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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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duchess of isllan 서장 에카산 전투 (1)
초겨울 냉기를 품은 바람은 누구나 싫어하기 나름이다. 다들 찬 바람을 피하고자 몸을 웅크리고 문을 꼭꼭 닫고 혹시나 열린 창문이 없을까 점검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 아이슬란가의 대저택 3층엔 창문이 열려있는 방이 있었다.
여느 집과는 다르게 이 추운 날씨에도 창문이 열려 있는 방은 바로 아이슬란 대공의 집무실인데 방 주인은 보이지 않고 열일곱~여덟가량 되어 보이는 앳된 아가씨가 아이슬란 대공의 검은색 집무용 탁자 앞에 앉아서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돋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백금빛 머리칼이 열려있는 집무실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는데 한올 한올 머릿결이 매우 고운데다가 햇빛까지 받아 찬란하게 빛이 났다. 흩날리는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얼굴 또한 매우 아름다웠는데, 조각과도 같은 아름다운 턱선과 백금빛 가는 눈썹 아래에 있는 녹색 보석 같은 아름다운 눈. 그리고 그 보석 같은 양 눈 사이에서 시작하여 약간 아래쪽에 오똑 솟아 있는 콧날과 그 아래 위치한 붉은 입술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얼마간 더 지도를 들여다보던 아가씨는 눈이 피로한지 손을 올려 자신의 눈가를 덮었다. 그리고 밖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난 것도 그때.
"아드리아 아가씨. 대공 전하께서 보내신 전령입니다."
피곤했던 눈을 잠시 쉬려고 했던 작은 계획은 집무실 밖의 호위기사에게 방해를 받고 말았다.
"들여보내."
아드리아라고 불린 아가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피투성이가 된 가죽옷을 걸친 자가 아이슬란 대공의 집무실에 허겁지겁 뛰어들어온다. 그는 힘들게 이곳까지 온 듯 매우 지쳐 보였으며 몸에는 잔 상처들이 많았다. 그는 대공을 대신해 집무를 보고 있는 아드리아가 앉아 있던 탁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전한다.
"급보입니다! 카마테온의 중장병단을 막으러 나서신 대공께서 불의의 산사태로 상당한 병력을 잃고 에카산에 고립되셨습니다. 구원병을 내어 주십시오."
공기는 건조했고 올해엔 아직 눈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산사태라니, 아드리아가 전령이 가져 온 난데없는 소식을 듣고 놀란 듯이 탁자를 내리치며 되물었다. 묵직한 검은색 탁자가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울린다.
"산사태라니 무슨 소리야? 아니, 그보다, 지금 대공께서는 무사하신 거야?"
"대공 전하께서는 무사하십니다. 하지만, 대공께서 피해를 정비하시는 동안에 적 중장병단 5만 명이 산을 포위하였습니다. 적들도 산사태 때문에 진입을 미루고 있긴 합니다만 별동대로 보이는 적 병력 소수가 난입해 1만 남짓 남은 아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곳을 빠져나올 때에는 일진일퇴의 상황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산사태로 말미암은 부상자가 많은 아군이 중과부적으로 밀리게 되오니 원군을 서둘러 주십시오."
"알았어. 먼 길 오느라 지쳤을 테니 상처 관리 잘하고 푹 쉬도록 해. 수고했어."
전령이 인사하고 일어나 집무실 밖을 나가자 아드리아가 팔꿈치를 탁자에 붙인 채 자신의 긴 백금빛 앞 머리칼 아래에 손을 밀어 넣으며 이마를 짚었다. 기다란 앞머리가 찰랑거린다. 잠시 그러고 있던 아드리아가 이내 누군가를 불렀다.
"미하일. 밖에 있으면 들어와."
곧 집무실 문이 열리고 기사 한 명이 들어와 예를 올리며 대답한다.
"부르셨습니까."
아드리아가 이마를 짚었던 손을 떼면서 미하일이라는 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더니슨 남작과 성에 남아있는 모든 기사들을 이곳으로 불러와."
