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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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에서 시녀 이야기에 대한 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많은 창작 작품에서는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등장하곤 합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종교가 나라의 법보다도 앞에 서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심지어는 그들의 생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종교가 국가의 위에 서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 종교가 권력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종교가 탄생한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을 갖게 되었는데, 그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려니 종교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인간의 문명, 그리고 종교의 탄생"을 봐 주세요.)
실제로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를 보면, 종교인들이 권력자이거나 권력자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사례가 많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그랬고, 지금 이 순간도 그렇습니다. (가령 민주 운동의 기운이 높아지는 나라 중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종교 지도자가 대놓고 "모든 시위는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왕족과 종교지도자가 오랜 밀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전제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작품처럼 말이지요. 종교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회가 존재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사회가 생겨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으며, 설사 생겨난다고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윈덤의 "바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문명이 한번 붕괴되었던 세상이고 그 세상은 종교가 지배합니다. 그 세계의 기본 교리 중 하나는 "바퀴는 사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퀴 때문에 문명이 멸망했기 때문에 바퀴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리를 잘 모르는 한 아이가 우연히 수레를 만듭니다. 그는 그것이 굉장히 편하다고 생각했고 할아버지에게 보여주지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감추라고 합니다. 하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이미 다른 마을 사람이 그 바퀴를 본 것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신이 그것을 만든 척 하면서 손자를 대신해서 처형됩니다. 처형되기 전 할아버지는 '비록 지금은 두려워하고 감추려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 기다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을 흔히 '과학 문명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해석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는 종교적 믿음이 어떻게 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지금 종교에 지배되지만, 언젠가는 그 종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퀴"의 이야기에서처럼 정말로 세상은 변화할까요? 저는 분명히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호기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고 그 해답을 밝히려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자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능력은 심지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을만큼 강력합니다.
하지만, 종교는 "호기심을 부정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심하지 말고 따르게" 합니다.
이러한 체제는 결국 인간의 호기심과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협박이나 터부를 이용해서 호기심을 억누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정도로는 도저히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그런 이가 소수라면 세상은 바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조금만 늘어나면 세상은 바뀔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고 언젠가는 완전히 바뀝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상, 호기심과 향상심을 갖고 있는 이상,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은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는 존재할지라도 군림하지 못하는 세상이 찾아오게 됩니다.
과학 기술이나 다른 가능성을 통해 세상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1984"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겠군요.
물론 그런 상황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매우 불행한 일이 되겠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분명히 좋은 세계는 아닐 것입니다. "향상심"을 충족할 수 없는 세상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매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발전하지 못하는 세상은 결국 퇴보하고 무너져 버립니다.
완벽한 통제를 이루는 순간, 그 사회는 붕괴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붕괴가 시작되면 더 이상 완벽한 통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완벽한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호기심과 향상심을 충족시키려는 이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는 것이지요.
중세 시대나 현재의 아랍 같은 세계에서 종교가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종교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이용해 통제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아랍 세계에서 일어나는 민주 혁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떠한 권력도 영원히 세상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계속될 수 없는 것은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컴퓨터나 불사신 등이 신으로 군림한다면 종교가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가령, "워해머 40000"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황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황제가 잠에 들어서 깨어나지 않기에 황제에 적대하는 존재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제국 내에서도 분열이 생겨나지만, 황제가 깨어 있었을때는 제국도 꽤 안정적이었습니다.
[ 워해머 40000. 이 세계의 황제는 신적 존재로서 종교적 충성을 받고 있다. ]
SF 작품에서는 발달한 문명을 가진 이성인이 신적인 존재로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아서 C 클라크 작품에서는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고, 만화 "천지무용! 료오키"에서도 고차원의 존재인 창세의 3여신이라는게 등장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이 세상을 만들어낸 존재인 만큼 그녀들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들을 믿고 따르는 종교는 절대적인 힘을 가질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정말로 절대적이어서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완벽한 존재라면 말입니다.
[ 창세의 세 여신 ( 천지무용 료오키 ) ]
가령, "여신님 죽어라!"라고 외치는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서 죽는다면, 그들에 대한 믿음과 그들의 뜻에 따르는 체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이것은 종교 체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교 체제라는 것은 사실은 "권력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신님 죽어라"라고 외치는 순간 죽어 버린다면, 그것은 사실상 자연 법칙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연 법칙을 따르기 위해서 사제 같은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것을 사제가 일일이 가르쳐 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제라는 것은 "신의 뜻을 대행하는 사람"입니다. 사제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일반인들이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없고 신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이고 완전 무결한 신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모든 이가 느낄 수 있으며, 모든 이가 신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해석의 여지도 없는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존재라면 그것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사람도 필요 없습니다.
