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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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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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별 대수롭지 않은 자료료 보였다. 이 자료 덕분에 독일에 새로운 레이더 장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페러데이의 보이지 않는 파동을 대량 학살에 활용하는 날이 오게 되리라고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타자기로 작성된 8쪽 분량의 그 문서는 1939년에 익명의 한 독일 시민이 오슬로 주재 영국 해군 무관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국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활동들을 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독일군은 발트 해의 한 섬에 연구 시설을 세워 글라이더 모양의 제트 추진식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데 이는 마치 공상과학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게다가 영국이 보유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한 형태의 레이더 체계를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우편물이 번역되어 런던 관가에 배포되었을 때, 간수하여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그 유일한 인물은 레지널드 V. 존스 (Reginald V. Jones)로서 나이보다도 어려 보이는 28세 청년이었다. 전공은 천문학과 물리학이었지만 그는 옥스퍼드의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대학원 공부를 했기 때문에,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학교의 전통에 따라 모든 의견은 한 번쯤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는 교훈을 배워 알고 있었다. 나치 관료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 의심한다는 점을 알고 있던 그는 루프트바페의 중앙 관리자들도 모르는 새 여러 독일 연구진들이 각자 레이더 개발을 진행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드러난다. 어쨌든, 1941년 현재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독일에 실제로 작동하는 레이더가 있다는 사실이었고, 포로들의 대화 기록이나 라디오 감청을 통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레이더 체계의 암호명이 '프레야Freya'라는 점이었다.
존스처럼 교양을 갖춘 이에게 이 암호명은 정확한 정보를 발목에 감은 비둘기가 런던 SW1구역 화이트홀 거리에 있는 공군첩보국으로 곧장 날아든 것마냥 확실하게 독일군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독일의 고위 사령부는 아리안 민족의 신화에 매우 집착했다. 20세기 중반에 닥친 전기 기술 분야의 이 커다란 위협을 해결하는 방도는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화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젊은 존스는 이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존스는 1941년의 어느날, 느지막이 화이트홀의 사무실을 나와 런던의 도서 유통 중심지인 체링 크로스 가까지 걸어갔다. 해가 지기 전에 그는 원하던 것을 찿았다. 프레야는 고대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고, 보통 또 다른 신화 속 인물인 하임달과 함께 다닌다고 했다. 프레야는 목걸이를 하나 갖고 있는데 하임달의 임무는 그것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낮이고 밤이고 늘 온 방향으로 저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RAF정찰기들은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영토에서 레이더 기지처럼 보이는 시설물들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정교한 요격의 원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오래되고 덩치가 큰 기기들이었다. 사실 서로 다른 효력을 지닌 두 종류의 레이더 기기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오래된 북구 신화에서 하임달과 프레야가 함께 다닌다는 내용을 확인한 존스는 독일 사령부의 레이더 건설도 이런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존스는 카메라가 장착된 스핏파이어 전투기 한 대를 제일 처음에 발견되었던 대규모 부지 한군데로 보냈다. 르아브르에서 수십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으로서 브루네발이라는 마을 근처였다. 장찰은 눈깜짝할 속도로 이루어졌으며, 비행기는 지면에서 몇 십 미터까지 바싹 붙어 날았다. 독일 경비군이나 대공포에 공격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진 원판이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항공부의 사진 판독가들이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부대 내의 포상砲床과 철조망 울타리, 징발되어 사용되고 있는 성 등 평범한 기지에 응당 있을법한 것들만 보였다. 하지만 확대경을 사용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에서 뻗아나온 소로가 뚝 끊기는 지점에 또 하나의 레이더 기기가 보였는데, 폭이 몇 미터에 불과한 좁은 공터에 설치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만한 공터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레이더 설비라면 영국 체인 홈 레이더의 거대한 안테나 같은 것은 필요없다는 뜻이다. 사진으로 보자면, 독일 기술자들은 그 대신 1.5미터 혹은 그 이하의 짧은 파장을 사용하는 레이더를 개발한 듯했다. 소형 트럭의 짐칸에 기기 전체를 싣고, 지금 1미터 정도의 방향 조정 가능한 안테나를 차 위에 올려 파동을 발생시키거나 수신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체인 홈 레이더의 안테나는 아주 높은 철탑만한 크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회전시키려면 수백 입방미터의 공간이 필요한데다가 그런 일을 수월하게 해낼 만한 엔진도 거의 없었다. 만약 그렇게 돌린다면 레이더를 돌리기 위해서 노급함의 엔진을 떼다 써도 모자를 듯 했다.)
