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조와 제이는 덕수궁 앞에서 반팔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거대한 사내와 만났다. 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내는 엄청난 근육질로 가을 저녁의 썰렁한 날씨임에도 반팔 셔츠를 입고 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그는 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두 개 메고 있었는데 가방에는 각각 긴 검정색 막대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굵은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오셨군요.”
“고마워. 다 챙겼지?”
“예.”
제이는 이 사내와 구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조에게는 소개시켜주지 않았고 사내도 조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아버지의...”
“됐어. 노인네의 복수는 나하고 이 친구면 충분해. 혹시 내가 죽으면 새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우리야 죽으면 말이 없을 테니 걱정 말고. 놈들은 거기 있지?”
“예. 쇼에 미쳐있을 겁니다.”
제이는 사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가볼까. 운이 좋으면 다시 만나겠지.”
왜소한 체격의 제이는 팔을 길게 뻗어 엄청난 덩치의 사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사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제이가 발걸음을 옮기자 조도 따랐다. 제이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조는 뒤돌아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망부석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굳건히 서있었다.
조가 묻기도 전에 제이가 먼저 말했다.
“저 친구, 회사 최고의 요원이야. 힘뿐만 아니라 일을 즐긴다는 면에서도 최고야. 총이 아니라면 칼 따위는 쓰지도 않지. 맨손으로 한 방에 사람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야.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게 아끼던 친구고 믿을 수 있어서 내가 부탁했어. 우리가 지금 호텔에 가서 무기를 꺼내올 수도 없고 설령 가져온다 해도 이렇게 일본도 같은 걸 가져올 수도 없으니.”
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본도라고? 너무 멋 부리는 거 아냐?”
“무슨 소리? 근접전에서는 이게 총보다 더 빨라. 재장전할 필요도 없고.”
“이것 참. 후반기 교육 때에도 다뤄보지 못한 무기를 오늘 처음 써보겠군.”
조가 쓴웃음을 짓자 제이가 낄낄거렸다. 둘은 이렇게라도 긴장을 풀고 싶었다. 조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는 날이고 자칫 죽을 가망성이 높았지만 머릿속은 멍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훈련소에서 제이를 만난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선택의 고민 따위는 할 틈도 없이 휘말려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극력 피해왔던 살인을, 이제 하러 가는 것이다.
제이는 프로콜 하럼의 ‘어 화이터 쉐이드 오브 페일’을 휘파람으로 부르며 걸었다. 조는 그곡을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로도 여러 번 들었지만 곡의 전주가 바흐를 연상케 한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나온 호객녀들을 무시한 두 사람은 주택가의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가로등조차 없는 어두운 거리 구석에는 생뚱맞게도 높은 담장과 안정적인 단층의 한옥집이 있었다. 입구에는 검정색 대형 세단이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조는 혹시라도 회사 요원들이 나와 있을까 경계했지만 제이는 경계는커녕 긴장도 하지 않았다. 제이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어느새 레인보우의 ‘템플 오브 더 킹’으로 바꾸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제이가 여유를 보일 만도 했던 것이 기와로 장식한 나무 대문 뒤에는 요정의 마담으로 보이는, 작지만 날씬한 중년 여성이 먼저 알아봤기 때문이다. 마담은 양손을 앞으로 포갠 채 제이에게 45도 각도로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응, 구 마담. 신세 좀 질게.”
제이는 윙크하며 사내에게서 받은 스포츠 가방에서 2cm 쯤 두께가 되는 하얀 봉투를 꺼내 마담에게 주었다. 마담은 고급스런 검정색 투피스에 커피 색 스타킹과 검정색 하이힐 차림이었는데 깊이 파인 가슴 사이에는 한눈에 비싸 보이는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천박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기품이 있었다. 의외로 이런 업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정도로 우아했다. 조는 제이가 건넨 봉투에는 현금이 아니라 수표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 애들만은...”
“아, 걱정 마. 그리고 뒷일은 책임지지.”
마담은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면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조는 연상의 여인에게 끌리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15살 이상 차이나 보이는 이 여성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조와 제이는 연못과 석등이 있는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네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 거야?”
“네 여자 친구.”
제이는 농담처럼 말하더니 샷건을 들고 지향 사격 자세로 전방으로 소리 없이 뛰었다. 조도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양손에 쥐고 뒤따랐다. 다행히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경계근무를 해야 할 요원들이 없는 것을 보면 마담이 이미 애들로 하여금 별채에서 붙어먹도록 한 것 같았다.
