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몬한 전투당시 파괴된 소련 장갑차

전쟁터에서 무언가를 만든다는것은 개인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무의미한 일이다.
누군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면 그 공로는 그 사람이 속한 지휘관에게로 돌아가고, 역사책에도 그렇게 실린다.

"투척준비!"

지금 태성을 포함안 거의 모든 일본군 병사들 손에는 그 전쟁터에서 탄생한 무언가가 들려있다.

"투척!"

손에 쥐어져있던 기다란 물체는 큰 포물선을 그리며 소련제 전차 후부 엔진데크를 향해 날아갔다.
이윽고 그 물건이 깨지면서 큰 불길이 일어났다. 1초도 안되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불길을 잡지 못한 소련 전차는 굉음을 내며 폭발하고있었다.

"드디어 고철과 술병 중 무엇이 더욱 가치가 있는지 판명이 되었군......"

전쟁터에서 탄생한 단순하기 그지없는, 아니 단순하다 못해 바보같이 생긴 그 물건이 전차를 바보로 만드는 것을 본 가토는 이러한 말을 남기고는 실없이 웃어댈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까지 어렵게 된 것은 지난 몽골군과의 전투 이후 부터였다.
일본군은 몽골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승리의 댓가로 많은것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야기는 다시 지난 몽골군과의 전투 시점으로 돌아간다.

국경 대대들은 몽골 기병들을 막아내는데 크게 성공하였다. 하지만 뒤이어 몽골의 소련제 전차들이 몰려오자 또다시 혼란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숙여!"

후지와라가 태성의 머리를 누르며 소리를 치자 병사들은 일제히 참호 안으로 몸을 낮췄다.
비록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깜깜한 밤이었지만, 전차의 움직임으로 인해 울리는 진동은 확실히 그들 후지와라 소대의 병사들의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이윽고, 몽골군의 전차들이 그들의 참호 위를 건너자, 빗물로 한창 물러진 진흙들이 빗물과 함께 병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참호는 전차 몇대가 조금만 더 건너면 금방이라도 진흙사태에 무너질 기세였다.

"아악!"

한 병사가 눈과 코에 진흙물이 들어간 듯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자, 후지와라가 급하게 그의 입을 막았다.

"쉿!"

후지와라가 그 병사의 입을 막자 병사의 코 속에서 진흙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로소 그 병사는 코로 크게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수류탄이 얼마나 남았지?"

"소대원 한명당 두알씩은 던질 수 있습니다."

"겨우 그정도 뿐이란 말인가......수류탄을 던진다고 그 한발 한발이 100프로 명중하는것도 아니고, 저들의 기세로 봐서는 역부족이야......"

잠시 생각을 하던 후지와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 그럼 이렇게 하지. 지금상황으로는 아까 기병들을 상대했던거 처럼 저들이 참호를 다 건넜을때 저들의 뒤를 노려서 투척하는 수 밖에 없어.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야."

"소대장님!"

병사 한명이 후지와라를 덮쳐 참호 밑바닥에 엎어졌다. 엎어진 그들 위로 기관총탄이 날아들어왔고, 그 병사는 후지와라를 덮은채 그대로 총탄을 맞고 머리부터 등 전체까지 온 몸에 피범벅이 되었다.
참호 저편에서 경전차 한대가 참호위에 걸터 멈춘채 후지와라 소대원들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하고있었다.

"전부 저 모퉁이 뒤로!"

태성이 다른 병사들을 껄어서 참호 모퉁이를 돌아 숨게 하였다.
하지만 후지와라는 아직 병사의 시신 밑에 깔린 채 몽골 전차의 사격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런 제길!"

태성은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밀어 몽골 전차의 위치를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태성이 고개를 내밀때마다 전차는 참호 모퉁이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태성은 다시 자신의 뒤쪽을 보았다. 한 병사가 어디서 주웠는지 주인 잃은 대전차총을 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것좀 잠깐 이리 줘봐."

"하지만......"

그러나 태성은 그 병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은채 대전차총을 빼앗아 품에 안았다.

"하늘이여 제발 날 좀 도와줘라......제발......"

그때 태성의 귀에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전차 소리가 들려왔다.
몽골 전차 한대가 방금 사격을 가했던 전차와 태성의 사이를 건너려고 하는 중이었다.

"지금이다!"

태성은 대전차총을 들고 후지와라가 쓰러져 있는 쪽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리고는 후지와라를 덮고있던 병사의 시신을 치우고, 후지와라를 일으켜 참호 모퉁이를 돌게 하였다.
후지와라가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여 모퉁이를 돌때 참호를 건너던 전차는 이미 참호를 다 건너는 중이었다.
이제 몽골 전차와 태성 사이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태성이 모퉁이를 돌기에도 너무 늦은 타이밍이었다.

"어쩔 수 없군......"

