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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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눈과 이마의 잔주름이 더 깊게 새겨졌다. 김수지 하사의 아버지 김준호는 부쩍 늙어 피부가 푸석했고, 가끔 눈을 끔뻑일 때마다 눈가의 주름이 길어져 얼굴 옆 관자놀이까지 퍼졌다. 그는 못 박힌 듯 문 앞에 서있었다.
성실한 농민 노동자인 그는 사후세계라던가 그런 일체의 종교적이거나 초자연적인 믿음이 없었다. 사회주의적 사상에서 세상은 물질로만 존재하고 그 너머의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신이라던가 영혼이라는 것은 지배계층이 종교를 통해 피지배계층을 교화하고 순종적이게 하고 사회 지배질서의 유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귀환이라는 단어는 옳지 않다. 나의 딸 수지는 그저 복원되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그의 딸 수지에게 영원불멸하는 영혼이 있어서 그 영혼이 이 딸아이의 모습을 한 새로운 육체에 깃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여나 생중계 중에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하면 그의 일가족은 북극으로 추방될 수도 있으니 이는 미리 짚어두고 주의할 문제라는 점을 알만큼 그는 명민했다.
“김준호 선생님, 이순애 선생님 두 분, 따님을 다시 뵐 준비 되셨습니까?”
담당PD가 정장을 입은 김준호와 한복을 입은 이순애에게 물었다.
“예에, 언제든 PD님 준비되시면 말씀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인민영웅, 수지 하사님의 안드로이드가 들어오겠습니다.”
이순애는 순간 힘이 풀려 넘어질 것만 같아 그녀의 남편에게 몸을 기대었다. 김준호는 긴장한 얼굴로 열린 현관문을 보았다. 어딘가 약간 무게중심이 어색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이고 균일한, 그리고 모터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그의 딸과 정확히 같은 얼굴과 키를 가진, 사용감이 있는 검은색 화성항공우주군 정복을 입은 젊은이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수지 하사의 안드로이드와 수지 하사의 부모의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 아버지?”
눈을 똥그랗게 뜬 여인이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손잡이인 듯 오른손을 천천히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려 그와 그녀를 가리켰다. 오랜만에 보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과 움직임이었지만, 이는 미리 리허설되고 학습된 동작을 풀어내는 것으로 수지 하사의 안드로이드, 아니 수지는 김준호와 이순애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수지야. 잘 돌아왔다.”
“명호 수령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아버지. 아! 인민혁명영웅은 복원될 권리가 있습니다. 저의 예전 육체는 비록 이제 세상에서 그 소명을 다하고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들었을지 모르나. 인민영웅 수지 하사의 사회정치적 생명은 저를 통해 우리 화성혁명공화국에 이어질 것입니다.”
미리 준비된 멘트를 수지 하사가 속사포처럼, 그러나 또박또박 내뱉고 성큼 성큼 다가와 이순애의 왼손을 두 손으로 다잡아 그녀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이순애는 그녀의 손을 잡은 딸아이의 두 손이 차가운 고무조각처럼 느껴서 놀랐다. 이어서 닿은 딸아이의 오른쪽 뺨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여기기에는 차가웠다. 그래서 역시 그녀의 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차오르는 서러움과 반가움,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잠재울 수 없어 저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올려 딸아이의 나머지 뺨도 감싸고 쓰다듬었다.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수지야, 정말 너로구나. 너야... 네가 돌아왔어. 꿈만 같아.”
“어머니, 죽음 이후에도 사회정치적 존재로써 우리 화성인민들은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수지는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김준호는 그 곁에서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가리며 흐느낌을 참아내고 있었다.
“김준호 선생님, 잠시 수지 하사와 재회한 소감을 한마디 시청자 분들에게 전해주십시오.”
“예, PD동무. 먼저 방금 전 우리 딸, 수지가 말했듯이. 수지를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주신 명호 수령님을 비롯한 혁명지도부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보다 더 영웅적인 서사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혁명의 완성을 추구하여 전쟁에서 앞장서 지푸라기처럼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고 혁명의 불씨가 되어 스러진 군인이 되돌아 온 장면이다. 일부러 헤어지고 변색도 이루어진 낡은 정복도 찾아 입혔다.
