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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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황금빛 행성
(리뷰)
타오의 얘기가 끝날 무렵 내 관심은 그녀의 좌석 부근에서 빛나는 상이한 색상의 빛들에로 쏠렸다. 그녀는 이야기를 마치고 손짓을 했다. 휴양실의 벽면중 하나에 문자와 숫자들이 나타났다. 타오는 그것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잠시 후 빛이 꺼지고 문자와 숫자도 사라졌다.
“타오.” 내가 말했다. “방금 환각과 집단 환상에 관해 얘기 했는데, 어떻게 수많은 사람이 환영을 보게 만들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눈 속임수 아닌가요? 마치 무대 위에서 마술사가 10여 명의 ‘미리 선택된’동조자를 이용해 관객을 현혹시키는 것처럼?”
타오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감돌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 말이 옳아요. 요즘엔 지구에서 특히 무대 위에서 진정한 마법사를 찾기가 정말로 어렵기 때문이죠. 우리는 온갖 심령 현상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우리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에요. 왜냐하면…….”
그 순간 엄청난 세기의 충격이 우주선을 뒤흔들었다. 타오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안색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공포에 사로잡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름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우주선은 여러 조각으로 박살났다. 승무원들의 외마디 비명이 들리면서 우리는 튕겨져 나갔다. 타오가 내 팔을 꼭 붙잡았지만 우리는 현기증 나는 속도로 우주 공간 속으로 던져졌다. 우리의 속도로 보아 잠시 뒤 한 혜성과 부닥칠 판이었다. 몇 시간 전에도 비슷한 혜성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타오의 손이 내 팔에 닿는 것을 느꼈지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혜성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있었다. 곧 혜성의 꼬리와 충돌할 판이었다. 벌써부터 그 끔찍한 열기가 느껴졌다. 얼굴 피부가 터져버릴 듯했다. 이젠 죽었구나…….
“미셸, 괜찮아요?” 타오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상태였다. 내가 미쳐 가는가 보다. 나는 그녀의 반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구 최초의 인간에 관한 타오의 얘기를 들었던 바로 그 의자였다.
“우리가 죽은 건가요, 아니면 미친 건가요?” 내가물었다.
“양쪽 다 아니에요, 미셸. 지구에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속담이 있지요. 당신은 어떻게 수많은 군중이 동일한 환영을 보게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즉각 하나의 환영을 만들어 당선에게 보여준 겁니다.좀 덜 무서운 환영을 체험하도록 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번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그랬어요.”
“정말로 환상적이군요! 그런 식으로 그렇게 갑작스럽게 체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 모든 상황이 정말로 진짜 같았어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부탁할게 있는데, 다시는 그런 식으로 겁주지 말아요. 겁에 질려 죽을 뻔했어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의 육체는 의자에 남아 있었고, 단지 우리의... 편의상 ‘성심체’ (星心體astropsychic body)라고 하죠. 그 성심체를 우리의 육체를 비롯한 다른 모든 몸(body)들로부터 분리시켰던 거예요.”
“우리의 다른 몸들이라뇨?”
“생리체(physiological body), 심형체 (psychotypical body), 성기체(astral body) 등등 다른 모든 몸들이요.당신의 성심체가 내 두뇌의 정신감응 시스템에 의해 다른 몸들로부터 분리됐어요. 나의 정신감응 시스템이 일종의 전달매체로 작용한 것이죠. 그러면서 나와 당신의 성심체가 직접 연결 됐습니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성심체에 투영되면서 마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듯이 인식됐죠. 다만,그런 체험을 하도록 만들려면 당신에게 준비를 시켰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무슨 뜻인가요?”
“음, 내가 어떤 사람에게 환영을 보여주려면, 먼저 그 사람한태 그것을 보고 싶은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우주선을 보도록 만들려면, 먼저 그들이 그런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만일 그들이 코끼리를 보고 싶어 한다면 우주선은 절대로 보이지 않아요. 따라서 적절한 말과 교묘한 암시를 사용하면, 군중은 당신 주위에 몰려들어 우주선이나 흰 코끼리를 기대하게 됩니다. 혹은 파티마의 성모를 기대할지도 모르죠. 파티마의 성모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그런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지요.”
“1만 명의 사람들 보다는 한 명의 사람에게 환영을 보게 하기가 더 쉽겠네요.”
“그렇지 않아요. 반대에요. 사람이 많으면 연쇄반응이 일어나요. 사람들의 성심체를 풀어놓으면 한사람에게 환영을 보여줘도 자기들끼리 정신감응으로 정보를 교환합니다. 그 유명한 도미노효과와 비슷한 현상이죠.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리면 연이어 모든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이죠.
