총알을 한 발 맞더니 욕을 몇 번 하고는 잠잠해졌다.

동시다발적 충돌 덕분에 또다시 뒤쳐졌던 중앙군이 어느새 다시 따라잡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훨씬 큰 규모였다. 아까보다 세 배는 될 것 같은 기관총소리가 귀를 메웠다. 우리 차량에서도 순식간에 세 명이 처참하게 죽어 버렸다. 앞쪽에 있던 기관총수들이 더 맹렬히 쏴댔으나 돌아오는 것 역시 총알뿐이었다. 한 명은 아예 팔이 날아가버렸다- 끔찍해서 눈을 꼭 감고 사격했다.

가속이 느렸던 중앙군 경전차들도 우리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우리 보병수송차들을 엄호하던 아군 경전차들 역시 중앙군의 전차들을 상대하기 위해 옆쪽으로 빠져 버렸다. 아까보다도 더 넓게 노출되어버리긴 하였으나, 중앙군 역시 ‘전차들끼리의 일’ 때문에 우리 보병수송차 쪽으로 포탄을 날릴 수는 없어 보였다.

모청- 이멜반 해방군 방어기지
제일 먼저 환기구를 나간 동료가 뒤쪽으로 다가가 해방군 경비병 한 명의 고개를 비틀어 꺾었다. 두개골에서 목뼈가 빠지는 조그맣지만 선명한 소리 빼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비병들이 띄엄 띄엄 배치된 것이 다행이었다.

“3층에 모두 6명- 가운데가 2층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격후 바로 2층에 투폭탄을 던지도록 한다.”

조그만 교신소리와 함께 각자 정해진 위치로 신속히 이동하였다. gps로 확인된 위치에 정확히 선 후 각자 경비병을 한 명씩 동시에 사격하기로 하였다.

카운트가 시작되고 각자 정밀조준에 들어갔다. 약 10초간 정적이 흘렀다.

“3-2-발사.”

아직은 해방군쪽이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소음기를 달아 놓았으니 들리는 소리라곤 처음에 총알이 머리나 심장에 박히는 소리 뿐일 것이고, 헬멧이 사용자의 사망을 확인하는 데에도 1분은 족히 걸린다. 급소를 관통했으니 확인하는 시간은 좀 더 빨라질 것이나, 그렇다고 해도 30초 정도의 여유는 있다. 바로 밑에서 3층을 볼 수 있는 통로를 통해 투폭탄을 여러개 던졌다. 고함소리가 두 번쯤 들리고 나서 폭발음과 함께 비명소리도 이어졌다. 대응사격은 없었다.

완충대 [특수부대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부상당하지 않도록 중앙군에서 고안한 일종의 하체-척추 보호대이다. 바지를 입듯이 착용한다. 최고 20미터까지 부상없는 착지가 가능하다.]를 다들 착용하고 있었기에 사다리를 타지도 않고 위에서 곧바로 뛰어내렸다. 주위에는 멍청하게도 군복을 입지 않은 통제실 담당병들이 몸이 잘린채 널려 있었고, 피는 아예 컴퓨터를 페인트칠 하듯 싹 덮어버렸다. 도망가는 해방군 병사들에게 뒷통수에 총알을 한가득 먹여 주고는 바로 데이터 탈취에 들어갔다.

방어기지 메인 컴퓨터에 디스크를 삽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헬멧의 gps가 이상해졌다. 해방군이라곤 시체밖에 없는 이곳에 보병들이 50명씩이나 우글거리는 것처럼 나타났다. 해방군이 우리의 공격을 눈치채고 바로 크래킹을 한 것이었다.

“자식들, 빠르기도 하지- 참, 이곳에는 폭탄을 설치하지 않도록 한다.”

정보 탈취를 담당한 394 분대장이 이야기했다. 다들 의아해했다.

“우리가 계획한 폭파라지만, 제일 중요한 통제실을 남겨놓는다는 건-”

“우리 헬멧을 크래킹했으니, 해방군 본부도 맛 좀 보라지. 신개발 바이러스다.”

약간 걱정됐는지 말투를 약간 흐리며 질문했던 우리 분대원의 말을 분대장이 중간에 끊고는 데이터 탈취를 완료하고 바이러스를 설치했다.

“다른 컴퓨터로 복제하면서 옮겨 다니지. 그러다가 자신에게 ‘외부의 제재’가 가해지면, 즉시 그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모든 내용을 저장 디스크가 꽉 찰때까지 계속 복제해 버리니 자연적으로 중계 메모리도 포화 상태가 되어 버리고, 최소한 해당 컴퓨터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폭발해버릴지도 몰라. 즉, 이곳 통제실 하나를 폭파하는 것만이 아니라 해방군 전산망의 상당 부분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다른 곳에 시한 폭탄을 설치하며 잠자코 듣고 있다가, 호기심이 생겨 참견해 보았다.

“그렇다면, 외부의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계-속 해방군 통신망을 타고 퍼져 나가는거야. 전염 속도를 늦추려면 당연히 ‘제재’가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해방군 전산망 전체가 전염되지. 우리가 천천히 본부에 돌아가서 타자만 몇 번 치고 나면 해방군 놈들은 총이나 쏘면서 설치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못해. 교신이고 뭐고.”

“대단한데요!”

다들 놀라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꼭 그럴 수 있다는 건 아니고, 저 녀석들이 진짜로 멍청해서 백신도 안 만들고 멍하니 보고 있을 때는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야. 그래도 평소에 긴장을 좀 하고 다닌다면, 수십대 정도로 끝날지도 모르고.”

해방군 경비병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기에, 다시 신속하게 3층으로 올라가 출구로 빠져 나왔다. 폭음이 몇 번 들리고 땅이 잠시 흔들렸다. 아까처럼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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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감상이나 조언 환영입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