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일은 그동안 나왔던 진보주의적 관점으로 써진 과거의 기록들을 정리하
여 가능성을 찾아내는 일이였다. 신비로운 고대문명도 사실은 지금 우리의 문명과 비
슷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정말 좋은 생각이였다. 그들도 대륙 전체가
물에 잠기는 '홍수'를 맞이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었다. 그렇다면 비슷한 수
준으로 발달한 문명을 가진 우리에게도 살아남을 방법이 있을테니까.

"비행기는 어때? 거대한 비행기. 비행기로 고공을 날면 지진이든 해일이든 상관이
없잖아."

내가 생각해도 아니다 싶었는데 일단 말을 꺼내 본 것이였다. 루빌은 즉각 아니다
싶은 기분의 이유를 밝혀주었다.

"요즘 비행기가 커진다, 논스톱으로 난다 하지만 날아다닐 수 있는 시간은 다른 운
송수단에 비해 한정되는 편이지. 홍수가 나는 내내 떠있을 수 있을리가 없어. 게다
가 막상 땅이 가라앉는 순간엔 지진으로 활주로에서 뜰 수 없으니까 말야."

사실 이런 생존 수단을 찾아내는 것은 이곳에 모인 진보과학자들에게도 사실상 가
장 비중있는 임무였다. 현재 국방성을 비롯한 정부차원의 재해방비체제가 구성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관례수준일뿐, 앞으로 다가올 전대미문의 재
앙에 대해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재해방비도 구성 그 자체
보다는 여기서 뭔가 묘안이 나오면 그것을 바로 실현에 옮길 수 있는 사전 준비조
치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 듯 했다.

과연 진보주의적 과학자 집단 답게 여러가지 기상천외한 안도 나왔는데 그중 하나
는 지상에 강력한 방공호를 구축하는 것이였다. 외각은 일단 해일등에 대비해 든든
한 콘크리트로 짓지만 내부는 블록화된 플라스틱으로 챔버로 짓고 튜브형 통로로
연결하여 대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버티다가 챔버를 방해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설계
된 콘크리트 외피를 무너트리고 내부 공기를 통해 플라스틱 챔버가 수상으로 부상
하여 수상이 잔잔해질까지 내부 물자등으로 기다렸다가 완전히 안정화가 되면 함께
실고있는 시추 시설로 흙따위를 건져내어 플라스틱 챔버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섬을
만든다는 계획이였다. 발상 자체는 참신했지만 뭐랄까... 함부러 실행에 옮기기엔
못미더운게 많은 계획이였다. 가라앉다가 그대로 압궤되어 버린다던가 할 수 있는
위험도 많았고 말이다.

여지껏 나온 답안중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방주였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홍수의 기
간을 보낼 물자의 보관과 물에 떠있는 다는 안정성. 엄청난 크기의 해일이 덥칠지
도 모르지만 설계만 잘하면 어떻게든 되리라... 다만 아키스의 대륙구조론대로 대
륙침몰의 모델을 만들면 그 시작은 지각타일들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평평하게 이
어져 대륙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개의 타일들이 기울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즉 무수
한 거대 암초가 생기게 되는 셈이라 방주도 믿을 수만은 없다. 그래도 그나마 현실
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행성에 닥쳐올 거대한 재앙을 완벽하게 피하려면 정말
진보적 과학드라마인 스타트럭에서 나오는 것처럼 거대한 우주선인 안티프라이즈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고대인들이 만들었었다는 방주는 우주선일
지도 모른다. 고대인들중에는 하늘 너머로 떠나간 이들도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방주라는 단어도 원래는 우주선을 의미하는 단어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문명이 소멸된 이후에 사람들에게 우주선이란 개념은 이해할 수
없었을 거야. 그래서 그냥 거대한 배 정도로만 이해된거지. 생각을 해봐. 진보
물리학에서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빅 뱅' 이론 알지? 우주탄생은 혼돈상
태에서 분리된 엄청난 양의 물질과 반물질의 결합과정(Big bang)이 시작이였다는
것을 고대인들에게 무슨 수로 납득시키겠어? 물질이랑 반물질이란 단어나 개념
자체가 없었을거 아냐? 그러니 말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물질과 반물질의 결
합의 결과로 생기는 엄청난 빛뿐이지. 그래서 태초에 빛이 있었다고 밖에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구."

우리가 검색중인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담은 책중에는 위에서처럼 '방주는 사실
거대한 우주선이였을 것이다!'라는 SF적인 내용의 책도 있었다. 그 책이 나올
당시 책에 대한 종교계의반응은 그야말로 강력한 반발이였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나무로 만든 거대한 배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지 된 것은 우리 진보주의적 과
학자들 입장에선 아무리 봐도 서기 2세기 경의 성경 삽화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전엔 나무로 된 배가 아니였을 수도 있다.

그때 종교계의 태도는 진리를 받아들인다기보다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학습되
었고 그렇게 학습시켜야 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완고함이였다. 흔히 보여지
는 광신적 추종자들에의해 원전이 다시 쓰여지는 케이스이다.

