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OM : Self Defense #006
  
  
  1999년 4월 10일  (2)



  "환영합니다. 미하일 레벤스키입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다가왔다. 신 대위가 이쪽의 대표로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쪽 부대원들에게는 열차에서 각종 장비를 내리도록 했다. 기다리고 있던 러시아 군 역시 일개 분대 정도의 규모로 보였다. 그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우리 분대가 하는 작업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상대해야 할 적 때문인지 상당히 두꺼워 보이는 방탄 조끼를 입고 있는 그들은 아마도 대테러전 부대의 일종인 듯 했다. 그 중에서도 갈색 단발 머리의 여성이 잠깐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이런 특수전 부대에서 여성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러시아 대원들은 하나같이 거칠게 깎은 수염 탓인지 강인하면서도 노련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작전이 작전이니만큼 그쪽에서도 많은 준비를 했겠지.

  '합동 작전이라.'

  들은 그대로였다. 애초에 이쪽의 협력을 요청한 것은 러시아 쪽이었다. 핫산과 블라디스톡을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도 끝자락. 이 황량한 벌판을 가로지르는 철도 한 가운데에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바로 하루 전의 일이었다.
  
  전달받은 정보는 간단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중 하나가 멈췄다는 것. 원인은 알 수 없다 라는 것은 크렘린으로 전달된 내용일 뿐이고 열차로부터 마지막으로 전해져 온 메시지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한 습격임을 확실히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협조 요청이 들어왔다.
  
  러시아에도 이미 이런 일에 대비하는 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엔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 말처럼 외계인들은 국적을 따지지 않으니까. 궁핍한 재정 상황 때문에 러시아의 조직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으나-물론 우리에 비해서는 거대하다고밖에 할 수 없겠지만-, 넓은 활동 반경과 정보 은폐 측면에서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모두 신 대위에게 들은 것이었다. 일개 대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정보력은 뛰어나다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항상 부족했다. 그러나 나로서 품을 수 있는 의문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는 적들과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나의 역할이라는 사실이었다.

  간단한 대화를 마친 신 대위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미하일이라는 사람은 부하들을 모아놓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신 대위는 철로를 따라 초원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표는 열차의 확보입니다."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뭐가 남아 있을까나."

  참 간결한 목표 설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물론 연락을 받자 마자 출발하긴 했지만 헬기에서 특별열차로 이어지는 이동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열차 주위는 완전히 포위한 상태이고, 요격기가 24시간 상공을 지키고 있다는군요."

  그녀의 말을 듣고보니 구름낀 하늘 저편에서 뭔가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부른 거지?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 대로라면 열차를 습격한 적들은 완전히 고립된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완전히 고립된 적이라면 어떤 수단을 쓰느냐가 문제지 적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열차 탑승객 중에 우리측 중요 인물이 있습니다."

  안경을 약간 고쳐 쓰며 신 대위가 씁쓸한 투로 말했다.

  "중요하건 아니건 간에 지금쯤은 시체일 텐데?"

  "그건 아직 모릅니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야트막한 언덕 위였다. 탁 트인 전망은 연해주에 펼쳐진 평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가로지르는 검은 철도가 선명했다. 하지만 평원을 거칠 것 없이 가로지르는 철도를 따라가던 눈길은 곧 어울리지 않는 풍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객차는 열 량 정도나 될까. 상당히 기다란 기차 대열이 선로 위에 멈춰 있었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맨 앞에 있는 기관차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셔져 있었다.
적어도 갑자기 당한 것은 아니었다. 열차는 전복되지도, 선로를 이탈하지도 않은 채 조용히 멈춰 서 있는 것이었다. 왠지 현실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의 몸에 장착된 센서에서 의식은 없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살아있다'라.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외계인들이 무조건 살상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은 틀림없었다. 물론 그것도 민간인의 경우였고, 단지 시체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경우가 더 많긴 했지만... 실제로 그들과 마주쳤다가 살아남은 민간인에 대한 사례도 있었다. 비록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이 남았긴 했지만 분명히 '살아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센서까지 달려 있다는 그 중요 인물이 누군지에 관해서는 신 대위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번 작전에 대해서는 의문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외계인이 지나가는 열차를 습격했다는 것 자체부터 시작해서 아무리 우리측 인사가 타고 있다고는 해도 러시아쪽에서 우리의 지원을 요청한 것은 상당히 의외의 일이었다. 자존심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러시아가 손을 내밀 만한 까닭은 쉽게 짐작가지 않았다.  뭐, 굳이 대자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책임을 뒤집어 씌울 상대가 필요한가 보군요."

  "맞는 말이예요. 게다가 우리가 협정을 맺은 상대에는 단지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인간은 역시 국적을 따지는 것인가. 정부도 그저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제아무리 광대한 국토를 지닌 러시아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서는 자존심을 굽힐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 분명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앞으로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할 예정인 한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상인 만큼, 생각보다 더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간에 지금 마주한 적은 바로 저 앞에 보이는 열차에 있었다. 신 대위는 미하일 중위와 함께 작전을 계획하고 최대한 빨리 실행할 것을 강조했다. 그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강 중위라고 했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소를 띄며 인사를 건넨 미하일 중위는 이런 종류의 일에 경험이 많은 듯 했다. 이미 대략적인 계획은 세워져 있었고, 굳이 그것을 바꿀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열차 주위에 대한 대량의 연막 포격과 함께 먼저 우리 팀이 열차 앞쪽, 즉 기관차 방향에서부터 적의 주의를 끄는 동시에 러시아 팀이 열차 가장 뒤쪽의 화물칸 쪽으로 돌입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혹시라도 열차 중간에서 뛰쳐나올 적이라면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저격수들과, 심지어 전차까지 동원된 중화기가 처리할 예정이었다. 지원 사격은 철저히 열차 바깥에 한정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열차 그 자체의 보호였다. 안에 있는 생존자의 구출이 최우선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당히 무리가 있는 계획이다.

  지금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적들이 인간과는 다른 심리를 가지고 있음은 이미 밝혀졌다. 과연 이쪽의 기습에 당황할지, 아니 최소한 그들의 주의를 과연 끌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열차 안의 적들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추측만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해 주고 있었다. 벌써 만 하루가 지났는데 적들은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직 열차에서 할 일이 남은 것일까. 미하일의 말에 따르면 적들은 그들을 데려갈 수송선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도착할 예정이며 요격할 전투기는 대기중이지만 성공할 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신속한 작전 개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설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외계인의 수송선이라든지 그것이 도착할 시간 따위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당신들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그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서 나온 결론입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상당한 신뢰와 자신감을 나타내 보였다. 이쪽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태도이다.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는 적들의 행동에 규칙성이 있다는 말에 쉽게 수긍이 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정보 분석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을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적은 바로 눈앞에 있었고, 우리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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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지는 연재는 이 다음 편 부터가 될 듯 합니다.
조금씩 자신감이 없어지는 글..이랄까요;
그럼.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