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땅 사러 왔습니다."
외계인과의 첫 접촉은 장엄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정말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신문 구독을 권유하는 악당처럼 각국 원수의 자택 문을 두드렸다. 그들이 처음으로 한 말은 땅을 사러 왔다는 것. 우주간 무역을 주로 한다는 그들은 정말로 훌륭한 장사치였다.
그들은 지구인에게 항성간 여행이 가능한 우주선 설계도라든가 인공지능 컴퓨터 자동 클론 배양기 핵융합 발전기등 인간이 엄청난 가치를 지불하고라도 손에 넣고 싶어하는 기술을 제시했다. 그 댓가로 그들은 땅을 요구했다. 많은 국가 원수들은 처음엔 난색을 표했지만 비밀리에 합의를 이뤄냈다.
비밀 금고를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공사를 만들어내는 정치인들에게 이건 정말이지 훌륭한 기회였다. 외계인들의 제의는 정치인들의 훌륭한 치적으로 남았다.
마침내 몇 년 뒤 그들은 약속된 기술을 전달하고 땅을 가져갔다. 말 그대로 그들은 땅을 가져갔다. 인간들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기준으로 깎아낸듯한 절벽만을 남기고 저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파서는 케이크를 썰어가듯 들고 가 버렸다.
쓸모 없는 땅을 팔고 미래기술을 얻었다며 희희낙락하던 국가원수들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제공한 기술은 특수한 제어용 컴퓨터나 원료물질-만능변환 나노입자-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그 원료는 지구에선 찾을 길이 없었다. 몇 년 뒤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때 인간들은 항의를 시도했지만 좀 더 굴욕적인 결론을 맞이했다. 땅를 더 팔아서 필요한 원료를 확보하기로 한 것이었다. 몇몇 정치인들은 환경파괴를 이유로 판매에 반대했지만 다른 나라들이 기술을 손에 넣은 뒤 그들 사이에 벌어질 힘의 격차는 도덕심으로 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주지역과 농경지역을 제외한 사막과 황무지의 거의 대부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내어졌다. 지구는 벌레먹은 과일처럼 말 그대로 파먹혔다. 외계인의 기술은 파먹힌 지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 모습은 더욱 그로테스크했다. 파국은 그 뒤에 찾아왔다. 파헤쳐진 지형은 바닷물을 빨아들였고 해수면은 점차 낮아졌다. 바다가 없던 나라에 바다가 생겨났고 섬이던 나라는 넓은 영토가 생겼다. 기후는 변화했고 수많은 야생동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앞선 기술을 바탕으로 패권주의를 실현했다. 주변국들의 기술은 중국에 못미쳤기에 중국의 불합리한 요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강대국들이 아니라 약소국들을 비밀리에 찾아왔다.
그들이 제시한 것은 무기였다. 그동안은 아무리 큰 조건을 제시해도 들어주지 않던 그들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놓을 무기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북한이 무엇을 제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며칠 뒤 관찰된 것은 평양 주변의 조그만 땅덩이만 바다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북한이었다. 나머지 땅에 살던 인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평양의 지반이 어떤 식으로 버티고 있는지는 알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국토와 송두리채 바꾼 무기를 공개하며 중국과 미국 러시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구 공산권 국가끼리 남아있던 유대감은 제 1차 땅팔음 시기에 이미 날아간지 오래였다.
미국과 러시아는 우려를 표했지만 중국은 대국의 자존심을 그 즉시 드러냈다. 위성궤도위에 비밀리에 건설된 우주기지 화이에서 발사된 빔 병기가 평양섬을 강타한 것이다. 하지만 평양섬을 둘러싼 신비한 방어막이 모든 에너지를 튕겨냈다. 북해-대한민국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섬이 되었다-를 통해 밀려드는 해일은 남한섬에도 큰 피해를 주었다.
