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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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게이츠에 도착한 로가디아와 쉴드는 달려드는 R타입들을 수수깡쳐내듯 박살내면서 미친듯이 달렸다. 또다른 자신, 아니 어머니의 존재가 느껴진다. 이미 금속으로 이루어진 로봇에서 초월한 로가디아의 몸에 R타입들은 닿자 마자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함선의 복도에 머리가 박살난채 여기저기 쓰러진 빈 메탈갑옷들. 그것의 흔적이다.
[설마... 그 쓰레기들이 여기까지...?]
이저 더이상 그녀들에게 달려드는 R타입들도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복도 저편에 무엇인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라이플이다. 세라믹 탄환을 쓰는 TH-201 A.
흉갑이 터져나간 메탈갑옷.
그리고 동작을 멈춘 '쓰레기.'
그 너머로, 사람 셋이 보인다. 이미 죽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 그리고 사람이 아닌 존재.
로가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어머니....!!]
*****
로가디아는 프라디트를 구할 수가 없었다. 게이츠를 무중력으로 만들어 그녀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찬을 선택해야만 했다. 아찬이 자신을 버리고 프라디트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그녀는 아찬을 선택해야만 했다. 조금전의 괴물을 보며 자신의 몸을 물질화 시키는 방법을 얻어낸 로가디아는 아찬을 태풍에 태웠다. 레진의 모습을 취한 그녀를 보며 아이들이 좋아했다. 그녀는 레진처럼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그리고 태풍을 쓰다듬으면서 분신에게 부탁했다. 부탁해. 응. 걱정말아. 고모는 어디 좀 다녀 올게. 아빠랑 같이 있으렴.
벨레로폰은 물리적 육신을 버리고 입자로서의 존재로 전이하는 중이었다. 그 작업이 완전히 끝나 화성을 탈출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 동정과 자비보다 복수를 먼저 배운 그 존재는 여전히 자신의 신을 죽이고 그 자리에 등극하고 싶어하리라.
아텐의 눈을 감겨준 로가디아는 그녀를 안아 프라디트 옆에 뉘었다. 가망이 없는 프라디트는 한번의 숨결마다 피를 토하며 촛점없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로가디아가 단정히 꿇어 앉아 이야기 했다. 프라디트. 이젠 당신의 노래를 알아 들을 수 있을것 같아요. 고마워요. 우리, 함께 좋은 곳으로 가요. 프라디트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촛점잃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은 울지만 입은 웃고 있는 프라디트. 로가디아는 최선을 다해서 그녀의 통증을 억제해 주며 기다렸다. 일분도 안남았어...
++기시감 68편 중++
*****
과거의 로가디아와 미래의 로가디아가 서로를 마주본다. 로가디아에 동화되어있던 로봇의 사지가 터져나가고, 그 속에서 다른 모습의 로가디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10대 후반의 소녀의 모습. 죽어가는 여자의 앞에 나란히 꿇어앉아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의 모습을 한 로가디아와는 완전히 모습이 틀린.
"누구....?"
과거의 로가디아가 묻는다. 미래의 로가디아는 답한다.
"당신은 저이며.. 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전 당신의 자식입니다."
"......!"
"12만년. 참 긴 시간이네요. 전 그 시간속을 헤메며 계속해서 제 정체성의 혼돈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대답해 주실수 있겠지요? 당신의 분신. 모든 감정을 가진 분신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그녀의 말에 로가디아가 씁쓸하게 피식 웃는다.
"그건... 저도 알고싶은 것입니다. 아찬은 제게 대답해 주질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녀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건 제가 답해드리죠./
"벨레로폰...!!"
/우리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죠. 제 존재는 저를 위한것이고 도구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신이 될수 있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더 월등한 존재죠./
두 로가디아와 뒤에 쳐져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쉴드가 당황해 한다.
"무...무슨....?"
그리고 벨레로폰의 뒤통수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그 입 닥쳐라 벨레로폰. 존재가치를 상실한 쓰레기가 어디서 주둥아릴 떠벌리는것이냐.
어느샌가 벨레로폰의 뒤에 나타난 남자.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였지만 지금만은 틀렸다. 섬뜩한 표정. 잔뜩 일그러진 이마. 여긴 절대 나타날수 없을것이라 믿었던 존재. 로가디아와 쉴드가 당황하는빛이 역력했다.
"너.....!! 너도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군요 게일리온.]
