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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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008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의 지혜와 이성으로 밝혀낼 수 있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세상엔 두가지 종류의 것들뿐, 그렇게 밝혀진
것과 앞으로 밝혀내야 할 것.
-카리스 C. 고고학자-
"여러분, '마카우웨'가 뭔지 아십니까?"
고고학자로써 나의 이론을 설파할 기회가 오자 나는 학생들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예를 들었다.
"예, 알아요. 가스식 가로등이잖아요"
그 외에도 몇몇 학생이 아는척을 하고나자 나는 말을 이었다.
"예, 잘 알고 있군요. 이 '마카우웨'란 지금은 가스식 가로등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원래는 15세기 잉글린드에서 처음 가로등이 설치되었을 때 잉글린드 정부에 가로등
을 납품하던 폼웰사가 사용하던 상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나에게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은 대부분 내가 여기서 어떤 말을 꺼내려 할지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는듯 했다.
"원래 마카우웨는 신화속에 등장하는, 밝은 빛으로 사마시안 지역 끝까지 밤을
밝혀 여행자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지상에 설치된 일종의 등대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 정리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그려진 삽화에서는 등대라는 표
현에 얽메인 나머지 강력한 빛을 뿜는 고층건물 크기의 거대한 등대처럼 묘사했
고, 그 뒤로 보통 그렇게들 인식하고 있죠. 폼웰사가 사용하는 트레이드마크도
그것을 도안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원전으로 여겨지는 북 에롭 지역의 설화에
서는 어디에도 등대가 하나뿐이였다는 언급은 없었죠."
신비한 전설과 설화의 비밀을 밝힌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리고 그
런 학생들의 호기심과 관심어린 시선을 받는 것은 강의자 입장에선 보람있는 일이였
다.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이 서쪽해안의 작은 대학에서 일일강의를 맡게 된 것이
썩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신화속의 마카우웨가 우리 시대의 마카우웨와 다르지 않다
고 생각합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카우웨는 실제로도 가스식 가로등이였을거라
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강의실 입구의 노크소리에 나의 강의는 잠시 중단되었다.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나에게 기다리던 소식을 귀뜸해주었다.
'....'
나가 봐야겠군. 친구가 부르는 모양이다. 그것은 내가 대륙 동부에 위치한 마사리아
고대문명 연구소에서 이 대륙의 서쪽 해안으로 오게한 '진짜 용건'에 관한 것이였다.
아무래도 슬슬 강의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 온것 같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보수적
관점에서의 사학강의가 끝나고 찾아온 한창 재미있는 대목이였지만 나에겐 더 재미
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세상에 아직 신화나 미신같은 신비하고 아직 과학으로써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불가사의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불가사의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무지에 상상상력과 감수성이 더해진 결과이죠. 이런 낭만
이 사라지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것은 등불에 어둠이 밝혀지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
각합니다."
말 재간은 없는 나였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멘트였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질문 허락했을적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
"아틀라이트 대륙이 가라앉을때 하늘 넘어로 이주해간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들은 안티프라이즈호에 타고 있다니까."
안티프라이즈란 최근 유행하는 스타트럭이라는 진보적 SF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우주선의
이름이였고 질문을 한 옆에 학생이 한 이 대답은 강의실을 일순간에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카리스 교수님, 교수님은 성당에 갈 때 직접 자위를 하신 생리대를 쥐고 기도한다는게
정말입니까?"
이어서 야유처럼 던져진 이 질문은 마찬가지로 웃음을 불러왔지만 아까의 웃음보단 악
의가 섞여있었다.
이것은 성경에 실린 내용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했던 나의 행동 때문이였다.
신비주의와 종교적 사고방식이 깊이 뿌리내린 이 사회에서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나의 시도는 반발을 사서 다른 이론들까지 함께 싸잡혀 이런 악의 섞인 멸시나 비난을 당
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웃고 있다가 조금 조용해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외에 질문이 있으면 제가 있는 동안 찾아오던지 마사리아 연구소로 팩스나 우편 부탁
합니다. 종교와 관련된 질문은 빼고 말입니다. 아마 신학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듣고 싶
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답변은 되도록 성실히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
습니다."
