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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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소개된 중국 SF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여기 "새로나온 작품" 란에서는 못본듯 합니다.
2013년에 나왔다고 하니 제법 시간이 흐른 셈인데 보신 분들 어떤지 감상평 올려주세요.
그나저나 표지가 참 4차원 스럽군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중국판 표지인데
국내판보다는 좀 나아보입니다.
하이텔의 '장혁'님 글을 보고 가입하는데요?
전에 휴고를 받았다길래 좀 찾아봤는데....구글 북스에서 맛뵈기를 좀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 대해 전개되는 물건 같은데 느낌은 괜찮군요.
https://books.google.co.kr/books?id=UjzvAgAAQBAJ&pg=PT516&lpg=PT516&dq=%EC%82%BC%EC%B2%B4&source=bl&ots=_MGouZC3AI&sig=bIY2NCygjFa6dcWQu3GEv3-LWWw&hl=ko&sa=X&ved=0CE0Q6AEwC2oVChMIooXk9Y_QxwIVQx-UCh1nFAe6#v=onepage&q&f=false
그렇지 않아도 요즘 출퇴근 길에 <삼체>를 들고 다니면서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괴이한 표지 때문에... 지하철에서 주변의 시선을 참아내야 합니다.
실은 대략 열흘 전에 2015년 휴고상이 선정되었는데...
<삼체>의 영문판 [The Three Body Problem]이 2015년 휴고상 장편부분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갑자기 몇 일 전부터 <삼체>가 도대체 무슨 책이냐 이런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삼체>를 읽기 시작한 것이구요.
저 역시 <삼체>는 표지에 질려서 구매를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SF 작가 중 '황역'과 더불어 가장 뛰어나다는 말에 샀던 책입니다.
책을 읽어보면 멀쩡하게 쓰여진 SF이고 현실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는 것이 오히려 특징인데,
번역본 표지를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무려 "한국 사람"이 표지를 디자인했습니다.
표지 때문에 망한 것인지, 사실상 새 책이 몇 달 전까지 알라딘 중고서점에 엄청나게 풀렸더랬습니다.
휴고상 수상 소식으로 재고들이 모두 소화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단숨'이라는 출판사에서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지만, 실은 '자음과 모음'의 임프린트 브랜드입니다.
<삼체> 표지에는 '단숨'이라고 되어 있고, 책을 펼쳐서 보면 "펴낸곳 : 자음과모음"이라고 되어 있죠.
지금까지 중국 SF가 한국에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죄다 표지가 이상하게 나왔습니다.
무협 <복우번운>으로 알려진 '황역'이 쓴 SF <성제랑자> 번역본도 표지가 상당히 괴상합니다.
왕년에 동앙일보사에서 나온 '황역'의 <잃어버린 영원>도 표지가 꽤 희한하게 나왔고...
<잃어버린 영원>은 번역자가 <서유기>를 번역했던 임홍빈씨로, 역자까지 최상급입니다.
표지 빼고는 버릴 게 없는 책이었는데... 역시나 표지가 주는 이상한 혐오감이 굉장했습니다.
<삼체> 자체는 꽤 재미있는 SF입니다. 번역도 괜찮구요.
번역자분이 SF를 번역한 적이 없어서, 전문 용어는 모두 감수자가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감수자가 무려 '고호관'님입니다. SF 팬덤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분이시고,
- PKD의 <닥터 블러드머니>와 <아서 클라크 단편전집>를 번역하기도 했던 분이죠.
작품이 때로는 나노 테크놀로지를 이야기하고, 때로는 천문학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외계 문명을 말하고,
때로는 게임을 이야기하고, 중국 신화전설이 등장하고, 역사상 동서양의 유명인물이 죄다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번역이 꽤 잘 되어 있습니다. 고생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삼체는 일본에서도 소개되지 않은 책입니다. 중국에서는 거의 "일본침몰"급의 작품이에요. 사실상 중국 SF 시장을 견인하고 현재의 붐을 만들어낸 작품입니다.표지가 정말로 엉망이라서 애매합니다만...