나는 루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네가 뭐라고 말했었지?"

그러자 루빌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늬들이 성경을 써라."

물론 우리가 보기에도 아주 헛소리를 하는 녀석들이 진보주의적 과학자라고 자칭
하며 책을 써내는 것은 우리로써도 몹시 곤란한 일이다. 특히 스타트럭이 사실은
고대 인류의 실제 역사고 우리의 선조는 스타트럭에서 등장하는 별나라 사람인 개
틀링 인이라고 주장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스타트럭이 재미는 있지. 나도 꽤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게 인류가 잠재의식속
으로 기억하고 있는 실제 역사를 드라마화했다는 소리는 납득할 수거 없군."

루빌이 뭐라하든, 그러나 대중들이 보기엔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을 것이다. 이쯤
에서 나는 조금 자조적이 되었다.

"하긴, 생리대를 잘못 골라서 동정녀 임신이 됐다고 말하는 나랑 얼마나 다르겠어."

그말을 듣자 루빌의 표정이 바뀌었다. 무언가 강하게 말하려는 표정. 루빌의 말투
도 표정에 따라 강력해졌다.

"너 이거 알어? 집집마다 성경이 있지만 제대로 다 읽은 사람은 10%도 안된다는걸?
그 큰 이유중 하나가 고어체古語體가 읽기 어려워서래. 그래서 더 널리 읽으라고
개정판이 나왔는데 거의 안팔려서 망했잖아. 그 이유가..."

루빌이 열을 올리자 맥을 끊을 생각으로 말을 가로채보기로 했다.

"너무 읽기 쉬워서였다던가... 좀 어려워야 그럴싸한 기분이 드는데 너무 읽기 쉬우
니까 가벼워 보인다는 이유였지."

어이없는 이유였다. 성경에서 신은 더 쉽게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더 어렵게 배우길 원한다. ....라는 것은.

"그래. 대중들은 자유를 말하지. 그러나 실제로는 언제나 숭배할 우상을 원해. 그
래서 특정대상을 비이성적으로 신격화하거나 하는 경향이 강하지. 네가 생리대 주
장을 했던 것도 몽환적인 묘사의 성서가 싫어서였잖아."

대중들이 자유를 찾은 적이 있던가? 내가 아는 대중이란 종교에 취해있는 바보들
인데.. 루빌은 나와 다르게 보는 모양이군.

"잘 알아둬. 그들과 우리의 차잇점이야. 우리는 신을 만들지 않아. 그게 개틀링인
이든 나발이든 말이야. 다만 신이 만든 것을 이해할 뿐이지. 우리의 천문학자들이
겨우 밝혀낸 우주 탄생 이론인 공교롭게도 성서의 묘사와 일치하는 부분이있어.
어쩌면 성서는 진실일지도 몰라. 그리고 그렇다면 과학에 성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 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그건 종교인사들이 아니라 우리야.
종교한다는 녀석들은 신이 정말 강림한다해도 자기들 상상과 다르다고 이단심판을
내릴걸?"

루빌은 다음 말까지 잠시 멈췄다.

"어쨌든 우주선은... 최소한 우리에겐 무리야. 신성을 상징하는 소위성의 궤도를
바로잡기 위해 발사된 우주선은 6일동안 4명분의 식량과 공기를 실어나르는게 고
작이였는데 말야. 덩치는 고층빌딩만했거든."

아무리 서적을 뒤적거리고 머리를 굴려봤지만, 그다지 쓸만한 답안지는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또 한번 지진이 일어나서 우리는 안전지역으로 대피했
다. 요즘은 지진이 흔하고 여기에 온 3일동안에도 몇차례 지진이 일어났던 터라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였지만 지진이 점점 쎄진다는 것은 불안감을 불러오기 충
분한 일이였다.

"이번엔 좀 쎄군..."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우리가 쓰던 건물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지진으로 건물에 손상이 갔을 수 있으니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출
입금지라는 것이였다.

간만의 휴식이다 싶어서 머리도 풀 겸 시내로 나가려고 했는데 그조차 제지당
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내용은 기밀사항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탓이다. 꼭 보
안문제가 아니더라도 연이은 재앙으로 바깥 세상의 분위기도 점점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나.

"하아... 이젠 뭐하지?"

루빌이 한가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 대피구역에 있는 사람들중에서도 루빌은
대단히 태연한 편이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대부분 진보과학자라서 지진이
났다고 하늘의 분노를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쳐도 두발로 땅을 딛고
사는 육상동물로써 땅이 요동치면 불안해지는 것은 생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대피경보가 해제되자 루빌이 말을 꺼냈다.

"이봐. 이 참에 한번 보러가자."

"뭐 말이야? 민영 교수?"

내 생각에, 여기서 볼만한 것은 그녀 정도 밖에 없다.
그런 내 말에 루빌은 일부러 이를 한껏 들어내며 말했다.

"흐흐, 이 친구 보이는 거랑은 다르다니까. 확실히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말한건 요즘 만들고 있다는 거대한 기구야."

"아, 그... 그... 공중대피시설인가 뭔가 하는거 말이군."