태성은 뒷걸음질을 치며 전차를 향해 대전차총 방아쇠를 당겼다.

"뭐, 뭐야!"

하지만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고, 대전차 총 안에는 무언가 꽉 찬 느낌이었다.

"이런 망할 진흙!"

대전차총을 힘껏 집어던진 태성은 모퉁이를 향해 몸을 날릴려고 하였다.
그때 몽골군 전차 쪽에서도 사격을 시작하였다.
태성의 뺨 바로 옆으로 총알이 날아오는것이 느껴졌다.

"이자식아! 나에게도 숨좀 돌릴 기회를 줘!"

그때 갑자기 전차의 기관총 사격이 멈추었고, 전차의 기관총은 과열을 받은 듯 빗속에서 흰 연기를 내뿜었다.
그 기회를 놓칠리 없는 태성은 몸을 날려 참호 모퉁이로 숨었다.

"야 이자식아! 왜 말 안했어!"

모퉁이를 돌자마자 태성은 아까 대전차총을 만지작거리던 병사의 귀를 잡아끌고 소리를 질렀다.

"말 하려고 했는데 지가 말할 기회를 안줘놓고서는......"

그때 사격을 가했던 전차가 소대원들 쪽으로 점점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전차는 그들에게 다가오는가 싶더니 다시 방향을 틀어 현재 가토 대대장이 있는 참호 방향인 언덕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저 자식을 가만 두지 않는다!"

태성은 수류탄 다섯알을 들고 전차를 향해 냅다 뛰었다.

"이봐! 어디가는 거야! 안돼! 가지마!"

후지와라는 태성을 말릴려고 했지만,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라 말릴 기력도 없었다.
그리고 소대원들 역시 전차를 뒤따라 온 몽골 보병들이 참호 안으로 뛰어든 터라 그들과도 싸워야만 했다.
전차를 향해 달려가는 태성에게도 몽골 보병들이 쫒아왔다.
몽골 보병들 중에는 사격을 하면서 쫒아오는 자들도 있었고, 진흙이 들어갔는지 사격을 하지 못한채 총검을 장착하고 돌격하는 자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태성을 쫒아오다 번개빛과 천둥소리에 놀라 넘어지는 병사들도 있었다.

"어디 뜨거운 맛좀 봐라."

태성은 쫒아오는 몽골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보병들은 수류탄 폭발로 나가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주변의 다른 전차들이 태성을 향해 포탑을 돌리는 중이었다.
태성은 효과가 없을 것은 알았지만 전차 두대를 향해 각각 수류탄 한알씩 던지고 주변 참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느새 그는 자신이 목표로 한 전차 바로 옆까지 가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조금만더......"

태성은 참호안에서 참호위의 전차와 나란히 달리면서 전차의 궤도 안에 수류탄을 끼워넣었다.

"멍청한 자식!"

수류탄을 끼워놓은 태성은 참호 안에 납작 엎드렸고, 잠시 후 큰 폭발음과 함께 진흙섞인 파편들이 날아들어왔다. 파편들 중에는 전차 궤도로 보이는 철조각들도 같이 날아들었다.

"그래, 이제 뚜껑을 열고 나올 차례지! 어서 나와라......"

참호위로 냅다 뛰어 올라간 태성은 궤도가 끊긴 전차 위를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탑의 해치는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태성은 침착하게 전차 포탑을 방패막이 삼아 다른 전차의 사격을 방어하면서 해치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전차 안에서도 해치가 쉽게 열리지 않는지 해치를 땅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후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렸지만, 안에 탄 탑승자들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놈들아 빨리 나와!'

태성이 해치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려는 순간 포탑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총알이 날아왔다.

"이자식들!"

해치 안에서 날아온 총알들 때문에 태성은 선뜻 해치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 생각은 못하고 그냥 마지막 남은 수류탄 한알을 해치 안으로 던져넣었다.

"마지막 선물이나 받아라!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선사하는 축복이다!"

수류탄을 던져넣은 태성은 그대로 전차 밑 바로 옆 참호로 그냥 뛰어내렸다.
꽤 높은 높이였지만, 진흙때문인지 아니면 참호안에 깔리 다른 병사들의 시신들 때문인지 다치지는 않았다.
잠시후 참호 안에 바짝 엎드린 태성의 머리 뒤에서 굉음과 함께 따뜻한 화염의 온도가 느껴졌다.

한편, 가토역시 참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놈, 저놈 빨리 데려와 어서!"

가토의 참호 역시 밀려드는 전차들을 막기위해 지뢰를 던지고, 수류탄을 던지고 사정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 와중에 가토는 태성을 데려오라며 병사들 몇을 내려보냈다.
몽골군들은 태성을 시신들 중 하나로 착각하고, 건들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고지대 참호 점령만 생각할 뿐이었다.

