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왼쪽의 작품 이름을 선택하면 해당 작품 만을 보실 수 있습니다.
10개 이상의 글이 등록되면 독립 게시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앞 이야기- 마지막 그 순간
“케나스, 그대의 승리로군. 아니, 형민이라고 해야 하나.”
“끝났어. 모든 상처는 아물 것이다.”
“이 세계의 것은 그렇겠지.”
“무슨 말이지?”
“시간이 되면, 알 것이다.”
언제나 그는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되면 알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와는 셀 수도 없이 만난 것 같은데, 그때마다 그는 그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저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겠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이 마지막 순간에도.
“너의 이름은, 테라인가. 다른 이름이 있을 텐데.”
“아아, 나에게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나저나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건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너의 동료들은 싸우고 있을 터.”
“그래, 너의 말이 옳다. 궁금한 건 많지만,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나는 칼을 든 채로, 그에게로 다가간다. 무섭다. 생명을 죽인다는 감정. 말소의 느낌. 가능한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너무나도 마른 몸에, 나는 칼을 댄다. 아마 서늘할 것이다. 날카로우니까. 그리고 아플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싶지만, 이 광경을 똑바로 봐야 했었다.
찌른다. 그는 고통을 참는 듯,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 광경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아마 가장 깊숙하고 두려운 곳에 각인되겠지. 그의 표정은 점점 추악하게 되고 있었다.
칼을 뺀다. 불쾌하게 살들이 집히는 느낌. 아직 그의 눈에는 생명이 보였다. 두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똑바로 보아야 한다. 나의 맹세, 나의 의지, 그리고 나의 신념. 이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본다.
“잘 가기를.”
하지만, 내가 그 때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그 세계에 남았다면, 누구도 희생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상적인 세계, 그런 곳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1장. 있을 수 없는 만남
새 소리가 들린다. 설마. 또 그 때와 같다. 나는 정말로 알기 쉬운 사람이다. 눈을 뜬다. 강렬한 태양에 잠시 눈을 다시 감는다. 부드러운 흙의 감촉. 아마, 숲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조용한 분위기. 나는 이런 분위기를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포근함 속에는 뭔가 이질적인 것들이 숨어 있었다. 그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나. 나는 이토록 평화로운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좀 더 비참하고 음습한 곳에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 치열한 전장의 한가운데나, 혼돈의 공간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도 뭔가 정상의 숲은 아닐 것이었다.
아마,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내가 상상하는 것을 더 이상 꿈꾸지 않았다. 나의 순수함은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깊은 곳,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곳에 나의 상상력은 미약하게 빛나고 있으리라고. 그리고 지금이 이 결과인가? 나는 정말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당연히 보통의 사람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 놀라야 할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나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알고 있고, 남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놀라지 않는다. 어젯밤, 잠든 곳에서 이런 이상한 곳에서 깨어났어도 말이다. 이런 경험은 들어도 보았고, 겪어도 보았다.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닌가? 내 상상력은 그리 새롭지 못하다. 다른 이들의 기억을 참고로 하는 경우가 많다.
“!”
잠시 안정을 취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살기를 느낀다. 역시 내 느낌이 옳았다. 나에게 안전한 곳이란 있을 수가 없다. 촉각을 곤두세운다. 감각을 극대화한다. 어디인가? 이 무성해 보이는 숲속, 오른쪽, 왼쪽, 아니면 위? 나는 재빨리 모든 곳을 둘러본다.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날아오는 무언가.
“제길!”
방어막을 구현해서-그렇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누군가를 희생해야만 구해질 수 있는 세계. 그 곳에서의 경험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것도 그렇게 될 것이다.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총알처럼 생긴 것이었다. 다시 장전되는 소리가 들린다. 총이라니. 거기다가 다짜고짜 발사? 이곳의 생물체들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아 보았다.
다시 한 번 방어막으로 막는다. 이렇게 나무가 무성한 곳에서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게다가 해도 이쪽을 향하고 있다. 아마 앞을 똑바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적은 아마도 다른 무기를 쓸 것 같은데, 그 이전에 쓰러트려야 수월할 것이다.