영국인들은 어떻게 독일이 이리도 탁월한 기술력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기기가 여러벌 있고, 비행기에 밀어넣어 설치될 수 있다면, 독일 초계기들은 캄캄한 잠중에 바다 한가운데서라도 영국으로 들어오는 대책 없는 미군 수송선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대기 중인 유보트(U-Boat, 2차대전중 나치독일의 잠수함)에 전달할 것이다. 루프트바페 전투기들도 마찬가지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연합군 비행기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조그맣고도 치명적인 레이더 기기와 그 기지를 정탐하기 위해, 두 명의 레지스탕스, 로져 듀몽(Roger Dumont)과 샤를 샤보(Charles Chauveau)가 지원해 나섰다. 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백 명이 넘는 독일군과 15개가 넘는 기관총 포상이 있었다. 암호명 뷔르츠부르크로 불리는 그 레이더(뷔르츠부르크는 독일의 한 도시 이름인데, 실제 레이더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레이더를 탄생시킨 독일 텔레푼켄사 연구소장 빌헬름 룽게가 지도에서 마음에 드는 도시 이름 하나를 골라 맘대로 붙인 이름이었다.)를 살펴 보거나 포획해야 하는데, 영국 해군이 나설 수가 없었다. 브루네발의 성은 해안가에 있긴 했으나 해번에는 백악층으로 된 기암절벽이 백 미터 넘는 높이로 솟아 있었다. 그러니 상공에서 급습하는 방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행기 착륙에 마땅한 공간도 없었다. 결국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낙하산 부대의 투입이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1942년 어느 날 아침 일찍, 전쟁 전에는 영사기사이자 아마추어 무신 통신사였으며 지금은 영국 공군 하사인 찰스 W. 콕스 (Charles W. Cox)가 런던의 항공부로 출두 명령을 받게 되었다. 공군 소장 빅터 테이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콕스는 하루 종일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지냈다. 발바닥에 티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허리띠 대신 전선줄로 허리춤을 단속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오늘만큼은 특별하다는 것을 눈치 챘으므로, 제대로 차려입고 나타났다.
"자네 위험한 임무에 자원했더군, 콕스 하사." 테이트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장님" 콕스가 받아쳤다.
" '그렇지 않다'니, 무슨 뜻인가?" 테이트가 물었다.
"아무데도 자원한 적이 없습니다!" 콕스의 대답이었다.
콕스가 남긴 유산 중 하나인 스무 페이지짜리 미발표 기록을 보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콕스를 경계가 삼엄한 맨체스터 근방 링웨이 기지로 보냈다. 처음에 콕스는 수십 명의 강건한 낙하산병들과 함께 행진을 하고 있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비행기라고는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고소공포증까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 급습 작전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함께 훈련을 받는 것이란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다.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를 확보하여 영국에 가져오려면 부속품의 분해를 감독할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사령부가 이렇게 군말없이 그를 지정한 것을 보면 사령부가 차출할 수 있는 그나마 제일 나은 인물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 경험이 있는 콕스였던 것이다.
