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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고 혁신적인 실시간 전략 게임은 사이언스 픽션 설정일 경우가 많습니다.]



몇몇 특정 게임 장르는 특정한 설정과 인연을 맺습니다. 게임 장르에 따라 주력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위자드리> 같은 던전 탐험물은 여지없이 검마 판타지 설정입니다. 가끔 사이언스 픽션도 나오지만, 거의 대부분 검마 판타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발더스 게이트> 같은 서사 롤플레잉 역시 검마 판타지의 비중이 꽤 크죠. 한때는 <던전스 앤 드래곤스>가 롤플레잉 게임과 동일어였던 시절도 있었고요.


반면, <둠>과 <헤일로>가 얼굴 마담인 것처럼 FPS 게임은 사이언스 픽션의 독무대입니다. 현대 테크노 스릴러를 제외하면, 상당수 사이언스 픽션이 FPS 게임을 주름 잡습니다. <시프>나 <헥센>처럼 판타지 슈팅 게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마이너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실시간 전략 게임 역시 사이언스 픽션과 긴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실시간 전략물이 순전히 사이언스 픽션 위주라고 할 수 없지만, 실시간 전략 게임 중에는 근미래 테크노 스릴러부터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미래 세계를 바탕으로 한 사례가 꽤나 많습니다. 그래서 알파 스트라이크를 쏟아붓는 초중전차와 거대 괴수의 돌진이 맞붙는 로망도 실컷 즐길 수 있죠.


그렇다고 이쪽 계통에 걸출한 판타지나 시대물이 없는 건 아닙니다. 실시간 전략 게임 중에는 <토탈 어나힐레이션: 킹덤>, <배틀 렐름>, <중간계 전투> 같은 수작 판타지 게임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라이즈 오브 네이션>, <토탈 워> 같은 시대물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시간 전략 게임의 역사를 쓴 장본인들은 뭐니뭐니 해도 사이언스 픽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격적인 시발점인 <듄 2>부터 <스타크래프트> 같은 밀리언셀러를 거쳐 렐릭의 <홈월드> 차기작까지 이 바닥은 여전히 사이언스 픽션의 강세입니다.


그런 터라 사람들이 실시간 전략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아마 SF 계열 게임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명단을 줄줄이 열거하자면, <듄>, <커맨드 앤 컨쿼>, <적색경보>와 <제너럴>, <토탈 어나일레이션>과 <슈프림 커맨더>, <다크레인>, <엔드 워>, <KKND>, <던 오브 워> 등이 포진했습니다. 여기다가 실시간 전술까지 포함하면, <멕커맨더>와 <그라운드 컨트롤> 등도 빼놓을 수 없죠. 솔직히 <듄>의 자원-생산 시스템과 <다크레인>의 선구적인 안목과 <그라운드 컨트롤>의 지형 구현과 <홈월드>의 입체적인 함대 기동은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었다고 봅니다. 실시간 전략과 사이언스 픽션의 관계를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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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3차원 우주 함대전 역시 SF 설정이 아니라면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실시간 전략이 사이언스 픽션과 친근한 이유는 전략의 복잡성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대 전쟁은 고대, 중세, 근대 전쟁과 양상이 다릅니다. 단순히 병기 차이만 따져도 그렇습니다. 저격수, 기계화 보병, 전투기, 초장거리 로켓, 항공모함과 잠수함, 전략 병기 등은 근대 시절에 상상하지 못했던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런 병기들은 한층 다양한 전략을 이끌었습니다. 고대와 중세, 근대 전쟁에도 나름대로 다양한 병과와 무기가 존재하지만, 현대 전장의 입체적인 전술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걸 간략화한 게임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봅니다.


고대와 중세 전장, 가령,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서 궁수와 각종 투석기와 함선과 포탑으로 물량을 쏟아붓는 재미도 화끈하고 멋집니다만. 그렇다고 현대 전장의 복잡성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현대 전쟁보다 한층 더 복잡한 양상이 미래 전쟁입니다. 강화복과 보행 병기와 우주선과 초인이 등장할 테니까요. 그러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가장 복합적인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삼을 겁니다. 실제로 게임 제작진이 그런 설정을 의도하고 만드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SF 게임의 병기 체계가 판타지와 시대물보다 복잡한 건 사실입니다.


물론 판타지 게임도 상상력을 이용하면, SF 게임만큼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시대물은 한계가 존재하지만, 판타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각종 영웅, 마법사, 악마, 괴수, 스팀펑크 등으로 사이언스 픽션 못지않은 병과 구성이 가능합니다. 초중전차 대신 거대 괴수, 전략 병기 대신 광역 마법, 전투기 대신 드래곤, 잠수함 대신 크라켄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는 전차만큼 보병을 깔아뭉갤 수 있고, 마법사의 유성 폭격은 핵 탄두만큼 무서울 테고, 드래곤은 전투기마냥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고, 크라켄은 잠수함처럼 은밀히 상대 선박을 습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스팀펑크를 추가하면 더 할 나위가 없겠죠.


그럼에도 판타지 설정에는 단점이 존재하는데, 마법사, 괴수, 악마 등은 주력 부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 판타지 소설에서도 괴수나 악마 등은 특수 병기이며, 대부분 전투는 인간형 생명체들이 치릅니다. <반지전쟁> 같은 작품에서 나오는 것처럼 결국 주력 부대는 알보병입니다. 검마 판타지는 어쨌든 중세 시대물의 변형이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을 덧붙인다고 해도 중세 시대물의 변형인 이상,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하겠죠. 사이언스 픽션은 안 그래도 복잡한 현대 전쟁의 발전형이니까 검마 판타지보다 병기 체계와 전투 양상이 복잡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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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복, 각종 기갑 치량, 장거리 야포, 괴수, 초능력 등은 복합적인 전략을 이끌어냅니다.]



이렇듯 사이언스 픽션은 전쟁 양상의 복합성 때문에 실시간 전략의 친근한 이웃입니다. 그래서 SF 설정과 게임에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실시간 전략 게임들도 둘러보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실시간 전략이 그리 만만한 장르가 아니라는 겁니다. 수많은 유닛을 동시에 움직이고, 항상 전투 현황과 생산 상황을 파악하고, 끊임없이 정찰, 교란, 성장, 거점 등을 지속해야 합니다. 실시간 전략이 사양길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올 겁니다. 많은 유저들이 <홈월드> 차기작에 기대를 걸던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얼마나 인기를 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