기러기가 떠있는 인근 해안으로부터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카리스, 잘왔어."
곳곳이 파헤쳐진 언덕의 발굴현장에서 나를 맞이한 흰 가운의 사내는 대학시절부터 친구
이자 같이 마사리아 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원였다.
"그래, 루빌. 그런데 어느거지?"
루빌은 말없이 손으로 가리켰다.
사각형으로 파여진 발굴현장에서 모습을 들어낸 것은 새우잠을 자듯 몸을 움크린채 금속
으로 된 작은 삽을 쥐고 있는 사람의 유골이였다.
"상태가 양호한건 덮혀있던 안산암 덕분인가보군. 감사해야겠어."
이번 발굴은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엊그제만해도 덮혀있던 안산암들 때문에 우리 발굴팀은 발굴이 크게 지연되리라는 걱정
을 했었지만 그 문제는 최신 발파공법 덕분에 의외로 빨리 해결되었다. 이제는 안산암이
덥어준 덕분에 6000년짜리 유골이 저렇게 잘 보존되어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세대엔 격렬한 지각활동으로 고대문명이 종말을 고하던 시기여서 온전한 유골
은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유골이 쥐고있던 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삽도 티태니움 같군. 딱 보면 알 수 있지. 고대문명에서 강철보다 강하면서 가벼운 황
금 물건이란 티태니움제를 말했던게 분명해. 이번 발굴도 그렇고 고대인들의 물건은 티태
니움이 자주 보이는군."
"티태니움 맞아. 어쩌면 그 휘황찬란했다는 고대문명도 실은 지금 우리의 문명수준이였을
지도 모르겠어. 티태니움은 이제 우리도 많이 쓰는 금속이잖아."
루빌은 얼마전 나의 생일 선물로 그동안 쓰던 낡아빠진 탄소강으로 만든 삽을 대신하도록
티태니움제 삽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자루까지 금속으로 된 삽이였는데도 별로 무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요즘은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어보였다.
"이것 처럼 말이야."
나는 삽의 손잡이에 미끌어지지 않도록 고무 테잎을 감아두고 종이 테이프로 이름과 연
락처를 잘 보이게 써서 자루에 붙여둔 상태였다. 내가 꺼낸 삽을 보더니 루빌이 말했다.
"확실히 새겨져있는 이름보다는 종이태이프에 써놓는 이름이 눈에 잘띄겠지."
"무슨 소리야. 내 이름같은 것은 새겨져 있지 않던데?"
"그럴리가? 주문할적에 자네 이름을 찍어놓도록 주문했었는데..."
"혹시 KST이라고 얇게 찍힌이거?"
"아니, 그건 그 삽을 만든 메이커야. 이상하군. 선명하고 깊게 자네 이름을 새겨달라고
했었는데..."
"그럼 주문받은 사람이 잊어버렸나보지. 괜찮아. 삽은 잘 쓰고 있어."
"그렇다니 잘됐군. 우리처럼 땅파먹고 사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튼튼한 삽만큼 좋은
건 없지."
루빌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우린 고고학자니까. 그럼 이사람은 뭐하던 사람일까?"
나는 내 삽으로 유골을 가르키며 물었다.
"혹시 모르지. 우리같은 고고학자일지도. 저런 작은 삽을 쓰는 직업은 많지 않거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한번 물어본 것이였다.
"있잖아, 루빌. 만약 이 사람이 고고학자였다면 말이야... 자신들의 문명이 멸망하는 역사
적인 순간을 두눈으로 직접 봤을텐데 그 심정은 어땠을것 같아?"
"별로 감격스러웠을 것 같지는 않은걸? 고고학이란게 몇천년 넘어에나 있는 남의 이야기를
캐내니 재미가 있지만 직접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별로 재미있었을 것 같지가 않거든. 하지
지만 그나마 직접 겪어보았어야 좌절을 하던지 말던지 하지. 이 사람은 용암이 흘러내리기
몇미터 아래에 뭍혀있었어. 아마 멸망의 날이 되기 전에 닥쳐온 무법과 혼란 속에서 봉변이
라도 당한게...."