당신한테 하기에는 매우 쉬웠어요. 지구를 떠난 이래 당신은 다소 불안한 상태에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지요. 당신의 그런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두려움을 이용했어요. 비행체를 타고 여행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움이죠. 공중에서 폭발하지 않을까, 추락하면 어쩌나 등등. 더욱이 당신은 이미 화면에서 혜성을 봤는데 왜 내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겠어요? 혜성에 다가갈 때 당신 얼굴이 화염에 익어 벼린다고 믿는 대신,혜성 꼬리 부분으로 진입하면서 얼어 죽는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었죠.”
“요컨대, 나를 미치게 만들 수 있었군요!”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어요…….”
“왜요, 환영이 5분 이상 지속됐었는데?”
“10초를 넘지 않았어요. 꿈이나 악몽에서처럼요. 악몽도 대체로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수면 상태고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들판에 서 있는데 멋진 흰색의 종마가 보입니다. 다가가서 붙잡으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종마는 달아나죠. 대여섯 번 시도하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겠죠. 마침내 말 등에 올라타고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더욱 빨리 달리면서 당신은 속도감에 도취됩니다……. 종마는 너무 빨라 다리가 땅에 닿지도 않아요. 그러면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전원풍경이 아래로 펼쳐집니다. 강, 벌판, 숲.
정말로 멋진 풍경이에요. 잠시 후 지평선에 산이 나타나고 다가갈수록 더욱 높아집니다. 산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종마가 좀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합니다. 더욱 높이 오르면서 거의 정상을 넘어가려는 순간 말발굽이 돌에 걸려 균형을 잃습니다. 당신은 말에서 떨어져 추락하다가 마침내 끝없이 갈라진 땅속으로 곤두박질칩니다……. 그 순간 당신은 꿈에서 깨어나고, 침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
“그렇게 긴 내용의 꿈을 불과 몇 분 사이에 꾸었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요?”
“4초 정도였을 거예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꿈은 당신이 침대에서 균형을 잃었을 때부터 시작됐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그럴 거예요, 미셸. 완전히 이해하려면 그 분야를 좀 더 많이 연구해야 돼요. 현재 지구에서는 그 주제에 관해 당신을 교육시킬 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우리와 함께 보낸 몇 시간 동안 당신은 특정 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보였어요.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이제 당신을 티아우바에 데려가는 이유를 설명해 줄 때가 됐군요.
우리는 당신에게 어떤 임무를 맡기려고 해요. 그 임무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보고 듣고 체험하는 모든 것을 지구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구로 돌아가면 그 경험을 한권, 혹은 여러 권의 책으로 써서 공개하세요. 이제는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우리는 수십만 년 동안 지구인들의 행태를 관찰해 왔어요.
지구인의 일부는 역사상 매우 중요한 시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을 도와줄 때가 된 것 같아요. 만일 그들이 우리의 충고를 경청하면 우리는 그들이 옳은 길을 가도록 보장할 수 있어요. 당신이 선택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왜 차라리 뛰어난 저술가를 선택하지 않았나요? 유명한 작가나 기자 같은 사람 말이에요.”
나의 격렬한 반응에 타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일을 할 만한 작가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플라톤이나 빅토르 위고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설혹 그들이 그 일을 맡았다 해도 지나치게 장식적인 문체를 사용했을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바는 가장 정확하게 사실을 기술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적임자는 언론계 기자겠네요…….”
“미셸, 당신도 알다시피 지구의 언론인들은 너무 선정주의에 물들어 있어 진실을 왜곡할 때가 많아요.
예컨대 특정 사건을 TV 채널마다, 혹은 신문마다 다르게 보도하는 경우를 자주 보지 않았나요? 지진 사망자 수를 한 매체는 75명으로, 다른 매체는 62명, 또 다른 매체는 95명으로 보도할 경우 누구를 믿어야 하나요?정말로 언론인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에요!” 내가 외치듯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당신을 관찰해 왔고,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요. 다른 몇몇 지구인에 대해서도 그랬어요.그 중에서 당신이 선택된 거예요…….”
“하지만 왜 나죠? 지구에서 나만이 객관적인 사람은 아닌데.”
“당신을 안 뽑을 이유가 있나요? 당신이 선택된 주된 이유를 곧 알게 될 거예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내가 반대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그 일에 연루된 데다 되돌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이 우주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와 같은 처지가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려는 사람이 수백만 명은 될 것이다.
