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화가 되었고 SF 장르에 철학적 주제가 적절히 토핑되어 있으며 이야기 전개에서 기묘하게 비슷한 점이 많고 꽤 잘 만들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게임에 대한 1+1 이벤트 감상입니다. 물론 제가 맨날 비슷비슷한 말투의 감상글 재미 없게 쓴다고 느끼시면서 스크롤바를 내리실 분들을 위해 미리 말씀드리자면, 해당 게임 장르와 SF적 아이디어 둘 다에 관심 있으시면 꽤 손대볼 만한 물건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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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로스 법칙(The Talos Principle)





 꽤 전에 포탈 2를 해보고선 제가 해본 것 중 가장 완전한(완벽한 것은 아니고) 게임이라고 생각했었다는 평가를 쓴 적이 있었죠. 몇 년이 지나고서도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물론 사람 따라 평가는 얼마든 달라집니다만.

 어찌되었건, 포탈 시리즈의 호평 덕에 1인칭 퍼즐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유행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1인칭 시점으로 여러 퍼즐이 들어 있는 방 사이를 이동하고, 게임상의 각종 물체들을 물리적으로 배치하고 옮기고 조작해 가면서 진행해나가는 게임들이죠. 포탈이 그랬던 것처럼 퍼즐 풀 때마다 약간씩 스토리를 진행해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거 없이 퍼즐만 쭉 이어나갈 수도 있습니다. 안티챔버, 퀀텀 코넌드럼, 큐브, 매그러너 등등 지난 몇 년간 몇 개의 유사 작품들이 나왔고 재작년에는 탈로스 법칙도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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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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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코넌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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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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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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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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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로스 법칙




 뭔가 비슷비슷한 느낌들이죠. 다른 비슷한 게임들과 비교해보자면 탈로스 법칙은 뭔가 혁신적이고 참신한 퍼즐용 아이디어는 없고, 유머도 없습니다. 다만 꽤 진지하게 철학적 아이디어에 대해 언급한다는 거죠. 네, 전자오락도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대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끝도없이 밀려오는 적들에게 총질만 하는 것으로 유명한 게임 시리어스 샘 시리즈를 만들던 크로아티아의 회사 크로팀에서 뭔 바람이 불었는지 몰라도 꽤 진지한 메시지의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어쨌건 경력이 있으니 그래픽도 근사하고 음악도 근사하고, 작가도 새로 하나 영입한 덕에 잘 만들어져 흠잡을 구석은 없어요.


 어떤 식의 철학인가에 대해 조금만 말해 보자면, 제목의 탈로스는 엘더스크롤 시리즈에서 탈모어와 제국국간의 전쟁으로 성립된 백금조약에 의거 탐리엘에서의 숭배가 금지된 타이버 셉팀 황제의 탈로스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청동 거인 탈로스입니다. 탈로스 법칙이란 게 별 건 아니고...음, 아뇨.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까진 이야기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여전히 논의의 깊이는 ‘게임적으로’ 얕습니다만, 그리 현학적이진 않다고 느낄 만큼 꽤 흥미로운 인용문들과 토론거리가 준비되어 있고, 이야기 자체야 간단하지만 생각보다 꽤 인간적인 터치가 가미되어 있어 꽤 만족할 만합니다. 퍼즐 하나 하나 풀어갈 때마다 던져주는 이야기 실마리는 이 다음 퍼즐을 꼭 풀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해주기에 부족함이 없고, 심지어 공식 한글 더빙에 번역까지 되어 있습니다. 준수한 더빙에 비해 번역 퀄리티는 좀 들쑥날쑥해서 아쉽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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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CRT 모니터에 나오는 글 읽는 게 이렇게 재밌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더랩니다.




 다만 게임의 핵심이 되는 퍼즐 자체는 조금 아쉽습니다. 일단 퍼즐 자체의 난이도도 쉬웠다 어려웠다 오락가락하는 편이고, 설명이 제대로 안된 부분도 있습니다. 선풍기를 뜯어다 스위치 위에 올릴 수 있다던가 폭탄 위에 상자를 얹고 올라갈 수 있다는 건 별 설명도 없는데 플레이어가 어떻게든 눈치를 채야만 하는 지저분한 부분이죠. 발판을 밟아 문을 열고 레이저를 반사시켜 각도를 맞춰야 하는 식의 퍼즐들은, 구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미 여타 퍼즐 게임들에서 수도 없이 봐온 것들이기도 해서 참신한 맛은 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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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이놈의 조각 맞추기는 하다보면 정말로 욕 나옵니다.