PD는 말을 멈추고 잠시 그의 눈치를 보는 김준호에게 잘 하고 있으니 계속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민영웅들에게는, 복원될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위대했고, 희생하였으며, 비록 가혹한 환경이 그들의 육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나 정신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세기, 22세기 인공지능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 수지는 다시 한 번 감격스럽게 화석혁명의 역군이 되기로 다짐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와 긴 포옹을 끝낸 수지는 아버지에게 다가와 경례했다. 차분하게 딸아이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에게 다가간 김준호는 수지를 끌어안고 생각했다.
‘차갑구나. 이 아이는 수지가 아니야. 자세히 보면 조금씩 수지와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오는 구나.’
수지는 자신의 손발의 온도가 14도 내외인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로 열을 발산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런 객체는 실내의 온도와 습도를 상승시키는 가온가습 인자이며, 분류상으로는 온열동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외형과 사회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사람이라는 분류로 다시 인식된다.
“아버지, 저는 돌아왔습니다. 아직 혁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하고 PD와 다른 촬영 스태프들의 짧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밤하늘의 별을 모두 헤아릴 때까지 그녀의 혁명활동은 그침이 없을 것이다.
수지의 안드로이드는 낯선 신체를 구동시키는 감각을 익히는 가운데 그녀의 눈에 장착된 적외선 열영상 카메라에 36도로 표시된 ‘부모님들’이라는 따듯한 존재가 그녀를 끌어안는 것을 기록했다.
인공피부 위의 온도센서는 구현이 어렵고 고장이 잦으므로 아직 그렇게 넓은 부위에 정밀한 감도로 설정되어 있지 않아 물체의 온도를 파악하는 것은 촉각이 아니라 눈에 담긴 열영상카메라를 활용했다. 그리고 그 편이 ‘분명 사람과는 다르겠지만 더 효율적’이라고 그녀를 만든 엔지니어들은 결론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 사람들은 왜 슬픔이라는 감정을 보이는가? 나는 이 때 역시 울음이라는 반응으로 반응해야 된다. 눈물샘을 열어 눈물을 흘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모사하듯이.’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상대방을 흉내 내는 것은 호감을 이끌어내는 전략이다. 그리고 그녀가 학습해 온 지식에 따르면 수지 하사는 부모와 재회하기가 무섭게 감정이 차올라 눈물을 그치지 못했을 것이란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녀는 신체에서 머리라고 불리는 부위에서 카메라 밑에 세정용 수분을 배출하는 분비샘을 연다는 내부 명령을 내렸다.
“아버지... 어머니... 그래요. 저 왔어요.”
수지의 안드로이드의 눈에서 느리게 사람의 눈물과는 다른 순수한 물이 나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행위는 ‘물을 아껴야 된다’는 화성혁명공화국의 공익에 위배되므로 수지는 프로그래밍에 따라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영웅적인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녀는 느리게 그녀의 부모님을 마주 끌어안았다.
수지의 안드로이드는 학습된 수지의 가족구성원에 대한 정보에 한 명이 부족한 것을 깨달았고, 이 자리에서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그 인물이 없으므로 여기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절차임을 인식해 내었다. 민사영역의 자료를 분석하며 정교함을 얻은 판옵티콘을 그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사회적 AI’는 이런 사회적인 맥락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근데 할아버지? 할아버지는요?”
이 물음에 갑작스럽게, 김준호와 이순애는 혼란을 느꼈다. 이 말은 미리 학습될 말일까, 놀라울 정도로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이 안드로이드가 실제 그들의 자녀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당황은 잠시였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그렇게 가족은 급작스러운 재회 끝에 서럽게 펑펑 울기 시작했다. 수지가 작전 중 사망자가 된 이듬해 원인불명의 질환으로 되돌릴 수 없이 건강이 쇠약해진 수지의 할아버지는 ‘열심히 살라’라는 말을 수지가 돌아오면 전해달라고 한 뒤 운명을 달리하였다.
“수지야, 손이 차구나.”
