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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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란이 벌어진 지도 대략 1년이 지났습니다.
임대차 3법 개정이후, 딱 1년 동안 오른 집값이 그 이전의 5년 동안 오른 집값과 맞먹거나 더 높습니다.
서울의 비인기 주거지역이였던 강북의 상계동 지역마저 천정을 뚫을 정도로 오르고 있고,
2000 년 시세가 2015년까지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되었던 용인 수지 지역마저 2배로 올랐습니다.
솔직히 부동산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터라,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기도 합니다.
2000년 같이 공부하는 선배 세 분이 쓰고 있던 금융공학 주식투자 논문의 데이터 작업을 도우면서,
금융공학 기반의 투자분석과 최적의 투자 방안에 대하여 나름대로 꽤 깊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8년 무렵에는 스스로 금융공학 논문을 쓰기도 했고, 2009년 해당 논문이 출간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2008년과 2009년에는 H대와 D대에서 투자분석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모의투자를 하도록 가이드하고, 모의투자 결과를 실습 점수로 학점에 직접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제 자신도 모의투자를 학생들과 같이 진행한 것은 나름 재미이자 경험이었습니다.
금융공학 아무리 공부 많이 하고, 투자론 아무리 많이 강의하여도, 모의투자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가상으로 2억원으로 시작하였는데, 모의투자 마무리할 무렵 5천원 밖에 남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재능이 없는 것인지, 학문적 이론을 아무리 무장해도 소용 없는게 주식인 것인지,
하여간 10년 가까지 아카데믹한 이론을 공부하여도 주식투자는 해 보았자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주식 관련 투자는 영원히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그 이전에도 주식은 안하고 있었지만서도...
이후 저는 돌고 돌아 대형 회계법인의 컨설팅 사업부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주식투자가 법으로 금지된 회사에 몸 담고 있기 때문에 주식을 할래야 할 수도 없게 되어습니다.
제 한몸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주식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 부모님도 와이프도 동생도 모두 포함됩니다.
주식뿐만아니라 자본시장의 동산 투자 거의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 채권도, 투자형 금융상품도 모두 금지입니다.
심지어 투자형 퇴직금 통장마저도 금지인 종목이 너무 많아서, 그냥 법을 따르면서 자본시장 동산 투자를 포기했습니다.
아직 블록체인 투자는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것 조차도 법으로 곧 막힐 것으로 예상되어서 그냥 안하고 있습니다.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이상, 회사를 떠날 때까지는 영원히 주식이든 채권이든 동산 투자가 불가능한 인생입니다.
결국 선택지는 부동산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결혼할 때 들어간 전세금은 직장생활 6년 동안 하면서 착실하게 모아 놓은 돈으로 감당 가능하였습니다.
경기도 외곽 지역에 준공한지 20년 되어 바퀴벌레 많이 나오는 손바닥만한 18평 아파트였지만,
빚 없이 전세 들어갔고 결혼 후 2년 만에 살던 집에서 층수만 이사하여 같은 아파트를 구입하였습니다.
워낙 집 값이 쌌기 때문에, 맞벌이로 각각 년간 2천씩 도합 1년에 4천씩 모아서 딱 2년 만애 8천 모아서 집을 샀습니다 .
융자 없이 - 빚 없이 첫 집을 구입할 수 있었고, 고액 연봉도 아닌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노력하니 가능했습니다.
이후 4년 후 1억 2천만원을 모았습니다 - 결혼해서 애들 낳아 가며서 자가용도 사지 않았고, 악착같이 모으며 살았죠.
아이도 둘이나 태어났고, 맞벌이로 아무리 노력해도 1년에 3천 이상은 모을 수가 없어서 딱 그 만큼만 돈을 모았습니다.
그 돈 가지고 수도권에 집을 알아보러 다녔고, 용인 수지 지역에 가 보니 생각보다 집이 너무 싸서 깜짝 놀랐습니다.
평당 63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 5년 전에 비해 집값은 오히려 2/3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후 2013년까지 집값이 무척 낮은 곳들이 많았는데, 딱 그런 집이었습니다.