 게다가 그 숫자도 너무 많습니다. 일단 1인칭 퍼즐들을 풀다 보면 테트리스 조각맞추기 퍼즐들에 쓸 조각들을 모을 수 있고요, 그 조각들을 모아서 퍼즐을 맞추면 1인칭 퍼즐에 쓰는 소도구들을 얻을 수 있고, 다시 1인칭 퍼즐들을 풀어서 조각들을 더 모아서 맞추면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또 퍼즐 조각을 얻고요, 혹시 게임이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또다른 퍼즐을 풀어서 다른 조각 퍼즐을 풀면 힌트를 몇 개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 뭔 퍼즐이 이렇게 많아! 한 100개도 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퍼즐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퍼즐 장르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서 좀 질리는 감도 있었습니다. 전 퍼즐에 좀 약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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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요소들도 제법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벽에 걸린 도끼도 용도가 있죠.




 제일 큰 불만이라면...불만이라기보다는 정말 아쉬운 거였지만, 엔딩을 보면서 든 생각은 포탈 스타일의 퍼즐 게임보다는 다른 장르로 나왔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포탈식 게임플레이는 어떻게 보자면 좀 게으른 디자인이기도 하거든요. 퍼즐 잔뜩 만들어서 게임 길이 늘려 놓고, 플레이어가 퍼즐 하나 풀 때마다 이야기를 조금씩 잘라서 보상으로 감질나게 던져주는 수법 아닙니까.

 이거야 포탈에서는 포탈건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퍼즐을 맞추는 이야기를 끌어가려다 보니 나온 게임 방식이지만, 탈로스 법칙은 이야기가 먼저 나온 경우고 퍼즐은 어떻게 이 이야기를 플레이어에게 던져주기 위한 수단에 그치거든요. 특히나...음, 제가 언급해서는 안될 특정 요소를 따져보면 이게 더욱 더 문제가 될 법하죠.

 좀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보자면, 아마 포탈이 없었더라면 탈로스 법칙은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으로 나왔을 겁니다. 고전 어드벤처 게임들도 퍼즐이 한가득이었지만, 최소한 이 경우는 비슷비슷한 퍼즐들이 수도 없이 나열되기보다는 내러티브와 세계에 좀 더 걸맞게 정교하게 설계된다는 차이가 있죠. 심지어 어쩌면 RPG로 나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동료 몇 명쯤 이끌고 이 주제에 이 세계관을 갖고 이런저런 선택과 생각들을 담아낸다면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건 탈로스 법칙보다는 훨씬 더 만들기 어려운,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게임이기도 하겠지만 말예요. 그게 왜냐하면...

 

 왜냐하면...중대 스포일러입니다. 누르면 펼쳐집니다.


 탈로스 법칙의 이야기는 인류가 멸망하면서 인류를 계승할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가상현실 세계를 남겨 두었고, 그 안에서 인공지능인 플레이어가 퍼즐을 풀며 ‘성장해’나간다는 겁니다. 결국 성공하면 인류의 계승자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죠.

 헌데, 게임의 주제와 맞춰보자면 게임 진행이 그리 복잡할 건 없는 퍼즐의 연속인건 상당히 이상한 일입니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게임 개발할 때에는 퍼즐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진짜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써서 돌렸다던데, 아무리 그래도 단순한 알고리즘을 쓰는 요즘 컴퓨터도 풀 수 있는 이런 단순한 물리 퍼즐 가지고 신인류를 만들겠다는 건 내러티브적으로는 아무래도 어설프죠. 물론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밀턴(존 밀턴이겠죠?)과 도덕적 논쟁을 좀 하기는 하고, 그 틀을 깨고 나오는 게 궁극적 목적으로 숨겨져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좀 더 넓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시험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RPG 같은 걸로 나오는 게 어땠을까 싶은 겁니다. 좀 더 거창한 이야기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인공지능을 위한 시험을 연출할 수 있을 테니 말예요. 도덕적 선택도 넣을 수 있을 테고...흠, EL을 만든 여자 과학자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 하나 넣고, 괜찮은 게임 나올 것 같은데요.

 하나 더 태클을 걸자면 아무리 그래도 인류가 바이러스 때문에 멸망했다는 설정은 정말로 무리수 같아 보입니다. 뭐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게임상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평화롭고 준비된 상태로 멸망을 맞이하진 않았을 건 확실해요. 평범하게 운석 충돌 같은 거나 써먹지...





 네, 그래서죠. 넘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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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SOMA)




 재작년의 탈로스 법칙에서도 소마는 이야기상 상당히 중요한 뭔가를 일컫는 단어인데, 희한하게도 비슷한 요소가 꽤 있는 게임으로 소마가 작년에 나왔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앞서 탈로스에서 제가 아쉽다고 생각했던 걸 누가 눈치채고 타임머신 만들어서 과거로 되돌아가기라도 했는지(물론 저 말고 그게 아쉽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만) 이건 어드벤처 게임으로 나왔네요.