낙하산병들은 새로 생긴 제1공수사단 소속이었으므로 육군 제복을 입었는데, 콕스는 RAF 제복을 입었다. 기습작전팀이 포로가 된다면 그 혼자만 도드라져 보일 것이고 게슈타포는 그가 낙하산병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 누가 봐도 이해할 만한 걱정거리었다. 머지않아 존스가 위로차 링웨이를 방문했다. 콕스는 그 어떤 위로보다도 다른 부대원들과 같은 복장을 허락해주십사 건의했다. 그러나 존스의 대답은, 자신이 런던에 허가를 요청해봤으나, 군 제복을 바꿔 입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긴다면서 육군 본부가 완강히 거절하더라는 것이었다. 콕스는 자신도 선례가 중요하다는것이아 잘 알지만, 게슈타포가 사방에 깔린 마당에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로 고려해주는 게 정당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존스는 육군본부가 말도 못 하게 완강하니 낸들 어쩌겠냐고 꽁무니를 뺄 뿐이었다.
낙하 훈련을 서둘러 마친 콕스는 불행하게도 여전히 RAF 제복을 입은 채, 또 다른 기습 기술들을 익히기 위해 솔즈베리 평원으로 이송됬다. 콕스는 이제 몇몇 훈련들을 즐기기까지 했다. 특히나 무슨 물품이든 주문만 하면 제깍 마련해주는 것이 맘에 들었다. 쌍안경, 나침반, 깨끗한 군화, 심지어 최신형 45구경 콜트 권총(M1911A1)까지 받았다. 반대로 몇몇 훈련들은 상당히 괴로웠다. 가령 함께 훈련을 받던 스코틀랜드 군인들이 철조망 넘기 연습을 할 때가 그랬다. 철사 절단기가 동원되리라는 콕스의 예상과는 반대로, 그들은 멀쩡한 철조망에 한 사람을 기대게 한 다음, 그 몸을 우지직 밟으며 건너던 것이었다. 얼마나 어려운 작전이 될지 콕스에게 설명해 주는 장교는 아무도 없었다. 작전팀은 비교적 가벼운 무기들만 지닐 것이며, 이전의 공수 작전들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는 정보뿐이다.
낙하 기습 작전은 1942년 2월 27일 밤에 거행되었다. 그들이 훔쳐와야 할 바로 그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는 빠른 진동의 보이지 않는 파동을 캄캄한 밤하늘로 내보내고 있었고, 32킬로미터 밖에서부터 그들의 위치를 탐지하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영국군 비행기는 어쩔 도리 없이 그 전파를 반사해 돌려보냈다. 콕스와 낙하산병들이 앉아 있는 곳의 몇 센티미터 옆, 비행기의 몸체와 날개로부터 밤하늘로 반사파가 퍼져나간 것이다. 역시 보이지 않는 이 화답이 표시 덕텍에, 영국 작전팀의 존재는 들통났다.
약 100여명의 군인들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그중 스무 명 남짓한 대원들은 강하 목적지에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수 킬로미터 멀리 날아갔지만, 나머지 인원은 목표 지점에 안착했다. 착륙 후의 의식이나 마찬가지인 예의 관습에 따라, 그들은 비행기를 타기 전에 마셨던 차를 다시 꺼내 마시며 감사한 마음으로 안도의 유식을 가진 뒤, 곧 집결하여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를 굽어보고 있는 성 쪽으로 발걸음을 재개 놀렸다. 콕스도 바퀴가 달린 자그만 손수레를 달달 밀면서 뒤를 따랐다. 런던의 작전 계획가들이 레이더 부품을 담는 데 필요할 거라면서 가져가라고 한 수레였다.