물론, 때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소수의 연구자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 체제라기보다는 과학의 연구와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신이 곧 자연 법칙이니 자연 법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는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자연 법칙에 대한 연구는 딱히 사제가 아니라도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령 "어떤 일을 하면 벌을 받는가?"를 연구하기 위해서 사제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사제라는 집단이 정치 집단이자 권력 집단으로서 군림할 수 없습니다. 완전 무결하고 절대적인 신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종교라는 것은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는 이렇듯 자연 법칙으로서의 신이 지배하는 세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 세계에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세계의 여러 특성들은 여하튼 자연 법칙처럼 무조건 적용됩니다.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만, 그 권력을 남용하면 확실하게 벌이 내리게 된다거나...
물론, 자연 법칙인 만큼 이에 대해 연구하는 상황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정해진 땅을 넘어서 군대를 보내는 행위는 섭리를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후에는 그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를 만나서 그 것을 물어봅니다.
하지만, 이런 세계에서도 왕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섭리(자연법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섭리가 존재하지만, 그 섭리가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 법칙은 권력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연법칙을 따르지만, 그것에 지배되지는 않습니다.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 법칙이므로 우리는 신에게 지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연 법칙이니까 그에 맞추어 생활할 뿐입니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그리스도교의 신처럼 인간적인 존재라면...
그렇다면 종교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인간처럼 신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이상 항상 그 신의 뜻을 물어서 행동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동을 할 때마다 신의 처벌을 각오해야 하니까요. 이건 지옥입니다. 이런 세계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서 신관이나 사제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면(사실 지금의 종교가 그렇습니다) 사제나 신관들이 신의 뜻을 해석해서 처벌을 내리는 방식이라면, 사람들은 결국 호기심을 느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종교의 지배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게 되고...
또는 사제가 신에게 처벌을 부탁하는 방식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짓을 해도 사제의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되니, 결국 국법과 마찬가지로 범죄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역시 절대적인 지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사제를 없애 버리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신이 존재하건 아니건, 종교라는 체제에 의해서 사람들이 지배되지는 않습니다. 신이 존재하고 그것이 절대적이고 완벽한 존재라면(가령 어떤 짓을 하는 순간 벌을 받게 되면) 그것은 자연 법칙이므로 사실상 '권력을 갖고 지배한다.'라는 개념이 될 수 없습니다.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신처럼 인간적인 존재라면 종교가 권력을 갖고 행동하겠지만, 완전한 지배는 될 수 없습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들은 종교 자체에 의문을 느끼고 종교의 지배를 벗어나게 됩니다.
종교에 의한 지배는 결국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호기심이 있고 향상심이 존재하는 이상....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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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을 올렸다가 지웠다가 다시 짧게만 씁니다.
전 본질적으로 호기심을 억누르는 게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시도는 소위 권력자들이 행한다고 봅니다. 옛날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주 무식한 시절에는 종교인이 무슨 말을 하면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지만, 일반인에 대한 고등교육이 널리 시행되고, 전문가만큼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 옛날에는 사제가 한 마디 하면 왕도 벌벌 떨 정도였지만, 지금은 어지간히 권위가 있지 않으면 눈도 깜박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체계화된 방법으로 증명하는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도 기실은 밝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게 목적입니다. 다만 과학과는 상이한 방법론으로 대중에게 접근합니다. 저는 내세에 대한 희망이, 절망과 암울함으로 가득찬 현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라 봅니다. 단순히 영원한 삶을 누리고 살게 해주기 때문에 종교를 믿어야 한다면 좀 답답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고작 그런 것에 집착하는 동물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하시는 글은 종교중에서도 기독교와 같은 절대 타력적 종교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도 주로 원리주의 입장의 종교고요. 하지만 이데올로기도 별로 다른 성향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종교가 이데올로기의 위치에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사회주의가 옳다고 입증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진리처럼 따랐고 자유주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진정으로 헌신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합리적 의심을 부정하는것 자체가 반민주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이기 때문에 종교 하나로 이야기 할것은 아닐것입니다.