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 였다. 리터 진도로 3도 가량 되는 약진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사람들에게 큰 불안감을 느끼게하기엔 충분했다. 지각이론을 통
하여 어느정도 해명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초자연적인 징조로여겨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특히...
"이런 젠장... 아직 보존처리도 못했는데..."
루빌은 투덜거렸다. 고고학자의 입장에서는 지진이 다른 사람보다 달갑지 못하다.
"요즘 지진 때문에 유물들이 한 100년분은 상했을거야."
2분쯤 지나고 지진이 멈추자 루빌이 투덜거리길 계속했다.
"요즘 지각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잖아. 원래 지구는 한 450년을 주기로 지각활동이 활발
해져 왔다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발굴현장을 연구소로 돌아가기 전에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다행이군."
"그러게. 말이야. 남은 발굴작업은 셀미나 교수에게 맡기면 될거야. 추가로 알아내는 게
있으면 연구소로 보내준다더군. 걱정 말고 가서 기다리자구."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동부해안가에 위치한 마사리아 연구소에 본소에 도착해
보니 뜻 밖의 인물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소. 닥터..."
"루빌입니다."
"그럼 이분이 닥터 카리스씨겠군."
자신을 바젤하임 장군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대머리 사내는 우리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비행기 여행으로 피곤하다는 루빌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그는 리무진에 우릴 태워
국방연구소라는 곳으로 초대했다.
"두분 다 고대문명에 대해 정통하다고 들었소."
"정통은요, 헛소리라면 정통이죠."
루빌은 그 특유의 빈정됨으로 겸손인지 비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꾸를 했다. 장군은 그
런 루빌의 대꾸에 조용히 웃는가 싶더니 순간 태도를 바꾸어 매몰차게 쏘아붙여 말했다.
"나는 헛소리를 듣기 위해 내 차에 신도 모르는 무뢰배들을 태운게 아니오....!"
머쓱해진 루빌은 내 귀에 소근거렸다.
"광대가 필요해서 부른 것 같진 않군."
보통 우리는 TV토크쑈 같은 곳에서 놀림거리로 초대되거나 취재되는 일이 많았다.
우리를 조롱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고 동시에 보수적 사람들의 유대감을 쌓
으려는 특이한 심리때문이였는데, 어느 싸구려 타블로이드 지에선 자신들이 적어도
우리보다 공신력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동정녀
임신에 대한 나의 견해가 알려진 직후의 일이였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마사리아 삼각대가 뭔지 아시오?"
그 이름을 딴 연구소에서 일하는 내가 그걸모를리가 없었다.
"우리에게 삼각대란 아틀라이트 대륙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대륙을 탈출 때 사용했다는
물건이죠."
"그렇소. 아틀라이트 대륙의 일부가 갑작스레 가라앉았을 때 삼각대에 올라탄 사람들은
살아남았다고 하지. 상상해 볼 수 있겠소? 땅은 요동치고 내려앉더니 해일처럼 바닷물이
넘쳐오지. 그런 상황에선 거대한 방주를 만든다 해도 살아남을 수 없소. 그런데도 아틀
라이트 인들은 그 삼각대에 타고 살아 남았소. 그럼 도대체 이 삼각대란 무엇일 것 같소?"
의아한 일이였다. 삼각대라는 것은 보통 신이 내린 구원의 손길로써 무언가 상징적
인 의미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장군이나 되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 전혀 '신'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특히 루빌에겐 질문보다 더 이상스럽게 여겨
졌던 것 같다.
"글쎄요... 장군님같은 분이 언제부터 과학적 시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그것은 장군 입장에선 대단히 무례한 반응이였다. 대답 대신 자신의 신앙이 얕다는 투의
말을 들었으니. 그러나 장군은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화내지 않았다. 도리어 진지
하지만 차분한 말투로 되물었다.
