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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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돌아갈 수 없는 시간 (5)[[/B]]
사주크 상황실에 있는 멜리샤.스젯은 사방에 둘려싸여 있는 전면 스크린을 올려다 본다.
멜리샤의 머리 위로 어설트 프리깃 세 척이 사주크 상갑판에 닿아 한바퀴 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른 프리깃들은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지만 그녀가 숨죽여 바라보는 프리깃은 선두가 찌그러지고 갑판 일부가 떨어져나가 쇳덩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엔진에서 일렁이는 불꽃으로 무게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면 프리깃 안에 사람들은 아직 무사해 보인다.
어택바머에서 쏟아져 나오는 플라즈마 포탄은 사주크의 외벽에 맞고 파란 광채를 흩뿌리며 사라졌다.
그 것은 마치 모래알이 공중에서 산화되어 아름다운 불꽃을 만드는 것 같았다.
멜리샤는 눈 앞에 있는 홀로그램에서 사주크의 피해 상태를 나타내는 게이지를 지켜보았다.
3개의 코어가 이제 막 깨어나서 아직은 불안정했지만 사주크의 선체에 별 이상은 없었다.
사주크의 강철 체력을 다시 구경하려면 조금 더 시일은 걸리나 지금 이 정도에 가벼운 폭격은 버틸만하다.
멜리샤는 그녀의 귀에 꽂은 무선 통신기를 이용해 배레딕 부함장에게 시시각각 상태를 보고해주었다.
포메이션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프리깃들 속에서 사주크는 그들 뒤에 또 서있는 두번째 방벽 대형에 점차 다가서고 있다.
첫번째 방벽이 깨지는걸 뒤에서 지켜보던 어설트 프리깃들은 플라즈마 포와 매스드라이버의 산발적인 포격을 거대한 함선에게 가했다.
위 아래로 일렬로 줄지어 선 두번째 방벽은 바로 앞의 물체를 향해 짜임새있고 일괄적으로 탄환들을 발사시킨다.
사주크는 비 처럼 쏟아붓는 포격을 맞으며 프리깃들의 반응 따위에 아랑곳 않고 그들의 방벽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포탄 세례를 퍼붓는 어설트 프리깃들은 사격을 멈추고 회피기동을 시작한다.
가장자리에 프리깃들은 넓게 퍼지며 중앙의 프리깃이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지만 사주크의 속도가 한 발짝 더 빨랐다.
프리깃 두 척이 정면으로 달려들자 사주크 상황실에 서 있던 멜리샤.스젯은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굽혀 몸을 낮추었다.
상황실 실내 외벽과 바깥의 차이를 알아볼 수 없으니 전면 모니터에 비친 주변에 물체들이 마치 자신에게 달려드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어설트 프리깃은 강한 충격음과 더불어 선체에 엄청난 전류를 발산하며 그녀의 머리 위로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이곳이 안전한 실내라는 것을 깨달은 멜리샤는 아직 겁많은 자기 모습에 쑥스러워하며 몸을 일으키니 주변에 다른 승무원들도 똑같이 굽혔던 허리를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상대방의 무안한 표정을 서로 확인한 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기 좌석에 바로 앉았다.
다섯 척의 프리깃을 고철로 만들면서 방벽을 모두 부숴버린 사주크는 이제 마지막 방해물인 구축함을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속도를 늦추지않고 돌격하더라도 거리가 점차 멀어지는 캐리어를 따라잡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주크를 계속 뒤따라오며 사격을 가하던 프리깃과 어택바머들은 좌우로 패로 나눠 나름대로 작은 포메이션을 갖춰나갔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두 척의 미사일 디스트로이어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듯 자세를 고쳐 잡고 미사일 개폐실을 열었다.
그러자 디스트로이어의 앞에 보이는 사출구에서 터져나오는 불꽃과 함께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유도 미사일들이 동시에 날아오른다.
멜리샤.스젯은 현재의 유도 무기 체계와 또 다른 타이탄의 미사일 형태를 관찰하며 폭발음에 대비해 조용히 귀를 막았다.
유도 미사일들은 실 타래를 길게 꼬는 듯이 길다란 연기를 뒤로 남긴 채 사주크의 선두에 내리꽂고 연쇄 폭발을 한다.
그러나 미사일들의 폭발음은 예상보다 크지 않게 사주크 상황실에 공기를 가볍게 울렸다.
이번에는 그들 가운데에 끼어있던 '스칼-텔' 디스트로이어가 자욱한 먼지를 가르며 전진하는 사주크의 선두에 푸른 빛줄기의 광채를 뿜으며 명중시킨다.
준방위 이온캐논은 사주크 선두의 한 부분을 시원스레 긁으며 타이탄이 자랑하는 레이저 시스템을 한껏 뽐내었다.