사회의 분위기에 관계없이 '신'이 존재하는 종교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의 힌두교나 중국의 도교도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신이 있다는 믿음을 갖지 않아도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며 원칙적으로 종교는 그들이 믿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의문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한편, 이데올로기(사상)이라는 것은 종교와 차이가 있습니다. 사상은 그 결과를 직접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을 가하기도 하고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특정한 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드러나서 버려지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공산주의 사상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서 버려진 사례를 제시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종교에서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음에도 의문을 갖지 않고 신의 존재를 믿도록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옳다 그르다를 생각하지 않고 따르는 광신적인 사상가들도 있지만, 그런 일부 사례를 보고 종교와 사상이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역시 과거에 종교적 패권 다툼에 패해서 사라진 것이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믿는 사람은 없죠.. 로마 시절 국교가 기독교로 변화되는 과정은
이데올로기의 변화 수용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정치적 권력과 결탁한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아집은 크게 근본적으로 다를것은 없습니다. 과거에는 종교가 하는 역할을 현대에 와서는 이데올로기가
하고 있으며 그 위상의 변화의 차이는 조금 있을수도 있습니다.
19-20세기를 휩쓸고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민족주의 역시 어떠한 근거도 없이
맹신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민족의 실체가 부정되어지고 있는 상황에도 말이죠...
종교역시 교리를 따름으로 인해서 얼마든지 그 결과를 목격할수 있습니다.
칼뱅파에 의해서 자본축적의 가능이 개인적 부의 축적의 가능성과 그 결과를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같을수는 없겠죠. 종교에서 이데올로기로 그 위치 변화가 된데는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 역할과 한계가 억압의 수단이 되었을때는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듯이 종교도 선택합니다. 거기에 완전한 합리성은 없습니다. 인간 자체의 완전 합리성이
부정되고 있는 현재는 말이죠. 거짓 통계를 활용한 선전에 속는 것이나 형이상학적 교의로 사람을 현혹함에 있어서
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두가지는 크게 차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바가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서 부정적인 영향에 있어서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억압하고 탄압받는 시점에서는 그게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당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만 테러를 하는게 아니라 미국 독립선언서에 근거한 이념적 원리주의자도 미국내에서 테러를 합니다.
종교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인지범위가 넓어지면서 과거처럼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보다 합리적인 정치적 매개체인 이데올로기가 그 자리를 대체한것으로 생각합니다.
합리적인 이야기가 꼭 사실이거나 진실이지는 않습니다. 과정은 설령 합리적 판단을 했을지라도 기반이 되는 명제나
근거 자료 자체가 조작 왜곡 됨에 의해서 얼마든지 진실이 덮일수도 있습니다.
얼마전에 '앵무새 죽이기'라는 고전을 EBS에서 방송해줬었는데 마지막 심리에서 변호사가 말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배심원제가 미국 법치의 이상이라고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현실이다.'라는
내용 이었습니다. 물론 작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본문의 발제와는 좀 다른 것입니다만, 미국 법치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배심원제는 증명되지 않은 이상이고 현실입니다.
올바른 사회라면 이런 제도에 대해서 합리적 의심과 비판에 대해서 계속되는 토론이 있어야 할것이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바꿀수 있는 사회겠죠. 이념에 경도된 사회라면 이런 의견 자체를 묵살하고 이념을 강조할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니 호기심과 적대적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요즘에는 융통성 있게 처신하려는 종교인도 있습니다만.
종교가 권력자들에게 쓰이는 좋은 점은 저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신조가 저변에 깔렸잖아요. 누군가 이 세상의 진짜 시스템을 알아보고 싶어서 파헤치는 걸 막아주는 도구죠. 거대 기업의 홍보 문구와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종교도 의심과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종교인들 모두가 의심도 없이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상당수의 신도들이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어떻게 종교인인가 하는 질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신의 참된 모습이고, 무엇이 절대적 진리이냐에 대한 대답이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절대적 존재와 진리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그게 뭔지는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2천년 전의 종교인들과 지금의 종교인들을 한 번 보세요. 기독교만 해도 그 동안 무수한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입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의 여지가 생기고,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눈에 불보듯 뻔한 사실을 믿는다고 하지는 않죠. "인간은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 이족 보행을 하며, 손을 사용해 연장을 만드는 등 지능 활동을 하는 생명체"라는 말을 '믿는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진실을 앞에 두고 "믿는다"는 식의 불확실한 표현을 쓸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그냥 '사실(fact)'이라고 한 마디 하면 될 것을요.
종교인들도 물론 의문을 가집니다. 그리스도교 만 해도 개신교, 천주교, 그리스 정교 등의 종파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문에서 나온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권력 대립도 있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종교에서는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질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신의 존재"와 "신의 말씀"입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종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신앙을 좌우하는 척도이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정하면서 종교적인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은 힘듭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신의 말씀조차 의미를 잃게 되고 도덕 철학이나 차이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있어 "신의 존재"는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같은 일신교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 같은 원시 종교부터, 그리스의 올림포스 신앙 같은 다신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에서 지켜집니다. 심지어 많은 나라에서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받아들여지는 불교조차도 '부처'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이 '신'이라는 존재가 없는 불교가 종교로 분류되는 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종교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존재가 있다고 믿으며, 그 존재가 남긴 말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는다고 해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자"라는 한계 범위 내에서 의견이 나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하지 못합니다.