성에 잇는 방어군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레이더 기술자는 레이더 화면에 점멸하는 점들이 수없이 많이 다가오고 있는 까닭을 정확하게 이해햇기 때문에, 독일군의 주 부대는 미리 경고를 받고 잠복 중이거나 잠복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콕스는 이 순간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뷔르츠부르크 레이더에는 만일을 대비한 폭발장치가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폭발이 일어나버린다면 테이트 소장은 분명 콕스를 나쁘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콕스는 어둠 속을 뚫고, 날아다니는 총탄을 누비며, 레이더를 둘러싼 철조망을 넘어서, 폭발물이 있나 찿아본 뒤 헤제하는 작업을 서둘렀다. 와중에 그는 수상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도망치던 독일 레이더 기술자를 군인들이 정중하게 생포하도록 도왔다. 폭스는 영국군들에게 뷔르츠부르크 전자 부품의 느슨한 부분들을 쇠지레로 풀도록 지시한 뒤, 침착하게도 교환 부속품들의 일련번호까지 수집하게 했다. 그는 견본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체 영국에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접근해온 독일군이 박격포 사격을 시작하여 영국의 낙하산병 부대가 예정보다 일찍 뷔르츠부르크에서 손떼고 나가게 된 상황에서도 게속 둥글게 생긴 진동 안테나의 핵심 부품을 열심히 풀고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이후 바닷가까지는 쉽게 빠져나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탈출 과정을 엄호하기로 한 부대가 하필이면 착륙 당시 어디론가 날려가버린 그 팀이었다. 독일 기관총 사수들이 영국군에게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콕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게 뷔르츠부르크 부품을 손수레에서 꺼내 배낭에 집어넣게 했다. 전자부품들이 손상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는 부상자들을 돌보는 일도 나서서 도왔던 거 같다. 이제 기습작전팀 전체가 당하고 말겠구나, 하는 시점에 갑자기 "카바르 페이드!" 라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Cabar Faidh는 스코틀렌드 방언인 게일어로 '사슴의 뿔' 이라는 뜻이다. 스코틀렌드 전통 백파이프 연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국의 제목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낙하 부대의 연대기장도 사슴뿔 모양이다, 그들은 적을 습격할 때 종종 이렇게 외쳤다). 스코틀렌드 출신 엄호 부대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독일 기관총 사수들은 고함을 질러대는 이 부대와 대결하느니 계곡으로 후퇴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공습 부대는 마침내 해변까지 빠져나올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국 해군이 와 있지 않았다. 급히 라디오 신호를 타전하고 심지어 조명탄까지 쏘아올려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등뒤 절벽 꼭대기에 독일 보충부대 트럭의 불빛이 비추는 찰나, 그러나, 해군의 상륙 주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여러 척이었다. 그들의 든든한 화력이 있으니 이제 저 위에 등장한 적의 지원군은 하등 문제될 것 없었다. 탈출길에 오른 군인들은 영국으로 돌아가는 귀로 내내 육중한 상륙 주정 속에서 불편하게 몸을 맞대야 했다(승선하자마자 럼주를 받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콕스는 따로 불려가 곧 쾌속정에 옮겨 탔다. 쾌속정은 두 척의 해군 구축함이 옆을 호위하고 스핏파이어 전투기 편대가 상공을 엄호하는 가운데, 20노트가 넘는 속력으로 포츠머스 항을 향해 달렸다. 육지에 내린 그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 행렬에 몸을 실어 런던까지 간 뒤, 간략한 설명과 함께 소중안 뷔르츠부르크 부품들을 넘겨주고 나서, 얼마든지 쉬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자정도 되기 전에 그는 이스트 앵글리아에 있는 위스베치라는 작은 마을의 자기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는 난로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 주위에 그의 아버지, 어머니, 조부모, 아내, 그리고 아장대며 걷기 시작한 아이가 모두 둘러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콕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당당히 걸어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다들 잘 계셨어요? 저는 프랑스에 다녀왔어요. 이제까지 죽 거기 있었죠. 제가 한 일이 오늘밤 런던의 신문에 나왓더군요. 자, 어때요?"
콕스는 대번 영웅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가져온 것은 현대 역사상 최고로 끔찍한 대규모 학살들중 하나의 현장에서 쓰이게 된다.
-다음 편에 이어서.