하지만 사주크는 그런 공격을 우숩게 여기는 듯 디스트로이어의 코 앞까지 다가선다.
"돌격을 멈춰!"
사주크의 머리가 미사일 디스트로이어를 막 밀쳐내려는 순간.
상황실에는 사주크의 엔진을 멈추고 중앙의 디스트로이어를 피하라는 제나르 함장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배레딕 부함장에게 사령실의 지령을 다급하게 받은 제나르 함장이었기에 먼저 사주크의 이동을 멈추고 그 이유를 묻기로 하였다.
사주크는 디스트로이어를 피하기위해 머리를 앞으로 숙였고, 3척의 디스트로이어도 충돌을 피하기위해 뱃머리를 돌린다.
가까스로 충돌을 모면한 사주크와 구축함들은 불안정한 자세로 한자리에 멈춰섰다.
지금쯤 타이탄인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거대한 선박의 움직임을 봉쇄한 것에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제나르 함장은 답답한 심정으로 배레딕 부함장에게 사주크를 멈춰야했던 이유를 캐물었다.
"부함장, 도주하는 캐리어를 잡으라던 사령실에서 이번에는 놓아주라고 하던가?"
"그렇지않습니다. 제나르 함장님, 캐리어는 잡아야하지만 앞에 보이는 이온 구축함 한 척은 피하랍니다."
제나르 함장은 기껏 구축함 하나 때문에 사주크를 멈추게 했다는 말에 황당하고 어의가 없었다.
"100년 전에 퇴역한 함선 따위에 신경을 쓰다니 사령실에 정보장교들은 너무 소심한거 아닌가?"
"제나르 함장님, 오래 전에 퇴역된 것들을 우리가 다시 고철로 만들어도 상관없지만, 지금 바로 앞에 있는 함선의 코드 넘버를 확인해보면 쿠샨 함대의 것입니다."
쿠샨 함대라면 카락 행성에서 탈출해 히가라로 향하던 시대에 쓰이던 그들 조상들의 함대였다.
지금 불려도 영광스런 히가라의 쿠샨 함대란 말에 제나르가 당황해하자 배레딕이 다시 말을 잇는다.
"함장님, 정보장교들의 말에 따르면.. 물론, 지금은 타이탄인들의 것이 맞지만, 셀비지 콜벳에 나포되어 쿠샨 함대에 편입될 디스트로이어라고 합니다. 만약 저 것이 사라지면 앞으로 쿠샨 함대의 전력에 차질이 생기고 역사가 바뀐다고 한다더군요."
이제는 오래된 문서를 뒤적이며 함선 코드명을 하나씩 확인하고 피해야한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않았다.
"내가 정말 과거에 왔다는 말을 믿어야되나..."
제나르 함장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쿠샨 함대가 될 디스트로이어를 바라보았다.
지금 사주크가 타이탄의 함선들에게 일방적으로 두둘겨 맞는 상황 속에서 피해야할 디스트로이어를 머리 위에 두고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한다.
이제 멀리 달아난 캐리어를 앞질러 가는 유일한 방법은 하이퍼스페이스 뿐이다.
제나르 함장은 단거리 하이퍼스페이스를 위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센서메니저를 보고 있을 때 좌측 주변에 다른 함선이 도착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제나르 함장님, 하이퍼스페이스로 타이탄 함선이 더 도착했습니다. 상대는 다수의 이온캐논 프리깃과 한 척의 '쿼-젯'입니다."
페릭 참모의 말을 들은 함장은 고개를 돌려 몇 마일 밖에 있는 타이탄 제국의 그 유명한 헤비크루저를 보았다.
준방위 회전형 매스드라이버와 강력한 이온 캐논 포탑의 위용을 자랑하며 수천년을 진화해온 헤비크루저의 늠름한 자태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사실에 감탄할 상황이 아니었다.
전방에 또 다른 헤비크루저 한 척이 더 목격 되었고, 그 것은 달아나던 캐리어를 호위하기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포메이션을 맞추더니 멈춰 선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이퍼스페이스를 하려는 것임을 제나르 함장은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사주크가 하이퍼스페이스를 통해 캐리어 앞에 다가간다고 해도 몇 분간의 정지상태와 공격을 하기위해 선체를 돌릴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이동할 시간에 캐리어는 이미 그 자리에 떠나고 없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타이탄의 프리깃과 어택바머들 그리고 구축함들의 쉴틈 없는 포격 소리가 마치 제나르 함장의 머리 속을 두둘기는 것 같았다.
좌측에서는 방금 도착한 이온캐논 프리깃과 쿼-젯이 천천히 다가서고 있고 게다가 머리 위의 디스트로이어 때문에 숨이 막힐 상황이다.
