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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은 역시 정체불명(?)의 소녀가 거대한 악에 맞서 홀로 대항하는 이야기... <모모>입니다. '시간 은행'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패스트(Fast) 문화에 휩쓸려 도리어 삶의 여유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고찰을 제시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귀여운 소녀를 주역으로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TV에서 몇 차례 방송되곤 했지요.

  어떤 점에서 볼때 SF의 감각마저도 느끼게 만드는 짧은 동화같은 이 작품과는 달리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듬직한 규모를 갖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제목에 어울리는 부피를 가진?- <끝없는 이야기(Die Undendliche Geschichte = The Neverending Story 네버 엔딩 스토리)>입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국내에 소개된 몇 안 되는 작품의 하나로서, 역시 아동용 영화로(그것도 2부작으로) 완성된 작품이지만, 톨킨에게 있어 반지의 제왕이 그렇듯, 아이들이 읽기에는 부담이 되는 부피와 다소 난해한 내용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한편으로, 4년 이상의 구상에 2년의 집필을 거쳐 완성된 이 작품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필두로 한 수많은 판타지의 명작 중 하나로 손꼽기에 정말로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 그것은 형태가 없는 것에 개념과 이름을 부여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것을 낳을 수 있는 창조력... <끝없는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고 하겠지요.


  통통한 체격에 안경... 형편없는 약골에 낙제생... 한 마디로 전형적인 왕따 소년이었던 주인공. 공상에 빠져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 외에는 장점(?)을 찾을 수 없는 소년,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

  그러나, 그 소년이 아이들의 놀림을 피해 우연히 들어선 고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안에서 -몰래- 들고나온 것은 바로 <끝없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고풍스러운 책. 왜 그런지 모르게 아무도 없는 학교 창고에서 이 책을 펼쳐든 소년은, 곧이어 환상계라는 독특한 세계 속의 모험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로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위대한 여정을 떠나게 된 아트레유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자신과는 달리 용기 있고 씩씩한 소년의 모험담은 바스티안의 눈길을 끌게 되고, 우리들은 독자는 환상계 속의 아트레유의 모험담과 함께, 그 이야기를 읽으며 때로는 응원을 보내고, 때로는 슬퍼하는 바스티안을 바라보게 되지요.(동시에 아트레유 역시 누군가 자신에게 위험을 알리거나 하는 신비한 체험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이야기는 점차 하나로 합쳐져 나갑니다. 그리하여 아트레유가 세계를 구할 희망은 존재치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환상계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끝없는 이야기>의 지배자 어린 왕녀를 만나러 갔을 때, 사실은 바스티안 자신도 함께 왕녀를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단 하나, 환상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줄 구세주였고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단지, 왕녀에게 붙여줄 이름 뿐이었습니다. 결국 바스티안은 '어린 달님'이라는 이름을 외치게 되고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그것도 자신이 '소망'한 모습으로...

  어느새 그녀는 사라지고, 소년은 자신의 '소망'으로 만들어진 밤의 숲에서 살았으나 오래지 않아 그곳을 떠나 환상계를 여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세상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네 뜻하는 바를 행하라' 왕녀에게 받은 그녀의 상징에는 이러한 말이 새겨져 있었고, 소년은 그 말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모두 이루게 됩니다...


  현실 세계에선 왕따 대상인 소년이 독특한 체험을 통해 환상계라는 세계를 방문하게 되고, <브루스 올 마이티> 같은 전능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국내에서 유행하는 ‘이계 난입물’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끝없는 이야기> 속의 세계. 바로 환상계의 모든 길(가능성)은 소년의 소망 하나로 열려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얘기만 듣게 되면, 그야말로 무적의 먼치킨이고 투명 드래곤 이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강력한 적수가 있어도 주인공 소년의 상상 하나 만으로 그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등장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끝없는 이야기> 속에서 준비되어 있는 '네 뜻하는 바를 행하라'는 것은, 결코 먼치킨의 경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는... '진정한 의지를 행하는 것'이니까요.


  바스티안은 우연히 만난 용감한 대장을 위하여 강력한 적수인 용을 탄생시켜 주었습니다. 물론, 그를 위한 위대한 모험담을 함께... 그러나, 그 용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생각지 못하였지요.

  또한 도시의 전설 속에서 창조한, 영원히 눈물을 흘리는 존재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지만, 그로 인하여 찬란했던 도시의 영광이 사라지고 그들이 웃음 뿐인 천박한 존재로 변하리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지요.(결국 이로 인한 보답은 그 스스로가 받게 됩니다만...)

  그의 '소망'이 열어주는 길은, 사실 그의 기억을 희생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 자신에게 잃어나는 변화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고 말지요.

