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지라>는 현세에 활개치는 고대의 거대 생태계를 이야기합니다. 고대 지구에는 방사능을 섭취하는 거대 생명체들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운석 충돌 때문에 자연 환경이 변했고, 괴수들은 에너지를 찾아 깊은 땅속이나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괴수들은 지질학적 시간 동안 지상에 올라오지 않았어요. 아주 가끔 나타났을 뿐이죠. 하지만 2차 대전이 벌어졌고, 기어이 원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이 사건 덕분에 각지의 괴수들이 각성했고,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지상에 올라왔어요. 2014년에 무토 괴수 부부가 깨어났고, 이들은 짝짓기 후 알을 낳습니다. 하지만 고지라는 이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무토는 일종의 기생충이고, 고지라를 숙주로 삼거든요. 고지라 입장에서 기생충들이 번식하는데, 가만히 놔둘 수 없었죠. 결국 고지라는 무토 부부를 처치하기 위해 기나긴 추격에 나섭니다. 그러니까 <고지라>의 내용은 포식자 괴수의 사냥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잡아먹기 위한 사냥이 아니라 기생충을 박멸하기 위한 사냥이죠.


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내용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무토가 기생충이라거나, 고대 생태계의 에너지 순환이라거나, 이런 내용들은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나오지 않아요. 관객이 상황을 파악하고 연상해야 합니다. 작중에서 세리자와 박사는 주인공이자 괴수 전문가이지만, 기생충이니 고대 생태계니 하는 말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일부 관객들은 고지라의 행동을 오해합니다. 고지라가 왜 무토를 쫓아다니는지, 왜 그렇게 잡아 죽이려고 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레딧 같은 사이트에서는 유저들이 가끔 왜 고지라가 무토를 추격하는지 묻습니다. 그럴 때 제일 자주 올라오는 답변이 '균형과 조화'입니다. 고지라가 자연 환경의 균형과 조화를 잡기 위해 무토를 처치한다는 뜻입니다. 언뜻 들으면, 이거 아주 그럴 듯한 설명입니다. 실제로 고지라가 무토를 처치했기 때문에 현대 생태계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세리자와 박사는 “인간은 자연을 통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운운하죠. 덕분에 고지라는 자연 생태계의 수호자로 떠오릅니다. 마치 고지라가 위대한 대자연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고지라는 고대의 최고 포식자입니다. 그만큼 대단한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고지라는 자연의 섭리나 생태계의 조화 따위를 모릅니다. 고지라는 막강한 포식 동물에 불과합니다. 지구 생태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환경 파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고지라가 무토를 처치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집안에서 바퀴벌레를 잡죠. 그거랑 하등 다르지 않아요. 고지라는 위험한 벌레들이 설치기 전에 화근을 없앴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현대 생태계는 무사했지만, 이건 말 그대로 결과입니다. 현상일 뿐이죠. 고지라의 목적은 이게 아닙니다. 따라서 '고지라가 생태계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토를 처치했다'고 말한다면,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고지라가 무토를 처치했기 때문에 생태계 조화가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생태계 조화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마치 대자연이 고지라에게 수호 업무를 의뢰한 것처럼요. 어머니 자연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지라를 소환한 것처럼요. 그래서 가이아 이론을 떠올린 평론가도 있더군요. 실제 가이아 이론은 그런 식의 결과론이 아니지만.


사실 자연에는 특정한 목적이 없죠. 각 생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그 중 자연선택에 따라 우연히 진화가 발생할 뿐입니다. 하지만 잘못 생각하면, 자연이 어떤 의도를 품고 발달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자연을 의인화한다고 할까요. 이런 시각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 사례로 찰스 다윈을 거론할 수 있죠. 진화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말년에 한 가지 고백을 했습니다. 다윈은 한때 자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의 <기독교의 증거>를 읽었습니다. 게다가 아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다윈은 페일리의 책을 읽고, 유클리드를 읽었을 때만큼 큰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울러 페일리의 논증에서 깊은 매력과 확신까지 느꼈죠. 흠, 예수쟁이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군요. 아마 사이비 광신도들은 마침내 다윈이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흥분하겠죠. 하지만 틀렸습니다. 페일리는 자연이 어떤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했고, 그 목적은 신의 설계 의도입니다. 그러나 다윈은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점차 페일리의 주장을 극복했고 자연 선택을 주장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다윈의 주장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토마스 헉슬리와 성직자들의 논쟁이 유명하죠. 성직자들은 헉슬리의 조상이 원숭이냐고 물어봤고, 헉슬리는 아주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했죠. 사실 원숭이는 인간의 조상이 아니지만, 헉슬리는 예수쟁이들에게 멋진 한 방을 날리기 위해 그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성직자와 과학자들은 자연 선택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자연이 움직인다고 해도 '어떤 특정한 목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유기체처럼, 생명체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했어요. 신은 자연과 생명을 설계했고, 따라서 자연은 신의 의도대로, 신의 목적대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인간이 신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자연도 신의 뜻대로 발달해야 합니다. 역시 자연의 의인화라고 할 수 있겠죠. 포이에르바하 같은 철학자는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산물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신은 인간 욕망의 집대성이죠. 인류는 자신을 신에게 대입했고, 신의 뜻은 곧 인간 욕망의 산물입니다. 인류는 신을 만들었고, 그 신의 섭리에 따라서 자연 환경을 분석했습니다. 이게 자연의 의인화가 아니면 뭘까요. 그러나 이런 불경스러운(!) 사상은 종교계와 자연 신학계에서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뭐, 19세기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이어지는 예수쟁이들의 반발은 참….