3~4년 후 신분당선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것을 믿고 융자를 엄청 얻어서 두 채를 한꺼번에 샀습니다.
어차피 아이들 돌봐주시는 친척이 같이 옆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어서, 집 두 채가 필요했기 때문에 질렀습니다.
그리고 2년 지나 어느 정도 돈을 모아서 융자를 줄여 가면서 이사를 했습니다 - 살던 아파트는 처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꺼번에 장만한 옆의 아파트에는 와이프의 친언니를 이사시켰습니다 - 유아교육 전공으로 아이들을 잘 돌봐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20년 6~7월 극심한 치통으로 일산 지역의 사촌형님이 운영하는 치과에 가게 되었는데,
주말에 멀리 다니는 겸 하여 파주에 계신 장인어른께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IMF 시절 사업에 실패하시고 집도 사업체도 다 날아간 후 20 년째 재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로,
오래된 낡은 시골집에 은거하시면서 농사를 짓고 계신 중이었고, 어렵게 살고 계셨습니다.
와이프는 진작부터 친정부모님이 다 쓰러져가는 집에 계신데 그 자식들 둘이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것이 불편하다 했고,
제게 친청부모님 집을 해결해달라고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 아파트 2채 한꺼번에 지른 후 매년 5천 이상 빚 갚는데 돈이 다 들어가고 있는 것 뻔히 알고 있으면서, 무슨 수로...
하여간 와이프가 방방 뜨니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파주에서 가장 싸고 저평가된 똥값 아파트를 열심히 찾아다녔고,
평당 710만원 수준의 아파트를 발견했습니다 - 투자 가치가 아예 없는 아파트를 찾는 게 목적이었으니 그 가격이었습니다.
심지어 처음 준공할 때 분양가보다도 3천만원이나 떨어진 가격이었고, 집 주인은 10년 동안 오른적이 없다고 하면서,
전세라도 주려 했는데 심지어 전세 들어오려는 사람조차 없다고 빨리 계약하자고 성화였습니다.
최악의 입지, 하지만 번듯한 아파트, 그래서 집에 살기 좋고 모양새 좋고 나이드신 분들을 모시기 좋은 곳을 찾고 있었기에,
나름 주어진 여건에서 최적이라고 생각하여 구입했습니다 - 가진 돈 탈탈 털어서 겨우 계약금 장만하였고,
융자금이 또 2억이나 늘어나 소득의 70%를 빚 변제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가정은 평화를 찾았습니다.
어쩌다보니 3주택자가 되었고, 한 채는 와이프 친언니가 살고 있고, 또 다른 한채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살고 계십니다.
전세금 받고 살게 해 드린 것이 아니므로 사실상 막대한 융자금을 우리 가정이 혼자 짊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소득의 70%를 빚 변제에 쓰면서 와이프 친지들에게 집이라는 복지 서비스를 무상 제공 중에 있는 셈입니다.
이후 임대차3법이 개정되었습니다 - 제가 파주 장인어른 모실 집 계약하고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절대로 오르지 않을 것으로 만인이 인정하던 최악의 입지 조건을 가진 파주 아파트가 1억 4천이 올랐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 심지어 전세조차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던 동네인데, 전세금도 1억이 올라버리더군요.
제가 살고 있는 집 - 평당 630만으로 너무 싸서 두 채를 잡았던 용인 집은 처음 샀을 때의 2.5배 금액이 되었습니다.
융자를 수억이나 지고 집 장만해서 와이프 가족들을 살게 하는 게 맞는가 - 공처가에 데릴사위라고 친가에 욕먹고 있는데,
그 집이 너무 많이 올라서 이제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집 값 많이 올라서 행복할 것 같지만, 실은 속으로는 타들어갑니다.
친척들에게 주거 복지를 제공중에 있어서, 아무것도 받은 것 없이 막대한 융자금 변제에 월급의 3/2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왕년 코미디 프로 중에, 월급 통장과 썸을 타고 있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 월급날 잠깐 돈이 들어왔다가 자동이체로 사라진다고,
내 것 같은데 내 것이 아니고, 내 손에 닿을 듯 하지만 닿지 않는다고 하여 월급 통장과 썸을 탄다는 표현이 기가 막혔습니다.
