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빠쑈라는 방송이 있습니다. "나사 빠진 SF쑈"의 약자로서 SF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최근 개봉 예정인 스타워즈를 소재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는데, 이 중 "과학으로 본 스타워즈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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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로 줄이면, "스타워즈에는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에는 '그럼에도 스타워즈는 SF'라고 말하지만, 그냥 덧붙이는 말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스타워즈가 SF이건 아니건, 이른바 '우리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건 많습니다.

  우선, 진공 상태일 우주 공간에서 '소리'가 들린다거나, '레이저 광선'이 보인다거나 하고 있죠. 게다가 뭔지는 몰라도 빔의 일종으로 생각되는 라이트 세이버끼리 부딪칠 때 서로 통과하지 않는다거나...

  나빠쑈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하이퍼 드라이브'를 이용해서 다른 세계를 오가는 상황에서 '상대성 이론에 의한 시간의 왜곡'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래에 나왔던 "인터스텔라"를 통해서 익숙해진 이 내용은 빛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갈 때 그 안의 물체의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음으로써 나중에 다른 곳과 시간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딸보다 더 젊어지는 결과가 생겨나거나 하지요.

  그렇다면 스타워즈의 이 설정은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이를 생각하기에 앞서 과연 "스타워즈"의 "하이퍼 드라이브"가 무엇인가 설명해 봅시다.


  Hyper Drive(하이퍼 드라이브)

  이것은 스타워즈에서 처음 나온 개념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SF 작품에서 선보인 개념입니다.

  우주의 넓이가 매우 넓다는 것이 알려졌을때 우주를 무대로 한 SF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비교적 가까운 화성까지 가는데도 '빛의 속도'라고 해도 8분 이상.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까지는 빛의 속도로도 4년이 넘게 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외로운 늑대' 같은 인물이 등장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초기의 SF 작가들은 '초광속'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광속보다도 훨씬 빠르게 날아가면 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고 빛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상태가 일반 상태와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초광속'이란 개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일반적인 우주선으로는 빛보다 빠르게 날아가는게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여기에서 대안으로서 항상 빛보다 빠르게 날아다니는 가공의 물체 '타키온' 같은 개념이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아예 근본적인 면에서 방향을 바꾸는 이론이 등장합니다. 바로 '워프(Warp)'라는 기술이었죠.

  작품에 따라 '워프'에 대해서 다르게 설명되긴 하지만, 비교적 간단하고 보편적인 내용은 '지름길'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큰 산이 있을때 그 산을 빙 둘러서 넘어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산을 뚫고 이동하면 훨씬 빠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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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넘어가지 않고, 질러가면 더 빠르게 이동한다. 이게 워프의 원리이다. ]


  마찬가지로 우주 공간에 터널 같은 곳이 있다면, 우리는 훨씬 빠르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나빠쑈에서 [스타워즈]와 비교했던 [인터스텔라]에서도 그런 건 등장합니다. 바로 웜홀이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은 웜홀을 통과함으로써 한 순간에 엄청난 거리를 넘어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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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스텔라의 웜홀. 공간을 넘어 반대편 우주의 모습이 특이하게 보여진다. ]

  이 '웜홀'도 사실은 오래 전 여러 SF에서 등장한 우주 여행 방식입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새로운 개념을 만든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이 '웜홀'은 한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바로 "웜홀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고, 정해진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게이트"라고 불리는 인공 웜홀 장치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카우보이 비밥]의 "위상차 게이트" 같은게 그런 장치로서, 이걸 이용하면 자연적인 웜홀보다 편하게 이른바 '우주 고속도로'를 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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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우보이 비밥의 위상차 게이트. 이를 소재로 활용한 이야기도 종종 볼 수 있다. ]

  다만, "웜홀"도 "게이트"도 결국 정해진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술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이 웜홀을 가로막고 이동을 통제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인공적이건 자연적이건 계속 열린 터널이니 그 터널만 막으면 되는거죠.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소설 [성계의 문장] 시리즈 같은 곳에서 종종 '문'을 둘러싸고 전투가 벌어지는 것은 이 역시 '웜홀'이나 '게이트' 같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성계의 문장]이나 [은하영웅전설] 같은 전쟁물에서는 이러한 연출이 더 재미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역시 '외로운 늑대'는 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워프'가 등장한 겁니다.

  '워프'는 말하자면 일시적으로 웜홀을 만들어내거나 상대성 이론이 통용되지 않는 특수한 공간(초공간, 즉 하이퍼 스페이스 Hyper Space)으로 우주선을 날려보내는 기술입니다.

  작품의 설정에 따라 어느 정도 제한은 있지만, 원하는 지점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많은 작품에서 활용되기 시작하죠.

