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글 수 472
“그까짓 것….”
마스터는 잠시 몸을 움찔 하더니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나타났다.
“엇! 엄빌리컬 케이블이!”
해적왕은 유선 동력이 차단되어 비상동력으로 전환된다는 메시지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상대의 빠름은 예측불허, 그가 준비한 파워머신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나의 한 손가락으로 상대해 주겠다. 전력으로 덤벼 봐라.”
마스터는 새끼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해적왕을 불렀다. 새끼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은 볼품없어 보이기 쉬웠지만 마스터의 전신은 이미 완벽한 정도까지 단련되어 피팅모델처럼 깔끔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해적왕은 아무리 해도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이마로 식은 땀이 흐르는 가운데 빤짝거리는 붉은 색 타이머는 점점 줄어들었고 해적왕은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에익! 받아라 스프레쉬 메테오리컬 스톰!!!!”
해적왕은 숨겨두었던 최고의 기술을 뿜어 냈다. 이미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한번에 둘을 한꺼번에 해치운다면 승리하는 것이다.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꽁치와 마스터를 동시에 해치울 생각이었다. 갑주가 상당히 파괴되기 때문에 함부로 쓸 수 없는 기술이지만 이런 위기에서라면 가릴 것이 없었다.
“타타타타타타아아아아아앗!!!”
해적왕의 기합소리와 함께 번개가 떨어지듯 눈보라가 몰아치듯, 혜성이 충돌하는 것처럼 펀치가 쏟아져 내렸다. 하늘을 가득 메우는 듯한 주먹의 환영이 거칠게 쇄도해왔다.
“마스터!”
“당황하지 마라. 눈을 크게 뜨고 잘 보는 거다.”
마스터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린 주먹들 사이로 몸을 피하며 새끼 손가락을 차원병기라도 되는 양 펼쳐 들었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주먹의 충격파가 스쳐 지나갔다. 마스터는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주먹들을 어깨너머로 흘리며 바늘귀같은 틈 사이로 파고 들었다. 번개처럼 날아든 마스터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해적왕의 안면 콘솔이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장갑판이었다.
“그 따위 기술은 애들 장난이닷! 아도도도돗!”
새끼 손가락을 깔짝거리며 통조림을 까듯 안면 가드 장갑판을 도려내가 거기엔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해적왕이 있었다. 마스터는 해적왕을 보며 씽긋 웃어보였다.
검은 수염 사이로 빛나는 이가 보인다 싶더니 마스터는 인정사정없이 새끼 손가락을 뻗었다. 그것은 마치 숙주의 몸을 향해 전속력으로 파고드는 우주거머리처럼 해적왕의 콧구멍을 향해 날아갔다. 놀라운 일이지만 해적왕은 아무런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마스터의 초절정의 컨트롤은 해적왕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마스터는 해적왕에 끼워 넣은 새끼손가락으로 메치기를 걸어 거꾸로 던져 버렸다.
해적왕의 몸을 감싸던 갑주는 넝마가 되어 버렸고 거친 쇳소리와 함께 땅을 파고 들었다. 땅으로 파고들어 쇳소리를 울리던 해적왕의 콧구멍에서에서 엄청난 선혈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해적왕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 크응. 졸렬하지망 정말 놀라운 무공이궁.”
해적왕은 한 손으로 선혈이 뿜어져 나오는 코를 움켜쥐며 외쳤다.
“네놈에게 존대받지 않아도 나는 이미 절대자였다.”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대화였지만 꽁치는 마스터의 신위를 마지막까지 쫒고 있었다.
“네 이놈들!”
마스터의 고함에 해적들이 바짝 긴장해 몸을 낮추었다. 해적왕도 강자였지만 이 마스터라는 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였던 것이다.
“먹을 것을 내놔라.”
해적들은 앞다투어 전함에서 가져온 식량을 마스터에게 바쳤다. 해적왕 아래 있으면서 반항은 곧 구타라는 것을 깨닫게 된 터, 그들은 이 우주에서 가장 강자에게 잘 복종하는 해적이 되어 있었다.
“뭐냐? 더 해볼 셈이냐?”
이미 기능이 정지된 갑주를 벗어버린 해적왕이 마스터에게 다가왔다. 얼굴은 파랗게 멍들어 있었고 코에는 붉은 색 지혈솜이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스터가 씩 웃으며 사과를 베어물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해적왕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네놈은 너무 약하다.”
마스터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투로 시선조차 외면하며 말했다. 그것은 해적왕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수련하겠습니다.”
해적왕은 고개를 숙이고 상대에게 몸을 굽혔다. 그 큰 덩치가 불쌍한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는 것을 보고 해적들이 흠칫 놀랐다. 혹시 저러다가 달려들어 기습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경계한 것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해적왕은 그러고도 남을 이였다.
“약하다는 것은 너의 육체가 아니다! 기공이 아니다! 그것은 너의 마음가짐이다. 너에게는 강해지겠다는 욕구가 없느냐! 고작 기곗덩어리에 몸을 맡긴 이상 너는 이미 패배해 있는 것이다. 지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것에 몸을 맡기겠는가! 너의 정신은 이미 기계와 물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크윽.”
뼈아픈 한마디 한마디였다. 라이프란쯔의 국왕이었던 이래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더럽고 비열한 수를 서슴지 않았다. 자기보다 강한 자는 죽이거나 몰아내 버렸다. 강해지기 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고 승리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새 자신은 파이터로서 존재할 수 없는 자가 되어 있었다.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후… 네가 나에게 배운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겠느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과거의 원한, 인연, 모든 것을 다 버리겠느냐?”