 필립 K. 딕의 영향력이야 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게임 시작하면 PKD의 인용구가 바로 떠 주고, 곧이어 교통사고를 당했던 주인공이 치료를 위해 뇌 스캔을 받는데, 다음 순간 괴물이 들끓는 미래의 해저기지에서 깨어납니다. 딱 토탈리콜/기억을 도매가로 팝니다 느낌이 물씬 풍기죠. 이후로는 게임 문법적으로는 무기가 없는 데드스페이스/바이오쇼크풍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한때 잘나갔지만 다 망가진 동네를 둘러보면서 기막히게 장소별로 잘 흩어져 있는, 끔찍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고 이리저리 떠도는 기괴한 괴물들에게서 열심히 도망쳐야 하는 그런 거 말예요.

 그러니까, 호러 어드벤처 게임이죠. 애초에 표지 보시고 감 잡으셨죠? 전 퍼즐 뿐만 아니라 공포 게임에도 약합니다만 따지고보면 이 게임은 별로 안 무섭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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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 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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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그게요...




 사실 실제로는 대부분 그리 무섭진 않고 불안하고 찜찜한 분위기 정도에 그칩니다. 공포 게임에 정통한 개발사가 만들었지만 일부러 그런 연출들을 많이 자제한다는 느낌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좀 그런 식이긴 하지만 게임 자체를 놓고 보자면 상당수의 공간이 꽤 밝고, 괴물들도 그리 자주 나오진 않아요. 호러게임에 빠질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플레이어 뒤꽁무니에 바싹 달라붙는 괴물들 말예요. 사실 이 게임에 대한 평을 보면 괴물들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들이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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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주 창의적일 건 없어도 게임 분위기에 맞춰 적절히 호러스럽게 생겼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좋지 못한 건 아쉽습니다. 그나마 호러 게임이라 사람을 볼 일이 거의 없고, 괴물들은 어색하게 움직이는 게 당연하니 크게 눈에는 안 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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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문제는 괴물이라기보다는 게임의 배경입니다. 배경 디자인 자체는 개인적으로 정말 특기할 만한 요소고 칭찬해줄 만하다고 봅니다. 소위 돈 많이 바른, 기술적으로 좋은 그래픽은 아니고 그렇게까지 참신한 장소도 아니지만 해저라는 느낌을 정말 압도적으로 잘 살려냈고, 해저 기지 역시 각 층 단위로 정말 디테일하고 그럴듯하게 잘 만들어냈습니다. 누군가 심심풀이로 접은 개구리 종이접기부터 책 한 권 한 권과 문 여는 스위치, 자잘한 도구들 하나하나까지 열심히 컨셉 아트 그려 가며 만들어낸 티가 납니다. 천천히 살펴보면 낙서 하나하나, 경고문구 하나하나까지 다 신경써서 그럴듯한 위치에 배치해 놨어요. 이야기 전개상 다양한 장소들과 도구들을 자연스럽게 잘 살려주고 있으면서도비디오 게임의 세상엔 흔한, 반복되어 나타나는 오브젝트나 포스터 내지는 부자연스럽게 구성된 공간 같은 게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실제 사람이 살던 곳에 와 있다는 현실감이 정말 좋습니다. 애초에 짧은 게임이라 같은 공간이 반복될 여지가 적긴 합니다만...그래서인지 분량도 짧고 텍스쳐도 저해상도인 주제에 용량을 20기가나 먹긴 하네요.


 아무튼 그것까진 좋은데, 심해저 기지에 걸맞게 기지 내부 구조가 단순하고 정말 현실적으로 좁다는 게 문제입니다. 덕분에 현실감은 있는데 괴물들이 나타나도 피할 데가 없어요! 공간이 좁으면 어딘가 캐비넷 같은 데 숨는 기능이나 미끼를 던져서 유인하던가 하는 기능이라도 만들어 놓던가 말입니다. 인공지능도 뭔가 요상해서 결과적으로 괴물에게서 숨던가 피하던가 하는 게 영 골치아파지니 무섭다기보다는 짜증이 나는 거죠. 무서우라고 넣은 게 무서워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괴물을 빼버리는 게 낫지 않얐나는 의견도 종종 보입니다만, 그건 좀 심하고요. 그래도 소마는 근사하게 구현된 심해 기지를 돌아다니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전개하는 전통적인 어드벤처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얼마든 더 무섭게 할 수는 있었을 거예요 아마. 안 그런 게 제게는 다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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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분위기 하난 정말 좋습니다. 바이오쇼크와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훨씬 현실적이죠.




 한편 이야기를 보자면, 이 게임의 배경 디자인이 그렇듯 그리 창의적이진 않아도 상당히 밀도 깊고 디테일하게 짜여진 이야기입니다. 철학에 대한 게임의 주제는 탈로스 법칙에서처럼, 역시 게임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얕고 명백하게 주어집니다만, 아니 그 게임보다도 훨씬 더 얄팍하지만, 그래도 이야기에 녹여내려는 시도 자체는 썩 나쁘지 않습니다. 탈로스 법칙과 달리 비공식 한글화가 되었지만 퀄리티는 매우 좋아서 이해엔 지장이 없기도 하고요.

