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마션>이 인기입니다. 평론가들도 호평하고, 흥행도 순항하는 중이네요. 저는 소설만 읽고 아직 영화는 안 봤는데…. 소설을 읽고 뭔가 당기는 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는 건 알겠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흥미를 추구하면서도 좀 더 깊게, 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법한데, 그냥 적당한 선에서 무마하더라고요. 뭔가 뒷맛이 심심해서 비슷한 종류의 다른 책이 없을까 싶어서 <은하를 넘어서>를 읽었습니다. 우주인의 생존, 우주복과 생존 장치의 세세한 묘사, 개그 만점 입담까지 비슷해 보였거든요.


SF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작가는 많은데, 그 중에 흔히 3명을 거론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죠. 예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중에서 제일 성향이 독특한 사람이 하인라인 아닌가 싶습니다. 아시모프와 클라크는 전형적인 SF 작가 쪽입니다. 과학을 공부했고, 교수나 학자 분위기를 풍기며, 문체나 문장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하인라인은 그야말로 이야기꾼이고, 다양한 소재를 취했으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인라인의 소설 중에는 이른바 청소년 SF들도 큰 줄기를 차지합니다. 아시모프와 클라크 역시 청소년이 읽을만한 소설을 여럿 썼지만, 특별히 어떤 계층을 의식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하인라인의 청소년 SF 소설에는 공통점이나 특징이 뚜렷한데, 다른 두 그랜드 마스터에게는 그런 면이 없죠. 사실 이 양반의 진짜 전공은 청소년 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아시모프와 클라크는 하인라인처럼 아예 작정하고 소년의 로망이나 감성을 건드리지는 않는 것 같네요.


하인라인의 청소년 소설은 우주판 보이스카웃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10대 청소년이 우주로 개척과 탐사를 떠나는 줄거리가 많아서 그런 듯합니다. 그 중에는 실제로 보이스카웃 소년이 나오는 것도 있고요.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물은 모험물이 최고이며, SF의 모험이라면 역시 지구를 떠나 낯선 우주를 헤매는 내용이 그럴 듯하겠죠. 주인공은 탐사 열망에 불타며,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위험과 고난이 닥쳐도 슬기롭게 해결합니다. 시대 배경은 저마다 다른데, 우주선을 간신히 띄우는 시기부터 식민 행성을 세우는 시기까지 천차만별입니다.

그 중에는 외계인과 조우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사람들끼리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년들이 언제나 그렇듯 친구와의 우정이 시험대에 오르고, 마음 설레는 여자아이도 만나고, 모범이 될 어른과 세상의 부정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악당과 마주합니다. 허나 전형적이고 진부한 악당은 그리 없는 편이고, 그보다 사회 변화와 극한 환경이 훨씬 더 큰 위기로 작용하죠. 다소 심각한 작품도 있지만, 소년물에 걸맞게 대체로 밝고 명랑합니다.


청소년 소설은 아니지만, 하인라인 작품 중에는 비슷한 톤이나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여름으로 가는 문>이 그렇습니다. 이건 어디로 보더라도 성인 소설입니다. 일단 주인공부터 아저씨이며, 소년이 낯선 세계로 꿈에 가득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 아니죠. 절망에 빠져서 죽기살기로 시간여행하는 쪽이니까요. 그러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유쾌한 여정이나 프레데리카 리키처럼 영특한 꼬마 아가씨와 연애(?)하는 광경, 전반적으로 희극적이고 가벼운 구성은 어딘지 청소년 소설 느낌이 듭니다.

사실 <여름으로 가는 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회 문제를 다루거나 미래 역사를 논의하기 때문이 아니죠. 10대 후반의 인물이 나오지만 오히려 진지하고 비장한 <스타십 트루퍼스>와 아저씨가 나오지만 가볍고 쾌활한 <여름으로 가는 문>은 엄연히 다르잖아요. 물론 하인라인은 워낙 말주변이 좋아서 어떤 작품을 쓰든 재치와 유머를 빼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름으로 가는 문>을 좌우하는 분위기와 감성은 성인보다 청소년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본격적인 청소년 소설 중에 인상적인 걸 꼽아보자면, 역시 <은하를 넘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우주로 가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의지를 표출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죠. (영문 제목처럼) 우주복을 손에 넣자, 천군만마를 얻은 장군마냥 기뻐하며, 만능열쇠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합니다. 우주복을 향한 동경과 애정이 소설 밖으로 뛰어나올 정도입니다. SF 소설은 가제트를 활용하는 것도 로망인데, 비록 낡은 우주복일지언정 일종의 캐릭터처럼 묘사합니다. 우주복에 숨결과 성격을 불어넣었다고 할까요.