그것은 별 대수롭지 않은 자료료 보였다. 이 자료 덕분에 독일에 새로운 레이더 장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페러데이의 보이지 않는 파동을 대량 학살에 활용하는 날이 오게 되리라고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타자기로 작성된 8쪽 분량의 그 문서는 1939년에 익명의 한 독일 시민이 오슬로 주재 영국 해군 무관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국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활동들을 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독일군은 발트 해의 한 섬에 연구 시설을 세워 글라이더 모양의 제트 추진식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데 이는 마치 공상과학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게다가 영국이 보유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한 형태의 레이더 체계를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우편물이 번역되어 런던 관가에 배포되었을 때, 간수하여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그 유일한 인물은 레지널드 V. 존스 (Reginald V. Jones)로서 나이보다도 어려 보이는 28세 청년이었다. 전공은 천문학과 물리학이었지만 그는 옥스퍼드의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대학원 공부를 했기 때문에,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학교의 전통에 따라 모든 의견은 한 번쯤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는 교훈을 배워 알고 있었다. 나치 관료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 의심한다는 점을 알고 있던 그는 루프트바페의 중앙 관리자들도 모르는 새 여러 독일 연구진들이 각자 레이더 개발을 진행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드러난다. 어쨌든, 1941년 현재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독일에 실제로 작동하는 레이더가 있다는 사실이었고, 포로들의 대화 기록이나 라디오 감청을 통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레이더 체계의 암호명이 '프레야Freya'라는 점이었다.
존스처럼 교양을 갖춘 이에게 이 암호명은 정확한 정보를 발목에 감은 비둘기가 런던 SW1구역 화이트홀 거리에 있는 공군첩보국으로 곧장 날아든 것마냥 확실하게 독일군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독일의 고위 사령부는 아리안 민족의 신화에 매우 집착했다. 20세기 중반에 닥친 전기 기술 분야의 이 커다란 위협을 해결하는 방도는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화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젊은 존스는 이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존스는 1941년의 어느날, 느지막이 화이트홀의 사무실을 나와 런던의 도서 유통 중심지인 체링 크로스 가까지 걸어갔다. 해가 지기 전에 그는 원하던 것을 찿았다. 프레야는 고대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고, 보통 또 다른 신화 속 인물인 하임달과 함께 다닌다고 했다. 프레야는 목걸이를 하나 갖고 있는데 하임달의 임무는 그것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낮이고 밤이고 늘 온 방향으로 저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RAF정찰기들은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영토에서 레이더 기지처럼 보이는 시설물들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정교한 요격의 원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오래되고 덩치가 큰 기기들이었다. 사실 서로 다른 효력을 지닌 두 종류의 레이더 기기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오래된 북구 신화에서 하임달과 프레야가 함께 다닌다는 내용을 확인한 존스는 독일 사령부의 레이더 건설도 이런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존스는 카메라가 장착된 스핏파이어 전투기 한 대를 제일 처음에 발견되었던 대규모 부지 한군데로 보냈다. 르아브르에서 수십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으로서 브루네발이라는 마을 근처였다. 장찰은 눈깜짝할 속도로 이루어졌으며, 비행기는 지면에서 몇 십 미터까지 바싹 붙어 날았다. 독일 경비군이나 대공포에 공격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진 원판이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항공부의 사진 판독가들이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부대 내의 포상砲床과 철조망 울타리, 징발되어 사용되고 있는 성 등 평범한 기지에 응당 있을법한 것들만 보였다. 하지만 확대경을 사용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에서 뻗아나온 소로가 뚝 끊기는 지점에 또 하나의 레이더 기기가 보였는데, 폭이 몇 미터에 불과한 좁은 공터에 설치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만한 공터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레이더 설비라면 영국 체인 홈 레이더의 거대한 안테나 같은 것은 필요없다는 뜻이다. 사진으로 보자면, 독일 기술자들은 그 대신 1.5미터 혹은 그 이하의 짧은 파장을 사용하는 레이더를 개발한 듯했다. 소형 트럭의 짐칸에 기기 전체를 싣고, 지금 1미터 정도의 방향 조정 가능한 안테나를 차 위에 올려 파동을 발생시키거나 수신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체인 홈 레이더의 안테나는 아주 높은 철탑만한 크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회전시키려면 수백 입방미터의 공간이 필요한데다가 그런 일을 수월하게 해낼 만한 엔진도 거의 없었다. 만약 그렇게 돌린다면 레이더를 돌리기 위해서 노급함의 엔진을 떼다 써도 모자를 듯 했다.)
