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p11.jpg
[소설 <표면 장력>의 애니메이션 설정화. 전형적인 판트로피입니다.]


소설 <붉은 화성>과 <표면 장력>은 인류의 외계 행성 정착을 다룹니다. 그런데 두 소설의 행성 정착 방법은 서로 다릅니다. <붉은 화성>의 인류는 외계 행성의 환경을 인간에게 맞춥니다. 초기에 돔에서 생활했지만, 인간이 행성 표면에서 살 수 있도록 대기 및 기타 환경을 바꾸었습니다. 소위 테라포밍이죠. 테라포밍은 SF 창작물의 단골 메뉴이며, 하드 SF부터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다양하게 변주하는 소재입니다. 이에 비해 <표면 장력>에서는 행성의 자연 환경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보다 인간의 신체를 바꿉니다. 해당 소설에서 외계 행성의 표면은 99%가 물입니다. 지구도 물의 행성이지만, 저 외계 행성이야말로 진정한 물의 행성이죠. 그래서 인류는 자기 몸을 인어처럼 바꾸고, 해당 환경에 적응합니다. 이런 설정을 소위 판트로피라고 부르더군요. 말 그대로 다양하게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광범위하게 쓰이는 테라포밍과 달리 판트로피는 그리 인기 있는 소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인기 자체야 많지만, 아무래도 테라포밍의 인기보다 떨어진다고 할까요.


테라포밍과 판트로피의 문제는 주체의 문제입니다. 환경을 인간에 맞도록 바꾸느냐, 인간이 환경에 맞도록 바꾸느냐. 대부분 사람들은 환경을 인간에게 맞춰야 한다고 대답할 겁니다. 당연하겠죠. 우리 신체를 환경에 맞추면, 자칫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잖아요. <붉은 화성>에서 인류는 지구에 살든 화성에 살든 어쨌든 인간입니다. 오히려 화성이 지구처럼 변했습니다. 그걸 계속 화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간은 인간답게 남았습니다. 반면, <표면 장력>에서 인류는 원래 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수중 인류는 더 이상 인류가 아닙니다. 인간의 개조된 후손일 따름입니다. 크기도 다르고, 호흡 방법도 다르고, 신체 구조도 다르고, 끝내 사고 방식마저 다릅니다. 그런 생명체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글쎄요, 대부분 사람들은 같은 인간끼리도 사상이나 피부색, 계급, 성별에 따라 차별합니다. 이런 마당에 수중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할 리 없겠죠.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그런 고정관념을 타파한다고 해도 생물학적으로 수중 인간들은 우리 인류와 전혀 다른 종입니다. 그렇게 수중 인간으로 바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지?


따라서 똑같은 외계 정착 방법이라고 해도 테라포밍은 판트로피보다 인기가 많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정체성을 유지하기 원한다면, 그런 결과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테라포밍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인류 문명이 아무리 자연 환경을 바꾼다고 해도 거시적인 생태계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을까요. 행성 전체의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까요. 38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 동안 생명체들은 지구를 다양하게 바꿨습니다. 고대의 초기 식물들이 산소를 뿜지 않았다면, 후대의 고등한 동물들 또한 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지금쯤 머나먼 외계의 어딘가에서 생명체들이 자기네 고향별의 환경을 바꾸는 중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직 외계 생태계를 관찰하지 못했지만, 저는 지구가 유일한 생명의 요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우주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있고, 어딘가에 또 다른 생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복잡할 수도 있고, 단순할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그 생명체들도 자기네 행성 환경을 바꾸는 중일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릴 테고, 자칫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죠. 기후가 제멋대로 바뀔 수 있고요.


ptp12.jpg
[이런 소설의 설정이 발전한다면, <아바타>처럼 판트로피로 변주할 수 있겠죠.]


제일 간편한 방법은 기계 사용입니다. 그러니까 돔 속에 도시를 만들면 됩니다. 아니면 거대한 폐쇄 도시를 만들거나. 그러면 행성 환경을 바꿀 필요도 없고, 우리 몸을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돔 속의 도시나 폐쇄 도시의 규모는 제한적입니다. 인구를 그렇게 많이 담을 수 없죠. 본격적인 생태계 조성은 꿈도 못 꿀 겁니다. 돔 속의 도시나 폐쇄 도시는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시설일 뿐이고, 본격적인 거주를 위한 시설이 되기 힘들죠. 돔 속의 도시가 얼마나 커질지 설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성 전체를 돔으로 둘러쌀 수야 없지 않겠어요. 만약 유전자 조작 기술이 어느 정도 발달했다면, 환경을 바꾸는 대신 우리 몸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게 훨씬 쉽고 간편한 방법이죠. <표면 장력>의 수중 행성과 수중 인간처럼요. 물론 굳이 몸을 바꿔야 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외계 행성에 정착해야 하는지 의문이겠죠. 인간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로 변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어느 정도 그게 사실이고. 말 그대로 개척이 아니라 정착이겠군요.