 다만 이 이야기 역시 중대한 문제점이 있는데, SF 물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목적을 알게 되자마자 그게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특징 몇 가지를 바로 눈치챌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걸 잘 모르는 플레이어들을 배려해서인지 관련 언급이 여러 차례 나오고, 주인공조차도 그걸 어떻게 눈치 챌 뻔한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좀 있다가 그 점을 충격적인 척 빵 터뜨려 버리는 건 효과가 아무래도 약하죠. 물론 SF 물 좀 먹어본 사람은 국내외에 그리 많지 않은 고로, 이 점에 대해 호평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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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뭔지 잘 안 보이신다고요? 네...그게 문제인 부분입니다. 해보시면 알아요.




 뭐 그렇다고 영 맥빠지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전개는 확실히 좋고,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한다기보다는 명백한 결말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기분의 진행을 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꽤 우울한 이야기고 심연의 공포라는 분위기 자체가 잘 나왔기에 그 경험 자체는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만, 기왕 할 거면 그런 철학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좀 다른 쪽으로 핀트를 맞추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집니다.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괜찮은 요소가 하나 있는데 이게 좀 부실하게 활용되거든요.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두 게임 다에 대한 중대 스포일러입니다. 누르면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멸망할 인류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관련된 이야기죠. 생각해보면 다른 장소와 배경과 장르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 뼈대를 보자면 소마와 탈로스 법칙은 매우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탈로스 법칙에서는 바이러스로 멸망한 인류를 계승할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남겨진 컴퓨터가 가상현실에서 테스트를 돌리는 거고, 소마에서는 유성 충돌로 멸망에 들어선 인류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가상현실을 만들어 인격들을 컴퓨터에 업로드하고 우주에 위성으로 띄우려 드는 이야기거든요.

 소마에서는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과거의 인격이 이식된 로봇에 불과하다는 반전은 꽤 뻔한지라 게임상에서 그리 크게 터뜨리지는 않고, 희한하게도, 탈로스 법칙에서도 역시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는 이 반전이 역시 뻔하다고 생각하고 간단히 메시지로 노출시킨다는 공통점도 있군요.

 문제라면야, 우주에 가상현실이 든 위성을 띄운다고 해서 인류가 진짜로 살아남는 건 아니잖아요. 거기 실리는 건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의 복제 프로그램일 뿐이죠. 게임상에서는 어쨌건 멸망 앞에서 그거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정당화를 하지만, 우주에 보낸다고 해도 위성 컴퓨터 고장날 때까지 그저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만 있는 것이고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던가 다른 곳으로 간다던가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설정입니다.

 결국 우울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만,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에 WAU라는 인공지능이 끼어 있다는 것이죠. 인류 멸망 앞에서 이 인공지능은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 인식능력의 한계상 로봇들에 어설프게 인격을 이식하거나 인간을 개조한 기괴한 괴물들만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입니다. 주인공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로봇이고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며 이런 괴물들을 피해다녀야 하죠.

 그러니 지금처럼 주인공이 WAU를 간단히 죽일까 말까 결정한 뒤 위성에 실려가는 건 자기가 아닌 자신의 복제본일 뿐이라는, 스타 트렉 좀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반전을 뒤늦게 깨닫고 절망하는 엔딩을 넣기보다는...위성쪽에는 탐사로봇도 실려 있고 무인 달 기지에 보내서 장기적인 생존을 도모할 수도 있다던가 좀 더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설정을 주고, WAU 쪽에서도 인류 대신에 이제는 지옥이 된 지구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트랜스휴먼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부여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쪽으로 하면(가령 전력 수급 문제로 한쪽을 골라야만 한다던가)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최소한 WAU를 너무 부실하게 등장시켰다 퇴장시킨 것만은 사실이니까 말이죠.

 물론 뭐, 말은 그렇게 해도 한편으로 보면 우울한 비극에는 우울한 비극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건 사실이기도 합니다. 소마를 진행하다 보면 의외로 꽤 골치 아픈 선택지들이 주어지지만, 게임의 결말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아 운명론적인 느낌마저 주거든요. 지금 엔딩도 꽤 인상 깊은 것도 사실이고요.

 



 탈로스 법칙 때도 그렇고 제가 괜히 잘난척 하는데 뭐, 훈수 두는 사람이 항상 더 잘하는 척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쨌건, 둘 다 게임 치고는 꽤 좋은 SF입니다. 비디오 게임들은 시스템과 플레이 방식 같은 거 고민하느라 바빠 장르적 아이디어에서는 부실한 게 보통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꽤 흥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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