"그래, 대답은 어떻소? 대답할 수 있는 거요, 아니면 없는거요."
극도로 차분한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에.. 그것은 저희도 아직 이렇다할 가설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루빌도 조용히 대답했다. 대답을 듣고 나서 진지하게 우리를 향해있던 장군은 말없이
정면으로 돌아 앉았다.
"그렇군.. 모르는거군."
루빌과 나는 여러가지 감정과 의문이 담긴 시선을 주고받았다.
-----------------------------------------------------------------------
짧게 매일 올리겠습니다. 일주일에서 10일 내에 연재를 완료했으면 좋겠군요.
단편입니다.
것이 나의 믿음이다. 세상엔 두가지 종류의 것들뿐, 그렇게 밝혀진
것과 앞으로 밝혀내야 할 것.
-카리스 C. 고고학자-
"여러분, '마카우웨'가 뭔지 아십니까?"
고고학자로써 나의 이론을 설파할 기회가 오자 나는 학생들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예를 들었다.
"예, 알아요. 가스식 가로등이잖아요"
그 외에도 몇몇 학생이 아는척을 하고나자 나는 말을 이었다.
"예, 잘 알고 있군요. 이 '마카우웨'란 지금은 가스식 가로등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원래는 15세기 잉글린드에서 처음 가로등이 설치되었을 때 잉글린드 정부에 가로등
을 납품하던 폼웰사가 사용하던 상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나에게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은 대부분 내가 여기서 어떤 말을 꺼내려 할지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는듯 했다.
"원래 마카우웨는 신화속에 등장하는, 밝은 빛으로 사마시안 지역 끝까지 밤을
밝혀 여행자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지상에 설치된 일종의 등대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 정리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그려진 삽화에서는 등대라는 표
현에 얽메인 나머지 강력한 빛을 뿜는 고층건물 크기의 거대한 등대처럼 묘사했
고, 그 뒤로 보통 그렇게들 인식하고 있죠. 폼웰사가 사용하는 트레이드마크도
그것을 도안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원전으로 여겨지는 북 에롭 지역의 설화에
서는 어디에도 등대가 하나뿐이였다는 언급은 없었죠."
신비한 전설과 설화의 비밀을 밝힌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리고 그
런 학생들의 호기심과 관심어린 시선을 받는 것은 강의자 입장에선 보람있는 일이였
다.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이 서쪽해안의 작은 대학에서 일일강의를 맡게 된 것이
썩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신화속의 마카우웨가 우리 시대의 마카우웨와 다르지 않다
고 생각합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카우웨는 실제로도 가스식 가로등이였을거라
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강의실 입구의 노크소리에 나의 강의는 잠시 중단되었다.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나에게 기다리던 소식을 귀뜸해주었다.
'....'
나가 봐야겠군. 친구가 부르는 모양이다. 그것은 내가 대륙 동부에 위치한 마사리아
고대문명 연구소에서 이 대륙의 서쪽 해안으로 오게한 '진짜 용건'에 관한 것이였다.
아무래도 슬슬 강의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 온것 같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보수적
관점에서의 사학강의가 끝나고 찾아온 한창 재미있는 대목이였지만 나에겐 더 재미
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세상에 아직 신화나 미신같은 신비하고 아직 과학으로써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불가사의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불가사의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무지에 상상상력과 감수성이 더해진 결과이죠. 이런 낭만
이 사라지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것은 등불에 어둠이 밝혀지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
각합니다."
말 재간은 없는 나였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멘트였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질문 허락했을적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
"아틀라이트 대륙이 가라앉을때 하늘 넘어로 이주해간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들은 안티프라이즈호에 타고 있다니까."
안티프라이즈란 최근 유행하는 스타트럭이라는 진보적 SF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우주선의
이름이였고 질문을 한 옆에 학생이 한 이 대답은 강의실을 일순간에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카리스 교수님, 교수님은 성당에 갈 때 직접 자위를 하신 생리대를 쥐고 기도한다는게
정말입니까?"