이런 반발이 얼마나 격렬할지 뻔했기 때문에 다윈은 초기에 생명체의 변이를 쉽게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기껏 연구했지만, 발표를 한동안 망설였죠.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걸 '다윈의 지연'이라고 부르더군요. 게다가 다윈 본인도 기독교적 믿음을 곧장 떨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진화 생물학자도 결국 사람이죠. 평생 종교를 믿었고, 종교에 둘러 싸였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신앙을 버리겠어요. 다윈 본인도 속이 좀 쓰렸을 겁니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자답게 다윈은 신앙보다 사실을 선택했죠. 사실 진화론은 예수쟁이들의 주된 공격 대상이지만, 성직자나 신학자들은 비단 진화 생물학만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은 다윈의 친한 조언자였다고 합니다. 라이엘은 지질 변화에 목적 따위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질 변화에서 신의 설계나 개입을 내쫓았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성직자나 신학자들은 게거품을 물었죠. 토마스 찰머스라는 자연 신학자는 라이엘의 이론이 부당하다고 공격했어요. 심지어 이 양반은 신의 섭리를 경제학에 적용했습니다. 빈민들이 굶어죽고 부자들이 돈을 벌어도 그건 신의 섭리라고 이야기했죠.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토록 자연 현상에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부여하려고 할까요. 아마 포이에르바하의 말처럼 신이 인간을 대변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연에 대입합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인간적인 목적이나 의도를 찾으려고 하죠. 그 결과 신이 자연을 설계했다고 믿고요. 소설 <솔라리스>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학자들이 솔라리스 행성을 연구했지만, 인류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또 다른 인류'를 원했습니다. 인류는 굉장히 신기한 외계 존재와 마주쳤지만, 그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의도 안에 집어넣기 위해 애썼죠. 그게 실패하자, 인류는 솔라리스를 비웃거나 무시했습니다. 그토록 우주로 나갔음에도 결국 인류는 인간 범주의 시선을 버리지 못했어요. 소설 주인공 켈빈은 후반부에 솔라리스와 직접 접촉합니다. 손을 내뻗자 플라즈마 바다가 반응했죠. 그러나 이내 접촉은 끊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솔라리스를 인류의 범주 안에 집어넣고 싶었지만, 플라즈마 바다는 그저 그대로 존재할 뿐입니다.


고지라는 솔라리스와 마찬가지입니다. 솔라리스 행성이 외계의 인간이 아닌 것처럼 고지라는 대자연의 수호자나 대지모신의 보호자가 아닙니다. 그냥 고대의 방사능 괴수입니다. 따라서 고지라의 행동에 특정한 의도나 목적을 부여해서는 안 되겠죠. 따지고 보면, 자연계의 수많은 포식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랑이, 늑대, 악어, 뱀, 향유고래, 상어, 독수리, 말벌, 사마귀 등은 대지모신의 보호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자연의 섭리를 주장한 사람들이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고지라를 자연의 수호자라고 부른 이유는 그저 관습 때문이죠. 그게 뭐 커다란 실수나 잘못은 아닙니다. 누구나 무의식 중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솔라리스>가 그 점을 애써 강조했고요. 아마 이렇게 글을 쓰는 저조차 목적론적인 생각, 자연에 어떤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을지 모릅니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죠. 우리가 사람인 이상,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적 설계 같은 헛소리를 떠들어서야 되겠어요. 관습적인 실수와 사이비 광신은 엄연히 구분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