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적의 정면충돌은 전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적은 우리의 일제사격으로 상당수가 죽어나갔고 곧 이어서 우리 쪽이 적의 3미터짜리 기병창에 무수히 찔려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권총을 쏘고 칼로 베고 찌르며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다. 적 일부가 우리 오른편으로 치고 들어오려 했지만 그쪽으로 지노가 이끄는 경기병들이 달려들자 곧 단념했다.

  서로 맞붙어 싸움이 시작된 이상 어떠한 대형이나 전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양쪽 다 되는대로 각자 붙어 싸워서 죽이고 죽어갈 뿐이었다. 사방이 피 흘리면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주인을 잃고 해매는 말들로 가득했다. 단번에 죽지 않은 자들은 신의 자비를 간절히 바라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싸움은 길고 치열했지만 서서히 우리가 밀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 오기 전에 대포와 보병에게 엄청나게 얻어맞았고 적은 우리가 대포와 보병을 뚫고 올 때까지 쉬고 있어서 기운이 팔팔했으니 말이다. 숫자도 우리보다 더 많은 것처럼 보이고, (일단 머릿수가 많아야 유리하다는 건 전쟁에서의 진리다. 아니라는 사람은 연병장 100바퀴 뛰고 와라.)

  숫자도 많고 기운도 넉넉한 적 창기병들은 우리를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사람도 말도 모두 지친 다음이라 도리 없이 밀리고 있었고 밀리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갔다. 성미 급한 아텔리 원수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이라도 내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멸할 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문제는 그가 우리를 여기 보낸 건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고. (그는 아마 중앙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다.)

  “망할.” 나는 적의 기병 하나를 간신히 베어 넘기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 편 아무나 잡아서 전령으로 보내려 했다. 그런데 사방이 적이었다.

  “죽어!”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적 창기병 하나가 놀랄만한 스피드로 창을 겨누고 덤벼들었다. 내가 말머리를 돌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등부터 창에 꿰였을지도 몰랐다. 나는 간발의 차로 창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혈기 왕성했지만 경험이 부족했는지 나를 스치고 지나가서도 다시 돌아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몰아 다가가서 칼로 등을 베어버렸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안장에서 떨어져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찾아도 안보이던 전령감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지치고 불안한 표정의 용기병 한 명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그러니 당장 자네가 아텔리 원수에게 가서 지원을 요청해야 겠어. 지금 당장 말을 몰고 원수에게 가서 이곳으로 예비대를 보내달라고 하게. 서두르게. 우리 연대가 전멸하느냐 살아남느냐는 오로지 자네에게 달렸네.”

  “아... 알겠습니다.” 그는 경례할 사이도 없이 말머리를 돌려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그의 뒷모습을 계속 살펴보고 싶었지만 싸움터의 광경이 내 눈을 가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예비대를 우리 쪽으로 불러오는데 실패했다. 천신만고 끝에 본진에 도착해서 ‘원수님, 적의 좌익으로 예비대를 보내주십시오.’ 이야기 했지만 원수는 ‘좌익쯤은 중앙만 제압하면 바로 끝날 소소한 문제다. 전체 예비대를 중앙으로 투입시켜라.’ 라고 말해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적의 중앙을 제압하기는커녕 되려 제압당할 뻔 했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훈련 미숙의 우리 보병들은 곧바로 전위, 후위 할 것 없이 뒤엉켜서 거대한 밀집 대형을 이루었고 민첩한 적은 곧 우리 주력의 삼면을 둘러싸고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로이트 군이 지원하지 않았다면 포위되어 섬멸당할 뻔했다고 한다.

  프로이트 군이 한쪽 면을 막고 있는 발루아 군을 몰아내주어 그나마 주력의 숨통을 트였지만 그다지 유리하지는 않았다. 적 우측에 투입한 아군의 다른 기병들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소모전을 강요받고 있었고 프로이트 군 기병대가 그들을 돕기 위해 이미 출동한 상황이었다. 하이만 장군은 고전하고 있는 우리를 보았지만 남은 예비대를 투입시키기를 망설였다. 그들까지 투입시켰다간 그야말로 빈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미 빈손이 되어버린 아텔리 원수는 그제서야 싸움터의 전 광경을 지켜보자 거의 뇌졸중이라도 일어난 듯한 표정이었고 참모들은 얼굴이 거의 백짓장처럼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하랴? 더 이상 투입시킬 예비전력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좋은 방책을 떠올릴 만큼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니....

  한편 우리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패주시켰던 적 보병들이 다시 대오를 갖추고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측면에서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눈뜨고 바라보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계속 싸우면서 기적을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적에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것은 매우 멍청한 짓이고 (게다가 말들이 지쳐서 우리는 후퇴하자마자 따라잡힐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이미 싸우고 있는 적에게 등을 돌리고서 적 보병들에게 돌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내가 불쌍한 적 기병에게 칼질을 하면서 욕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기적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근위기병과 프로이트 경기병 수백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숫자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들이 잘만 움직여준다면 우리가 살길을 열어줄 수도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곧 적 보병의 후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륙에서 가장 빠르다는 (타국 기병의 3배라는) 프로이트의 경기병답게 그 속도는 번개에 비할 만 했다. 속도를 낸다 싶었는데 어느새 적 보병의 후미로 파고들어 대열을 흩어버리고 저항하는 적을 도살했다. 숫자야 적 보병이 월등히 많았지만 등 뒤를 찔린 탓에 변변히 맞서보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순식간에 우리 측면의 위협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적 보병이 물러나기가 무섭게 우리를 에워싸려 하는 적 기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말 수백 기騎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방비상태인 측면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적의 맹렬한 기세가 잠시 주춤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나팔이 아직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퇴각 나팔을 불었다. 적의 기세가 주춤한 것을 보고 기운을 내던 우리 기병들은 당혹해했으나 그들도 우리가 이길 가망이 거의 없고 이번이 퇴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머리를 돌렸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혹시 퇴각 나팔을 무시하는 자가 있지 않은가 걱정했지만 그런 자는 없었다. 나도 말머릴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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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