책장을 덮고 나면, 정말 어디서 우주복이라도 하나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학생이지만 그에 걸맞게 우주 관련 지식도 상당하고, 낯선 환경에 떨어져도 무사히 생존하는 기민함을 보여줍니다. 20세기를 살아가는 문명인이라면 무릇 우주 지식이 해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여타 소설에도 곧잘 나오죠. 작가 본인이 과학 지식이 모자라는 우주 활극을 싫어하는 편이라 은근슬쩍 우주 지식을 쌓으라고 입김을 불어넣는 듯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어찌 보면 생존자 유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난데없이 희한한 우주선에 떨어지지만, 낡은 우주복과 자신의 지식을 무기로 끝까지 살아남으니까요. 저 옛날의 로빈슨 크루소부터 현실의 베어 그릴스까지, 기이한 환경에서 활약하는 생존자는 언제나 사람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두드립니다. 주인공 킵은 그런 생존자의 일종이지만, 겨우 고등학생이며 무대가 우주선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하죠. 발 붙이고 살던 지구도 아니고, 흉측한 외계 우주선에서 중차대한 사건까지 치르고 목숨을 건졌으니까요.

당연히 하인라인의 여타 청소년 소설에도 이와 같은 생존자와 탐험가 주인공이 줄줄이 나옵니다. 우주로 진출하려면 그만한 성향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킵이 다른 주인공보다 기억에 남는 까닭은 우주복이라는 구심점이 분명하기 때문일 겁니다. 인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존재하는 셈이죠. 아마 하인라인 청소년물 중에서 이처럼 주인공에게 생존 장비를 성심껏 투영하는 소설도 없을 겁니다.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손길로 우주복을 다루는 모습이라니.


나이는 어리지만 어딘가 어른스러운 여자아이가 동행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 피위가 하는 행동을 보면, 프레데리카 리키는 저리 가라 할 수준입니다. 리키가 주인공을 사모하는 순애보에 가깝다면, 피위는 좀 더 까칠하고 독선적입니다. <여름으로 가는 문>을 읽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읽으면, 하인라인이 꼬마 아가씨 캐릭터에 애착이 많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하긴 <우주의 개척자> 같은 소설도 꼬마 여자애가 나와서 주인공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죠. 소년과 소녀가 만나려면 동년배가 적당한데, 어쩌다 이렇게 어린 여자애와 모험하는지….

그만큼 어른스러움을 부각하는 설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울러 킵이 아무리 뛰어난 생존자라고 해도 고등학생인 만큼, 외계 우주선을 자유로이 다룰 수 없죠. 그런 킵을 도와주는 외계인 친구는 기이하지만 따스한 우정을 체험하게 해줍니다. <우주의 개척자>나 <하늘의 터널> 등에서는 또래 친구가 중요하게 나오지만, <은하를 넘어서>는 배경이 배경이니 외계인 친구와의 우정이 더욱 긴밀하겠네요. 이것도 킵의 특징이려나.


하인라인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도 인류 사회의 그림자를 비판하곤 합니다. <은하를 넘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막판까지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비장미와 거시적인 시점이 깔렸죠. 다른 소설에도 인류의 이기심이나 암울하게 흘러가는 사회 양상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소설서에는 아예 인류 전체의 존망을 순간적인 판단에 가름하잖아요. 과연 이 우주에 우리 인류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죠.

그걸 판단하는 과정은 거의 우주적 공포에 가깝게 서술했습니다. 어차피 10대 주인공의 유쾌한 모험담이라서 그렇게까지 깊게 파고들지야 않습니다. 주인공이 거의 구원자가 되었을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막판의 판결 장면은 책을 읽은 뒤에도 계속 뇌리에 떠돌더군요. 그저 생존을 섞은 모험물로 생각했더니, 인류의 과오를 그렇게 꼬집을 줄이야.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성인이 나오는 <여름으로 가는 문>이나 <프라이데이>보다 오히려 킵이 훨씬 무게가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청소년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무한한 우주, 우주복을 향한 애정과 동경, 생존자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주인공, 어른스러운 여자애와 이상한 외계인의 우정, 막판에 던지는 아프고 쓰라린 질문까지…. <은하를 넘어서>는 하인라인 청소년 소설 중에서도 단연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인라인이 쓴 청소년 SF를 모두 읽지 않은 터라 제일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붙일 수야 없습니다만. 다른 평론가나 독자들의 평가를 봐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합니다. 어차피 뭐가 최고냐는 결론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적어도 <은하를 넘어서>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건 분명합니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인데, 마냥 가볍지만은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건 사족이라면 사족인데…. 솔직히 <은하를 넘어서>는 소설 줄거리와 성격이 딱 맞게 드러나지 않는 제목입니다. 영문 제목을 번역하면, <우주복 준비 - 탐험 가능> 정도가 되는데, 이거 우리말로 그럴 싸하게 옮기기 난감하죠. 이 책을 볼 때마다 무슨 번역이 좋을까 고민하지만, 뭔가 좋을지 결론이 안 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