  자신을 돕고자하는 아트레유를 배신자로 생각하고 추적하여 도착한 '늙은 황제의 마을'. 한때 자신처럼 <끝없는 이야기>를 보았고 왕녀에게 이름을 정해주었으나 모든 것을 잃고 환상계를 벗어날 수 없게된 이들이 모여 있는 그 마을에서 바스티안은 잘못을 깨닫게 되지만 현실로 돌아가게 해 주는 '소망'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년은 어느새 자신의 이름조차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러 과정을 통하여 소년은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위하여... 그것은 어찌보면 길지 않은... 소년의 현실 속에선 하루 정도의 짧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끝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의 이야기는 막을 내렸지만(아니, 한 막을 내렸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낳고 다시금 또 다른 '끝없는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어떤 점에서 이 것은 속칭 '불쏘시개'가 넘쳐나는 현재의 국내 대중 문학계에 대해 준엄한 경고를 주는 듯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많은 작가들은 '상상력의 발로'라며 먼치킨 이야기들을 써 나가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은 그 것들을 읽는 독자들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 자신도 망쳐 버린다는 의미에서 말이지요.

  한 사람의 창작 가능성은 무한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그 자신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희생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체험한 이들이라면 마치 무한한 창작의 보고를 가진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끝없는 이야기> 속의 환상계 사람들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는 못하고 오직 기존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떠드는 것으로 그칠 테니까요.

  일본의 만화계, 특히 주간 만화계에서는 이른바 폭발적인 인기 속에 장기 연재를 마친 후 완전히 죽어버리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물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더 이상 작가로서 부활하지 못하고 자신의 작품을 재탕 삼탕 하며 버티곤 하지요.

  그것은 바로, '창작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에 빠져, 정말로 소중한 무언가를 모두 탕진해 버린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 그것도 세상과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건강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의 내면에 쌓아간 보고... 이를테면 소재의 광맥 속에서 다시금 오랜 시간을 걸쳐 가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앞서 이야기한 일본의 주간 만화가들은 물론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행복의 충분조건일까요?(개인적으론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조건이라곤 생각합니다.)
  창작의 광맥이 고갈되어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면, 그것은 결코 행복이라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나 '진정한 이야기꾼'에게 있어선, 그 어떤 것도 '무한한 창작의 광맥'이상으로 매력적인 것은 없으니까요.


  <끝없는 이야기> 속의 고서점 주인 코레안더씨는 책을 잃어버렸다며 사과하러 온 바스티안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바스티안, 너처럼 환상계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양쪽 세계를 건강하게 만든단다."

  그의 말대로 '양쪽 세계(창작과 현실의 세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에 보다 노력을 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을 남발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의 광맥을 더욱 키워나가기 위하여...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 자신 만의 <끝없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양쪽 세계를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신) 미카엘 엔데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생각보다 많이 나왔습니다. <모모>나 <끝없는 이야기> 외에도 <마법의 술>, <마법의 설탕 두조각>, <냄비와 국자 전쟁>,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등... 지금 검색해 보니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책이 꽤 많군요. 하지만, 이들 대부분의 작품이 '판타지'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모모>나 <끝없는 이야기>... 특히 <끝없는 이야기>는 이들 작품과 일획을 긋는 그런 느낌의 작품으로, 앞서 말했듯 '판타지 문학의 명작'으로 감히 손꼽을만하지요. 바로 아래에 르혼님께서 "반지의 제왕보다 판타지의 정수에 가깝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말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지 문학이란, '모험에 대한 동경과 낭만'이 담긴 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멀게는 '기사들의 모험담'(로망스 문학)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로서, 모험을 떠나 역경을 거치며 성장하고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물론, <반지의 제왕>도 그런 점에서는 판타지의 정수를 이룬 작품이라고 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험'보다는 '싸움'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지나치게 거창하고 한편으로 무언가 조금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 <반지의 제왕>만을 보고 판타지를 쓰다보니 매번 전쟁 이야기만 나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끝없는 이야기>에는 전쟁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중심은 거기에 있지 않지요. '모험에 대한 동경과 낭만, 그리고 귀환'... 판타지의 정수라고 할만한 그런 것이 이 작품에는 녹아들어 있습니다.

추 신) <끝없는 이야기>는 1979년에 출간되었고, 1996년에 2권으로 재출간되었지요.(그 후에도 몇번 여러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기에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은 1981년의 제3판인데, 자그마치 430페이지에 3800원...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때는 두께도 두껍고 척봐도 글씨가 작아서 난해해 보이는 이런 책이 3판 이상 나갔다는 이야기니... 참 대단하군요. (지금도 꽤 높은 판매 지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81년이면 초등학교 1학년인데, 내가 이 책을 그때 샀다고? 분명 4학년 때쯤 읽은 기억은 나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뭔 책을 읽었는지는 전혀...^^ (여름인가 그림 동화책 100권을 밤새도록 읽은 기억은 있군요. 초등학교 1학년이 책보느라 밤을 샜다니 그야말로 책 벌레라는 걸 스스로도 절실히 느끼겠네요. ^^ 그래도, 저는 책은 제가 사는 편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제가 산게 맞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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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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