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한국을 모티브로 한 악역 국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근현대 대한민국을 모티브로 한 악역 국가를 픽션에서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기왕이면 건담 시리즈의 지온 공국이라던가 에이스 컴뱃 시리즈의 벨카나 에루지아 같은, 혹은 스타워즈의 은하제국이나 워해머40k의 인류제국 같은, 악의 카리스마와 광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그런 모습의 악역 국가로 나오는 걸 보고 싶었기도 했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로 근현대 대한민국(과 구한말의 조선 및 대한제국)을 모티브로 그런 악역 국가를 만들어서 내 보낸 작품이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문피아에서 연재중인 대체역사물+피카레스크 소설인 '대통령 각하 만세'라는 소설인데요...

여기서 나오는 대한민국은 주인공 국가이지만 동시에 정의로움이나 선량함이라고는 1그램도 찾아볼 수 없는 사악한 절대악 그 자체입니다. 대놓고 파시즘을 국시로 내걸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현실 역사에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소련, 중국 등이 행했거나 혹은 지금도 행하고 있는 온갖 전범행위들(인권과 민주주의의 탄압, 언론에 대한 장악과 조작, 숙청, 세뇌, 인체실험, 제노사이드, 주변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수탈과 강제동화정책, 민간인에 대한 생물학 테러 등등)을 그대로 작중에서 행하면서 전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 넣는 악의 제국 그 자체이죠. 이 소설 속의 대한민국은 여러모로 워해머40k의 인류제국...스럽고(실제로 작중에서 세계의 반절 이상을 정복해 인류연방을 만들기까지 하니, 어떤 의미로는 인류제국이 맞긴 하네요?), 대놓고 독재정치를 행하며 국민들을 파시즘적 이념으로 단단히 세뇌시킨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시 여러모로 워해머40k의 그 황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는 작가도 기존의 대체역사물에서 종종 나오곤 하는 국수주의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는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작중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일절 미화가 없이 철저한 악역으로서 묘사하고 있기도 하고요. 애초에 작중의 대한민국의 모티브가 다들 잘 아실 1984의 그 오세아니아고, 작중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티브가 그 아돌프 히틀러이니 말 다 했죠. 오히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작중의 대한민국을 미화하고 있어서 문제일 지경이긴 합니다.

아무리 악역이라고 못박고 시작했다지만 너무 지나치게 절대악으로서 묘사되어서 오히려 그게 좀 반감이 생긴다...는 걸 빼면 정말 마음에 드는 설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