이어서 야유처럼 던져진 이 질문은 마찬가지로 웃음을 불러왔지만 아까의 웃음보단 악
의가 섞여있었다.
이것은 성경에 실린 내용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했던 나의 행동 때문이였다.
신비주의와 종교적 사고방식이 깊이 뿌리내린 이 사회에서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나의 시도는 반발을 사서 다른 이론들까지 함께 싸잡혀 이런 악의 섞인 멸시나 비난을 당
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웃고 있다가 조금 조용해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외에 질문이 있으면 제가 있는 동안 찾아오던지 마사리아 연구소로 팩스나 우편 부탁
합니다. 종교와 관련된 질문은 빼고 말입니다. 아마 신학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듣고 싶
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답변은 되도록 성실히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
습니다."
기러기가 떠있는 인근 해안으로부터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카리스, 잘왔어."
곳곳이 파헤쳐진 언덕의 발굴현장에서 나를 맞이한 흰 가운의 사내는 대학시절부터 친구
이자 같이 마사리아 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원였다.
"그래, 루빌. 그런데 어느거지?"
루빌은 말없이 손으로 가리켰다.
사각형으로 파여진 발굴현장에서 모습을 들어낸 것은 새우잠을 자듯 몸을 움크린채 금속
으로 된 작은 삽을 쥐고 있는 사람의 유골이였다.
"상태가 양호한건 덮혀있던 안산암 덕분인가보군. 감사해야겠어."
이번 발굴은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엊그제만해도 덮혀있던 안산암들 때문에 우리 발굴팀은 발굴이 크게 지연되리라는 걱정
을 했었지만 그 문제는 최신 발파공법 덕분에 의외로 빨리 해결되었다. 이제는 안산암이
덥어준 덕분에 6000년짜리 유골이 저렇게 잘 보존되어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세대엔 격렬한 지각활동으로 고대문명이 종말을 고하던 시기여서 온전한 유골
은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유골이 쥐고있던 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삽도 티태니움 같군. 딱 보면 알 수 있지. 고대문명에서 강철보다 강하면서 가벼운 황
금 물건이란 티태니움제를 말했던게 분명해. 이번 발굴도 그렇고 고대인들의 물건은 티태
니움이 자주 보이는군."
"티태니움 맞아. 어쩌면 그 휘황찬란했다는 고대문명도 실은 지금 우리의 문명수준이였을
지도 모르겠어. 티태니움은 이제 우리도 많이 쓰는 금속이잖아."
루빌은 얼마전 나의 생일 선물로 그동안 쓰던 낡아빠진 탄소강으로 만든 삽을 대신하도록
티태니움제 삽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자루까지 금속으로 된 삽이였는데도 별로 무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요즘은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어보였다.
"이것 처럼 말이야."
나는 삽의 손잡이에 미끌어지지 않도록 고무 테잎을 감아두고 종이 테이프로 이름과 연
락처를 잘 보이게 써서 자루에 붙여둔 상태였다. 내가 꺼낸 삽을 보더니 루빌이 말했다.
"확실히 새겨져있는 이름보다는 종이태이프에 써놓는 이름이 눈에 잘띄겠지."
"무슨 소리야. 내 이름같은 것은 새겨져 있지 않던데?"
"그럴리가? 주문할적에 자네 이름을 찍어놓도록 주문했었는데..."
"혹시 KST이라고 얇게 찍힌이거?"
"아니, 그건 그 삽을 만든 메이커야. 이상하군. 선명하고 깊게 자네 이름을 새겨달라고
했었는데..."
"그럼 주문받은 사람이 잊어버렸나보지. 괜찮아. 삽은 잘 쓰고 있어."
"그렇다니 잘됐군. 우리처럼 땅파먹고 사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튼튼한 삽만큼 좋은
건 없지."
루빌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우린 고고학자니까. 그럼 이사람은 뭐하던 사람일까?"
나는 내 삽으로 유골을 가르키며 물었다.
"혹시 모르지. 우리같은 고고학자일지도. 저런 작은 삽을 쓰는 직업은 많지 않거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한번 물어본 것이였다.