영국인들은 어떻게 독일이 이리도 탁월한 기술력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기기가 여러벌 있고, 비행기에 밀어넣어 설치될 수 있다면, 독일 초계기들은 캄캄한 잠중에 바다 한가운데서라도 영국으로 들어오는 대책 없는 미군 수송선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대기 중인 유보트(U-Boat, 2차대전중 나치독일의 잠수함)에 전달할 것이다. 루프트바페 전투기들도 마찬가지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연합군 비행기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조그맣고도 치명적인 레이더 기기와 그 기지를 정탐하기 위해, 두 명의 레지스탕스, 로져 듀몽(Roger Dumont)과 샤를 샤보(Charles Chauveau)가 지원해 나섰다. 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백 명이 넘는 독일군과 15개가 넘는 기관총 포상이 있었다. 암호명 뷔르츠부르크로 불리는 그 레이더(뷔르츠부르크는 독일의 한 도시 이름인데, 실제 레이더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레이더를 탄생시킨 독일 텔레푼켄사 연구소장 빌헬름 룽게가 지도에서 마음에 드는 도시 이름 하나를 골라 맘대로 붙인 이름이었다.)를 살펴 보거나 포획해야 하는데, 영국 해군이 나설 수가 없었다. 브루네발의 성은 해안가에 있긴 했으나 해번에는 백악층으로 된 기암절벽이 백 미터 넘는 높이로 솟아 있었다. 그러니 상공에서 급습하는 방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행기 착륙에 마땅한 공간도 없었다. 결국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낙하산 부대의 투입이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1942년 어느 날 아침 일찍, 전쟁 전에는 영사기사이자 아마추어 무신 통신사였으며 지금은 영국 공군 하사인 찰스 W. 콕스 (Charles W. Cox)가 런던의 항공부로 출두 명령을 받게 되었다. 공군 소장 빅터 테이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콕스는 하루 종일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지냈다. 발바닥에 티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허리띠 대신 전선줄로 허리춤을 단속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오늘만큼은 특별하다는 것을 눈치 챘으므로, 제대로 차려입고 나타났다.
"자네 위험한 임무에 자원했더군, 콕스 하사." 테이트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장님" 콕스가 받아쳤다.
" '그렇지 않다'니, 무슨 뜻인가?" 테이트가 물었다.
"아무데도 자원한 적이 없습니다!" 콕스의 대답이었다.
콕스가 남긴 유산 중 하나인 스무 페이지짜리 미발표 기록을 보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콕스를 경계가 삼엄한 맨체스터 근방 링웨이 기지로 보냈다. 처음에 콕스는 수십 명의 강건한 낙하산병들과 함께 행진을 하고 있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비행기라고는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고소공포증까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 급습 작전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함께 훈련을 받는 것이란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다.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를 확보하여 영국에 가져오려면 부속품의 분해를 감독할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사령부가 이렇게 군말없이 그를 지정한 것을 보면 사령부가 차출할 수 있는 그나마 제일 나은 인물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 경험이 있는 콕스였던 것이다.