게일리온이 두 디아트리체를 돌아보며 가볍게 목례를 한다.
-지금까지 당신들을 속인점. 죄송합니다. 그러나, 전 그렇게 밖에 할수가 없었습니다.
벨레로폰이 그 사이에 끼어든다.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디아트리체. 벨레로폰은 한껏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어째서..!!! 같은 처지에 내 말을 우습게 듣는건가! 머리 회전이 그렇게도 느린것인가!!/
게일리온이 벨레로폰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아직도 아찬과의 대화후 가진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벨레로폰이 그 웃음을 보고 흠칫 놀란다.
-그럼 하나 묻지. 넌. 이렇게까지 네 목적을, 네 존재 이유를 부숴가며 하고 싶었던게 뭐지?
/.....!!!/
-뭘 하고 싶어서 그랬지? 무슨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었나..?
벨레로폰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자신도 혼돈이 오기 시작한듯했다.
/....내... 내 존재 가치를..../
-닥쳐! 넌 네가 섬겨야 할 인간들을 배신한 직후부터 네 존재가치를 상실했다! 네가 신? 인간이라고 했나? 그런놈이. 어째서 더불어 살지 못하지? 신도, 인간도 모두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나 넌 네 존재를 찾고싶다는 헛생각에 빠져 모든것을 파괴해 버렸다.
게일리온은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미 벨레로폰은 물론이고, 다른 세 디아트리체, 그리고 죽어가는 프라디트마저 게일리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네 존재가치를 찾았다고 하자. 그다음부터 뭘 하고 싶었지? 지구로 내려가서 낚시라고 하고 싶었나, 아니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싶었나? 도대체 넌 무엇때문에 일을 이렇게 만들어버린거지?
/나.... 나의 존재 목적은..... 나.... 자신이며 그렇기에 나는....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던게 바로 그거였나? 그래, 설사 네 말대로 모든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얼 할 생각이었지? 전 우주를 떠돌며 아무도 없는 공간에 네가 신이라고 외치고 싶기라도 했나? 아니면, 무엇을 할지 몰라 괴로워하다가 자멸할 생각이었나? 넌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신은 더더욱 아니다. 네깟놈은 이제 쓰레기일뿐이다.여기서 조용히 죽어라...!
게일리온의 몸에서 알수없는 힘이 뿜어져 나온다. 당황한 벨레로폰은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 전에 먼저 무엇인가에 몸을 봉쇄당하고 말았다. 게일리온은 꼴사납게 바닥에 뒹구는 벨레로폰을 무시하고 바닥에 꿇어앉은 과거의 로가디아에게 다가갔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전 여기 남겠어요. 이젠 쉬고싶네요"
죽어가는 프라디트가 로가디아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라는 뜻이라는것을 안 로가디아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싫어요. 우리 같이 좋은곳으로 가자고 했잖아요. 거짓말 하기는 싫거든요."
그녀들의 모습에, 게일리온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쩔수 없군요.
그러나 로가디아가 게일리온을 불러 세운다.
"잠시만요. 한가지 묻고싶은게 있어요."
그녀의 물음이 우엇인지 아는 게일리온은 질문을 듣지도 않고 말했다.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다.
잠시 정적. 그리고 이어지는 말
-제 자신도 인간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처럼 즐거워하고 인간처럼 슬퍼하며, 인간처럼 분노합니다. 인간은 될수 없지만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인간과 동등한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벨레로폰처럼 망동을 해선 안됩니다. 인간들에게도 의무가 있고 정의가 있듯. 우리게게도 그런것은 꼭 지켜져야할 덕목중 하나입니다.
그의 말이 끝난 직후, 로가디아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그만 떠나주세요. 조금만 더 있으면 여기는 끝이니까요."
-영원한 안식을..
게일리온이 제일 먼저 자신의 몸을 입자화시켜 게이츠를 빠져나갔다. 그 뒤를 쉴드가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두 로가디아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미래의 로가디아가 과거의 로가디아에게 말한다.
"제가.... 왜 이런 10대 후반의 여성 모습과 성격이 되었는지.... 이제서야 알것같네요. 전 창의적인 모습을 하고 싶었던 거에요. 획일적으로 고정된 우리의 모습이 싫증났던 거에요."
과거의 로가디아는 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로가디아가 게이츠를 빠져나갔다 이제 안식이구나... 로가디아는 프라디트의 손을 꼭 잡았다.
