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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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망자의 긍지
연합군은 최후의 보류인 됭케르크에 철통같은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그 방어선을 둘러 싼 독일군은 그들을 노려보며 감시하고 있었다.
전차와 장갑보병들이 명령을 기다리는 가운데 지휘관 ‘하인츠 구데리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연합군의 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사령부는 무슨 생각인건가! 지금이라면 영국군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거늘!”
그의 불만이 가득한 말에 그의 부관이 달래듯이 말한다.
“상부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공군이 적을 섬멸할거라고 하니까 두고 봅시다.”
그러자 그는 콧방귀를 뀌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비행전함도 없는 공군이 겨우 몇 분 폭격한다고 섬멸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육군의 숨통을 끊는 것은 오직 육군만이 할 수 있는 걸세!”
분에 못이긴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갈매기처럼 날개가 굽어진 Ju87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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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에 모인 병사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든 배를 모아보겠다는 상부의 말에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기에 병에 담은 유언장을 들고 있었던 병사들도 많았다.
연승을 거듭하던 독일군에게 항복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한 병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성 조지기를 단 선박들의 물결이었다.
군함부터 시작해, 귀족들의 요트, 고기잡이 어선까지 조국을 지키고자 분투하는 용사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이 거대한 함대는 새로운 희망으로 솟아올랐다.
비스마르크가 공포라면 이 함대는 공포에 맞서는 희망이라.
병사들은 손을 치켜들고 환호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아직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속에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함대가 뒹케르크의 해역을 빠져나가 영국으로 향하던 낡은 어선에 탄 어느 병사가 선장에게 묻는다.
“선장님은 두렵지 않으십니까? 이건 진짜 전쟁입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 말입니다.”
그러자 선장은 껄껄 웃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대답한다.
“두려울 것이 뭐 있소? 난 집체만한 파도를 보고 사는 사람이요, 그깟 날아다니는 쇠 조각 따위는 두렵지 않소. 하지만 저 쇳덩이는 좀 크군...”
독일의 Ju87과 호위편대가 돌격해오자 영국의 편대들이 독일군을 막기 위해 돌진해 온다.
영국군은 기수에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허리케인이 주류였지만 F-51와 함께 이질적인 형상의 기체가 있었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동체와 커다란 타원형의 날개와 기수에 구멍이 뚫리고 후미에서 불을 뿜는 이 전투기는 영국이 남북전쟁으로 유출된 기술을 토대로 재조한 최신형 제트기,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였다.
하지만 독일도 밀리지 않았다.
프롭기 중 가장 우수한 Bf109와 함께 이질적인 형상의 신형기가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어처럼 유선형을 동체와 약간 뒤를 향하는 긴 날개, 그리고 그 날개 중간에 각각 하나씩 달린 원통모향의 엔진이 힘차게 불을 뿜는 독일의 항공기술의 정수, Me262였다.
스핏파이어와 Me262가 서로 꼬리를 물고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Ju87은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빠르게 급강하하였고, 그들이 탄 어선을 향해 돌진했다.
선장은 작게 중얼거린다.
“젠장, 우리보다 큰 화물선이나 노리라고...”
병사들은 겁에 질렸지만 선장은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껄껄 웃으며 소리친다.
“어이, 거기 병사들! 설마 우리처럼 조그만 배를 노리겠냐? 약간 흔들리고 말테니 꽉 잡아라!”
병사들은 중얼거리며 배를 붙잡는다.
“젠장... 살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죽는건가?”
선장은 폭탄을 피해 필사적으로 핸들을 돌린다.
허나 이는 Ju87 쪽도 마찬가지였다.
선장의 분투는 매에게 도망치는 토끼가 차라리 더 공정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미약한 움직임이었다.
토끼의 숨통을 끊는 매의 발톱처럼 폭탄은 무서운 속도로 바다를 향해 떨어져나갔다.
발버둥을 치다 기적적으로 매의 발톱을 벗어난 토끼처럼 폭탄은 배에 박혔지만 그 폭탄이 기적적으로 불발이어서 다행히 병사들은 무사했다.
선두의 절반이 날아간 배를 운전하던 선장은 핸들을 놓고 무전기를 든다.
“배가 항행 불능이다! 아무나 구조 바란다.”
그러자 무전기 너머로 기품이 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겠다. 곧 가겠다. 뒤에 따라오는 흰색 요트가 보이면 올라탈 준비를 해라.”
선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병사들에게 외친다.
“어이! 병사들! 귀족 나으리께서 자기 요트에 태워주신다니까, 저기 흰색 요트에 타라!”
병사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잠시 후 귀족의 요트가 도착하고 먼저 배에 타고 있던 이들과 선장의 배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말없이 경례를 하며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선장은 그들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답했다.
서서히 물이 차는 배에서 그는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애석하게도 물은 빠르게 배 안으로 밀려들어왔고 옆구리에 뚫린 구멍에서는 빠르게 내장과 피가 빠져나갔다.
그는 왼손으로 튀어나온 내장을 쑤셔 넣으며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물고 자신의 배에 걸려 펄럭이는 성 조지기를 바라본다.
어린 시절의 영국 해군 기함의 선장이 되겠다는 꿈을 떠올리며, 그리고 다 늙어서야 그 꿈을 이룬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며...
그는 영국 해군의 기함과 함께 서서히 가라앉았다.
군함, 화물선부터, 민간 어선, 귀족의 요트, 심지어 학생들도 실습용 보트로 참여를 희망했던 1940년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9일에 걸쳐 진행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철수작전인 ‘다이나모 작전’에서 연합군은 물자를 버려가면서까지 338,226명의 인원을 탈출시키며 반격의 기회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