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글이 꽤 많이 날아갔네요.

로보틱스 자동화 프로젝트를 만들게 되어서 느낀 바를 적었던 글 내용도 몽땅 사라졌고...

  

개인적으로 지난 2016년과 2017년은 해외 열대지역과 지방 산간오지에 박혀서

공장의 생산 현장을 정보화하고 스마트화하고 자동화하는 프로젝트에 세월 다 보냈습니다.

올해 2018년은 "스마트 팩토리"와 "스마트 팜" 프로젝트를 지방에서 번갈아 진행 중에 있구요.

올해 봄부터 전주에서 수행하였던 농업의 디지털 기반의 자동화/데이터화라는 우아한 프로젝트를 끝마치고

다음주부터 겨울까지 울산에서 동제련 + 황산 공장이라는 혹독한 환경을 위한 스마트 팩토리 프로젝트를 합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일은 "4차 산업혁명 컨설팅"입니다.

해당 영역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 지,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지 현재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제가 마음대로 재주껏 그림을 그리고 그 내용으로 기업에 찾아가 영업을 합니다.

기업들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 다만 오너 경영진이 "4차 산업혁명을 검토해라"는 요구만 있죠.

     

그래서 그런지 2017년 여름까지 헛물만 켜고 다녔습니다 - 죽어라 돌아다녔지만, 안팔렸습니다.

그런데 새로 당선된 대통령께서 "최저임금제 개선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라고 발표했던 게 컸습니다.

일이 추진되려면 "동기부여"라는 게 상당히 중요한데, "최저임금제"는 아주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스마트 팩토리, 자동화, 4차산업혁명 등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팡질팡하거나 망설이던 쪽에게,

반드시 지금 당장 자동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3년 후에 쫄딱 망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준 셈입니다.

   

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게, SF가 현실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고리짝 이론 "뉴럴 네트워크"가 갑자기 각광을 받으며 여기저기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알파고" 덕분이었죠.

AI가 현실이 되어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알파고 쇼 덕분에 사람들의 AI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최저임금제는 AI를 활용하여 뭐든 당장 자동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조만간 위험해 질거라는 동기를 부여했죠.

   

이유가 어찌 되었던...

지금 비즈니스가 뻥뻥 터지는 것은 대통령이 바뀐 덕분이라고... 자동화 업계의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죠.

저는 엔지니어들 데리고 다니면서, 어떻게 사람을 줄이고 기계+알고리듬+프로그램으로 자동화할 지 고민합니다.

주로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팜, 스마트 오피스, 스마트 인프라, 스마트 시티, 스마트 샵, 스마트 물류를 추진하면서

저는 공장의 생산 현장에서, 시골 농장과 온실에서, 사무실에서, 지하철/항만/발전소에서, 도시에서, 마트와 편의점에서

사람 노동자를 없애고 그 대신 자동화 기술로 보다 더 정확하고 냉철하고 편리하게 대체되도록 설계하는 일을 합니다.

         

2012년 제가 잘 다니던 대학 자리 때려 치우고 직업을 바꾸자, 주변 사람들이 다들 제게 미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학들이 학령인구의 감소로 무너질 게 너무 뻔해 보여서, 무너지기 전에 먼저 탈출했을 뿐이었죠.

이후 컨설팅으로 직업을 바꾸면서 혹독한 적응기를 거친 후, 간신히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컨설턴트 동료들에 비하자면 컨설팅 업계에 대한 진입 자체가 너무나도 늦었기 때문에,

뚜렷한 장점을 갖기 어려워 보이는 포지션이었습니다 - 게다가 영업을 잘 할 성향도 별로 아니었고...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도가 모든 상황을 역전시켜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PPT 잘 만들고 이빨 센 사람이 득세하던 것이 기존의 컨설팅 업계였는데...

이제는 쿼리 잘 다루고, 통계 패키지 잘 쓰고, 통계/확률, 수리 모델링, 알고리듬을 제대로 알고

학문적인 이론 베이스에 IT 경험과 시스템을 잘 알아야 제 몫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필드가 생겨났죠.

     

과거에는 저는 영업은 남의 일이었고, 주어진 컨설팅 업무를 팀 멤버로서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헉헉거렸데,

이제는 컨설팅 프로젝트 일감을 스스로 수주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직접 수행하니... 나름 재미있더군요.