제나르 함장은 또 다시 타이탄의 캐리어를 잡지못하고 놓치게 될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 책망을 하고 있던 이 짧은 순간에..
그가 바라보는 사주크의 머리 중심이 정확히 캐리어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주크의 머리는 캐리어와 일직선으로 놓여져있었다.
함포 외에 사정거리 밖의 목표물을 한방에 격파할 방법을 알아낸 제나르 함장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사주크 주포를 최종 목표물을 향해 발사하라!"
베레딕 부함장은 그 짧은 순간에 사주크의 방향을 살펴본 함장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상황실에서 헤비캐논을 발포하기위한 준비를 지켜본다.
승무원들은 캐리어를 조준하기 위해 선체를 움직여서 각도를 맞추기까지 오래 걸리지않았다.
사주크 코어의 에너지가 점차 높아져 갈수록 실내의 조명들은 하나 둘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전면 스크린의 밝기도 어둡게 물들자 실내의 승무원들 모두가 숨죽이며 정면을 응시한다.
그렇게 단 몇분 동안 꿈쩍도 하지않는 거대한 함선의 중심에는 화려한 광채들이 서서히 집중되어 갔다.
사주크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타이탄 함대도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아름다운 광채에 넋이나가 있었다.
함선 전체가 밝은 빛을 내며 말로 표현할수 없는 황홀함을 보여주고 있을 때.
그 뒤에서 물밀듯이 몰려오는 거대한 불기둥이 천천히 앞쪽으로 밀고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불기둥이 점점 밀고 나올수록 타이탄 함대도 그 관경에 놀라 포격을 멈추었다.
엄청난 소용돌이가 마침내 끝에 도착하자 사주크의 3개의 코어에서 강렬한 광채가 발산한다.
드디어 뱃머리의 커다란 입에서 용의 불꽃과 같은 거대한 에너지 기둥이 솟구쳐 앞으로 뻗어 나갔다.
타이탄인들은 그 모습에 경악을 하였다.
우주의 진공을 찢는듯 무서울 정도의 충격파가 주변 함선들의 갑판을 두둘긴다.
거대한 불기둥은 저 멀리 있던 타이탄 캐리어를 뚫고 나와 그 옆에 있던 헤비크루저까지 꾀었다.
두 척의 캐피탈급 함선은 불기둥에 꽂혀 처절하게 녹아내릴 때까지 어두운 우주를 밝은 빛깔로 물들였다.
캐리어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히 부서졌지만 그 잔해들 마저 불기둥이 소각시켜 버렸다.
사주크 헤비캐논의 단 몇초의 공격을 끝으로 그동안 쫓아가던 상황도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제 우주를 가로지르던 불기둥은 꺼지고 없었다.
캐리어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한 헤비크루저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에 잔해물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우주는 다시 예전처럼 어둠에 뭍혀갔지만 그 앞으로 엄청난 에너지 흐름이 지나간 흔적을 검은 먹구름과 정전기가 대신 말해주었다.
제나르 함장은 다시 밝아지는 실내 조명 아래에서 제거된 목표물을 확인하고 다음 목표를 생각한다.
'캐리어를 잡았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주변에 타이탄 함대를 피해 이 곳을 떠나는 일이다.'
타이탄 함대는 방금 전에 그 모습에 놀라 더 이상 사주크를 공격하지 않았다.
돌격함으로서 아무 공격 능력이 없을거라 생각한 함선이 비무장 상태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캐리어와 헤비크루저를 단 한방에 요절내는 모습을 보고 충격과 공포를 적지않게 받았다.
불기둥에 가깝게 있었던 좌측에 미사일 디스트로이어는 그 옆면의 일부가 녹아서 너덜거렸다.
캐피탈급 두 대가 파괴되는 장면은 아직도 타이탄 승무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이온캐논 프리깃과 헤비크루저를 통솔하고 있는 엘하킨 대령은 이런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준 거대한 함선의 정체가 사뭇 궁금해졌다.
타이탄 함대를 공격한 사실만 따져보면 적이 분명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반란군 세력들 중에는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여태 구경해보지 못한 형태와 거대한 규모의 몸체를 봐선 현 인류가 만들어낸 함선이 아니었다.
하지만 몸 가운데를 빙 둘러 친 붉은 휘장을 보면서 엘하킨 대령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걸 느낀다.
그는 오래 전에 카로스 그레이브야드의 금지된 지역에서 붉은 휘장을 한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콜뱃 크기의 비행체들이 그의 함대를 거의 괴멸시킨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엘하킨 대령은 그의 참모들을 시켜 붉은 휘장의 함선과 대화할 수 있는지 연락을 취하도록 지시한다.
만약 이 거대한 함선도 카로스 그레이브야드에서 만난 대선조와 같은 기계라면 우리 중에 대부분은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홈월드를 좋아하는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