제가 월급 통장과 썸을 타고 있습니다 - 급여 들어오면 2/3는 융자금 변제로 사라지므로, 제 것이 아닙니다.
와이프와 맞벌이 중이지만, 와이프 급여는 애들 돌봐주시는 이모님께 드리는 비용과 처가 생활비 보태드리면 2/3가 사라집니다.
결국 남은 돈으로 빠듯하게 살아갑니다 - 일반적인 외벌이 한 명 급여보다도 적은 돈으로, 겨우 수지를 맞춰 갑니다.
결혼 후 자가용 없이 계속 살고 있고, 10 년 동안 에어컨도 없이 버티다가 여름에 폭염이 계속되어 2년 전 에어컨은 샀습니다.
제 인생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의 삶인 것이고,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삶이 달린 것이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투자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때문에 저평가된 지역에 싼 아파트만 찾아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우스푸어가 된 것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 차 안타고, 안 입고, 안쓰고 살려 했습니다.
와이프 친정부모님과 친정언니의 집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가정의 평화도 얻었으니, 지불할만한 대가였습니다.
하지만 임대차 3법 통과 이후, 아예 집을 사지 않았던 동료 직장인들은 "벼락 거지가 되었다"고 한탄 중입니다.
전세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 심지어 1~2억 오른 것은 기본이어서, 아예 이야기 거리조차 되지 못할 정도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은 2013년~2017년 전세금이 2억원으로 고정되어 있었던 전형적인 저평가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던 집의 전세금이 조금씩 오르더니 2018년 3억원이 되었고, 2020년 4억원이 되더니, 2021년 6억원입니다.
2013년 집을 사들일 때 매매가격이 3억 2천만원 수준이었고 전세 금액이 2억원 수준이었는데,
그 집이 지금은 매매가 8억 5천만원 수준에 전세 금액이 6억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나마 수도권에 신분당선 지하철로 강남역까지 30~40분에 닿는 곳이지만, 워작 저평가된 동네여서 이 가격입니다)
하우스푸어의 삶을 살고 있지만, 임대차3법 통과 이후 벼락 거지가 되어버린 동료들에 비하면 훨씬 낫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 타이밍에 그렇게 지르지 않았다면, 와이프 친정 식구들이 어렵게 거리를 헤메일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우리 가정에도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결국 가정의 평화가 깨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간신히 면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임대차3법 이후, 지옥에 빠질 수도 있었던 가족을 구원했다는 것이 더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투자 목적을 포기하고, 작정하고 절대 오르지 않는 아파트만 찾아다녔는데,
그런 허접한 동네의 집갑마저 올려버리다니... 신의 한 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국가적 상황이 무척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떻든 저는 수혜자인 셈입니다.
지금 영끌의 댓가로 하우스푸어로 살고 있는데, 곧 세금 푸어를 겸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친척이고 장인댁 상황이 어렵다고 하지만, 혼자서 아파트를 두채나 사서 빌려드리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지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계시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파주쪽은 운정 신도시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가격이 올라갔다고 수요까지 올라가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파주 구 도심쪽은 원래 좀 저평가된 곳이 아닐까 합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 부동산 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오히려 한국이 적게 오른 축에 속합니다. 독일에서는 기업형 거대 렌트 회사들이 주택 임대를 독점하고, 렌트 비용을 올려서, 독일 국민들이 국가가 이들 악덕기업들을 국유화하라고 난리입니다. 즉 헐값을 주고 주택을 뺏아와라는 뜻이죠. 자본주의 국가에서 말입니다. 땅 넓고 사람 적은 뉴질랜드에서도 오클랜드의 집값이 몇배로 뛰었습니다.
한국은 젊은 층의 구매력이 약하기 때문에, 아파트 값이 계속 고공행진 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독신자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서 30평 아파트도 나중에는 크게 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지방의 소도시는 인구가 크게 감소하는 추세이고 아직까지는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주거만을 위한 것이라면, 지방 소도시로 이주하는것을 권해드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봅니다. 지방에 연고가 있으면 더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