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등록청에 가는 길은 제법 한산했다. 슬라이드 워크를 타고 가다가 북동구역에서 내리면 되지만 길을 가다가 스캔 로봇과 마주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스캔 로봇은 생체 칩을 스캔하고 불법 장비가 있는지 조사하는 로봇이다. 지금처럼 생체칩이 없는 상황에서는 맞닥드리고 싶지 않은 존재다. 정말로. 그 로봇은 절대로 사정 같은 거 봐주지 않으니까.
등록청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 안은 후텁지근했다. 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 순서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고 나는 타버린 칩이 있는 팔을 내밀었다.
"뭡니까?"
"칩이 망가진 것 같아요."
"어디 봅시다. 타버렸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요?"
"감전사고가 있었어요."
"좋습니다. 새 칩을 등록받으려면 저기 기계 앞에 앉으세요. 비용은 500셀 입니다. 다음!"
카운터의 남자는 나를 한 켠으로 보냈다. 거기엔 선반이 있는 금속 의자가 있었고 나는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팔을 내밀었다. 직원이 나를 스캔하고 내 신체정보를 입력한 뒤 팔뚝에 칩을 박아 넣었다.
"따끔합니다."
여직원의 말과는 달리 칩을 삽입하는 건 몹시 아팠다. 눈물이 찔끔 났다. 어제 죽을뻔한 일을 겪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주사에 눈물을 보이다니. 내 자신이 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창 밖으로 슬라이드 워크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표정한 사람들, 자신에게 지시된 일을 하며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저들은 이 사회가 자신들의 삶과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일까. 노예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고대의 어떤 나라는 과연 행복했을까. 물론 노예의 삶은 지금 우리의 삶보다 훨씬 더 비참했을 것이기에 단순히 비교할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고단한 투쟁을 홀로 이어나가야 할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불법적인 일을 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내가 이 사회를 붕괴시켜야 할 이유는 아니라는 갱의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Tzorg 가 풀어놓은 로봇들의 지배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면 그걸로 족한 것인가.
그때 창 밖에 왠 남루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노인은 거기에 있었다. 지난번 생체칩의 카운터를 업데이트 할 때에도 분명히 그를 봤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그 노인을 향해 걸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뭘 하세요?"
"비켜라. 사람 안 보인다."
나는 옆으로 비켜서서 노인이 무엇을 하는가 유심히 쳐다 보았다.
"사천 이백 사십 팔.."
노인은 뭔가 숫자를 세고 있었다. 아마도 행인의 수를 세는 듯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의 수를 세고 계신 거에요?"
"숫자가 계속 줄고 있어."
"네?"
"등록청에 등록하러 오는 사람의 수가 줄고 있다고."
노인은 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옆에 있는 때가 꼬질꼬질한 수첩에 숫자를 적어 넣었다. 거기엔 페이지 가득 숫자가 적혀 있었다.
"작년이랑 비교해도 숫자가 계속 줄고 있어. 메가폴리스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거야."
"등록청에 오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단 말이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메가 폴리스에 거주하는 인원이 몇명인지 정확한 통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많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수가 줄어든다면 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노인들이 죽어서? 그럼 새로운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메가 폴리스의 시스템은 인구를 적정수로 유지할 것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의심을 갖지 않는다.
노인은 계속해서 사람의 숫자를 기록했다. 나는 그 옆에 주저 앉아 같이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대전쟁 이후 외부와 격리되어 살아가는 메가폴리스의 거주민은 백만을 헤아린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등록청에 온다면 그 수는 엄청날 것이다.
"지금 메가폴리스의 모든 사람들을 다 세고 계신 거에요?"
"칠천 삼백 이십 오."
노인은 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또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왜 여기서 숫자를 적고 계신 거에요?"
"노먼이 시켰어."
"노먼이 누군데요?"
"노먼은 지도자야. 우리를 해방시킬 지도자지."
해방이라니. 나는 번개에 맞은 듯 눈앞이 번쩍 하는 걸 느꼈다. 어제 본 범죄자들, 도적놈들이 아니라 우리를 로봇에게서 해방시킬 목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인가.
"노먼을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못만나. 너는 안돼."
"왜 안되는데요? 저 한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노먼은 선지자야. 아무나 만나지 않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근처의 가게에서 버거를 몇개 사 와서는 옆에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노인은 신경도 안 쓰고 숫자를 적고 있었지만 내가 두개째 먹을 즈음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드릴테니 노먼을 만나게 해 주세요."
노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안돼."
"얘기 좀 해 주세요."
"두개 주면."
나는 가서 한개를 더 사왔다. 노인은 주위를 둘러 보더니 말했다.
"남쪽 구역에 도서관 지역에 가서 도노반을 찾아. 도노반에게 노먼을 찾아 왔다고 해. 내가 말했다고 하면 절대 안돼."
노인은 버거 두개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아마 노인은 여기서 사람의 숫자를 세는 댓가로 음식을 공급받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남쪽 구역으로 숨어들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