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뢰더가 쓴 <라이카의 유령>은 디스토피아 단편입니다. 제목에서 나온 라이카는 흔히 알려진 바처럼 우주로 나간 개입니다. 지구의 고등 생명체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 궤도에 진입했죠. 최초라는 타이틀 덕분에, 우주라는 장대한 사업 덕분에 우주 탐사물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입니다. 스푸트니크나 유리 가가린, 아폴로 프로젝트처럼 머나먼 우주를 향한 동경을 비유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 라이카를 소재로 삼은 소설은 아득한 우주 탐사를 그리워한다고 볼 수 있겠죠. <라이카의 유령>은 실제로 라이카가 나오는 건 아니며, 시대 배경도 근미래입니다. 그것도 한창 대재앙이 지구 곳곳을 훑고 지나간 시점입니다. 주인공은 국제 연합의 의뢰를 받아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뭔가 커다란 음모에 휘말립니다. 그 음모의 진원지는 드넓고 메마르고 정적만 감도는 카자흐스탄의 스테프노고르스크 기지입니다. 그리고 음모를 해결할 인물이자 주인공이 보호하는 인물은 화성에서 무인 차량을 조종합니다.



앰브로즈라는 인물이 화성에서 무인 차량을 조종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류가 벌인 대재앙 덕분에 우주에 나갈 수 없거든요. 대기권에 각종 방해 물질이 촘촘히 둘러쌌기 때문에 그걸 떨치고 우주선이 날아갈 수 없습니다. 전쟁 때문에 엄청난 잔해가 지구 주변을 떠돈다는 설정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대신 지구에서 화성의 차량을 무인 조종합니다. 이 소설의 우주인들은 말이 좋아서 우주인이지, 지구 밖으로 절대 나가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소설 주인공이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도 슬쩍 언급하던데, 대재앙 이후에는 거기서 우주선이 날아가지 못했죠. 소비에트가 주로 나오는 SF 소설에서는 바이코누르 기지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질 수 없지만, 이 작품의 바이코누르 기지는 그냥 명색만 우주 기지입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 제목이 어째서 '라이카의 유령'인지 슬슬 감이 옵니다. 저 유령이라는 단어를 허상, 망령, 잔재, 아쉬움 등의 단어로 바꿔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라이카는 우주 탐사의 상징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우주 진출이 물 건너 갔으니까요.



대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인류는 뭔가를 잃어버립니다. 그게 위대한 문명이든, 안락한 행복이든, 깨끗한 환경이든, 눈물 겨운 인간애든 간에 여하튼 뭔가가 사라집니다. 전쟁과 질병과 천재지변은 인류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습니다. 그래서 생존자들이 좋았던 옛날을 회상하는 장면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흔한 클리셰 중 하나입니다. <라이카의 유령>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은 아마 우주 탐사인 것 같습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유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거시기한 요소입니다. 사실 가족의 사랑이나 푸르른 숲이나 으리으리한 대도시와 달리 우주 탐사는 모든 인류의 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로제타 탐사선이 혜성에서 뭘 하든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류는 지구 내부의 문제도 해결하기 벅찬 탓입니다. 뉴호라이즌이 명왕성을 조사하면 뭘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밥이나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 그래서 우주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 문제 해결에 쏟으라는 비판 의견도 많죠. 우주 탐사는 인류 전체의 로망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인지 여러 SF 작품에서는 어떤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인류가 우주로 나갑니다. 저 태양계 어딘가에 외계인이 존재하니까, 우주 항로 지도를 발견해서, 다른 행성에 값 나가는 자원이 쌓여서, 더 이상 지구에 머물 수 없어서…. <라이카의 유령>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재앙이 지나간 디스토피아고, 인류는 자연스럽게 우주를 바라봅니다. 최소한 살 길을 찾으려는 이들은 우주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온갖 잔해들로 지저분한 지구 궤도를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 소설이 풍기는 아련함은 그런 무력함에서 나오는 듯합니다. 지구 밖으로 나갈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고, 실제로 지구에서는 더 이상 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갈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지구에 살기 힘들어서 인류가 우주로 떠난다는 이야기는 흔하디 흔하지만, 그걸 이처럼 애통하게 바라보는 작품은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대부분 이런 작품들은 끝내 우주로 진출하는 인간 승리나 아름다운 환경 보호를 강조하기 마련인데, <라이카의 유령>은 그런 상투성에서 벗어납니다.



물론 우주로 못 나간다는 애통함이 전부인 건 아닙니다. 소설의 대부분 내용은 주인공 요원이 탐문하는 수사 및 추리로 이루어졌습니다. 대재앙이 파국을 미친 시점에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조직이 꿈틀거리고, 주인공 요원은 그런 조직의 음모를 파헤칩니다. 조직의 큰 손은 재미있게도 나사와 소비에트 온라인과 구글입니다. 나사야 그렇다 치고, 소비에트 온라인과 구글이라니. 소비에트 온라인은 소련의 옛 추억을 회상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으로 쓴 라이카처럼 한창 우주 진출에 박차를 가했던 소련의 영광을 추억하는 집단이죠. 그런 점에서 소설 주제와 퍽 어울리는 조직입니다. 구글이야 뭐…. 세계 전복과 우주 탐사를 꾀하는 검은 손 뒤에 구글이 존재한다는 설정이 꽤나 깨는군요. 게다가 서구권 SF답지 않게 카자흐스탄이 배경이고, 소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도 신선합니다. 이게 캐나다 작가가 아니라 러시아 작가가 쓴 소설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네요.



최근에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 <마션> 등의 영화가 주기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주 진출 사업은 무조건 미국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물론 우주를 항해하는 대부분의 탐사선은 나사 소속이지만, 러시아도 나름대로 우주 강국입니다. <라이카의 유령>은 그런 로망을 담은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에 USA가 전부인 게 아니죠. (원래는 진짜 러시아 소설인 <오몬 라>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건 어느 정도 부조리 소설이라 <라이카의 유령>으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