“타오, 더 이상 따질 생각은 없어요. 만일 이것이 당신의 결정이라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다만 내가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99%의 사람들이 내 말을 한 마디도 믿지 않으리라는 점을 생각해 봤나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내용일 텐데요.”
“미셸, 약 2,000년 전의 사람들이 자신을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의 말을 믿었나요? 절대로 안 믿었죠. 믿었다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지금,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이 수억 명이나 됩니다…….”
“누가 그를 믿지요? 사람들이 정말로 그를 믿나요, 타오? 그리고 도대체 예수는 누구였나요? 그보다 먼저 신(God)은 누구인가요? 신은 존재하나요?”
“그런 질문을 기대하고 있었어요. 미셸이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해요. 한 고대의 석판에, 내가 알기로 나칼(Naacal) 비문이라고 불리는데, 이렇게 씌어 있어요: ‘태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둠과 침묵뿐이었다. 성령(The Spirit), 즉 초월적 지성(Superior Intelligence)은 세상을 창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네 개의 초월적인 힘(force)에 명령했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고도로 발달한 인간이라도 이런 것을 이해하기란 지극히 어려워요.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하죠. 반면에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서 해방될 경우 그것을 이해합니다. 얘기가 좀 빗나갔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태초에는 어둠과 성령만이 존재했어요. 성령은 무한한 힘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어요. 성령의 힘은 너무 강해 의지의 작용만으로 원자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어요. 상상할 수도 없이 강력한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죠. 성령은 자신이 창조할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가장 거대한 세계부터 가장 미세한 세계까지 상상했어요. 성령은 원자를 상상했어요. 상상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앞으로 움직일 모든 것, 즉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앞으로 살아갈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또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 혹은 그렇게 보이는 모든 것, 다시 말해 만물을 일일이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직 성령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습니다. 세상은 아직 어둠 속에 있었죠. 자신이 창조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상상이 끝나자 성령은 그 엄청난 영력(靈力)으로 우주의 네 가지 힘을 순식간에 창조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힘들을 이용해 최초이자 가장 거대한 원자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일부 지구인들은 그것을 ‘빅뱅’ 이라고 불렀죠. 성령은 그 대폭발의 중심에서 그것을 유도했어요. 어둠은 사라지고 우주는 성령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를 창조해 왔습니다.
성령은 아직도 우주의 중심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은 우주의 지배자이자 창조자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내가 끼어들었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하느님의 얘기네요. 나는 기독교인들의 터무니없는 얘기는 믿지 않았어요.”
“미셸,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들, 특히 기독교에 관해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지구상의 종교들과 내가 말하는 천지창조, 그리고 뒤이어 일어나는 명백한 사실들을 혼동하지 마세요. 그런 종교들에서 자행되는 비논리적인 왜곡과 진정한 우주의 섭리를 혼동하지 마세요. 이 문제에 관해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지금은 천지창조에 관해 당신에게 설명하려고 해요. 학교에서 배웠겠지만, 수십억 년 동안(물론 조물주에게는 언제나 ‘현재’ 일 뿐이지만, 우리들 수준에서는 수십억 년으로 계산하는 게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모든 세계와 항성들과 원자들이 생성됐고, 행성들은 때론 위성들을 거느린 채 각자의 태양 주위를 돌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태양계에서는 일부 행성들이 식고 있어요. 그러면서 토양이 형성되고 바위가 굳어지며, 바다가 생기고, 땅덩어리는 대륙이 됐지요.
마침내 그런 행성들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성령의 상상 속에 있었어요. 성령의 그 첫 번째 힘을 ‘원자력’ (Atomic force)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 단계에서 성령은 두 번째 힘을 이용해 최초의 생명체들과 많은 식물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나중에 아종(亞種)들이 파생됐지요. 이 두 번째 힘을 ‘난우주력’(Ovocosmic Force) 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들 생명체와 식물은 단순한 우주선(cosmic ray)들에 의해 창조됐는데, 이 우주선들의 덩어리가 나중에 우주난(cosmic egg : 초고밀도의 에너지 질량 덩어리)이 되기 때문이에요.