“네. 그러겠습니다.”
“내 말에 살고 내 말에 죽겠느냐?”
“그러겠습니다.”
“그럼 죽어라!”
그 말과 함께 마스터는 손바닥으로 해적왕의 머리를 내리쳤다. 벼락처럼 강렬한 충격이 떨어지자 해적왕의 코와 입, 귀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해적왕은 정신을 잃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죽이신 겁니까?”
“아니다. 죽지 않았다. 이것은 천두개혈대법이라고 하여 우주기공의 신묘한 기술중의 하나이다. 두개골을 우주기공으로 초진동시켜 어혈을 뽑아내고 우주기공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 수련의 성과를 높이는 어려운 기공의 하나이다.”
“어혈이란 말입니까. 그런 나쁜 피를 뽑아내고 더 나은 몸상태가 되는 것이겠군요.”
“바로 그렇다.”
“그런데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나오는데요.”
꽁치의 말대로 눈이 허옇게 뒤집어진 해적왕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려내고 있었다.
마스터는 잠시 움찔했지만 표정을 굳히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건 이 녀석이 지금까지 너무 쓰잘데 없는 데 기운을 쏟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인간은 저 정도의 피를 흘리면 죽지 않습니까? 흘러나온 피의 양이 심상치 않습니다.”
“까짓거, 죽는다면 놈의 팔자일 것이다.”
마스터는 비정하게 말했다. 그 말에 해적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식량을 나르는 발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크으.. 여긴 어디냐.”
해적왕이 눈을 뜬 곳은 하얀 방이었다.
“크으윽. 아니 네놈은!”
해적왕은 깜짝 놀라며 외쳤다. 그 옆에 누워 있는 것은 예전 블랙홀로 사라졌을 것이 분명한 검진한이 아닌가.
온통 하얀 방보다도 검진한의 모습에 놀란 그는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 보았다. 선혈이 흘러나오던 코도 말끔히 나아 있었고 멍이 들어있던 상처도 깨끗하게 변해 있었다. 다른 것이라면 머리가 좀 깨질 듯 아프다는 것 정도였다.
“설마, 여기가 저승인 것인가. 하지만 저승이란 분명 존재할 수 없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파기되어버린 이론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을 빼면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겠군. 납득할 수 없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인가.”
“아 그놈 쫑알쫑알 시끄럽네. 대체 네놈은 뭐길래 여기서 떠들고 있는 거야?”
아프로가 나타나며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게. 저. 아니 짐은 전 라이프란쯔 국왕이자 현 해적왕이고 이름은 타바론…”
“그딴 건 필요없다. 파이터이냐 아니냐 그것만 말해.”
“그야 물론 파이터중에 파이터….”
“그럼 죽어라.”
“헉!”
타바론이 헛숨을 들이켜는 그 찰나의 순간에 아프로가 공간을 압축하며 달려 들었다. 서 있던 모습이 일순 도약하며 급소를 노렸다. 바닥을 박찬다던가 날아든다든가 하는 식이 아니었다. 주먹을 뻗겠다는 의지와 동시에 주먹이 타바론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유성이 행성의 중력에 빨려드는 것처럼 그것은 자연스러웠고 또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아프로의 주먹은 타바론의 명치로 빨려들어갔다. 그것은 타바론의 명치를 파고들어 그의 갈비뼈를 부수며 심장을 24조각으로 찢어발겨 그의 행동을 일순 멈추게 하고 수분 안에 뇌를 사망케 했다. 해적왕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이 일은 이미 일어났다. 타바론은 이미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실은 타바론도 아프로도 잘 알고 있었다.
“잠깐.”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프로의 주먹은 누군가의 손에 잡혀 있었다. 그녀의 주먹은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에 막혀 타바론의 가슴 바로 앞에 멈추어 있었다. 타바론은 찢어진 자신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진한! 너 각성했구나.”
“응. 조금 오래 기다리게 했군.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야.”
“하지만 이 놈은….”
“내가 불렀어. 내 손님이야.”
“그렇다면 뭐.”
“진한, 대체 여긴 어디냐? 이 여자는 누구고? 나는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다만, 그 펀치는 분명 이미 나의 심장을 찢었을텐데 어떻게 막아낸 것이지?”
가슴을 어루만지며 타바론이 물었다.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진류도의 힘이라고 해 두죠. 양자의 흔들림 속에서 펀치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찾아 그것을 가져오는 것, 이 우주의 진정한 흐름을 찾아 엮는 힘, 그것이 진류도죠. 이곳은 진류도를 수련하는 수련장입니다. 아프로는 진류도의 마지막 남은 교관입니다. 여기는 그걸 위한 공간이죠.”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게 당연하죠. 진류도는 알 수 있는 힘이 아니니까요. 아프로. 같이 가겠어?”
“아니. 난 여기 남아야 하는 걸 알잖아.”
“그래. 그럼 돌아가겠어. 운명의 시간이 머지 않았으니.”
“너의 각성이 완전하지 못할까봐 걱정이야.”
“상관없어. 이미 모든 건 결정되었으니까. 내가 각성하든 각성하지 않든 길은 정해졌어. 그럼.”
진한은 천천히 빛나는 벽을 향해 걸어갔다.
“진한! 이 녀석도 데리고 가야지!”
벽 너머에서 뭔가 강한 흡인력이 나타나더니 해적왕을 끌어당겼다. 해적왕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벽 너머로 끌려 사라졌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