들은 적이 있었다. 정부에서 제작중이라는 비장의 대피시설을.
제아무리 땅이 꺼지고 바다가 들어차도 공중은 안전할 것이다. 비행기로는 오
래 날지 못하니 기구라면 될지도 모른다. 이 아이디어는 다른 지역의 재해대
책본부의 어느 장교가 낸 것이라고 한다. 가장 유력한 안이여서 전국의 재해
대책본부가 온 역량을 다해 이걸 만들고 있다지. 그러나 고고학자가 보기엔
공교롭게도....

"그런데 왜 하필 삼각형으로 만드는거지? 기구란건 보통 커다란 풍선 밑에
조그만 통이 하나 달리는 거잖아."

지금까지 제작중인 것을 보면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삼각형 모양일 뿐이였
다. 크기는 테니스 코트가 안에 들어갈 정도.

"삼각형이라는게 어딘가 안정적이잖아. 얼마나 많은 물자를 탑재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에선 이런 구조가 유리할지도 모르지. 3개의 풍선을 매단 뒤,
풍선 사이를 관으로 연결하여 관을 통해 무게중심에 맞춰 풍선마다의 가스
양을 조절을 한다던 모양이더군."

언젠가 진보주의 과학소설에서도 비슷한 구조로 된 떠다니는 부양주택에
대한 묘사를 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모양이였다.

"그럼 열기구는 아닌가보네..."

이런 내 중얼거림에 루빌은 간단히 대답했다.

"수소."

"뭐?"

"수소를 쓴다더군."

"그거 너무 위험하잖아? 하인텐볼크라던가..."

세계의 6대 미스테리로 아주 유명한 근대의 거대 비행선이였다. 폭발의 이
유는 격렬한 인종말살정책을 펼치던 군정정부가 들어선 나라에서 선전을 위
해 비행선 사업을 어느 사업가로부터 몰수했고, 사업가는 적국으로 망명했
다. 그는 중요한 기술자이기도 해서 관리가 허술해진 덕분에 내부구조를 지
지하는 철선이 일으킨 불꽃에 타버렸을뿐.

대참사의 원인을 뻔히 알고있는 사업가는 비웃음 섞인 어조로 그 일의 전
모를 밝혀주었다. 그러나 종교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당시 적대관
계 국가의 흑색선전에 의해 마치 하늘의 응징인양 과대포장되었고, 그렇게
교란된 진실은 호사가들에 의해 세계 6대 미스테리의 반열에 까지 오른 것
이다.

어리석은 대중이란 그것에 빠져들었고, 영리한 자들은 그것을 선전에 이용
했다. 결국 진실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셈인 것이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하인텐볼크처럼 구조유지를 위해 철골로 꽉꽉 조이는
견식 구조의 비행선은 아니야. 그렇다고 얼마나 떠있어야 하는지 모를 상황
에선 열기구는 못쓸테니 말이야."

"최근 수소만큼 가볍고 불에 타지도 않는 할로늄이라는 기체가 발견됬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실험실에서 미량을 만들 수 있을 뿐이야. 이제 막 인정받은
원소니까."

할로늄도 원래는 200년 전에 발견되어야 했던 물건이다. 일식동안 태양의 경
계선이 울퉁불퉁해지는 현상을 관측하던 어느 과학자가 그 스펙트럼에서 그동
안 보지 못한 파장이 있음을 발견하고 태양의 이름을 따서 '헬리노스'라고 명
명했지만 그의 관측대로라면 태양은 울퉁불퉁하다는 소리였고, 당시 종교계에
서는 태양은 완전한 천체로 순수한 백색 원형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의
발견은 그의 학설을 검증하는 재판에서 '공기중에 빛이 산란하는 현상때문'으
로 판결되어 묵살되었다.

그러나 최근 극저온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이 개척되었다. 극저온에선 공기조차
얼릴 수 있었는데 그때 얼지않는 새로운 기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얼지않
는 기체라는 뜻의 인슈룸이라는이름이 붙여졌다가 나중에 예전에 발견되었던
'헬리노스'와 스펙트럼이 같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때의 발견을 기리는 의
미에서 할로늄으로 바뀐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은 끝도 없다. 만약 이 사회가 경직된 인식에서
벗어나 진보 과학자들에게 조금만 더 관대했더라면 지금쯤 헬륨으로 된 안전한
기구를 타고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이것이 결국 우리가 찾던 삼각대인 것일지도 모른다.
수소를 이용한 기구란 이미 증명된 기술이고, 비행기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오
래, 높이 날수있는 비행수단이기도 하다. 대륙횡단 비행선이 있을 정도니 이미
제한적이나마 공중에서 생활한 사람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으로 우리는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건지고 다음 세대까지 우리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빌"

나는 인류가 상상력에서 찾아낸 생존의 길을 바라보며 친구를 불렀다.

"우리가 할 일은 끝난 것 같군."

"글쎄, 과연 저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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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하옵게도.
나란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지만 글쎄.. 죽지 않았다면 어딘가엔 있겠지만 이제 여기엔 없을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