"대대장도 미쳤지, 저들을 어떻게 막으라고!"

대대장의 명을 받아 내려간 병사들은 눈앞에 몰려오는 몽골 병사들을 보고 불평불만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뭐 어쩔 수 있냐? 하라면 해야지."

병사들은 수류탄을 꺼내들어 참호 밖으로 몰려오는 몽골 병사들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리고 참호 안으로 쇄도하는 몽골병사들은 소총으로 처리하는 식으로 앞으로 전진하였다.
어느새 태성이 엎어져 있는 곳까지 다다른 병사들은 태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널린 시체들 때문에 사람 찾기란 쉬운것이 아니었다.

"아니 글쎄, 여기까지 오면 뭐하냐고......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어야지......죽은거 아니야?"

"낸들 아냐? 그냥 대충 찾는 척 하고 돌아가서 죽었다고 보고하자고."

그들이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순간 시체들 사이에서 손 하나가 튀어나와 병사 한명의 발을 붙잡았다.
비가내리고 번개가 치는 날이라서 그런지 발목을 붙잡힌 병사는 순간 깜짝놀라 허공에 대고 총질을 하였다.

"귀......귀신! 귀신아 물러가라!"

"귀신 아니야......"

그제야 태성을 발견한 병사들은 태성을 일으켜 세워 가토의 참호를 향해 움직였다.

한편, 대대장 가토는 자신의 참호에서 병사 한명의 대전차총을 빼앗고 있었다.

"이런 답답아! 그걸 그렇게 한심하게......"

하지만 가토 역시 빠앗은 대전차총으로 몽골 전차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였다.

"망할 몽골 녀석들......"

"대대장님! 데리고 왔습니다."

병사들이 태성을 데리고 와 대대장 앞에 세웠다.

"잠깐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거 한번 쏴봐."

대대장은 태성에게 대전차총을 쥐어주고는 벙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날이개었다.
하지만 전투는 도저히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태성 역시 대전차총으로 전차들을 향해 열심히 쏴대었지만, 전차들보다 쇄도하는 몽골 보병들이 더 문제였다.
몽골 보병들은 거미줄처럼 얽힌 참호들을 점령하고 그 안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 좀 진정 되어가는 중인가?"

벙커안에서 나온 가토는 잠깐 잠을 자고 나온 듯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고착상태입니다. 적들이 우리가 파 놓은 참호를 점령하고 저항중입니다."

그때 가토의 눈에는 굉음과 함께 몽골 전차들이 하나 둘 격파되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강력한 폭발로 전차와 몽골 보병들이 속속 녹아내리고 있었다.

"저게 무엇이야! 저놈들이 이제야 나타나다니!"

가토는 원망 반 기쁨 반으로  소리를 질러대었다. 하늘에서는 일본군 공격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아까 폭우가 쏟아진지라 이륙은......"

"야이 자식들아! 그래, 시원하게 퍼부어줘라! 이거 참 빗줄기보다 더 시원하구나 하하하하"

부하 장교의 설명은 들리지 않은 듯 가토는 신나게 비행기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가토는 몽골군이 격파되는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기위해 흥분한 얼굴로 벙커안에서 쌍안경을 가지고 나와 몽골군 쪽을 이리저리 살폈다.

"처참히 깨지는구나......아주 시원하게 깨지고 있어!"

쌍안경을 들고 신나게 이리저리 둘러보던 가토는 갑자기 신나하던 모습은 사라진채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저게......저게 뭐야......저놈......저놈잡아!"

쌍안경 안에는 한 전차가 대대 탄약고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대응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이었다. 전차는 이미 탄약고 주변을 지나고 있었다.
공격기 한대가 뒤늦게야 그걸 발견한 듯 그쪽으로 향했다.

"아......안돼! 가만놔둬!"

가토 옆의 장교가 소리치자 가토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무슨소리야! 쥐새끼는 빨리 잡아 쳐죽여야지!"

"보십시오! 저들은 탄약고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전 통신을 한 것도 아니고 공격기 조종사에게 장교의 말이 들릴 리 없었다.
공격기는 이미 폭탄을 떨어뜨렸고, 폭탄은 곧장 탄약고를 향해 몸을 날리는 중이었다.

"안돼!"

폭탄이 탄약고에 명중하자 큰 섬광과 검은 연기가 하늘높이 치솟았다.
폭발이 얼마나 굉장했는지 폭탄을 떨어뜨린 공격기 조종사도 폭발로 인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 진동으로 인해 비행기가 잠시 휘청거리는 듯 싶었다.
탄약고를 지나던 몽골 전차역시 불길에 휩싸여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

"안돼......이럴 수는 없어! 이럴수는 없어!"

가토는 망연자실 했지만, 이미 죽은자식 고추만진 격으로 일은 터진 뒤였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