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적이 다시 정신을 차려서 쫓아오기 전에 급히 빠져나가기 위해 말에 박차를 가했다. 프로이트 경기병들이 가장 후미에 따라 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자존심이 매우 상했지만 그것은 나중문제였다. 일단은 살아서 본진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중앙의 보병들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프로이트 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적의 산개 대형이 아군의 밀집대형 안으로 파고들었고 다음에는 적의 종대가 마치 칼로 버터를 자르듯이 밀집대형을 절단해버렸다. 그리고 적의 횡대가 무너져 가는 밀집대형을 완전히 으깨어버렸는데 마치 압착기로 포도나 올리브를 으깨는 모습 같았다. 아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군대라고 부를 수 없게 된 패잔병의 집단으로 변한 그들은 등을 돌리고 후퇴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총도, 배낭도 팽개치고 무질서하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놓친 적의 기병들이 투입되어 우리 대신 그들을 무자비하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적의 기병도가 번뜩일 때마다 우리 패잔병들이 부지기수로 죽어 넘어졌다. 우리는 그저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더욱 말에 채찍질을 가할 따름이었다. 명예고 긍지도 간에 일단 살아남는 것만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처음 아텔리 원수가 있던 언덕을 보니 우리 쪽 장군들은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재편이나 반격을 한다든지 하는 건 전혀 생각하고 있지 못한 듯 했다. 그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왕좌왕 하고 있기만 했다. 프로이트 장군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전투의 승패가 갈린 것을 알고 피한 것 같았다. 포병들은 그 와중에서도 대포를 다시 말에 메달아 퇴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말을 달렸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아까 우리가 후퇴할 수 있게 적 기병대를 기습했던 근위기병들이 포병들을 돕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저런 여유라니 역시 근위대인건가? 또 다른 몇몇 근위기병들은 장교들을 붙들고 있었다. 병사들을 모아 마지막 저항이라도 해볼 생각인 것 같았다.

  ‘이런, 이런. 정말 쓸데없는 노력이로군. 지금은 한 발짝이라도 멀리 달아나야 할 때인데 왜 저런담? 저러다가 적 추격대에 따라 잡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말에 채찍질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근위기병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대령님,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적은 저 쪽에 있습니다.” 근위기병대 특유의 감청색 제복을 입은 그 기병은 약간 작은 체구에 날씬한 젊은이였다. 그는 나이에 약간 걸맞지 않게 소령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적이 저쪽에 있으니 반대방향으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 우린 지금 패배했네. 후퇴해야 한다구. 자네들도 어서 후퇴해야 해. 언제 적의 추격대가 쫓아올지 몰라. 지금 저렇게 포병들 도와주고 할 시간이 없네.” 정신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나는 그 소령에게 어서 도망쳐야 한다고 말했다.

  “예, 우린 전투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질서하게 도주하면 전쟁에서도 지게 될 겁니다. 즉시 대령님의 부대를 재편해서 질서정연하게 철수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 젊은 소령은 열정적이면서도 예의바르게 부탁했다.

  “그... 그게 자네 말을 들으니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렇게 사방팔방에 뿔뿔이 흩어져 버린 마당에 대체 어떻게....” 나는 도망가고 싶다는 욕구와 부끄러움과 의무감이 뒤섞여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저기 대령님 부대의 깃발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저 기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부대원들을 모으십시오. 어느 정도 모아서 대열을 이루고 있으면 다른 자들도 찾아 올 것입니다.” 소령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내 연대의 깃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해보겠네.” 나는 갑자기 젊은 소령의 용기와 열정에 감화되어서 흩어진 내 부하들을 집결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아니, 나야말로 감사하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그냥 정신없이 도망만 다닐 뻔 했으니까. 행운을 빌겠네. 다시 만나세.” 난 곧바로 연대기가 보이는 곳으로 말을 달렸고 그 소령은 다시 다른 장교를 찾아 떠났다.

  연대기 주변에는 전사한 기수를 대신해서 깃발을 든 장교를 포함해서 30명가량의 용기병들이 모여 있었다. 같이 싸웠던 경기병들도 그 정도 모여 있었다. 다들 피와 화약 냄새를 짙게 풍기고 피로와 두려움에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서 땅바닥에 주저앉은 자도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다.

  “지금 즉시 부대를 재집결 시키겠다. 이대로 멍하니 주저앉거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무작정 달리는 것은 훈련받은 기병의 행동이 아니다. 일어나라, 부대원들을 찾아야 한다.”

  “....” 그들은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내 말이 약간 정신 나간 이의 말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강요는 하지 않겠다. 후퇴 행렬에 기고 싶은 사람은 가도 좋다.” 한 두 사람이면 모를까 수십 명이 모여 있는 와중에서는 선뜻 도망가기가 어려운 법이다.

  우리는 정신없이 말을 달리고 있는 기병들을 찾아서 대열에 합류 시켰다. 몇 명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어서 뺨을 두어 대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할 지경이었다. 과연 그 근위기병 소령의 말대로 100여명 정도가 모이니 여기저기서 집결지를 찾은 듯이 기병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혼자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여럿이 모여 있는 것이 보다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의 인원이 모이자 우리는 대열을 갖추고 군기(軍旗)를 앞세워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후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더 이상 무질서한 도주가 아닌 정상적인 부대의 이동처럼 보였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흩어졌던 기병들이 찾아와서 합류하였다. 뒤를 돌아보니 근위기병들이 포병대와 함께 우리 뒤를 따라 오고 있었다. 대포는 절반가량 건진 듯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동해서 전날 야영했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부대(라기 보다는 패잔병의 무리)가 도착하여 있었다. 하지만 천막도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았고 부상병들은 어떠한 치료나 간호도 없이 신음하면서 들판에 나뒹굴고 있었다. 숙영지를 방어하기 위한 울타리나 바리케이드 같은 장애물도 없었고 중요지점을 지키는 보초병도 없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그러한 행동이 취해지도록 지시를 내리는 장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죠?” 내 옆에 있던 대위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일단 열명 정도 뽑아서 정찰조를 편성하게. 우리가 왔던 도로로 보내서 아군 패잔병을 안내하고 적의 움직임을 알아보도록 지시하게.”

  “예.”

  “그리고 자네.” 나는 다른 기병 장교를 불렀다.

  “옛.”

  “자네도 몇 사람을 데리고 지금 당장 군의관을 찾아서 데려오게. 만약 군의관이 없다면 군대에 오기 전에 의사나 약사 노릇을 했거나 그 조수 노릇을 했던 사람이라도 좋으니 여기로 데려오게.”

  “예.”  

----------------------------------------계속

아직도 주인공이 장군이 되려면 2화 정도 남았는데.... 제목을 바꿀까나?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