낙하산병들은 새로 생긴 제1공수사단 소속이었으므로 육군 제복을 입었는데, 콕스는 RAF 제복을 입었다. 기습작전팀이 포로가 된다면 그 혼자만 도드라져 보일 것이고 게슈타포는 그가 낙하산병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 누가 봐도 이해할 만한 걱정거리었다. 머지않아 존스가 위로차 링웨이를 방문했다. 콕스는 그 어떤 위로보다도 다른 부대원들과 같은 복장을 허락해주십사 건의했다. 그러나 존스의 대답은, 자신이 런던에 허가를 요청해봤으나, 군 제복을 바꿔 입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긴다면서 육군 본부가 완강히 거절하더라는 것이었다. 콕스는 자신도 선례가 중요하다는것이아 잘 알지만, 게슈타포가 사방에 깔린 마당에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로 고려해주는 게 정당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존스는 육군본부가 말도 못 하게 완강하니 낸들 어쩌겠냐고 꽁무니를 뺄 뿐이었다.
낙하 훈련을 서둘러 마친 콕스는 불행하게도 여전히 RAF 제복을 입은 채, 또 다른 기습 기술들을 익히기 위해 솔즈베리 평원으로 이송됬다. 콕스는 이제 몇몇 훈련들을 즐기기까지 했다. 특히나 무슨 물품이든 주문만 하면 제깍 마련해주는 것이 맘에 들었다. 쌍안경, 나침반, 깨끗한 군화, 심지어 최신형 45구경 콜트 권총(M1911A1)까지 받았다. 반대로 몇몇 훈련들은 상당히 괴로웠다. 가령 함께 훈련을 받던 스코틀랜드 군인들이 철조망 넘기 연습을 할 때가 그랬다. 철사 절단기가 동원되리라는 콕스의 예상과는 반대로, 그들은 멀쩡한 철조망에 한 사람을 기대게 한 다음, 그 몸을 우지직 밟으며 건너던 것이었다. 얼마나 어려운 작전이 될지 콕스에게 설명해 주는 장교는 아무도 없었다. 작전팀은 비교적 가벼운 무기들만 지닐 것이며, 이전의 공수 작전들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는 정보뿐이다.
낙하 기습 작전은 1942년 2월 27일 밤에 거행되었다. 그들이 훔쳐와야 할 바로 그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는 빠른 진동의 보이지 않는 파동을 캄캄한 밤하늘로 내보내고 있었고, 32킬로미터 밖에서부터 그들의 위치를 탐지하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영국군 비행기는 어쩔 도리 없이 그 전파를 반사해 돌려보냈다. 콕스와 낙하산병들이 앉아 있는 곳의 몇 센티미터 옆, 비행기의 몸체와 날개로부터 밤하늘로 반사파가 퍼져나간 것이다. 역시 보이지 않는 이 화답이 표시 덕텍에, 영국 작전팀의 존재는 들통났다.
약 100여명의 군인들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그중 스무 명 남짓한 대원들은 강하 목적지에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수 킬로미터 멀리 날아갔지만, 나머지 인원은 목표 지점에 안착했다. 착륙 후의 의식이나 마찬가지인 예의 관습에 따라, 그들은 비행기를 타기 전에 마셨던 차를 다시 꺼내 마시며 감사한 마음으로 안도의 유식을 가진 뒤, 곧 집결하여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를 굽어보고 있는 성 쪽으로 발걸음을 재개 놀렸다. 콕스도 바퀴가 달린 자그만 손수레를 달달 밀면서 뒤를 따랐다. 런던의 작전 계획가들이 레이더 부품을 담는 데 필요할 거라면서 가져가라고 한 수레였다.
