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우주의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으니 비슷함을 들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몹시 낯설고 다르다는 것 뿐.
구태여 무엇인가를 예로 들어야 한다면 아마도 악몽이 아닐까.
인간이 태어나 뇌가 발달하면서 갖는 여러가지 감정중 이것과 연관있는 것을 고르라면
불쾌감과 공포일 것이다.
이 존재가 내 꿈속에서 뭘 원하기에 나를 괴롭히는지는 모르겠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꿈 속의 존재.
그렇다.
나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악몽이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이 악몽이 끝날지도 모른다.
꿈은 끝나고 아침이 되면 악몽도 기억에서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이 악몽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내가 이 꿈속에서 보낸 시간이 이미 20년이다.
처음에는 인식조차 불가능하던 저 존재가 나름의 형상을 갖고 불쾌한 모든 요소들로 재조립되어
덩어리를 이룬 시간은 그렇게 길었다.
왜 이곳이 꿈인줄 아느냐고?
처음 눈을 떠서 붉은 황무지 위에 홀로 서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내가 처음 한 생각은 내가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해가 뜨고 지는 동안 나는 아무런 배고픔도 피로도 느끼지 못했다.
살아있는 존재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미친듯이 달렸고 땅에 머리를 두들겨댔지만 고통도 괴로움도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꿈에서 끔찍한 것은 나의 정신이 매우 맑다는 것이다. 다른 꿈들도 이런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가 지낸 수십년의 하루 하루를 눈앞의 일들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모든 감각을 고양시켜 바늘끝처럼 날카롭게 벼려놓고 가해지는 고문처럼
나는 이 곳에 갖혀 버렸다.
아침이 오고 나는 잠에서 깨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몸일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 끔찍한 감옥에 갖혀 있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내 몸이 나의 일상적인 삶을 계속하는 걸 꿈 속의 황무지에서 바라봐야 했을 뿐이다.
이를 닦고 화장실에 가고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내가 느낀 끝없는 절망감과는 반대로 권태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이 상황을 이끌어낸 누군가가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계속 내 곁에 있었다.
분명 처음에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이 생겨난 것은 3년쯤 지난 시점의 일이었으니까.
처음엔 유령과도 같은 으슬한 느낌, 그것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무언가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내 감각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스스로를 드러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꿈속에서 내가 과도하게 날카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공격하지도 위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불친절했다.
아니 그보다 더 적대적이었다. 혐오하고 부정하고 질투했다.
질투.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가질 감정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질투였다.
그것은 나의 감각에 반응하여 불쾌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모습을 만들어갔다.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모습, 가장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의 형태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것이 피가 뚝뚝 떨어지며 꿈틀거리는 고기덩어리의 모습으로 처음 형상화 되었을때부터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내가 어딜 가든 그것은 나를 따라왔다. 어쩌면 그것은 이 공간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리 해도 도망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공격했다.
하지만 내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공격하여 아프게 하지 않는 것처럼.
꿈 속에서 싸워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내가 상대를 세게 때려도 그것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이 녀석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실체를 가진 유령. 부서지지 않는 끔찍한 신기루의 산이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허깨비가 날마다 조금씩 그 모습을 뚜렷이 하며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것의 고기조각이 갈라지고 입이 생겨날 즈음 그것은 불쾌하기 그지 없는 소음에 악취까지 풍겨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완전히 확신했다. 이것은 지옥임에 틀림없다고.
그 생각은 그다지 틀리지 않았다. 그 감각의 지옥은 끝없이 확장되어 정도를 더해갔다.
그건 파고드는 아픔이라기 보다는 덕지덕지 쳐발라지는 혐오감이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왜 미치지 않고 이 고통을 마주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지은 죄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건지도 모른다.
나는 끝없이 신의 이름을 외치며 나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구체화된 형태를 지닌 고깃덩이는 어느새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 찢어진, 불쾌감을 주는 누더기를 걸치고 온 몸에서 부스럼과 진물이 흘러내리는 남자는 나와 키가 비슷했다.
그는 끊임없이 거슬리는 소음을 흘리며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함을 표현하는 기괴한 몸짓을 하며 내 옆에 머물렀다.
그것은 나의 악몽,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아픔.
그는 어쩌면 나의 죄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괴물, 고통. 그리고 감옥.
꿈 밖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내 몸은 밥을 먹고 싸고 사랑하고 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황무지 속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내 몸을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것이 나일지 아니면 또다른 악몽일지.
황무지 위로 떠오르는 달처럼 저 먼 곳에는 나의 삶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건 나의 삶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것이다.
나의 삶은 나를 속박하고 있는 이 붉은 유배지와 나를 바라보는 불쾌한 사나이다.
이 반복되는 지옥을 끝내고 싶지만, 나는 나를 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죽지 않고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