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쓰기에서 멀어져 있다가 다시 복귀했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글의 새 화와 말이죠. 한달 동안 글쓰기를 거의 방치했으면서도 그나마 그동안 읽어둔 한국 SF/판타지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썼던 Who Become meat(누가 고기가 되는가) 다시 써보려 합니다. 좀 더 읽기 쉽게 글의 소재들을 잘 정리하게 위해서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존에 쓰던 글과 빈 문서 파일을 화면에 같이 올려놓고 먼저 쓴 글을 읽어가며 다시 쓰는 거죠.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군요. 말이 쉽지 이런일을 위해선 많은 조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들 없이 시도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Who Become meat 1.4화를 올리고 나서 받은 리뷰가 한 개 밖에 없기도 하니까요-당연히 그전에 다른 글에서 받았던 리뷰들은 잊지 않기 위해 죄다 다시 읽었습니다- .


 어쩌면 지금은 가족적이고 따듯한 분위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표도기님이 지금의 도서관으로 이전하시고 더 큰 포부를 가지시기 전 작게 열어서 소수의 인원들이 화기에에 하게 글에 대해 이야기 했던 그때의 분위기가 그립네요.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고 당연히 도서관이 지금처럼 크게 성장한 걸 칭찬해야 하겠지만요.

 제가 타임머신을 쓸 수 있다면 가장 돌아가고 싶을 때가 2008-10년의 조이 SF시기로 돌아가는 걸 겁니다. 제가 사람을 처음 사귀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가정폭력을 겪고 아빠라는 인간이 날 죽이겠다고 덤벼서 맞서 싸우다가 경찰을 부른적도 있습니다. 물론 엄마는 절대로 배신할 수 없는 좋은 분이지만 아빠야 말로 제 인생과 성장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죠. 전 지금도 그것 때문에 술을 혐오합니다. 주폭이 가정폭력으로 번지는 건 반쯤 당연한 일이었거든요. 조이 SF와 도서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으며 지금에 상태까지 왔지만 여전히 술에 대해선 상당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아무 금주법을 누가 발휘하면 가장먼저 찬성할게 절겁니다. 미국 금주법시대의 부작용을 알고 있으면서도요.


 제가 정신적으로 성장한 계기 중 하나는 아빠와 죽기살기로 싸우면서 내가 자랐고 더이상 그 사람이 절 힘으로 제압하지 못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일 겁니다. 적어도 날 죽이려면 아빠라는 사람도 나 한테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거나 같이 죽을거라는 거라는 사실을 발견한 다음 부터요. 지금도 제 방에 모두의 친절한 근접무기 파이프 랜치를 구비해 두기도하고요. 물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거기서 지지 않았기에 이젠 아빠라는 사람과의 관계는 몇년 전 부터 묘한 휴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면이 더 심했던 폭력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위의 일은 제게 영원히 트라우마로 남을 난관중 하나일 것입니다. 성적 정체성, 대인관계, 가족문제등 절 언제나 우울의 무저갱으로 빠트릴 수 있는 제안의 괴물들이죠.


 그래서 과거 조이 SF와 작았던 당시의 가족적인 SF 도서관이 그리운 걸 겁니다. 제가 거의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실수를 저지르고 성정할 수 있었던 게 그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준비되었기에 그 과거가 더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3-4년이면 지나보내는 사춘기를 14년 쯤이나 더 겪었으니 전 남들과의 출발 선상에서 아주 늦어버렸기도 해요.


 전 자살에 대해서 어느정도 압니다. 그걸 시도해 봤거든요. 결과는 대부분은 생존 본능을 통제하지 못해 시도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긴 하지만요. 본분에서 어긋나는 말이지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여전히 회의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중에는 자살 방법을 설명해주고 개인의 선택에 맞기는 이들도 있죠. 그들의 모토는 삶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어이없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이 나가는 걸 보고 작정해서 손목을 그었는데 10시간 쯤 뒤에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요. 일부러 출혈을 내 자살하는 것은 실패율이 95%에 육박해요. 인체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제대로 죽고 싶으면 전문적이고 외과적인 의학지식이 필요하죠.

 지금은 그런 자살 생각은 하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지 마음이 그렇게 급진적으로 무너질거란 가능성은 알고 있어요. 뭐 알고 있어서 나쁜 건 없겠죠.


 아직도 사춘기가 끝난 청소년에서 어른의 마음 변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릴겁니다. 그래도 감안해야요. 적어도 옛날에 글을 쓸 때처럼 리뷰 하나에 일히일비 하기 보다는 담담하게 더 좋은 글을 쓰려고 하잖아요.


 지금도 카르디엔 루프스를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주셨던 분들이 조이 SF를 인터넷으로 지켜보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이젠 뒤늦게 나가 그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어요. 여러분 덕분에 하나의 인간이 완성되어가고 있다고.


 그럼 저는 리뷰하나만 믿고 글을 고치러 가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책 영국 메이드의 일상-현실의 빅토리아 시기 메이드들은 강간과 학대의 위협을 항상 마주하고 있어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과 중세의사람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올리버 트위스트도 다시 읽어봐야죠.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는 깊기에 전 히어로들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고 사회의 어두운 현실들에 더 귀를 기울이는 편이니까요.

 어쩌면 칼과 기사들의 영웅담이 넘치는 중세가 아니라 페러다임이 바뀌고 변화가 시작되던 근대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재 경험 때문인지 몰라요. 직접 마주해야 하는 검보다 총알은 원거리에서의 일방적인 우위와 피격자가 느끼는 일방적인 절망을 다루는 무기이기 때문이겠지요.


 긴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쓰는 글에 리뷰를 남겨주세요. 리뷰 하나하나가 재겐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발판이 되거든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P.S 어번저스 인피니티 워는 특유의 오역때문에-전 영어를 어느정도 할 줄 아니까 한글 자막과 영어사이에 괴리가 있는 오역이 가득하다면 집중이 어렵습니다- 나중에 DVD로 볼 생각인데 요즘 인피니티워 스포가 사방에 가득하네요. 그래서 더운 빌런 타노스씨가 그냥 절반을 없애자고 하는게 어떻게 나온 생각인지 더 궁금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