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토리텔링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자체에서 정말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스토리텔링의 목적이 '이야기를 통해서 정보나 장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메탈기어 솔리드(특히 요즘 작품) 같은게 비판받는 것은 대사나 사건을 잔뜩 늘어놓고 주입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가 점점 재미없어지는 것은 단순히 게임 플레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메탈기어 솔리드에서 자랑하는(아마도 코지마 히데오는 그렇게 생각할) 영상 스토리텔링(비주얼 스토리텔링)조차 재미없다는거죠.

동영상이 잔뜩 들어간 게임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나는 게임을 하고 싶어. 동영상을 볼거면 차라리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아니에요. 동영상이 정말로 재미있다면, 위와 같은 반응은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문제는 있겠지만, 영상이 정말로 재미있으면 그것에 몰입할 수도 있죠.

문제는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 최신작의 영상은 뭐랄까... 충격적이고 강렬하기는 한데 몰입하기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Artworks-metal-gear-solid-v-the-phantom-pain-038.jpg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거에요. 실제로 최신작 "메탈기어 솔리드 팬텀 페인"의 리뷰는 항상 좋은 내용 일색이거든요.(여러 리뷰 대부분 10점 만점에 9점대 이상이며 스팀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일부 매체를 제외하면 이제까지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굳이 '이 작품의 스토리텔링은 별로'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대사가 너무 많습니다. 그 대사 대부분은 뭔가 이상한 철학으로 넘쳐흐르거나 정신병적이고,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굳이 표현하면 중이병?) 성우들의 열연이 아니라면 계속 보고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한편으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굳이 말하면 마이클 베이 영화 같아요. 마이클 베이 영화는 그나마 2시간 안팎이지만,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최신작의 동영상은 드라마 반 시즌급이죠.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플레이보다 동영상이 길다는 겁니다.

사실 정말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팬텀 페인"은 동영상이 대략 5시간 30분. 실제 플레이 시간은 20시간 정도니 한 1/4 정도일까요?

그럼에도 뭔가 동영상이 플레이보다 훨씬 길게 느껴집니다. 앞서 말했지만, 동영상이 뭔가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게임 플레이에 꼭 필요해서도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의 내용을 영화로 만든다면 2시간짜리 영화 한편으로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엄청나게 높은 밀도로 엄청나게 재미있게 나올 가능성도 있겠지요.


메탈기어 솔리드 3의 확장판에는 메탈기어 솔리드 3의 내용을 영화처럼 구성한 부록이 있습니다. 대략 200분. 그러니까 3시간 반이 안 되네요.

이는 영화와 마찬가지죠. 촬영 분량은 실제 영화의 몇 배가 되지만, 그걸 줄이고 줄여서 만드는 거니까요.

실제 동영상 컷신을 다 모으면 4시간이 넘지만, 그걸 볼만하게 만들면 플레이 영상을 포함해도 3시간 반이면 충분하고도 넘친다는 얘기.(솔직히 이것도 보면서 좀 길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메탈기어 솔리드 4"나 "메탈기어 솔리드 팬텀 페인"도 이야기 규모로 보면 그 정도로 충분할 것 같은데, 동영상만 5시간을 훌쩍 넘깁니다.

게임 플레이 시간은 더 줄어들었고 말이지요.

문제는... 그 동영상의 내용도 '미완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거죠.

그러다보니 메탈기어 솔리드는 직접 해 보기보다는 사기는 하되, 좀 하다가 집어 던지고 유투브를 검색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그래도 저는 코지마 히데오 작품은 MSX1,2용만 빼고 다 사서 갖고 있으며 대부분 엔딩도 봤습니다. 스내처와 폴리스너츠는 물론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도.)

사실 막장 드라마도 진행이나 결말은 궁금하지 않습니까? ^^ (근데 이 '팬텀 페인'은 그나마 미완이죠.... 완성되었다면 동영상만 7~8시간쯤 되었을 듯?)

어찌되었든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첫번째 작품이 '타임즈에서 20세기 최고의 시나리오'로 선정했을만큼 스토리텔링이 호평받은 작품이지만, 뒤로 갈수록 스토리텔링이 무너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코지마 히데오는 "슈퍼마리오" 시리즈를 접하면서 영화 제작자의 꿈을 접고 게임 개발자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 참여했던 "꿈의 대륙(몽대륙)"은, 그리고 "메탈기어"는 마리오에서 영감을 얻은 스토리텔링을 잘 실현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어드벤쳐인 "스내처"나 "폴리스노츠"도 좋았고, 오랜만에 돌아온 "메탈기어 솔리드"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게임은 점점 영화처럼(더 정확히는 영화를 닮은 것처럼) 되어갔고, 그나마 영화로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스토리텔링이 '정보'나 '사건'을 던져주는게 아니라 '감동'을 주는 것이라는 기본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 스토리텔링은 게임의 플레이가 함께 연결되었을 때 비로써 완성된다는 사실도.

"메탈기어 솔리드 팬텀페인"은 2 이후의 기존 시리즈에 비해서 플레이 요소가 좀 더 충실하게 완성되었습니다. 확실히 플레이는 전보다 나아졌어요. 문제는 그 재미있는 플레이의 양이 부족하고, 동영상은 넘쳐난다는 것... 감동을 위해서 재미없는 부분을 과감히 쳐내는 용기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결국 개발 기간은 늘어나기만 했고, 마지막에는 미완성된 상태로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스토리텔링의 기본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려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칼을 댈 수 있어야 한다.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가 그렇게 변질된 것은 코지마 히데오가 "슈퍼 마리오"에서 느꼈던 감동의 요소와 기본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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