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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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공포증이란, 말 그대로 무한을 무서워하는 공포증입니다. 수를 세다가, 혹은 우주를 계속 바라보다가, 문득 너머의 탁 트인 것들에 대한 아찔함을 느끼셨다면 무한 공포증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무한의 "끝없는 것"에 대한 특징이 어떠한 계기로 공포를 일으키는 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우주나 심해공포증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무한 공포증을 가진 제가 우주 공포증과 심해 공포증도 같이 가지고 있거든요 (...)
한동안 이 공포증을 잊고 있다가, SF (SF일 수도 있고, 판타지일 수도 있는데... 뭔가 반반 섞여 있어서, 어느 장르로 보이는 지는 보는 분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서스펜스 영화인 벗어날 수 없는 (The Endless) 를 우연히 보고나서 무한 공포증이 오래간만에 발작(?) 했습니다. 이 영화가 끝없는우주나 끝없는 심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무한히 반복되는 상황에 갇히는 저주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발작된(?) 것입니다. 가장 최악은 3초마다 반복되는 상황에 빠진 사람을 보여주는 장면;; 기억은 유지한 상태에서, 영원히 같은 3초를 반복하는 장면인데, 그렇게 잔인한 것도 없고 깜놀하는 씬도 아닌데 저는 그 상황을 상상할 수록 무섭더랬습니다 (...)
무한공포증을 느낄 때의 공포는 막연한 것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옵니다. 정확히는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막연하게 다가올 때의 공포인 것이죠. 아마 사람들이 말하는 코스믹호러가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다가올 때는 바닥이 부서지면서 계속 땅에 떨어지는 느낌이 날 때가 있으니까요.
다만 The Endless에서, 무한공포증만 느낀 것은 아닙니다.
그것 이상으로, 무한에 대한 어떤 철학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어요.
주인공이 선택을 하는데... 저는 그걸 이런 선택지로 봤거든요.
무한한 가능성의 일들이 터져 한치 앞도 어찌 될 지 모르는 불안정한 바깥세계
모든 상황들이 정해져 있고 따뜻한 봄날에 평온한 일상이 무한히 연속되는 내부세계
이리 쓰면 불안정한 바깥세계가 나아보이지만, 문제는 내부세계에서는 자유도가 극히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특정 상황이 박제되어 무한히 계속 되는 것이니 답답함을 느껴도 흘러가는 시간과 정형화된 상황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게 문제인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트있는 선택이긴 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세계는 행복도 보장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불행도 보장하니까요.
여튼, 참 기묘한 영화였습니다. 오랫동안 무한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만 느끼고 있다가, 어느순간 무한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고 생각을 하게 만들었거든요. 물론 심각하지 않고 재치도 넘치는 영화여서 볼 때는 부드럽게 볼 수 있었지만, 이걸 보고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아서 여기 포럼에 따로 영화감상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보고 마칠 땐 몰랐는데,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그냥 이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