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는 게임입니다. 나온지 한참 되었죠.
보스니아 내전에서 살아남은 분의 인터뷰에 영감을 받아서 나온 게임입니다. 배경은 전쟁통이지만, 주인공은 전쟁을 치루는 군인이 아니라, 전쟁통에 살아남아야 하는 민간인의 이야기입니다.
반쯤 로그라이크에 가까워요.
생존자들이 버려진 집터에서 아지트를 꾸려서, 전쟁이 끝날때까지 살아남는게 목적인 게임입니다. 처음엔 도둑질은 좀... 하다가도 몇번 익숙해지고 나면, 도둑질해서 양심에 찔리는게 아니라, 생존자 멘탈이 나가지 않을 정도로만 도둑질 하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안하면 안되냐구요? 비상상황에서는 도둑질이라도 안하면 일행이 전멸할 판입니다. 일행 전원이 6일 굶고 기아 상태가 되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상태가되면 아마 판단을 재고해봐야 할겁니다. 거기에 병자가 끼어있거나, 겨울이 슬슬 오고 있다면 이건 뭐... 익숙해지면 그런 상황이 아예 안오게도 할 수 있지만요. 그리고 그 비상상황이란건 까딱 판단을 잘못 하면 충분히 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게이머들은 노부모를 자기가 보살펴야 한다며 힘든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는 남자가 있는 집을 상대로, 혹은 노숙자 집합소를 상대로 도둑질을 해야 합니다.
낮엔 저격수때문에 집안일만 하다가 밤만 되면 스캐빈저 한명을 지정해서 내보내야 합니다.
강도 털다가 재수없는 상황과 지형에 걸려서(혹은 버그에 걸려서) 죽을 곳이 아닌데 죽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계절도 겨울과 여름이 나뉘어져 있는데, 겨울인데 일행중에 시비에타가 있다면 정말로 '혹독한 겨울'이 뭔지 체감 할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보리스가 있다면 그 판은 깬거나 다름없지만) 겨울이 왜 난민들이 살아남기 어려운지 금방 이해가 가게 되죠.
몇달전까지 정말 빠져있던 게임이었는데... 처음엔 정말 살아남기 어려웠습니다. 보리스가 있어도 실패한 적도 있습니다. 몇가지 요령을 배우기 전엔 말이죠.
한 3~4번쯤 전멸 후에야 성공했으니까요. 하기전엔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지 알기 어려우니까요.
요령이라 해봐야 별건없고...
1. 당장 필요하지 않는 물건은 가방에 넣지 말라. 들고 올 물건에 중요도 순위를 매겨서 들고오라. 2순위 물건 밖에 안나올땐 최대한 다 뒤져서라도 1순위 물건이 없다는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민을 좀 해라.
2. 밥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라.
3. 다른것도 다 중요한데, 식량과 약만큼은 최우선 순위다. 이때 약은 바로 쓸 수 있는 약에 한정한다.
4. 재료물품은 살 대상이지, 팔 대상이 아니다.
라는 것 정도입니다. 몇가지 더 있긴 한데, 그건 하면서 알아가셔야 할듯 합니다.
나머지는 계속 하다보면 지역 상황이 이거 아니면 저거 뿐이라, 들어가기 전부터 설명만 보고 적이 어디있는지 해금이 어떻게 되는지 예상이 되기때문에 실질적 로그라이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저만해도 '아 이거 어떻게 하지' 싶은 순간에 해본 사람은 아는 고정적인 약속의 노다지 판인 곳(2곳)이 뚫리면 상황 확인도 전에 '일단 살았다!' 할 판이니까요.
생존자 조합은 반쯤 해봤는데, 가장 어려운 시비에타 & 안톤 조합은 운 좋게 보리스 나오기 전까지 계속 털리는게 일상이었고 다치는게 일상이었지요. 아웃브레이크 상태에서 심지어는 병원이 폭설로 막혔을땐 한숨나왔습니다. 보리스가 없었다면 아마도 못깼을겁니다.
하기도전에 '이걸 어떻게 해.' 하던 마르코 솔로 플레이도 해봤습니다. 솔로라서 보충인원 안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보충인원 오고나서 더 힘들었던것 같네요. 남은건 마찬가지로 하기도 전에 한숨나오는 조합 중 하나인 카티아 & 즐라타 라던가, 별로 전략이 제 스타일에 맞지 않는 에밀리아 & 로만이라던가 좀 남아있는 편입니다.(왜인진 이 둘을 몇번 만나보면 알게될 겁니다.) 기본 조합 중 반 정도는 해봤지만...
어쨌든 해볼만한 게임입니다. 아무리 가상이지만 차수가 반복될수록 점점 모랄해저드에 걸려가는 자신을 발견하며, 지켜야 할 선이란게 끝없이 떨어지는 자신을 보면서, '진짜 전쟁이었으면 나도 이렇게 해야 살아남겠지.' 라고 생각하며, 전쟁나면 참고는 되겠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덕이라는게 뭔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누가 정한건지, 그리고 생각보다 넘지 말라는 라인이 상당히 애매하구나 하고 생각해보는것도 재미있을겁니다.
Hominis Possunt Historiam Condonare, Sed Deus Non Vult
사실 게임이 결국 그렇게 흘러가죠. <엑스컴>이나 <다키스트 던전> 또한 난이도가 높은 게임입니다. 게다가 이런 게임들은 패닉 상황이 중요한 시스템이죠. 엑스컴 대원이 외계인과 조우하고 절망에 빠지는 거야 워낙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다키스트 던전>의 모험가들 역시 스트레스와 공포 때문에 걸핏하면 이빨을 까죠.
하지만 결국 플레이어들은 시스템에 적응하고 나중에는 쉽게 공략합니다. 아무리 엔딩이 암울해도 아무리 컨셉이 암울해도 결국 게임 플레이는 '공략'이니까요. 엔딩이나 컨셉을 차치하고, 플레이 과정 자체는 적을 무찌른다는 쾌감을 선사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게임과 소설의 차이점이 아닌가 싶어요.
이 게임은 컨셉이나 내용도 그렇지만, 분위기 역시 막막하죠. 마치 어둡고 탁한 그래픽 노블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사물과 인물, 풍경 등을 무채색 계열로 색칠하고, 그림자와 음영을 잔뜩 강조하고,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은 거칠게 펜으로 처리하고….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스크린 샷만 봐도 묵시적 기운이 물씬물씬 풍깁니다. 개인적으로 <데드라이트>라는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에서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게임은 인물을 그림자로, 풍경은 어두운 색체로 처리했죠. 게다가 두 게임 모두 2.5D 사이드 스크롤 시스템이고, 아포칼립스 설정이죠.
이런 부류의 생존물은 으레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강조하지만, 이 게임은 그게 유독 심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이나 영화는 독자와 관객이 그냥 쳐다보는 입장인데,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