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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사냥꾼의 호흡 게이지. 녹색 막대가 보이시나요? 그러나 정작 게임에선 쓸 일이…]

FPS 게임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2>를 하다 보면, 가끔씩 물에 들어갈 일이 있습니다. 야외에는 작은 웅덩이나 습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기지 내부에 배수로도 있기 때문이죠. 재미있는 건 우주 해병대, 에일리언, 프레데터가 물에 들어갔을 때 각각 반응이 다르다는 겁니다. 우선 해병대는 (이름부터가
해병인데도) 평범한 인간이고, 별다른 잠수 장비도 없는지라 물 속에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몸놀림이 느려지고, 호흡 게이지가 생기기에 수면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얼마 안 있어서 죽고 맙니다. 프레데터는 영화 1편에 나온 것처럼 잠수했을 때 은신 장치가 풀립니다. 다시 은신을 하려고 해도 작동이 안 되죠. 몸놀림이 둔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외계 종족이기에 호흡 게이지는 해병대보다 긴 편이라서 호흡에 덜 신경써도 됩니다. 에일리언은 우주 최강 생명체답게 물 속에서도 거뜬히 움직입니다. 움직임이 느려지지도 않고, 호흡 게이지도 생기지 않습니다. 하긴 우주 공간에서도 별 탈 없이 지내는 생명체니 그깟 물 속에 들어갔다고 해서 어찌 될 리가 없죠. (영화 4편에 보면 꼬리를 이용해 헤엄치기도 하는데, 게임에서는 특별히 헤엄치는 동작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런 차이점을 활용하여 수중전을 펼치면 재미있을 것도 같지만, 게임 내에서 수중전은 사실상 나오기 어렵습니다. 싱글 미션을 진행하다 만나는 웅덩이나 배수로는 그저 간단한 장애물이나 배경지형 수준입니다. 영화에서처럼 폭포 밑으로 프레데터가 쫓아오거나 배수로를 에일리언 떼가 유영하는 일은 없습니다. 공식 멀티 플레이에서는 '급수장(reservoir)'라는 맵을 지원하는데, 맵 중앙에 요충지가 되는 웅덩이가 있으나 수위가 너무 낮습니다. 물이 무릎 밖에 안 차기 때문에 잠수할 일도 없고, 따라서 행동에 지장을 받지도 않죠. 그저 프레데터가 은신이 풀릴까 봐 조심할 뿐, 나머지 두 종족은 신경도 안 씁니다. 아주 드물게 유저들이 만든 커스텀 맵에는 수중전을 하도록 깊은 웅덩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커스텀 맵은 그리 널리 쓰이지 않기 때문에 대규모 전투를 하기 힘듭니다. 어차피 영화 <에일리언>, <프레데터> 시리즈에서 수중전을 강조한 부분이 없으므로 게임에도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호흡 게이지까지 구현해 놓은 상태에서 수중 미션이나 수중 맵을 만들지 않은 건 꽤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잠수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플레이도 가능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보면 FPS 게임에서 수중전이 나오는 건 드문 것 같습니다. 제트팩이나 비행체를 이용한 공중전이 널리 인기를 얻는 반면, 잠수복이나 잠수함을 타고 물에서 싸우는 건 본 기억이 없네요. 일단 일반적인 밀리터리 FPS라면 수중전을 구현하기 꽤 어려울 겁니다. 네이비 씰이나 해병대 같은 부대가 있습니다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침투나 상륙작전을 담당할 뿐 잠수해서 적과 접전하는 일은 별로 없죠. 현대전에서 수중전은 사실상 잠수함의 몫이고요. 그러니 이를 바탕으로 하는 밀리터리 FPS 역시 오로지 지상을 무대로 해야만 합니다. SF 계열 게임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인데, 강화복이나 기타 특수 장비를 이용해 잠수한다는 설정을 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중이라는 공간은 지상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지상전과 연계하는 것이 힘들고, 장비가 없다면 움직임에 제약이 많아 원활한 플레이를 즐기지 못합니다. (이건 실시간 전략 게임에 해상전을 구현하기 힘든 것과 비슷한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좀 더 리얼하게 가자면, 수중 전용 무기를 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우려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사람은 심리적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쪽을 선호하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건 꺼리는 편입니다. 이런 이유도 수중 FPS가 없는 데 한 몫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경험만을 이야기한 겁니다. 제가 시중에 나온 FPS 게임을 다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딘가에는 수중전을 그럴 듯하게 다룬 작품이 있을 수도 있지요. 물 속에서 서로 쏘고 헤엄치는 그런 게임이 어디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