‘부스럭.’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파악했다. 가벼운 불덩어리를 소환한다. 상처는 별로 못 주겠지만, 위협은 확실히 줄 수 있을 것이다.
‘펑!’
그 후 곧바로 자리를 이동한다. 이미 노출된 상황, 소리를 내더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으으!”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팔에 약간의 상처가 났다. 피가 흐른다. 아프다. 피할 수 없는 감정. 역시 보통의 상처는 아니었다. 서서히 팔이 마비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시도는 좋았다. 그것만큼은 인정해주지.”
“.....?”
“음? 별 반응이 없군? 꽤 무시할 수 없는 놈인 것 같군. 장전.”
적은 2명 이상이었던 말인가. 이번만큼은 나의 완벽한 패배다. 뭐, 언제나 이렇게 사소한 실수로 실패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히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저 목소리는, 나의 것과 상당히 비슷한 것이 아닌가? 나는 재빨리 방금 전의 소리가 들린 곳을 노려보았다.
“케나스.....?”
“흐음. 또 다른 나라니? 대체 형민이라는 인간은 얼마나 부서진 것일까?”
“잠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는 돌아가지 않았다고!”
“아니.....카르테스?”
케나스와 카르테스, 그 둘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모두들 놀란 표정이다. 당연하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꿈일까? 곧 깨어나지 않을까?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놀라운걸. 너는 형민의 어떠한 부분이지? 꽤 실력이 있는데 말이야.”
그 몸, 그 형태,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던, 인간의 형태를 버린 몸. 나의 소망이, 바로 내 앞에 실현되어 서 있다. 일단은 인간의 몸. 하지만 자세히 보면, 등 뒤의 보랏빛 날개와, 날카로운 뿔과, 긴 꼬리를 볼 수 있었다. 내가 포기했던 꿈. 그는, 나는 어떻게 이루었는가? 어떠한 세계에서? 어떠한 시간에서?
“너는, 너는 대체 어떻게?”
“나야 말로 묻고 싶은 걸. 나는 그때 돌아가지 않아서 말이야.”
“돌아가지 않았다고? 나는, 나는 돌아갔단 말이다!”
“어느 쪽이 진짜 케나스인 거지?”
“카르테스, 아마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리고 네가 정말 카르테스라면, 나를 모르겠나? 최후의 전투때......나는 너와 동료들을 버리고 갈 수밖에 없었어......”
“아니야! 케나스는, 그는 끝까지 남고야 말았단 말이다......”
“아무래도, 이 세계의 어딘가가 정상이 아닌 것 같군. 서로 다른 선택의 길을 택한 형민이 만났단 말인가. 그래, 너는 돌아간 모양이군. 하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곳이, 내가 처음으로 왔던 곳이란 말인가?”
그는 쓴 미소를 짓는다. 아니, 언제나 그런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너는 나이고, 나는 너다. 나는 많은 면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일까?”
두 가지 가능성, 선택의 길이 서로 섞여버린 세계. 그렇다면, 이곳은 혼돈으로, 모순으로 가득한 세계일 것이다.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 얼굴, 인간이 아닌 그 얼굴에서 나는 잠시나마 나를 향한 동정과 질투의 눈을 볼 수 있었다.
“테라가 말했던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일어난다고.”
“그건 내가 한 말이야.”
“그래. 과연 형민의 세계로군.”
“그게......대체 무슨 소리지? 내 세계라니? 하지만 나의 세계는, 그 곳이였어.......”
그는 잠시 한숨을 쉰다.
“이런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계가 절박하다는 것이겠지.”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모르겠군. 나는 대체 왜 여기로 온 거지?”
“그건 긴 이야기다. 참고로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느냐, 그것은 답해줄 수 있지. 나는 너보다 많은 것을 버리고 많은 것을 얻은 형민이다.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음.....”
“이봐! 나는 어쩌고? 나도 왜 이곳에 오게 된지 모르겠어! 이곳은 녹색달 숲이 아니잖아?”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은 카르테스의 모습을 보니, 조금 반가운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