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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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명조체는 소설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반면, 고딕체는 별로….]
책은 기본적으로 가독성이 좋아야 합니다. 이 가독성은 종이 재질 같은 물리적인 요소부터 작가의 필력 같은 추상적인 요소까지 모두 해당하죠. 폰트, 그러니까 글씨체는 물리적인 요소의 일환일 겁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문자가 있고, 그에 따라 수많은 글씨체가 나뉩니다. 어떤 것들은 부드럽고, 어떤 것들은 딱딱하고, 어떤 것들은 가볍고, 어떤 것들은 고급스럽죠. 글의 종류와 주제와 분위기에 글씨체도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만약 상품을 멋지게 포장하고 싶다면 우아하고 둥근 모양의 글씨체가 어울릴 겁니다. 묵직하고 거시적인 주제를 논하는 책이라면, 딱딱한 글씨체가 어울릴 테고요.
개인적으로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도 서로 어울리는 글씨체가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판타지는 어쩐지 필체가 곡선인 편인 낫고, 사이언스 픽션은 다소 각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뭐, 꼭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만큼 글씨체는 책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이 접하는 책들은 거의 대부분 명조체로 알맹이를 채우는 것 같습니다. 당장 서점에 가서 아무 소설이나 집어도, 그게 판협지이든 고전 명작이든 간에 거의 대부분 명조체로 채워졌을 겁니다.
명조체를 쓰는 이유는 그만큼 삐침이 많이 달렸기 때문일 겁니다. 삐침이 많으니까 글씨를 보다 알아보기 쉽겠죠. 물론 그렇다고 모든 책들과 일상에서 접하는 텍스트가 하나같이 명조체를 쓰는 건 아닙니다. 당장 여기 클럽도 명조체가 아니고, 고딕체로 된 책들도 많습니다. 주로 설명문 위주의 책이 그런 듯하더군요. 그럼에도 소설책들은 예외없이 명조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게임북 같은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면, 고딕체로 된 현대 소설을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제 빈약한 독서 경력을 감안해도 만약 고딕체로 된 소설이 있다면,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 속의 인용문이나 각별한 대사나 강조하고 싶은 문구 등은 고딕체로 나올 수 있어요. 가령, 로봇이 대사를 할 때 작가가 로봇의 무미건조함을 강조하고 싶어서 고딕체를 사용할 수 있죠. 혹은 신문 기사를 고딕체로 첨부하거나, 묘사 중에 고딕체 단어를 삽입해서 그게 중요하다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문장 부호를 삭제하거나 굵은 글씨를 집어넣는 등의 편법과 유사합니다. 다만, 소설 전체가 고딕체로 이루어진 책은 한 번도 못 봤다는 겁니다. 근대 이전을 제외하고, 현대 소설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명조체인 것 같아요. 위 첨부 사진처럼 고딕체는 특별한 경우에만 쓰거나 외부 설명문이 대부분입니다.
[산세리프 폰트, 그러니까 고딕체는 소설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장식합니다.]
생각해 보면, 고딕체 위주의 소설은 가독성이 꽤 떨어질 것 같지만…. 과연 그럴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딕체로 된 인터넷 텍스트 등을 긴 시간 읽어도 집중력이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안 들거든요. <드래곤 라자> 같은 인터넷 소설도 신나게 열씌미 읽은 터입니다. 고딕체로 된 종이책 소설도 문제없이 읽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 실제로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만요. 문장 부호 안 쓰는 작가들도 많은데, 뭔가 좀 튀어보이고 싶은 작가라면 고딕체로 된 소설을 출판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도…?
컴퓨터 화면에서는 고딕이나 굴림체, 인쇄는 명조체라는 것이 거의 표준입니다. 컴퓨터 화면과 종이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에서 고딕이나 굴림체는 딱딱해 보일 뿐만 아니라 좀 더 쉽게 피곤해진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