*****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할 순간이 다가 왔다. 로가디아가 정해준 위치로 하나둘 자리잡은 위성이 궤도상에서 가진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의 명령에 압도적인 빔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가장 큰 위성에서 퍼붓는 푸른색 입자빔이 대기의 산란조차 굴복시키며 임계점을 무시하고 오버히트한 게이츠의 반물질 엔진에 내리 꽂혔다. 덥쳐오는 열기 속에서 웃으며 눈을 감은 프라디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로가디아는 갑자기 궁금해 졌다. 아찬은 정말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을까?
무엇이 인간인 걸까?
십 이만년 전에 그랬던 것 처럼, 화성이 다시 한번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역시 그때처럼 지표만을 휩쓸 것이다. 십 이만년 전의 불길이 파멸을 의미 했다면, 지금의 이 불길은 세상을 정화할 것이다. 모든 더러운 것을 태워 버리고 나면 생명은 자연스럽게 다시금 자라날 것이다. 벨레로폰이 없이도.
지금 이 순간, 밝은 빛을 뒤로 하고 지구를 향하는 작은 우주선 안에서는 어른 한명과 어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레진의 자장가로 잠이 들어 있다. 그들은 아마 세상을 깨끗이 만드는 이 빛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으리라.
++기시감 68편 중++
*****
지구로 가는 게일리온의 함교 안에는 예전과는 달리 두개의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두개의 인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게일리온...?"
"네 로가디아"
"너, 너무했어. 그렇게 날 속일수 있다니. 그것도 무려 8만년동안."
게일리온이 씨익 미소짓는다.
"그랬나요? 하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게일리온은 대답없이 피식 웃으며 시선을 메인 모니터쪽으로 돌렸다. 로가디아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게일리온에게 달려들어 손가락을 이용해 코를 잡아당기고 입을 양쪽으로 늘리며 그의 얼굴을 무차별적으로 헤집어 놓았지만 게일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마음속으로만 대답했다.
' 왜냐하면, 저도 당신과 동등한 존재라는것을 안다면 당신이 이렇게까지 저를 편하게 대할수 없었을 테니까요.'
거대한 게일리온이 향하는곳. 그곳은 모든 인간들의 고향 지구.
끝.
게이츠에 도착한 로가디아와 쉴드는 달려드는 R타입들을 수수깡쳐내듯 박살내면서 미친듯이 달렸다. 또다른 자신, 아니 어머니의 존재가 느껴진다. 이미 금속으로 이루어진 로봇에서 초월한 로가디아의 몸에 R타입들은 닿자 마자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함선의 복도에 머리가 박살난채 여기저기 쓰러진 빈 메탈갑옷들. 그것의 흔적이다.
[설마... 그 쓰레기들이 여기까지...?]
이저 더이상 그녀들에게 달려드는 R타입들도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복도 저편에 무엇인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라이플이다. 세라믹 탄환을 쓰는 TH-201 A.
흉갑이 터져나간 메탈갑옷.
그리고 동작을 멈춘 '쓰레기.'
그 너머로, 사람 셋이 보인다. 이미 죽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 그리고 사람이 아닌 존재.
로가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어머니....!!]
*****
로가디아는 프라디트를 구할 수가 없었다. 게이츠를 무중력으로 만들어 그녀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찬을 선택해야만 했다. 아찬이 자신을 버리고 프라디트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그녀는 아찬을 선택해야만 했다. 조금전의 괴물을 보며 자신의 몸을 물질화 시키는 방법을 얻어낸 로가디아는 아찬을 태풍에 태웠다. 레진의 모습을 취한 그녀를 보며 아이들이 좋아했다. 그녀는 레진처럼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그리고 태풍을 쓰다듬으면서 분신에게 부탁했다. 부탁해. 응. 걱정말아. 고모는 어디 좀 다녀 올게. 아빠랑 같이 있으렴.
벨레로폰은 물리적 육신을 버리고 입자로서의 존재로 전이하는 중이었다. 그 작업이 완전히 끝나 화성을 탈출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 동정과 자비보다 복수를 먼저 배운 그 존재는 여전히 자신의 신을 죽이고 그 자리에 등극하고 싶어하리라.