또 태초부터 성령은 특별한 생명체를 통해 감정을 느끼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바로 인간을 상상한 거죠. 이때 이용한 세 번째 힘을 ‘난성력’ (卵星力, Ovoastromic Force)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이렇게 창조됐어요.미셸, 인간이나 심지어 동물을 창조하는 데 어떤 지성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온몸을 순환하는 혈액...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백 만 번이나 박동하는 심장... 복잡한 시스템을 통해 피를 정화시키는 허파... 신경체계... 오감의 도움으로 명령을 내리는 두뇌... 극도로 예민한 척수 등. 뜨거운 난로에 데지 않도록 순간적으로 손을 빼게 만드는 기관이 바로 척수에요. 손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뇌가 그런 명령을 내리는 데는 0.1초밖에 안 걸릴 거예요.
지구 같은 행성에 사는 수십억 명 가운데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경이롭지 않은가요? 또 혈액의 ‘결정체’가 지문처럼 사람마다 독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구를 포함한 여러 행성의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인체를 창조하려고 노력해 왔지요. 그들이 성공했나요? 그들이 만든 로봇의 경우, 가장 완벽하다는 것도 인간의 구조에 비하면 저급한 기계에 불과하죠.
방금 언급한 혈액 결정체 얘기를 다시 하자면, 그것은 개개인의 혈액에 고유한 진동이에요. 혈액형과는 상관이 없어요. 지구에는 수혈을 거부해야 한다고 철저히 믿는 종교가 여럿 있어요. 그들이 거부하는 이유는 종교적으로 그렇게 배웠고, 자신들의 경전과 해석서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진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이유는 상이한 진동이 상대방에게 미칠 충격 때문이에요.
수혈량이 많을수록 수혈자에 대한 영향도 커집니다. 영향의 정도와 기간이 수혈량에 따라 다릅니다. 물론 그 영향은 결코 위험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한 달이 넘는 경우는 없는데, 수혈자 혈액의 진동이 제공자 혈액의 진동을 완전히 흡수해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런 진동은 물질적인 육체보다는 생리체와 유체(f1uidic body)의 특정이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그러고 보니 원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군요. 미셸.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다시 합류할 시간이에요. 티아우바에 도착할 시간이 다됐군요.”
나는 네 번째 힘의 본질에 관해 타오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녀가 벌써 출구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통제실로 돌아갔다. 그곳 화면에서는 천천히 길게 얘기하는 어떤 사람의 확대 영상이 보였다. 각종 숫자와 형상, 그리고 다양한 밝은 색상의 빛나는 점들이 여러 기호들로 가득한 화면을 끊임없이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타오는 내가 전에 앉았던 좌석에 나를 앉히고는 안전장치를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승무원들을 감독하고 있는 비아스트라에게로 가서 뭔가를 의논했다. 승무원들은 각자의 데스크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타오가 돌아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죠?” 내가물었다.
“우리 행성에 다가가면서 속도를 점차 줄이고 있어요. 8억 4,800만km 떨어져 있는데 약25분 뒷면 도착할 거예요.”
“지금 좀 봐도 될까요?”
“참으세요, 미셸. 25분 뒤에 세상의 종말이 오지는 않아요!” 그녀가 윙크를 하며 농담조로 말했다.
화면에서는 근접 영상이 사라지고 원경 영상이 나타났다. 앞서 봤던 은하계 기지의 통제실이 훤하게 보였다.우주선의 승무원들은 각자의 데스크에서 맡은 일에 더욱 집중했다.
‘데스크톱 컴퓨터’들의 대다수는 손동작보다는 음성 지시에 따라 작동됐다. 숫자들과 다양한 색상의 빛나는 점들이 빠른 속도로 화면을 가로질러갔다. 우주선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대형 화면 한가운데에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기지가 사라진 자리에 마침내 티아우바가 나타났다!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느낌이 왔다. 타오가 즉각 ‘맞다’는 뜻을 텔레파시로 전해왔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우리가 접근하면서 화면의 티아우바도 커졌다. 나는 화면에서 보이는 형언하지 못할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떠오른 표현은 ‘빛나는’ 이었고, 곧이어 ‘황금빛’이라는 단어도 생각났다. 하지만 그 색상이 연출하는 효과는 묘사하기 불가능했다. 가장 적합한 표현을 억지로 만든다면 ‘빛나는-증기 같은-황금빛’ (lumino-vapour-golden) 정도일 듯했다. 실제로 빛나는 황금빛 증기탕 속으로 뛰어드는 느낌이었다.그 행성의 대기 중에 아주 미세한 황금 먼지 층이 있는 듯이 보였다.