원래 불교에서 종교라는 말이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뜻이 바뀌었습니다만...
종교라는 말 자체가 불교를 가르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불교는 종파가 그 옛날부터 꽤 많았으니까요..
신앙은 종교에 포섭되는 개념입니다. 유교도 신은 없지만 종교로 취급합니다. 불교도 드물게 정토종의 경우에
절대 타력적인 신앙을 가집니다. 유교는 종교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 가깝게 보이기는 합니다만,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그 창시자나 종교의 주체에 대한 인격적, 종교적 숭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것 같습니다.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절대 타력적인 종교에 한정될뿐 그것을 부정하는 예는 유교와 불교가 대표적입니다.
이데올로기가 종교화 되는 것은 북한을 보면 바로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과 갈망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배운 과학적 방법론과 그에 입각한 연구 결과에 외에는 그 무엇에도 움직이지 않지만, 그래도 과학 하나만큼은 진실을 말해주는 척도이자 유일무이한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걸 신앙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어색할 지 몰라도 말이죠. 신념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듯 합니다. 믿음이란 자신이 기대를 품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하여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만일 과학자들이 과학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과학이 거짓을 알려주는 학문이라면? 내가 오늘 밝혀낸 진실이 내일이 되면 거짓이 되어 버린다면? 과학이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의심을 통해 발전하는 학문이라는 걸, 물론 저도 알지만 과학에 아무 것도 기댈 수 없다고 본다면 어떤 과학자가 과학에 무엇인가 희망을 걸만한 게 있다고 생각할까요?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진리 탐구에 나설 때 항상 적용하는 방법론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 방법론이 무엇인지는 표도기 님이 몇 번이고 설명해주신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러한 방법론에 타당성이 있다고 믿는다면 과학은 항상 진실만을 말하게 되어 있으므로 의심의 여지도 없어집니다.
종교는 인간의 다양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종교가 하는 일을 과학은 절대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인정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과학이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요? 영역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데 과학은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가도 괜찮고, 종교는 과학의 테두리를 넘어가서는 안되는 건가요? 신이 없다고 도전한 건 과학입니다.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에 종교 쪽의 반발은 거셌지요.
저는 최근에 로마 교황청과 이탈리아 과학계가 공동으로 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해외 방송 매체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교회 관계자와 세속적 인간인 과학자가 한 자리에 앉아 어떻게 운영할 지 논의하는 장면은 아직도 깊이 인상에 남습니다. 교회 관계자가 자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한편, 과학자는 사랑은 증명할 수 없지만 엄연히 존재한다고 고백할 때, 저는 비로소 여기에서 과학과 종교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리만을 앞세운다면 종교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논리가 인간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도 압니다. 설사 그 종교가 내세우는, 말과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 교리에 칼을 들이댈 수는 있을 지라도, 개인의 체험이라는 영역으로 들어가면 과학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앞에서 든 '사랑'이라는 예가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나요? 스스로의 생존 이유마저 거부하면서까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나요?
저는 개인의 신앙적 체험을 정신병자의 착각으로 단정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저는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주관적 체험은 내 체험이 아니니까요. 단지 정신병자라는 모욕적 언사만 자제해 주기를 바랄뿐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여 정신병이고 착각이라면, 인간은 저마다의 삶속에서 자기만의 환상에 살아간다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세계의 모습이 있고,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간은 자기가 구축한 성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종교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무종교인으로 살아갈 것이냐라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게 당연하고,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종교로서도 바람직하다고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지요. 자유 의지에 따라 신을 믿고 안 믿는 게 인간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인간이 본래 만들어진 '종교적 의미'에 부합한다고 봅니다. 성서에는 인간이 신의 숨결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가르쳤으니, 신이 자기 뜻과 의지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그럴 자격이 있는게 아니냐고 저는 해석합니다.
저는 종교의 존재 이유는 신의 존재와는 별도로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한 아무리 신이 실존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종교는 발생할 수 없을겁니다.
극도의 종교사회는 인간의 욕구를 과도하게 억압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사람들이 종교의 필요성에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일시적으로야 종교의 필요성을 세뇌할 수 있겠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현대 같이 간단하게 해외 사정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리 오래가긴 힘들겠죠.
결국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의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게 되고 이는 종교의 사회 지배의 붕괴를 가져올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