성에 잇는 방어군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레이더 기술자는 레이더 화면에 점멸하는 점들이 수없이 많이 다가오고 있는 까닭을 정확하게 이해햇기 때문에, 독일군의 주 부대는 미리 경고를 받고 잠복 중이거나 잠복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콕스는 이 순간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뷔르츠부르크 레이더에는 만일을 대비한 폭발장치가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폭발이 일어나버린다면 테이트 소장은 분명 콕스를 나쁘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콕스는 어둠 속을 뚫고, 날아다니는 총탄을 누비며, 레이더를 둘러싼 철조망을 넘어서, 폭발물이 있나 찿아본 뒤 헤제하는 작업을 서둘렀다. 와중에 그는 수상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도망치던 독일 레이더 기술자를 군인들이 정중하게 생포하도록 도왔다. 폭스는 영국군들에게 뷔르츠부르크 전자 부품의 느슨한 부분들을 쇠지레로 풀도록 지시한 뒤, 침착하게도 교환 부속품들의 일련번호까지 수집하게 했다. 그는 견본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체 영국에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접근해온 독일군이 박격포 사격을 시작하여 영국의 낙하산병 부대가 예정보다 일찍 뷔르츠부르크에서 손떼고 나가게 된 상황에서도 게속 둥글게 생긴 진동 안테나의 핵심 부품을 열심히 풀고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이후 바닷가까지는 쉽게 빠져나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탈출 과정을 엄호하기로 한 부대가 하필이면 착륙 당시 어디론가 날려가버린 그 팀이었다. 독일 기관총 사수들이 영국군에게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콕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게 뷔르츠부르크 부품을 손수레에서 꺼내 배낭에 집어넣게 했다. 전자부품들이 손상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는 부상자들을 돌보는 일도 나서서 도왔던 거 같다. 이제 기습작전팀 전체가 당하고 말겠구나, 하는 시점에 갑자기 "카바르 페이드!" 라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Cabar Faidh는 스코틀렌드 방언인 게일어로 '사슴의 뿔' 이라는 뜻이다. 스코틀렌드 전통 백파이프 연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국의 제목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낙하 부대의 연대기장도 사슴뿔 모양이다, 그들은 적을 습격할 때 종종 이렇게 외쳤다). 스코틀렌드 출신 엄호 부대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독일 기관총 사수들은 고함을 질러대는 이 부대와 대결하느니 계곡으로 후퇴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공습 부대는 마침내 해변까지 빠져나올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국 해군이 와 있지 않았다. 급히 라디오 신호를 타전하고 심지어 조명탄까지 쏘아올려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등뒤 절벽 꼭대기에 독일 보충부대 트럭의 불빛이 비추는 찰나, 그러나, 해군의 상륙 주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여러 척이었다. 그들의 든든한 화력이 있으니 이제 저 위에 등장한 적의 지원군은 하등 문제될 것 없었다. 탈출길에 오른 군인들은 영국으로 돌아가는 귀로 내내 육중한 상륙 주정 속에서 불편하게 몸을 맞대야 했다(승선하자마자 럼주를 받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콕스는 따로 불려가 곧 쾌속정에 옮겨 탔다. 쾌속정은 두 척의 해군 구축함이 옆을 호위하고 스핏파이어 전투기 편대가 상공을 엄호하는 가운데, 20노트가 넘는 속력으로 포츠머스 항을 향해 달렸다. 육지에 내린 그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 행렬에 몸을 실어 런던까지 간 뒤, 간략한 설명과 함께 소중안 뷔르츠부르크 부품들을 넘겨주고 나서, 얼마든지 쉬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자정도 되기 전에 그는 이스트 앵글리아에 있는 위스베치라는 작은 마을의 자기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는 난로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 주위에 그의 아버지, 어머니, 조부모, 아내, 그리고 아장대며 걷기 시작한 아이가 모두 둘러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콕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당당히 걸어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다들 잘 계셨어요? 저는 프랑스에 다녀왔어요. 이제까지 죽 거기 있었죠. 제가 한 일이 오늘밤 런던의 신문에 나왓더군요. 자, 어때요?"
콕스는 대번 영웅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가져온 것은 현대 역사상 최고로 끔찍한 대규모 학살들중 하나의 현장에서 쓰이게 된다.
-다음 편에 이어서.
걱정만 하고 속으로 앓는다고 해결되는건 난 없다고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