김준호는 온기 없이 차가운 딸아이의 모습과 말투와 목소리를 가진 안드로이드의 손은 쥐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꿈을 꾸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불명확해졌다. 아이가 자신과 아내의 품에 돌아온 까닭은 무엇인지, 그 의미를 고민했다.
“어쩔 수 없어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수지는 벽에 걸린 수지가 학생 시절 만든 말린 감자꽃 팔찌를 본다. 유리 액자 속에 담긴 말린 꽃팔찌였다. 그리고 수지 하사의 얼굴이 담겨 있는 학창시절 앨범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그 이미지는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담겨져 학습된 익숙한 이미지파일이었다. 사진 속에 나온 각 친구들의 이름은 물론 그들이 지금 사는 곳, 직업, 그들의 가족들을 이미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두었다.
처음 오는 집이지만 학습한 데이터 영역 내에서 낯선 것은 없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네요.”
“그래 손대지 않고 놔둘 수밖에 없었어. 아버지가 치우라고 하는 거를 내가 말리느라 고생했지. 네가 돌아올 거라는 설명할 수 없는 예감에 빠졌어. 안으로 가자, 네 방을 보여줄 께. 휴가 때 보던 모습과 똑같을 거야.”
이순애는 그녀가 매일 청소하고 닦아두었던 수지의 모듈로 수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마치 두 번 다시 놓치기 싫다는 듯이 상냥하면서도 힘있게.
분명 이 아이는 그녀의 딸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 아이를 두 번째 딸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녀는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는 각도에서 조용하게 수지에게 속삭였다.
“수지야 분명 너는 죽은 우리 수지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야. 그러니 우리는 너를 수지로 받아들일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너를 수지가 우리에게 남겨준 사랑, 수지의 동생으로 여길 준비가 되어있어. 시간이 들겠지만, 서서히 우리 가족이 되어주렴.”
이순애는 그 말을 하고 몹시도 불안하게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사람의 눈과 다르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수지의 밤색 눈동자 속 홍채를 들어다 보았다. 사람의 눈은 아니고 자세히 보면 그 너머의 렌즈도 보인다. 이 장면은 혹시 녹화되어 개정된 헌법에 따라 판옵티콘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일까?
수지는 이순애의 불안을 알아차렸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말해줘야 된다는 문장이 구은별 소장에 의해 입력되어 있었다.
“이순애 동무, 아니 어머니. 저에게 들어온 정보는 암호화되어 내부에 저장되며 주기적으로 클라우드에 백업되지만 이는 판옵티콘과 독립된 고유의 저장소이니 속삭이거나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어디에도 보고되지 않습니다.”
김준호는 그의 아내와 수지의 곁에 서서 이 말을 들었다. 카메라는 꺼지고 촬영 스태프는 철수했다. PD는 이것이 성공적이고 몹시도 고무적인 결과물 이었다고 흡족해했다. 혁명의 진취적이고 무한한 발전에 도움이 되어 기쁘다는 답변을 한 뒤 그는 아내와 딸에게 돌아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자, 이 새로운 딸아이는 생명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무엇인가? 유전물질을 가지고 자기를 복제하고 유기물로 만들어져 대사활동을 하는 것이 생명인가?’
결국 이 드넓고 황폐한 우주에서 ‘우리가 살았노라’라고 의미 없게 말하는 것. 삶도 사회도 차갑고 메마른 먼지로 결국 화할 것은 숨쉬는 모든 생명체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누가 돌아온 그의 딸을, 이 복원된 아이를, 아니, 수지의 동생이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토록 실제로 존재하여 이토록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인민은 스피노자적인 인민의 힘으로, 인민의 의지로 내일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 생명의 그 부질없음. 결국 무의미하게 종결할 것을 알면서도 열과 성을 다해 싸우려 드는 그 투지가 삶의 목적이자 본질이다. 그리고 이 아이는 그 사과나무인 것이며, 사회 속에서 또 자신만의 사과나무를 심게 될 터인데.
*
그러나 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어요. 당신들만큼이나 깊이 느낄 수 있어요.
- 고전영화 솔라리스(Solaris, 1972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