  [스타워즈]의 "하이퍼 드라이브", 더 정확히는 "하이퍼 스페이스 드라이브"는 바로 이러한 워프 장치의 일종입니다. 인공적으로 웜홀을 만들어서 이동하기보다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퍼 스페이스'로 우주선이 들어가게 하고, 다시 나오게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원리야 어떻든 [스타워즈]의 "하이퍼 드라이브"는 결국 [인터스텔라]의 "웜홀을 이용한 여행 방법"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웜홀을 통과해서 엄청난 거리를 한순간에 이동했다고 해서 시간이 엄청나게 달라지거나 하지 않은 것처럼, [스타워즈]의 "하이퍼 드라이브"를 이용해서 먼 거리를 한 순간에(는 아닙니다만...) 날아간다고 해서 주변과 시간 차이가 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내용이야 어떻든, 적어도 '하이퍼 드라이브'라는 것 하나만큼은 과학적으로 이상한 점이 없는 것이지요.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하이퍼 드라이브'와 다를게 없는 [인터스텔라]의 '웜홀 여행 방법'을 보았을(그리고 아마도 별 말을 안했을) 패널들이 '하이퍼 드라이브'만 딴죽을 거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내용은 어떨까요? 가령 C3PO가 엉성한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거나, 과학 기술에도 불구하고 패션, 음식이 허접하다거나 하는 것은... 이들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모든 기술은 평행하게 발전하지 않으며, 같은 방식으로만 발전하지 않습니다. 우주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스타트렉]의 홀로그램 장치 같은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로봇의 인공 지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내부에 전선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게다가 음식이나 패션처럼 '문화'들이 반드시 과학 기술과 같은 위치에 설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 세계라고 해서 항상 나노 머신 옷 같은 것만 입어야 한다는 말입니까?(무엇보다도 [스타워즈]는 우리 세계의 미래도 아닌데 말입니다.) 도대체 그런게 왜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하나요?

  로봇의 몸에 전선이 보이는게 이상한가요? 물론 [터미네이터 2]의 T-1000처럼 나노 머신 로봇이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선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앞서 이야기했던 '우주 공간에서 소리가 들리거나 레이저 광선이 보이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게 맞습니다. '우리 우주에 한정할 때' 말이죠. 게다가 베스핀처럼 가스 행성에서 평범하게 숨을 쉰다거나, 소행성에 괴물이 잠복하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스타워즈]는 '우리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죠. 그 [스타워즈] 세계의 물리 법칙이 우리 우주의 법칙과 같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그들이 외모는 우리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가령 우주 공간에서 숨을 쉴 수도 있는 외계 종족이라고 하지 못할 게 있습니까?

  저는 [스타워즈]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SF는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학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SF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어차피 SF 속의 과학은 상상 속의 과학이니까요. 과학자들이 '매우 과학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인터스텔라"조차 엄밀하게 따지면 '비과학적'입니다.

  SF가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아닌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놀라운 놀이가 아니며 심각하고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도리어 말이 안 되어보이는 SF 속 과학적 설정을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까?'라고 고민하는게 더 재미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어차피 SF라는 것은 모두 'Science Fiction(과학적 상상)'이라고 쓰며, Science(과학)이 아닌, Fiction(상상)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SF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이거나 아니거나해서가 아니라, 그럴듯한 상상을 주기 때문.

  [스타워즈]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그 세계가 과학적으로 그럴듯 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우주를 무대로 수많은 종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점에서 [스타워즈]는 SF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많은 외계인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술집의 모습이나 거대한 최신예 우주 전함(정거장)에 쓰레기장이 존재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추신) 나빠쑈가 '나사 빠진 SF쑈'라고 한다면, 앞으로 스타워즈 말고 다른 SF 얘기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 SF는 과학적으로 말이 안 돼.'라고 할 건가요? 그것도 '동아사이언스'에까지 소개하면서?
  사실 저는 그런 점이 걱정 됩니다. SF를 '과학적으로 말이 돼? 안돼?'라는 이야기는 나름대로 재미있는 놀이지만(그래서 [공상 비과학 대전]이나 [스타트렉의 물리학] 같은 책도 나왔지만) 그보다는 만화가 하세가와 유이치의 [굉장한 과학으로 지키겠습니다.]처럼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말이 될까? 과학적으로 볼때 이걸 어떻게 연결하면 될까?" 같은 것을 생각하는게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죠.

  '나빠쑈'가 정말로 'SF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방송이라면, SF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갖고 재미있는 상상력을 발휘해 주면 좋겠습니다. SF는 분명히 상상에 대한 이야기이며, 상상을 통해서 즐기는 놀이니까요.


여담) 하지만 나빠쑈가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빠쑈에서는 "스타워즈"에 대한 애정도, SF에 대해 열린 마음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오해하는 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문화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최소한 그것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 그 작품을 왜 좋아하는 '이해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빠쑈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정말로 "나사 빠진 SF 쑈"를 하고 싶다면, 패널들도 나사빠진 모습으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유통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스타워즈와 겨울 왕국을 비교하거나, 감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장르가 완전히 다른 미션 임파시블을 거론하지 말고, 그냥 "스타워즈" 그 자체의 매력을 가지고 이야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사 빠진 SF쑈"가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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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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