우주선은 티아우바를 향해 부드럽게 하강했다. 이제 행성의 윤곽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륙의 윤곽이 보이다가 곧바로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 위에는 다양한 색상의 많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좀 더 자세한 모양들이 드러났다. 착륙 시에는 줌렌즈가 사용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다. 나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눈앞에 보이는 색상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상이었다!
그곳의 빛깔은 지구에 비해 생생한 색조감이 강했다. 예컨대 밝은 녹색은 녹색을 방출하는 듯했다. 어두운 녹색은 반대로 색깔을 ‘붙잡아뒀다.’ 묘사하기가 지극히 어려운데, 티아우바에서의 색깔은 지구에 존재하는 색깔과 비교하기가 어렵다. 붉은 색은 붉다고 인식되지만 우리가 아는 붉은 색이 아니었다. 타오의 언어에는 지구 같은 행성에서의 색깔 유형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는데 영어로 ‘흐릿한’ (dull)이라는 뜻의 ‘칼빌라오카’(Kalbilaoka)다.
반면 그들의 색깔유형은 ‘씨오솔라코비니카’ (Theosolakoviniki)라고 부른다. (‘씨오솔라코비니카’ 와 비슷한 효과는, 빛이 좁은 주파수 대역에서 진동할 때 순수한 단색에서 관찰된다. 저자는 이런 색깔들을 보여줬을 때 그런 효과를 확인했다. ‘Theos’ 가 그리스어로 ‘신’ [God]을 의미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이런 색깔들은 신처럼 ‘순수‘ 한가? 편집자 주).
내 관심은 곧 화면에서 계란처럼 보이는 물체들로 쏠렸다 (계란보다는 계란 반쪽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지면에는 그런 계란형 물체들이 산재해 있었다. 일부는 식물로 덮여 있었고, 나머지는 식물이 없었다. 또 일부는 다른 것들보다 크게 보였고, 일부는 옆으로 누워있었다. 다른 것들은 뾰족한 부분이 하늘을 향한 모양이었다.
너무 희한한 광경이라 타오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 ‘계란들’ 이 무엇인지 물어보려 했다. 마침 그 때 화면에 둥그런 형태의 구조물이 등장했다. 주변에는 크기가 다른 구체들이 몇 개 있었고, 약간 먼 곳에 또 다른 ‘계란’ 들이 있었다. 거대한 계란들이었다.
그 구체들은 우리가 타고 있는 구체처럼 우주선임을 알 수 있었다.
“맞아요.” 타오가 앉은 채로 말했다. “그리고 화면에 보이는 둥그런 물체는 격납고에요. 우리 우주선이 잠시 후 들어갈 곳이죠. 우리는 지금 착륙 절차에 들어갔어요.”
“저 거대한 계란들은 뭐죠?”
타오가 미소를 지었다. “건물이에요 미셸.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점을 당신에게 설명해줘야 합니다. 우리 행성에는 놀라운 점들이 많은데, 그 중 두 가지는 당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요.그런 만큼 몇 가지 기본적인 예방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티아우바의 중력은 지구와 달라요. 당신 체중이 지구에서는 70kg이지만, 여기에서는 47kg이 될 거예요. 우주선 밖으로 나갈 때 조심하지 않으면 동작과 반사 신경에서 균형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어요. 당신은 습관적으로 보폭을 넓게 취할 텐데 그러면 넘어져 다칠지도 모릅니다…….”
“이해가 안가요. 우주선 안에서는 괜찮은데.”
“그것은 우주선 내부 중력을 지구중력과 어느 정도 일치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렇다 해도 당신은 정상 체중보다 약 60kg 더 많아지기 때문에 매우 불편할 겁니다.
물론 이런 중력 아래에서는 우리의 체중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약간의 공중부양 능력을 이용해 균형을 맞추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당신이 편해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만족을 느낍니다.”
우주선이 약간 덜컥거렸다. 도킹을 하는 듯했다. 이로써 나의 놀라운 우주여행은 일단락됐다. 드디어 다른 행성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타오가 다시 말했다. “잠시 동안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곳의 밝은 빛깔과 광도(光度)가 당신을 마취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말이에요. 빛깔은 일종의 진동으로 당신 생리체의 특정 부위에 영향을 미쳐요. 지구에서는 그런 부위들이 큰 자극을 받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그런 만큼 이곳에서는 심각한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내 좌석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다시 행동이 자유로워졌다. 대형 화면은 꺼진 상태였지만 승무원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타오는 나를 출입문 쪽으로 안내하다가 어떤 선실로 다시 데리고 들어갔다. 우주선에 처음 탔을 때 들어갔던 선실로 내가 3시간 동안 누워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타오는 안전모처럼 생긴 아주 가벼운 마스크를 내게 씌웠다. 이마에서 코밑까지 가리는 마스크였다.