잠시 후 대공의 집무실에 열여섯 명이 불려와 있었다. 그들은 아이슬란 대공이 방어군으로 배치하고 간 인원들이었는데, 다들 이 지방에서 작은 영지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고, 아이슬란 대공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여기 모인 자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더니슨 남작은 올해 43세로 아이슬란대공을 20여 년 동안 보필해오던 귀족이다. 그들보다 훨씬 어린 아드리아가 자신들을 불러낸 것에 불만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만큼 아이슬란 공작가에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자신의 지시대로 대공작의 집무실에 그들이 모두 모인 것을 보고 집무실에 있던 아드리아가 입을 연다.
"사안이 급하니 본론부터 말하지요. 다들 소식을 들어 알고 있겠지만 방어군을 이끌고 나가신 대공께서 불의의 산사태로 말미암아 매우 위급한 상황에 빠지셨습니다. 지금 성에 얼마 되지 않는 병력이 남아있지만 반으로 나누어서 원군을 내겠습니다. 지금 성에 남아있는 방어군 8천명 중에서 궁병 4천을 수비군으로 남기겠습니다. 수성은 더니슨 남작께서 맡아주세요."
아드리아의 말에 더니슨 남작의 눈이 잠시 움찔했다. 대공의 충성스런 수하인 그는 방어군으로 남아있기 싫은 듯했다.
"아가씨! 대공 전하께서 위급하신데 제게 이 성에 남아 있으란 말씀이십니까! 제게 구원병의 선봉을 주십시오."
필시 대공이 위급하다고 해서 그를 구하러 가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아드리아는 그의 요구를 승낙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출전하면 성을 맡길만한 사람은 더니슨 남작뿐이었기 때문이다.
"남작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저와 남작님이 모두 이 성을 비우면 방어는 누가 하겠어요. 남작님께는 죄송하지만 방어를 맡아주세요."
더니슨 남작은 끝내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아버지가 위험한데 그 딸에게 성을 남아 지키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끝내 수긍을 했다.
"..........알았습니다."
아드리아의 지시를 받은 더니슨 남작은 한쪽 팔을 올려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더니슨 남작을 설득한 아드리아는 다른 휘하 기사 넷을 불렀다.
"에릭 미하일 그린테 헨델."
호명된 네 기사가 검 손잡이를 양손에 감아 싼 채로 들어 올리며 크게 대답했다.
"네!"
"최대한 빠르게 중기병 출정을 준비해둬. 그리고 각 병대에 일러 말발굽에 씌울 솜과 입에 물릴 재갈을 준비하고 또한 갑옷에는 검게 암광처리를 하도록. 수 적인 차이가 차이이니만큼 적군의 포위진을 야습으로 단번에 무너뜨리고 대공께 활로를 내어드려야 하니까. 마갑에도 신경을 많이 써주고. 지금 나가서 준비해."
명령을 받은 네 기사가 크게 대답하며 집무실 밖으로 재빨리 나갔다. 긴급상황이어서일까? 그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그들이 나간 이후에도 아드리아는 남은 기사들을 둘러보며 무언가 더 지시를 내렸다. 얼마후 아드리아의 지시를 받고 더니슨 남작 외 기사 열 한명 전원이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성에 남을 지휘관들에게 지시를 모두 내린 아드리아는 다시금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고 있었던 지도를 펼쳐 다시 펼쳐들었다 지도를 짚고 있는 손가락은 에카라고 쓰인 지점을 가르키고 있었다. 머릿속이 매우 복잡해졌다.
'어쩐다.... 운용가능한 병력은 중기병 4천 명. 그렇다고 성을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산개되어있는 적병을 급습해서 승리한다고 해도 5만명을 이끌고 원정군 사령관이 될 정도 장수라면 보통내기가 아닐 건데…. 고립된 아군을 구출할 활로를 내는 것은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아. 아버지께서 제발 무사하셔야 할 것인데.'
아드리아가 지도를 들여다보며 다른 종이에 이것저것 그려가며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진지 세 시간 정도 뒤 집무실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하일이라고 불리던 기사다.
"아가씨. 출정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최정예 스피어드기병 100기를 비롯하여 정예기병 4천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 글래스고 성의 도개교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중기병 4천여 명이 그 위를 내달렸다. 그리고 그 기병대의 선봉에 붉은색 투구를 쓰고 같은 색 화려한 갑옷을 입은 백금발을 가진 아가씨가 백마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아드리아 루스 아이슬란. 4천 기병대의 선봉에 서 있는 17세 아가씨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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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를 지우고 약간 다듬었습니다. 다른 글도 다듬기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