"있잖아, 루빌. 만약 이 사람이 고고학자였다면 말이야... 자신들의 문명이 멸망하는 역사
적인 순간을 두눈으로 직접 봤을텐데 그 심정은 어땠을것 같아?"
"별로 감격스러웠을 것 같지는 않은걸? 고고학이란게 몇천년 넘어에나 있는 남의 이야기를
캐내니 재미가 있지만 직접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별로 재미있었을 것 같지가 않거든. 하지
지만 그나마 직접 겪어보았어야 좌절을 하던지 말던지 하지. 이 사람은 용암이 흘러내리기
몇미터 아래에 뭍혀있었어. 아마 멸망의 날이 되기 전에 닥쳐온 무법과 혼란 속에서 봉변이
라도 당한게...."
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 였다. 리터 진도로 3도 가량 되는 약진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사람들에게 큰 불안감을 느끼게하기엔 충분했다. 지각이론을 통
하여 어느정도 해명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초자연적인 징조로여겨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특히...
"이런 젠장... 아직 보존처리도 못했는데..."
루빌은 투덜거렸다. 고고학자의 입장에서는 지진이 다른 사람보다 달갑지 못하다.
"요즘 지진 때문에 유물들이 한 100년분은 상했을거야."
2분쯤 지나고 지진이 멈추자 루빌이 투덜거리길 계속했다.
"요즘 지각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잖아. 원래 지구는 한 450년을 주기로 지각활동이 활발
해져 왔다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발굴현장을 연구소로 돌아가기 전에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다행이군."
"그러게. 말이야. 남은 발굴작업은 셀미나 교수에게 맡기면 될거야. 추가로 알아내는 게
있으면 연구소로 보내준다더군. 걱정 말고 가서 기다리자구."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동부해안가에 위치한 마사리아 연구소에 본소에 도착해
보니 뜻 밖의 인물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소. 닥터..."
"루빌입니다."
"그럼 이분이 닥터 카리스씨겠군."
자신을 바젤하임 장군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대머리 사내는 우리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비행기 여행으로 피곤하다는 루빌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그는 리무진에 우릴 태워
국방연구소라는 곳으로 초대했다.
"두분 다 고대문명에 대해 정통하다고 들었소."
"정통은요, 헛소리라면 정통이죠."
루빌은 그 특유의 빈정됨으로 겸손인지 비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꾸를 했다. 장군은 그
런 루빌의 대꾸에 조용히 웃는가 싶더니 순간 태도를 바꾸어 매몰차게 쏘아붙여 말했다.
"나는 헛소리를 듣기 위해 내 차에 신도 모르는 무뢰배들을 태운게 아니오....!"
머쓱해진 루빌은 내 귀에 소근거렸다.
"광대가 필요해서 부른 것 같진 않군."
보통 우리는 TV토크쑈 같은 곳에서 놀림거리로 초대되거나 취재되는 일이 많았다.
우리를 조롱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고 동시에 보수적 사람들의 유대감을 쌓
으려는 특이한 심리때문이였는데, 어느 싸구려 타블로이드 지에선 자신들이 적어도
우리보다 공신력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동정녀
임신에 대한 나의 견해가 알려진 직후의 일이였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마사리아 삼각대가 뭔지 아시오?"
그 이름을 딴 연구소에서 일하는 내가 그걸모를리가 없었다.
"우리에게 삼각대란 아틀라이트 대륙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대륙을 탈출 때 사용했다는
물건이죠."
"그렇소. 아틀라이트 대륙의 일부가 갑작스레 가라앉았을 때 삼각대에 올라탄 사람들은
살아남았다고 하지. 상상해 볼 수 있겠소? 땅은 요동치고 내려앉더니 해일처럼 바닷물이
넘쳐오지. 그런 상황에선 거대한 방주를 만든다 해도 살아남을 수 없소. 그런데도 아틀
라이트 인들은 그 삼각대에 타고 살아 남았소. 그럼 도대체 이 삼각대란 무엇일 것 같소?"