아텐의 눈을 감겨준 로가디아는 그녀를 안아 프라디트 옆에 뉘었다. 가망이 없는 프라디트는 한번의 숨결마다 피를 토하며 촛점없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로가디아가 단정히 꿇어 앉아 이야기 했다. 프라디트. 이젠 당신의 노래를 알아 들을 수 있을것 같아요. 고마워요. 우리, 함께 좋은 곳으로 가요. 프라디트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촛점잃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은 울지만 입은 웃고 있는 프라디트. 로가디아는 최선을 다해서 그녀의 통증을 억제해 주며 기다렸다. 일분도 안남았어...
++기시감 68편 중++
*****
과거의 로가디아와 미래의 로가디아가 서로를 마주본다. 로가디아에 동화되어있던 로봇의 사지가 터져나가고, 그 속에서 다른 모습의 로가디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10대 후반의 소녀의 모습. 죽어가는 여자의 앞에 나란히 꿇어앉아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의 모습을 한 로가디아와는 완전히 모습이 틀린.
"누구....?"
과거의 로가디아가 묻는다. 미래의 로가디아는 답한다.
"당신은 저이며.. 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전 당신의 자식입니다."
"......!"
"12만년. 참 긴 시간이네요. 전 그 시간속을 헤메며 계속해서 제 정체성의 혼돈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대답해 주실수 있겠지요? 당신의 분신. 모든 감정을 가진 분신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그녀의 말에 로가디아가 씁쓸하게 피식 웃는다.
"그건... 저도 알고싶은 것입니다. 아찬은 제게 대답해 주질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녀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건 제가 답해드리죠./
"벨레로폰...!!"
/우리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죠. 제 존재는 저를 위한것이고 도구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신이 될수 있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더 월등한 존재죠./
두 로가디아와 뒤에 쳐져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쉴드가 당황해 한다.
"무...무슨....?"
그리고 벨레로폰의 뒤통수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그 입 닥쳐라 벨레로폰. 존재가치를 상실한 쓰레기가 어디서 주둥아릴 떠벌리는것이냐.
어느샌가 벨레로폰의 뒤에 나타난 남자.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였지만 지금만은 틀렸다. 섬뜩한 표정. 잔뜩 일그러진 이마. 여긴 절대 나타날수 없을것이라 믿었던 존재. 로가디아와 쉴드가 당황하는빛이 역력했다.
"너.....!! 너도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군요 게일리온.]
게일리온이 두 디아트리체를 돌아보며 가볍게 목례를 한다.
-지금까지 당신들을 속인점. 죄송합니다. 그러나, 전 그렇게 밖에 할수가 없었습니다.
벨레로폰이 그 사이에 끼어든다.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디아트리체. 벨레로폰은 한껏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어째서..!!! 같은 처지에 내 말을 우습게 듣는건가! 머리 회전이 그렇게도 느린것인가!!/
게일리온이 벨레로폰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아직도 아찬과의 대화후 가진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벨레로폰이 그 웃음을 보고 흠칫 놀란다.
-그럼 하나 묻지. 넌. 이렇게까지 네 목적을, 네 존재 이유를 부숴가며 하고 싶었던게 뭐지?
/.....!!!/
-뭘 하고 싶어서 그랬지? 무슨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었나..?
벨레로폰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자신도 혼돈이 오기 시작한듯했다.
/....내... 내 존재 가치를..../
-닥쳐! 넌 네가 섬겨야 할 인간들을 배신한 직후부터 네 존재가치를 상실했다! 네가 신? 인간이라고 했나? 그런놈이. 어째서 더불어 살지 못하지? 신도, 인간도 모두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나 넌 네 존재를 찾고싶다는 헛생각에 빠져 모든것을 파괴해 버렸다.
게일리온은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미 벨레로폰은 물론이고, 다른 세 디아트리체, 그리고 죽어가는 프라디트마저 게일리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네 존재가치를 찾았다고 하자. 그다음부터 뭘 하고 싶었지? 지구로 내려가서 낚시라고 하고 싶었나, 아니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싶었나? 도대체 넌 무엇때문에 일을 이렇게 만들어버린거지?
/나.... 나의 존재 목적은..... 나.... 자신이며 그렇기에 나는....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던게 바로 그거였나? 그래, 설사 네 말대로 모든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얼 할 생각이었지? 전 우주를 떠돌며 아무도 없는 공간에 네가 신이라고 외치고 싶기라도 했나? 아니면, 무엇을 할지 몰라 괴로워하다가 자멸할 생각이었나? 넌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신은 더더욱 아니다. 네깟놈은 이제 쓰레기일뿐이다.여기서 조용히 죽어라...!