무엇보다 프로젝트 이전에는 저열한 수준이었던 기업이 프로젝트 후 완전히 디지털화/자동화로 방향이 새로 잡히면서

본래 300 명 외국인 근로자 쓰던 기업이 100 명 정도 한국인들만으로 잘 돌아가게 완전 환골탈태하는 것도 멋지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프로젝트를 따서 수행한 결과 기업들의 생산 현장이 통채로 바뀌는 게 너무 흥미롭습니다.

   

왕년에 학교에서 데이터 마이닝, OR 최적화, AI 이론과 알고리듬을 철저히 공부해 놓은 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젊었던 시절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개발자로 뛰었던 것도 괜찮은 백그라운드가 되고 있고...

25년 가까이 공부하고 일해 온 모든 것들이 쌓여서 비로서 한꺼번에 발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4차 산업혁명이고,

그 일을 하면서 SF에서 꿈으로만 이야기되었던 것들을 실제로 구현하는 셈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즐거울 뿐입니다.

  

생산 현장만 자동화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오피스의 행정/사무 업무도 얼마든지 자동화가 가능합니다.

RPA(Robotics Process Automation) 솔루션을 활용하면 단순 반복작업이나 '문서 대조/금액 대사' 작업 등은

매크로와 유사한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죄다 자동화가 가능합니다 - 왠만한 사무 보조는 몽땅 자동화 가능하죠.

기업들은 생산현장에서의 물리적인 자동화 + 사무실의 반복업무 자동화까지 가능한 영역은 모두 살펴보는 중이고,

작년부터 불과 1년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자동화 프로젝트가 쏟아져 나와서 온갖 아이디어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제 한국의 경영 현장은 되돌릴 수 없는 "특이점"에 도달하여 이미 그것을 경험 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위야 어떻든 최저임금제는 기업에게 "지금 자동화 기반 혁신에 대한 투자를 미루면 망한다"는 시그널을 날렸고,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들은 살기 위해 즉각 자동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 속에 날을 지새고 있어서...

자동화를 수행하는 컨설팅 업체, 로봇/설비 업체, RPA 소프트웨어 업체 등은 느닷없이 일거리가 넘치게 되었죠.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정확히 1년 전까지 깊은 불황에 허덕이다가, 갑자스런 호황에 비명을 지르게 되었습니다.

  

특이점은 불현듯 찾아왔고, 이제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한 번 자동화된 생산 작업장이나 물류 업무가 다시 수작업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자동화 설비를 잘못 만들어서 오류 투성이로 생산 작업을 완전히 말아먹게 된다면야 되돌아가겠지만서도...)

이미 자동화 프로그램이 밤새도록 쉼 없이 엑셀 파일과 메일로 받은 PDF 거래송장을 자동으로 대조하고 있는데,

이것을 예전처럼 사무직원이 하나하나 메일 열어서 엑셀 파일과 맞는 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자동화의 세례는 느닷없이 찾아와, 모든 기업들이 앞다투어 경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마치 "적사병이 나타났다"와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미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습니다 - 그냥 적사병이 찾아 온 것입니다.

동기부여를 누가 했든, 그게 어떤 의도였든 그런 것은 이제와서 별 의미도 없습니다.

그냥 1년 전 그 날 이후 자동화는 득달같이 빠르게 진행 중이고, 그 날 특이점이 왔을 뿐이죠. 

   

지난 주 금요일 세종시 스마트 시티 기획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세종시 스마트 시티 마스터 플랜은 KAIST 정재승 교수가 수행한 것이었습니다.

왕년에 그 양반이 대학원생이었던 시절 연재한 SF 영화를 논하는 칼럼을 잡지에서 읽곤 하였는데,

그 골수 SF 매니아가 4차산업혁명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인사로 거론되고 있더군요.

작년에 당선된 대통령으로부터, "한국 스마트 시티 총책임자"로 사실상 낙점받았다고 합니다.  

SF 팬덤에 있었던 사람이 "스마트 시티"라는 SF를 현실로 만드는 일의 리더가 된 셈입니다.

저는 이 동네에서 죽도록 일하는 현장 일꾼이고, 정재승 교수는 마이스터이자 지휘자죠.

  

어떻든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일거리 많고, 사방에서 인정해 주고, 회사 내에서도 갑자기 중요한 사람이 되어서,

솔직히 일할 맛이 납니다 - 해외 떠돌고 지방 떠돌고 정신없이 떠돌아 다니긴 하지만 재미는 있죠.

   

특이점이 온 그 순간을 맞이하면서...

SF를 좋아하였던 것, AI를 공부하였던 것, 프로그래밍과 최적화 알고리듬을 짜고 있었던

그 모든 자신의 과거 행적을 사랑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