“미셸, 이제 가죠. 티아우바에 온 걸 환영합니다.”
우주선 밖에서 우리는 아주 짧은 통로를 따라갔다. 나는 곧바로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분도 무척 상쾌해졌다. 물론 약간 당황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몸의 균형을 잃고 타오의 부축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소 의외였다.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나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았어야 했다. 아니면 그 비슷한 환대라도…, 예컨대 붉은 카펫 같은 걸로 말이다! 이곳의 국가 원수는 왜 안보이지? 이곳 주민들이 매일 외계 행성 사람의 방문을 받는 것도 아닐 댄데!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약간 걸어가 통로 옆에 있는 어느 둥근 플랫폼에 도착했다. 플랫폼 안에서 타오는 원형 좌석에 앉고 나를 맞은편에 앉혔다.
그녀는 워키토키 크기의 물체를 꺼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내 몸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우주선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때, 겨우 들리는 윙윙 소리와 함께 플랫폼이 부드럽게 떠올랐다. 그러더니 지면에서 몇m 높이를 유지한 채 , 약800m 떨어져 있는 ‘계란’ 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약간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의 노출된 부위에 부딪쳤다. 기분이 상쾌했다. 기온은 섭씨 26도 정도였다.
우리는 몇 초 만에 ‘계란’ 들 중 하나에 도착해 마치 구름을 뚫고 지나가듯 계란 벽을 통과해 들어갔다. 그‘건물’ 안에서 플랫폼은 비행을 멈추고 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나는 사방을 둘러봤다.
터무니없는 얘기 같지만, ‘계란’ 이 사라졌다. 우리는 분명히 그 ‘계란’ 속으로 들어왔는데 주변에 보이는 것은 널리 펼쳐진 전원 풍경이었다. 도킹 상태의 우주선들과 착륙장도 보였다. 마치 우리가 밖에 있는 듯했다…….
“당신의 반응을 이해해요. 미셸.” 내 생각을 아는 타오가 말했다. “그 미스터리는 나중에 설명할게요.”
멀지 않은 곳에 20~30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마치 우주선 내부에서처럼 여러 색상의 불빛으로 빛나는 화면과 데스크 앞에 모여 상당히 분주해 보였다. 어떤 음악 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는데 내게 행복감을 안겨줬다.
타오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작은 ‘계란들’ 중 하나를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들어와 있는 큰 ‘계란’ 의 ‘내벽이 있어야 할 자리’ 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여기서 언급해둬야 할 게 있다. 실내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타오와 나의 모습은 매우 어색한 커플처럼 보였다. 신장 차이가 크다 보니, 나란히 걷는 동안 타오는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다. 내가 보조를 맞춘답시고 뛰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배려였다. 하지만 내 걸음새는 볼썽사납게 껑충껑충 뛰는 모습에 가까웠다. 걸음을 재촉하려 하면 더욱 꼴불견이 됐다 70kg을 운반하는데 익숙해진 근육을 이제 47kg을 운반하는데 적응하도록 조절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독자들은 우리 커플의 걷는 모양새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그 작은 ‘계란’ 의 외벽에서 빛나는 발광체를 향해 걸어갔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그 빛의 세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 발광체의 밑을 지나 벽을 관통해 실내로 들어갔다. 우주선의 화면에서 봤던 바로 그 방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낯이 익었다. 내가 은하계 본부에 들어 와 있음을 깨달았다.
타오가 내 마스크를 벗겨줬다. “이제는 괜찮아요, 미셸. 여기서는 마스크가 필요 없어요.”
그녀는 그곳에 있는 12명의 사람들에게 나를 직접 소개했다. 그들은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며 환영의 뜻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진지한 기쁨과 선의의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그들은 나를 가족으로 여기는 듯했다.
타오는 그들이 내게 갖는 큰 의문을 설명해줬다. ‘저 사람의 표정은 왜 저렇게 슬퍼 보이지, 어디 아픈가?’
“나는 슬프지 않아요!” 내가 항의하듯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저들은 지구인의 얼굴 표정에 익숙지 않아요. 보다시피 이곳 사람들은 늘 행복한 표정에 익숙해 있거든요.”
맞는 말이었다. 그들은 마치 매순간 기쁜 소식을 듣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에게는 뭔가 이상한 점이 엇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갑자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그들은 모두 나이가 같아 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