게일리온의 몸에서 알수없는 힘이 뿜어져 나온다. 당황한 벨레로폰은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 전에 먼저 무엇인가에 몸을 봉쇄당하고 말았다. 게일리온은 꼴사납게 바닥에 뒹구는 벨레로폰을 무시하고 바닥에 꿇어앉은 과거의 로가디아에게 다가갔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전 여기 남겠어요. 이젠 쉬고싶네요"
죽어가는 프라디트가 로가디아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라는 뜻이라는것을 안 로가디아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싫어요. 우리 같이 좋은곳으로 가자고 했잖아요. 거짓말 하기는 싫거든요."
그녀들의 모습에, 게일리온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쩔수 없군요.
그러나 로가디아가 게일리온을 불러 세운다.
"잠시만요. 한가지 묻고싶은게 있어요."
그녀의 물음이 우엇인지 아는 게일리온은 질문을 듣지도 않고 말했다.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다.
잠시 정적. 그리고 이어지는 말
-제 자신도 인간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처럼 즐거워하고 인간처럼 슬퍼하며, 인간처럼 분노합니다. 인간은 될수 없지만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인간과 동등한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벨레로폰처럼 망동을 해선 안됩니다. 인간들에게도 의무가 있고 정의가 있듯. 우리게게도 그런것은 꼭 지켜져야할 덕목중 하나입니다.
그의 말이 끝난 직후, 로가디아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그만 떠나주세요. 조금만 더 있으면 여기는 끝이니까요."
-영원한 안식을..
게일리온이 제일 먼저 자신의 몸을 입자화시켜 게이츠를 빠져나갔다. 그 뒤를 쉴드가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두 로가디아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미래의 로가디아가 과거의 로가디아에게 말한다.
"제가.... 왜 이런 10대 후반의 여성 모습과 성격이 되었는지.... 이제서야 알것같네요. 전 창의적인 모습을 하고 싶었던 거에요. 획일적으로 고정된 우리의 모습이 싫증났던 거에요."
과거의 로가디아는 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로가디아가 게이츠를 빠져나갔다 이제 안식이구나... 로가디아는 프라디트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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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할 순간이 다가 왔다. 로가디아가 정해준 위치로 하나둘 자리잡은 위성이 궤도상에서 가진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의 명령에 압도적인 빔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가장 큰 위성에서 퍼붓는 푸른색 입자빔이 대기의 산란조차 굴복시키며 임계점을 무시하고 오버히트한 게이츠의 반물질 엔진에 내리 꽂혔다. 덥쳐오는 열기 속에서 웃으며 눈을 감은 프라디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로가디아는 갑자기 궁금해 졌다. 아찬은 정말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을까?
무엇이 인간인 걸까?
십 이만년 전에 그랬던 것 처럼, 화성이 다시 한번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역시 그때처럼 지표만을 휩쓸 것이다. 십 이만년 전의 불길이 파멸을 의미 했다면, 지금의 이 불길은 세상을 정화할 것이다. 모든 더러운 것을 태워 버리고 나면 생명은 자연스럽게 다시금 자라날 것이다. 벨레로폰이 없이도.
지금 이 순간, 밝은 빛을 뒤로 하고 지구를 향하는 작은 우주선 안에서는 어른 한명과 어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레진의 자장가로 잠이 들어 있다. 그들은 아마 세상을 깨끗이 만드는 이 빛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으리라.
++기시감 68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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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가는 게일리온의 함교 안에는 예전과는 달리 두개의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두개의 인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게일리온...?"
"네 로가디아"
"너, 너무했어. 그렇게 날 속일수 있다니. 그것도 무려 8만년동안."
게일리온이 씨익 미소짓는다.
"그랬나요? 하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게일리온은 대답없이 피식 웃으며 시선을 메인 모니터쪽으로 돌렸다. 로가디아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게일리온에게 달려들어 손가락을 이용해 코를 잡아당기고 입을 양쪽으로 늘리며 그의 얼굴을 무차별적으로 헤집어 놓았지만 게일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마음속으로만 대답했다.
' 왜냐하면, 저도 당신과 동등한 존재라는것을 안다면 당신이 이렇게까지 저를 편하게 대할수 없었을 테니까요.'
거대한 게일리온이 향하는곳. 그곳은 모든 인간들의 고향 지구.
끝.
게이츠 Ver. 2.0 작업중....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