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군대에 대해 쓰인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렇듯 과장과 허풍이 가득하다. 그 와중에도 독보적인 것은 군대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글이다.
현역인 사람들은 한번만 읽어봐도 코웃음을 칠만한 내용도 있다. 하지만 군대를 가서 경험한 사람들조차 혹할만한 내용을 써서 올리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경의와 놀라움을 담아 '작가' 라고 부른다. 그들은 군대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들은 3미터가 넘는 전자다람쥐나 피에 젖은 지옥멧돼지 같은 걸 직접 본 적조차 없다. 아니 그들과 싸우기 위한 성혈의 무구들을 직접 만져본 적도 없으리라.
'작가'들이 어떻게 군대에 대해 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치열한 전쟁터를 겪고 살아온 퇴역 군인이나 장성들까지 전율에 젖게 할 만큼 생생하고 객관적인 표현이 넘쳐난다.
혹자는 그들이 삶을 거듭하여 살아가는 전생자나 타인의 경험을 공감하는 공감능력자, 어쩌면 예지능력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난 '작가' 는 그들이 묘사한 전쟁은 순수하게 그들의 상상에 의존한다고 말해주었다.
과연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전쟁터에 한번 나가보지도 않은 이들이 절륜한 푸른 고라니가 뿜어내는 거친 숨냄새를 맡으며 격돌하는 백병전에 대해, 그놈들의 뱃가죽을 갈랐을때 그들이 단말마를 지르며 쓰러지는 그 광경을, 피칠갑이 된 분대가 지쳐서 피도 제대로 닦지 못한 채로 내무반에 누웠을때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는 나의 의심을 이해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등본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분명하게 '미필'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본이었다.
내가 아는 이중 명예로운 군생활을 거짓으로 말하는 전역자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끔찍하고 처절한 악몽의 끄트머리라도
그것을 거짓으로 말할 이는 없을 것이다.
내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보고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군 경험이라는 게 군대 이야기를 쓰는데 필수라는 건 오해입니다. 비슷한 다른 경험을 얻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이를테면 보이스카우트 같은 곳도 있죠.'
나는 그 말에 정말 격렬하게 분노했다. 보이스카우트라니. 미친 게 아닌가. 고작 사람 크기의 논병아리를 잡을 기회밖에 없는 곳이 군대랑 비슷하다고?
그는 내가 미친 듯이 쏘아내는 욕설을 담담하게 듣더니 말을 이었다.
'화내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작가' 들은 하나의 경험을 다른 이야기로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우리가 보이스카우트나 캠핑을 경험한다고 해서 우리가 보이스카우트의 선서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상상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과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건 다르다고 내가 겪은 군생활을 그런 것과 비교하지 말라고.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르죠. 당연합니다. 보이스카우트에서 사냥할 수 있는 것 중 그래요. 독룡 개구리가 있죠. 그것을 잡는 것을 군인들이 보면 비웃을 겁니다.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눈감고도 잡을 수 있다며 낄낄거리겠죠. 하지만 보이스카우트에서도 어려운 도전은 가능합니다. 스웨덴 아미나이프만 이용해서, 그것도 거기 달린 이쑤시개로 잡는 겁니다. 군인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독룡 개구리는 분명 만만한 놈이지만 그걸 스웨덴 아미나이프의 이쑤시개만으로 잡는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화낸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볍게 웃었다.
'괜찮아요. 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겠죠. 전쟁을 마주하는 이들과 보이스카웃은 분명 완전히 달라요. 그냥 저는 제 상상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치열함이라는 것은 다른 작은 치열함이 확장되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른 주제를 꺼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정말로 궁금해 하는 주제였다.
나는 그에게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연애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약 5분쯤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꿈이라던가. 간접체험이라던가. 아니면.....'
그 순간 그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아련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런 눈빛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아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