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을 다니다보면 'XX는 지능문제다'라거나 '공부나 더 하고 와라. 공부해보면 안다', '당신은 세뇌당했다'거나 하는 말들이 많이 보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왠지 익숙한 말을 이경규씨가 했다는데,

저는 요즘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넷상토론을 보다보면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심지어 그 사람이 정말로 똑똑하더라도..."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념을 가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데 있어 신념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신념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네 사람은 '신념'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논리와 결합된 감옥으로 만들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신념이 있고 그것에 대한 논리를 짜맞추곤 하죠. 정보를 자신의 신념에 맞춰 고르고 편집하고 그 정보를 통해 신념을 강화하고... 사실, 이러한 과정은 상당히 인간심리 본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만 교육수준이 올라가고 다양한 정보를 예전보다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심지어 요즘 넷상의 토론양상을 관망하다보면 더 심각해지는 면도 있는 듯 합니다.)


지능이 높거나 배움이 깊으면, 그 사람이 영리하고 똑똑하면 니체가 이야기하는 '신념이라는 감옥'에 갖히지 않을 것인가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되려 똑똑하기 때문에, 그리고 영리하기 때문에 더 정교하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감옥을 스스로 만들어 그 감옥 속에 틀어박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사람이니 똑같은 감옥에 갇혀있겠죠. 사실, 이 감옥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이 그 감옥에 갇혀있다는 것조차 인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딱히 어떤 부분에 있어 강한 신념을 갖고 있거나, 내 스스로 대한 강한 확신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크고 작은 신념과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패턴화,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고 적어도 자살하지 않을 정도의 자기에 대한 애정과 확신은 있으니까요.


그래도 최대한 처음 언급한 것과 같은 말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자신의 지식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가 상대의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나 자신과는 달리 상대는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이 없다는 확신은 '확신'이나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오만'에 가깝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문제는 이 '오만'이 단순히 감옥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을 방해한다거나 감옥을 더 정교하게, 혹은 더 견고하게 만든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 오만함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으로 해서 '토론'이 되었든 '논쟁'이 되었든 그 행위의 목적을 알수없게 하고 그 목적에 다다르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감정적이고, '자신에 대한 모욕'과 '상대의 오만'을 대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은 반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단순히 발언자인 '상대'에 대한 반감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많은 경우에 '상대가 말하는 신념'에 대한 반감이 되고, 상대와 같은 편에 선 이들에 대한 적의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뭐.. '토론'이 되었든 '논쟁'이 되었든 그 목적이 다 같은 것은 아니고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신념을 배설물처럼 세상에 싸지르는 것만이 목적'이거나 '남들보다 더 아는체해서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는 '넷상에서 논쟁을 하는 목적'이 아니니까요.

사실, 상대를 대함에 있어 거침없는 모욕을 행하고 오만을 드러내는 분들 - 심지어 그것이 길고 긴 논쟁과정을 통해 끝내 좁혀지지 않는 피로에서 촉발되었다고 보이지 않는 상대가 자신과 다른 생각임을 확인하는 순간에 바로 -에게 있어 '논쟁' 혹은 '토론'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나 그것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요즘 사회적인 이슈들이 많아서라고도 하고 사는 것이 힘들고 피로해서라고도 하는 사람도 있고 예전에 비해 날선 논쟁 - 논쟁이라고 쓰고 진흙탕 싸움이라고 읽는다 - 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식이 부족하다', '선동 혹은 세뇌당한 것이다', '배움이 없다', '지능이 낮다'며 반대에 선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기이하게 느껴지는 광경(미러링이 유행이라더니 거울과 거울을 맞대어 생기는 현상인가요?)을 자주 보다보니 예전과는 달리 좀 사람들의 '소통(?)'을 지켜보는 것이 좀 피곤하게 느껴지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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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엔 아귀가 살고 있다.

읽어도 읽어도, 봐도 또 봐도, 들어도 또 들어도 난 여전히 뇌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