의아한 일이였다. 삼각대라는 것은 보통 신이 내린 구원의 손길로써 무언가 상징적
인 의미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장군이나 되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 전혀 '신'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특히 루빌에겐 질문보다 더 이상스럽게 여겨
졌던 것 같다.
"글쎄요... 장군님같은 분이 언제부터 과학적 시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그것은 장군 입장에선 대단히 무례한 반응이였다. 대답 대신 자신의 신앙이 얕다는 투의
말을 들었으니. 그러나 장군은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화내지 않았다. 도리어 진지
하지만 차분한 말투로 되물었다.
"그래, 대답은 어떻소? 대답할 수 있는 거요, 아니면 없는거요."
극도로 차분한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에.. 그것은 저희도 아직 이렇다할 가설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루빌도 조용히 대답했다. 대답을 듣고 나서 진지하게 우리를 향해있던 장군은 말없이
정면으로 돌아 앉았다.
"그렇군.. 모르는거군."
루빌과 나는 여러가지 감정과 의문이 담긴 시선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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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매일 올리겠습니다. 일주일에서 10일 내에 연재를 완료했으면 좋겠군요.
단편입니다.
나란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지만 글쎄..
죽지 않았다면 어딘가엔 있겠지만 이제 여기엔 없을 것 같군.
2008.03.21 16:03:14 (*.57.209.214)
...그나저나 이것도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만, 택티컬 셀렉션은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
전장의 휴일은 대체 언제 연재되는 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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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휴일은 대체 언제 연재되는 겁...
2008.03.21 16:03:14 (*.145.119.157)
음... 저도 지금 연재하고 싶은건 전장의 휴일입니다.
요즘들어 몇몇 에피소드가 떠오르고 있고, 예전에 죽어버렸던 시나리오 관련 기억들이 약간씩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기억이란게 마지막으로 번쩍하고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죠. 하지만 블리자드측에서 다음 줄거리의 설정을 공해하지 않아서 저도 다음 줄거리를 도저히 써나갈 수가 없습니다. 다음 연재분에서는 슬슬 주적이 등장하게 되는데 블리자드측에서 여운만 남겨두었던 설정을 확실히 해주지 않으면 상상에 의존해 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세계관을 사용한 이상 거기에 충실해야 의미가 있다 싶군요.
요즘은 길거리를 지나가면서도 전장의 휴일에 투입될 예정인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쿡쿡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은 요원하군요.
일단 이것을 완성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데, 이게 끝나면 곧바로 택티컬 셀렉션의 다음 화에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뭐, 어차피 날림으로 쓰고 있는 것, 써 갈기면 된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물건이지만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들어 몇몇 에피소드가 떠오르고 있고, 예전에 죽어버렸던 시나리오 관련 기억들이 약간씩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기억이란게 마지막으로 번쩍하고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죠. 하지만 블리자드측에서 다음 줄거리의 설정을 공해하지 않아서 저도 다음 줄거리를 도저히 써나갈 수가 없습니다. 다음 연재분에서는 슬슬 주적이 등장하게 되는데 블리자드측에서 여운만 남겨두었던 설정을 확실히 해주지 않으면 상상에 의존해 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세계관을 사용한 이상 거기에 충실해야 의미가 있다 싶군요.
요즘은 길거리를 지나가면서도 전장의 휴일에 투입될 예정인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쿡쿡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은 요원하군요.
일단 이것을 완성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데, 이게 끝나면 곧바로 택티컬 셀렉션의 다음 화에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뭐, 어차피 날림으로 쓰고 있는 것, 써 갈기면 된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물건이지만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03.21 16:03:14 (*.78.172.84)
흑... 블리자드측에서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을 꺼낼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그냥 오리지널 스토리라인 그대로 나아가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나중에 혹여나 블리자드가 뭔가를 하나 꺼내면, 지금까지 쓴 것은 외전으로 어느정도 분기점을 부여해서 또 다른 스토리 라인을 연재하셔도 되고요..
..제 욕심일까요.
..제 욕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