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보행자 5


우주 관측 본부 제 1팀 에이미에게

  안녕 에이미,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최근에 네가 병참 기술부대에서 관측 본부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어. 본부로의 전임을 축하할 겸 해서 직접 찾아갔어야 하는데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부터 전할까 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가 뭐하러 병참 쪽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는지도 궁금해. 관측 본부로 오게 된 것이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몰라도, 책상에 앉아서 일하니까 나름 편할거야. 넌 사관학교 다닐 때부터 수학이나 지구과학에 유별났잖니. 앞으로 일처리가 쉬울거야, 에이미. 
 
   여긴 아주 편해. 편하다는 것이 책상에서 펜을 잡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지? 딱 내 스타일에 맞는 일이야. 나는 구형 함선인 마에스트로에서 조종간을 맡고 있어. 함장님도 대단히 좋은 분이고 착하신데다가 나에게 관심이 많으셔. 다른 함선의 지휘관처럼 딱딱하고 냉정한 분이 아니어서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셔. 마에스트로는 날렵하고도 빨라서 공격에 있어서 대단히 유리해. 하지만 구형 함선이라는 것 때문에 방어막이 아직 옛날 것이라서 적 공격에 피격당할 때는 좀 위험하기도 하지. 다들 내 조종 실력을 믿고 있어. 부담도 되지만 즐거워. 나를 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마에스트로는 아직까지 한 번도 격침당한 적이 없대. 격침 위기까지 간 적도 없고. 낡은 함선이지만 왠지 더 편하고 아늑해. 하하, 물론 의자가 편하다는 소리는 아니야. 의자도 옛날 거란다. 다른 함선은 괜히 크기만 커다래서 조종이 불편하고 피격 위험이 더 높아. 물론, 방어막도 더 높다는 게 사실이지만. 함장님은 방어막에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셔. 마에스트로가 출고되고 2년 동안은 방어막이 없었는데, 왠걸,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대. 방어막에 의존하지 않고 승무원들이 자신들의 기량대로 일을 처리하다보니 다른 함선보다 월등했다네.

   하지만 좀 걱정되는 것은 새로운 적이 출현했다는 거야. 이건 기밀 사항이 아니니까 편지에 써도 별 문제 되지 않겠지? 오각형의 함선을 가진 적인데 날렵하고도 공격력이 뛰어나. 마에스트로가 한 번 피격당할 때마다 방어막이 순식간에 줄어든단다. 날렵함 덕분에 위기를 잘 모면하곤 해. 저번 주에 링컨함이 격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최신예 함선이지만 너무 크다보니 날렵하고 강력한 적에게는 꽤나 어려운 상대였을거야. 함장님은 링컨함 함장이 방어막에 너무 의존해서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셔. 나도 그분 생각에 동의해. 마에스트로의 함장님은 링컨함 출격에 반대하셨어. 하지만 합참이 뭐 형식적인 사람들만 가득하니 그분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대. 
  
   난 우주를 항해할 때마다 물론 눈은 계기판을 보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널 생각하고 있어. 캄캄한 우주에서도 별빛은 정말 날카롭단다. 옛날에 어릴 때 난 커다란 우주인이 별을 들고 총을 쏘면 그 탄환이 별빛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어. 그때를 생각하며 별빛을 바라볼 때면 왠지 우습기도 해. 때론 창살처럼 뾰족하게 보일 때도 있고 넓은 바다처럼 부드럽고 편안해보일 때도 있는게 별빛이야. 너무 신비로워. 내가 탄 마에스트로가 궤도를 항해하는 것을 너도 관측판으로 볼 수 있게 될거야. 우린 서로 만날 일이 별로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우리 둘 다 서로를 생각하고 있잖아. 에이미. 관측 모니터에서 내가 탄 함선은 한 개의 둥근 점으로 보이겠지. 그 둥글고 작은 점에서 너도 내 얼굴을 생각해줘. 마에스트로가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기까지는 5초가 걸려. 지구에서 우주로 향하는 그 5초 동안 너는 뭐하고 있을까, 걱정부터 되. 미안해. 하나의 비보를 전해야겠어.

   예전에 브룩스의 소식을 물었지? 미안해. 그는 죽었어. 그는 링컨 함의 승무원이었어. 생존자의 명단에 브룩스는 없었어. 탈출하지 못했나봐. 스무 명 가량의 생존자가 우리에겐 그나마 얻은 희망이었지만, 나나 너에겐 다소 야속하기도 하다는 거, 알고 있어. 사실 군인이라는게 한쪽 몸을 관에다 넣고 사는 거니까... 하지만 브룩스는 빈 관으로 묻혔어. 시신은 커녕 링컨 함의 잔해조차 확인할 수 없었어. 넌 장례식 때 아마 기술 부대 일로 오지 못했을거야. 브룩스의 누나도 이해했어. 물론 함선이니 우주 본부니 하는 것은 모두 국가 기밀 사항이라 브룩스의 누나는 브룩스가 훈련 도중 소대원들을 대피시키다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어. 그녀를 위해서도 그 방법이 좋았을거야. 죽음은 당사자에겐 조금이나마 명예로울 수 있지만 남겨진 가족들에겐 결코 아니니까. 만에 하나 마에스트로가 격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내 가족들에게도 비슷한 편지가 갈거야. 함선의 모든 승무원들은 그런 편지를 발송하는데에 동의해야만 함선에서 일할 수 있어.

   미안해. 너무 어둡고 무거운 말만 했나봐. 우주로 나가는 일은 두려워. 매일 두려워. 하물며 지구 궤도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두려움은 캄캄한 우주에서 안개처럼 내게로 쏠려오곤 하지. 하지만 왜 그럴까. 전투에서는 마음이 편해져. 아마 이 일이 끝나면 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펜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어. 함선의 부관이라다보니 할 일이 많거든. 하지만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어서 즐겁게 하고 있어. 우주 관측 본부의 생활은 어때?

   언젠가 너를 마에스트로로 초청하고 싶어. 외부 인사도 아니고 같은 직급의 군인이니 가능할거야. 함장님도 동의하실 게 분명해. 사실 우주를 관측하는 건 극히 일부분의 모습이잖아. 교과서에서 간혹 등장하는 우주 사진 몇 장으로 우주 전체를 어떻게 다 알수 있겠어. 함선이 지구 궤도를 벗어나게 되면 앞엔 캄캄한 우주와 별빛 밖에는 보이지 않아. 그게 더 아름답지. 실제로 우주에서 지구를 보는 것. 위험한 임무 속에서도 그런 광경을 생각하며 평온을 얻어. 우주 여행선을 타고 가는 것도 좋지만, 그건 이륙하는데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해. 함선은 안전하고 여유롭거든. 일단 내가 일하는 함선에 너를 초청하고 싶은게 내 마음이야. 
  
   아, 다음달에 너도 대위로 진급한다는 소식을 들었어. 대위 진급식 때 나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땐 꼭 휴가를 내볼게. 그럼 답장 잊지마. 안녕.

                                                                                                 미 공군 우주방공사령부 1세대 함선 마에스트로 부관 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