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로.”
딱딱한 목소리의 기사는 그렇게 낡은 주점에 자리잡았다. 주변의 농민들은 모두 겁에 질린 채 삑 소리도 내지 않았고, 기사는 내색하지 않고 조오그만 와인잔에 담겨 있는 보드카를 마셨다. 붉은색 망토에 황실의 문장이 세겨져 있고, 황금색의 갑주에 150cm 정도 되어 보이는 클레이모어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검정색으로 길게 늘어트린 머리와 중성미 넘치는 곧게 뻗어있는 눈썹은 그의 매력을 한층 강화시켰고, 철저하게 예절교육을 받은 것 같은 귀족의 2세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독한 와인을 다섯잔 즈음 들이켰을까, 황실의 기사는 일어서 주인장에게 물었다.
“근처에 내가 묵을 만한 여관이 혹시 있을까 모르겠군”

그 말에 흠찟 놀란 술집 주인은 고개를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희 마을엔 이 술집겸 여관밖에는 어, 없습니다… 나으리.”
  “그럼 방 하나 부탁하네”

그는 점잖았다. 자신의 물음에 흡족하지 못했다 하여 검을 뽑아들어 술집 주인을 벤 것도 아니며, 술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도 않았으며, 마을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부녀자들에게 손을 뻗치지도 않았다. 그렇게 조그마한 시골 구석의 마을에서 일주일이나 머문 기사는 어느새 주점의 사람들과 말을 놓게 되었고, 매일 밤 마다 자신의 모험담을 늘어놓았다.
  그의 이름은 키스 그레이이며, 황실기사의 신분인 자신은 몬스터 토벌령에 의해 베히모스라던가, 도플갱어 같은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처분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지금까지 트롤 세마리와 베히모스 한마리를 잡았다 했다. 기사의 무용담은 음유시인의 귀로 들어가 입으로 나왔으며, 어린 아이들은 그 무용담을 들으며 재각각 흥미롭다거나, 믿기지 않는다거나 하는 자신의 느낌을 털어 놓았다.
  
  “저는 이 마을이 참 마음에 듭니다. 모험을 마치면 이 지역으로 망명오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하하! 저희 마을이 아름답고 맑기는 합니다만, 황실기사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머무신 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죠! 암, 그렇고 말고요!”
그 말에 기사는 「하하하」하고 유쾌하게 웃으며 어느때와 같이 보드카를 들이켰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으 흐르고 흐르고 또 흘러서 2주일, 한달즈음 되었을까, 기사는 여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의 방에 남겨진 것은 일곱개의 금화와 이 지역의 세금면제서 뿐 이었다.

   “이 곳인가… 일주일 전 부터 안좋은 느낌이 든다. 이런 외진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까지는 아니지만 아담한 통나무집을 보며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 곳에서 기사가 느끼는 것은 몬스터에게서 발산되는 살기가 아니었다. 본능에 이끌려 자신을 시험하려는 그런 의지인 것일까, 마나를 통해 주변의 상황을 공감하는 기사는 어리둥절해 하며 통나무집의 문을 열어재꼈다.

“그르르르”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잠들어 있는 소년을 당장이라도 찔러 죽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자고 있는 소년의 모습과 같았지만 눈동자만은 붉게 찢어져 괴수를 연상시켰다. 강한 마력의 소유자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해 아무도 모르게 당사자의 주변에서 마나를 빨아드려 자신의 힘을 강하게 하는 몬스터. 그것은 바로 도플갱어 인 것이다.

스윽!
기사는 발검술을 선보이며 도플갱어를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눠놨고, 검풍에 놀란 소년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동강 난 시체와 피묻은 검을 뽑아들고 있는 기사를 번갈아 쳐다봤다.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아! 라는 표정을 하며 슬슬 기어가서 어디서 났는지 모를 숏소드를 들고 기사를 경계했다.

“저기, 누구세요?”
구지 검을 들고 말 할 것 까진 없지 않은가?

“아직 많아… 소년, 업드려!”
깜짝 놀란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기사는 통나무와 함께 밖에서 다가오는 한마리의 도플갱어를 아까와 같이 두동강 내 버렸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소년은, 연달아 일어나는 기괴한 사건에 동요되어 혼절했고, 기사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눈을 감고 집중하는 듯 보였다.

  서걱! 끼이이이익─!

문이 박살나며 두 개체의 도플갱어가 찌그러졌고 재빨리 집 밖으로 나온 기사는 주변의 20개체도 넘는 도플갱어들을 보며 경악 할 수 밖에 없었다. 도플갱어들의 몸이 녹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을 든 기사의 모습으로 변했고 기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매달아 놓았던 황금색 헬름을 머리에 착용했다.

  “덤벼! 가짜놈들아!”
   20개체가 넘는 도플갱어는 기사와 똑같은 목소리로 “죽어!”라고 발음하며 동시에 달려들었고, 가장 먼저 온 우측의 도플갱어의 목을 가차없이 베었다. 연붉은색의 피가 촤아아아 하고 튀김과 동시에, 기사의 검에서 강하게 푸른 빛이 일더니 일순간 주변의 도플갱어 5개체가 몇십등분으로 조각나 퍼졌다. 어느새 피범벅이 되어 있는 기사는 푸른 빛이 감도는 검으로 검기를 선보이며 한번에 여러개체씩 도플갱어들을 조각냈다.

한마리, 두마리… 마지막 두마리를 앞두고 있는 기사는 중간에 있는 커다란 무언가에 시선을 집중했다. 4m 가량 되어보이는 커다란 신장에 여덟개의 팔, 인간 하나는 한입에 삼켜버릴 만큼 커다란 입을 가진 괴이한 몬스터를 말이다. 이내, 공포에 절인 눈으로 기사가 한걸을 한걸음 물러나는 순간 여덟개의 커다란 손이 그의 검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푸른 마나가 서려있는 검에 상처를 내는 것은 베히모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괴이한 몬스터는 검을 산산조각 내 버린 뒤 기사의 왼쪽 팔을 절단했다.

“크아아아악─!”
커다랗게 울부짖으며 주저앉았고, 피는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콰지이이익!
남은 팔 마저 잔인하게 뜯어버린 괴물은 표효했다. 그것은 분명 마을사람들에게도 들릴 만큼 커다란 굉음이었고, 기사의 커다란 비명을 묻어버리고는 땅을 울리고, 하늘을 울렸다. 기사는 쓰러졌고 기사의 모습을 한 두 개체의 도플갱어는 재빨리 다가가 그의 양쪽 어깨를 검으로 찔러 넣었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괴로움에 떨면서 벌써 죽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단련된 기사였다. 마나를 운용하는 법도 알고 있어서, 생명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숨이 붙어있는 기사의 뒤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킥킥킥킥킥, 약해… 약해 빠졌어”
소년은 그렇게 웃으며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의 흰색의 머리와 은색의 몽상같은 눈동자가 아닌 핓빛으로 물들어 있는 머리와 눈동자. 마치 이중인격자의 한 장면을 보듯 한 섬뜩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숨을 헐떡거리며 날카로운 눈초리로 커다란 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쯧쯧, 네놈이면 저 정도는 없앨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뭐 어쩔 수 없지”
순간 소년의 주위에서 붉은 팔이 뻗어나와 두 개체의 도플갱어의 사지를 찢어놓았고 잔인하게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는 동공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