<표면 장력>은 전형적인 판트로피고, 훨씬 변칙적인 사례로 레토 2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듄의 아이들>에 나오죠. 사실 <듄> 연대기는 테라포밍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테라포밍은 인류의 정착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멜란지 스파이스를 얻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테라포밍의 주체도 인류가 아니라 모래 송어죠. 아라키스는 원래 초목과 물이 풍부한 행성이었지만, 모래 송어들이 여기를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모래 송어들은 물을 가두고, 점차 행성의 수분을 없앴습니다. 그 결과, 아라키스는 사막으로 변했고, 거대한 모래 벌레들은 걱정 없이 사막을 누빕니다. 인간들은 여기서 스파이스를 마음껏 채취했고요. 그러나 아라키스의 혹독한 사막 환경에서 인간들은 생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라키스 원주민들은 자연 환경을 예전처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멜란지 스파이스가 중요해도 어쨌든 사막에서 살기 힘드니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모래 벌레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어요. 레토 2세는 그 점을 걱정했습니다. 모래 벌레와 스파이스를 보존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널리 알려졌다시피 모래 송어와 파이널 퓨전…이 아니라 합체했습니다. 인간도 아니고 모래 송어도 아닌, 전혀 새로운 생물이 되었죠. 이제껏 진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레토는 그야말로 신격으로 숭배를 받습니다. 무엇보다 레토 자신이 모래 벌레의 혈통과 스파이스를 보존할 수 있었죠. 레토의 아버지 폴도 그런 방법을 알았지만, 차마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인간으로 남을 수 없으니까요. 레토는 자신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폴은 그렇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레토의 변신은 전형적인 판트로피와 다르지만,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변신이 아니었죠. 오히려 모래 송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변신이었습니다. 흠, 그렇다면 현실의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그런 동물로 변신하면 어떨까요. 인간이 아무르 표범과 합체한다면? 좀 얼토당토 않은 생각 같지만, 혹시 모르죠. 먼 미래의 인간들이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할지도….


ptp13.jpg
[인류는 토착 야생 동물을 부리고, 끝내 그들의 유전자까지 받아들입니다.]


이런 설정을 고려한다면, <비욘드 어스> 같은 게임도 테라포밍과 판트로피의 갈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습니다. 지구를 탈출했고, 새로운 외계 행성에 정착했죠. 이들 개척자가 외계 행성에 정착하는 과정이 게임 <비욘드 어스>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정착민들 사이에서 방법론을 두고 문제가 터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외계 행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바꾸자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순수 성향이죠. 인간은 순수하게 남고,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인간이 외계 행성의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아예 토착 생명체처럼 바꿉니다. 진짜 토착 생명체는 아니고, 레토 2세처럼 혼합된 생명체죠. 뭐, 환경에 부담을 덜 주겠지만, 이러면 정말 인간의 정체성을 버리는 셈입니다. 폴 아트레이드가 두려워한 것처럼요. 이들은 조화 성향입니다.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꾀하지만, 과연 이런 방법이 옳을까요. 이처럼 <표면 장력>이나 <듄의 아이들>의 판트로피는 뭔가 오싹하고 기묘한 고민을 던집니다.


그 밖의 사례로는 <알타이르의 바람>이나 <유령 여단>을 언급할 수 있겠군요. <알타이르의 바람>은 사실 판트로피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인간 탐사대가 외계 행성의 생태계를 탐험하기 원하지만, 환경이 너무 혹독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내려가는 대신, 외계 행성의 토착 동물들을 개조합니다. 유전적 개조보다 정신적 개조입니다. 인간의 뜻대로 동물들을 조종하고 탐사하죠. 판트로피의 본래 뜻과 한참 멀지만, 이런 방법도 있다는 뜻에서 잠깐 소개하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설정이 발전하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같은 작품도 나올 수 있어요. <유령 여단>에 나오는 가메란 병사들은 정말 깨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우주에 적응했습니다. 여타 판트로피 생명체들이 행성에 적응했다면, 가메란 병사들의 적응 대상은 우주입니다. 당연히 겉모습은 인간과 완전히 딴판입니다. 일반 개척 병사들도 인간 수준을 벗어났지만, 가메란 병사는 그야말로 우주 괴수 같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엄연히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만, 글쎄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지? 생존성은 엄청나겠지만,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판트로피의 사례는 이 밖에도 여러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행성 정착 방법으로 테라포밍이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판트로피에 더 관심이 갑니다. 아무래도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우리 몸을 바꾸는 게 더 신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