“오셨군요.”
“고마워. 다 챙겼지?”
“예.”
제이는 이 사내와 구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조에게는 소개시켜주지 않았고 사내도 조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아버지의...”
“됐어. 노인네의 복수는 나하고 이 친구면 충분해. 혹시 내가 죽으면 새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우리야 죽으면 말이 없을 테니 걱정 말고. 놈들은 거기 있지?”
“예. 쇼에 미쳐있을 겁니다.”
제이는 사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가볼까. 운이 좋으면 다시 만나겠지.”
왜소한 체격의 제이는 팔을 길게 뻗어 엄청난 덩치의 사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사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제이가 발걸음을 옮기자 조도 따랐다. 제이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조는 뒤돌아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망부석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굳건히 서있었다.
조가 묻기도 전에 제이가 먼저 말했다.
“저 친구, 회사 최고의 요원이야. 힘뿐만 아니라 일을 즐긴다는 면에서도 최고야. 총이 아니라면 칼 따위는 쓰지도 않지. 맨손으로 한 방에 사람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야.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게 아끼던 친구고 믿을 수 있어서 내가 부탁했어. 우리가 지금 호텔에 가서 무기를 꺼내올 수도 없고 설령 가져온다 해도 이렇게 일본도 같은 걸 가져올 수도 없으니.”
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본도라고? 너무 멋 부리는 거 아냐?”
“무슨 소리? 근접전에서는 이게 총보다 더 빨라. 재장전할 필요도 없고.”
“이것 참. 후반기 교육 때에도 다뤄보지 못한 무기를 오늘 처음 써보겠군.”
조가 쓴웃음을 짓자 제이가 낄낄거렸다. 둘은 이렇게라도 긴장을 풀고 싶었다. 조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는 날이고 자칫 죽을 가망성이 높았지만 머릿속은 멍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훈련소에서 제이를 만난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선택의 고민 따위는 할 틈도 없이 휘말려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극력 피해왔던 살인을, 이제 하러 가는 것이다.
제이는 프로콜 하럼의 ‘어 화이터 쉐이드 오브 페일’을 휘파람으로 부르며 걸었다. 조는 그곡을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로도 여러 번 들었지만 곡의 전주가 바흐를 연상케 한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나온 호객녀들을 무시한 두 사람은 주택가의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가로등조차 없는 어두운 거리 구석에는 생뚱맞게도 높은 담장과 안정적인 단층의 한옥집이 있었다. 입구에는 검정색 대형 세단이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조는 혹시라도 회사 요원들이 나와 있을까 경계했지만 제이는 경계는커녕 긴장도 하지 않았다. 제이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어느새 레인보우의 ‘템플 오브 더 킹’으로 바꾸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제이가 여유를 보일 만도 했던 것이 기와로 장식한 나무 대문 뒤에는 요정의 마담으로 보이는, 작지만 날씬한 중년 여성이 먼저 알아봤기 때문이다. 마담은 양손을 앞으로 포갠 채 제이에게 45도 각도로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응, 구 마담. 신세 좀 질게.”
제이는 윙크하며 사내에게서 받은 스포츠 가방에서 2cm 쯤 두께가 되는 하얀 봉투를 꺼내 마담에게 주었다. 마담은 고급스런 검정색 투피스에 커피 색 스타킹과 검정색 하이힐 차림이었는데 깊이 파인 가슴 사이에는 한눈에 비싸 보이는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천박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기품이 있었다. 의외로 이런 업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정도로 우아했다. 조는 제이가 건넨 봉투에는 현금이 아니라 수표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 애들만은...”
“아, 걱정 마. 그리고 뒷일은 책임지지.”
마담은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면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조는 연상의 여인에게 끌리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15살 이상 차이나 보이는 이 여성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조와 제이는 연못과 석등이 있는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네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 거야?”
“네 여자 친구.”
제이는 농담처럼 말하더니 샷건을 들고 지향 사격 자세로 전방으로 소리 없이 뛰었다. 조도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양손에 쥐고 뒤따랐다. 다행히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경계근무를 해야 할 요원들이 없는 것을 보면 마담이 이미 애들로 하여금 별채에서 붙어먹도록 한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SF 소설을 즐겨 읽고 습작으로 쓰고 있는 연재할 곳을 찾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9-1의 내용을 보고 순간 2006년 인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번화를 보고 2002년 것을 알게 되었네요.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