북한의 반격은 엄청났다. 외계인에게서 구입한 무기는 중국 상공에 거대한 로봇 공룡들을 뿌려댔고 중국의 주요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중국 지도부는 외계인 기술로 만들어진 열핵병기를 평양섬에 사용했고 그 결과 북한은 멀쩡했지만 오히려 남한섬의 북부는 괴멸적 간접 피해를 입었다. 평양섬이 신비의 방어막으로 보호받고 있는 반면 쓰나미에 처참한 피해를 입은 남한의 국민들은 땅이고 뭐고 다 팔아서 우리도 저 방어막을 구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외쳤다. 땅을 파는 건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매국노, 공공의 적 소리를 들으며 북해에 새로 생겨난 진흙뻘에 쳐 넣겠다고 협박을 받아야 했다.
중국과 북한의 전쟁을 다른 나라들이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ISIS는 미국과 유럽 러시아에 치명적 공격을 날리고 있었고 앙숙이던 국가들간의 위기감도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환경오염과 지구 환경의 파괴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외계인들이 대한민국에 비밀리에 찾아왔을때 그들이 북한에 공급했던 절대적 방어막을 주는 댓가로 요구한 것은 놀랍게도 대한민국 영토의 1/2 과 전 국민의 1/2 의 양도였다. 북한과 같은 조건이라고 했다. 외계인에게 팔려간 인간들이 어떻게 되는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대통령은 안보를 위해서라면 무엇도 희생할 수 있다며 조건을 수락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남한섬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거기 살던 사람들 역시 사라져 버렸다. 방어막을 얻고 난 대통령이 깨달은 것은 방어막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가 소모성이며 구입시 받은 에너지로는 도시 하나를 한달동안 방어하는 게 고작이라는 것이었다. 북한이 도시 하나만 남기고 모두 팔아치운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세계는 말 그대로 폭력과 혼란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각국은 무한 전쟁상태에 빠져들었고 각국의 대표들은 자신의 땅과 국민을 팔아 연명할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많이 팔아서 다른 나라에 우위를 선점하는 게 답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아예 북한처럼 땅을 다 팔아 다른 땅이 남아있는 나라를 쳐들어가 땅을 빼앗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북한과 중국은 결국 평화협상을 하고 압록해 북쪽의 땅 일부를 북한에 할양하는 것으로 싸움을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중국은 다음번 찾아온 외계인에게 또 다른 초월기술을 받아내어 평양섬을 말 그대로 압도적인 무력으로 수장시켜 버렸다. 이 싸움의 결과는 다른 강대국들의 전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즈음 미국에서 가장 많은 땅을 팔린 네바다주는 미국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남은 땅을 모두 팔아 다른 항성계로 이주할 이주선을 구입하고는 지구를 떠나버렸다. 그 어떤 기술과 자원을 획득해도 무한전쟁상태인 지구에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생각이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각국은 무정부상태가 되어버린 나라의 난민들을 사냥하듯 잡아들였다. 난민은 자원이었다. 난민을 바쳐 외계기술을 얻을 수 있다면 수지맞는 장사라는 인식이 세계에 팽배했다. 인도주의나 이타심은 탐욕과 욕심 아래 무릎 꿇었다. 노예제도가 사라진 이래로 다시 인간은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가장 상식적인 이들조차 땅을 팔아 이주를 꿈꾸게 될 즈음 지구엔 남아있는 육지가 거의 없었다. 살아남은 인류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인류연합이 지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거듭된 전쟁과 땅팔이로 지구는 더이상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마지막 남은 땅을 팔아 다른 행성의 식민지로 떠나고 난 뒤 외계인들이 지구로 찾아왔다.
그들은 수생 생명체였고 그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지구식으로 말하자면 테라포밍이었다.
그들이 한 행동은 '어떤 테라포밍도 행성에 거주중인 원주민, 지적 생명체의 동의없이는 할 수 없다' 는 우주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그들의 별로 만들어가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지구는 더 이상 지구가 아니라 수구라 불렸다.
거기에 원래 살던 생물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