제가 기억하는게 맞다면 삼체는 이벤트도 진행했어요. 도서관이었는지, 아니면 조이SF 클럽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담) 삼체가 휴고상을 받은 것은 번역자인 켄류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로서 작가와 번역자 모두 뛰어난 인물이죠. 과거에는 테드 창만 알려졌지만, 켄류의 작품이 하나둘 알려지면서 유명했고 반대로 켄류가 중국의 작품을 번역해서 소개하면서 미국에 중국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한 나라의 작품이 외국에 알려져기 위해서는 뛰어난 번역자가 필요합니다. 원문을 잘 이해하고 번역하는 곳의 작품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그런 점에서 켄류의 역할이 정말로 작지 않습니다.
2008년 중국 출간인데, 정작 휴고상은 2014년에 받았다고 하더군요. 하긴 외국 작품에 수여하더라도 휴고상 자체는 미국 내부에서 결정하는 거니까요. 이런 걸 보면, 역시 소설은 번역이 중요하다 싶긴 합니다. 그림이나 영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과 달리 소설은 텍스트를 모르면 말짱 꽝이니까….
찾아보니 다소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군요. 문제의 작품은 스탠리 첸(Stanley Chan; 본명은 Chen Qiufan)의 『클라크스 월드』(Clarkesworld) 59호 게재작(2011.8) 「여강의 물고기」(The Fish of Lijiang)입니다. 이 작품이 수상한 상은 휴고상이 아니라 SF·판타지번역상(Science Fiction & Fantasy Translation Awards)이고요. 휴고상에는 번역문학 부문이 없지요.
다만... 휴고상을 수상한 것은 아니고 SF·판타지번역상이 딱히 큰 상이었던 것도 아니지만(2011년에 제정되어 2013년까지 수상작을 배출하다 중단되었습니다)이 그리 큰 상도 아니었다 하여 「여강의 물고기」의 수상을 폄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대 수상작과 후보작을 모조리 살펴보더라도, 거론된 작품들은 대부분 프랑스어, 체코어, 일본어 등 SF 창작이 나름 활성화된 언어권에서 나온 작품들이었으니까요. 미국 SF 팬들이 비영어권(특히 동아시아)의 SF에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근거로는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미국 SF 팬덤에 중국인 이민자들이 조금씩 가세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거나요.
<삼체>가 휴고상을 받은 것은 2015년이죠. 수상 발표가 난 게 불과 열흘 전입니다.
다만, 2014년에 출간된 작품 대상으로 2015년에 심사하고 투표를 받아 상을 준 것이구요...
한국일보와 같은 우리나라의 중앙일간지도 <삼체>의 휴고상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bc5611edeca74af38c769ff420e77251
우스운 것은...
휴고상을 두고 "SF계의 노벨상"이라고 기사가 나왔다는 겁니다.
저는 휴고상을 수상한 작품이 물론 좋은 작품인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인정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휴고상이 노벨상급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오히려 네뷸러상이나 로커스상에 비해 휴고상은 팬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되는 만큼
지나치게 대중적이거나 그 당시 붐업에 너무 기대는 작품들이 수상한다는 의심을 품고 있죠.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4부 <해리 포터와 불의 잔>도 휴고장 장편부문을 수상했고,
영화부문에서는 <와호장룡>도 휴고상을 받았던 것도 굉장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팬 투표로 결정된 것인데, 정말로 맞느냐면서 어이없어 하는 팬도 많았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좋은 작품인 것은 맞지만, "노벨상" 레벨은 아니잖아요..
휴고상이 SF 문학상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널리 알려진 유명한 상이긴 하지만,
정작 내실은 네뷸러상, 로커스 상에 비하여 오히려 더 떨어진다고 봅니다.
지금 현재 3대 SF 문학상 중 가장 애매한 게 휴고상이라는 느낌도 좀 있어요.
중국과 중국인의 영향력과 국제 활동빈도가 늘어난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알맹이도 중요하지만 이런 상 받으려면 번역이 정말 중요한거라서...
이런 번역을 할 수 있고 출판할 수 있는 인원이 있다는 것이 특정 국가의 작품이 영어권 (=상을 수여하는 언어권) 에서 어필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니까요.
번역도 안 됐다면 팬투표로 선출될 그림조차 안 나올테니
최근 중국에서는 국가에서 의식적으로 SF를 키워주는 모습이 있습니다.
(왕년에 소련 시절에도 정책적으로 SF를 띄우려 했었죠. 공산 정권의 특징인지... )
중국은 모택동이 대륙을 통일한 후부터 국가적으로 과학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삼체>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대혁명 때 학살당한 과학자 이야기가 메인 테마이지만,
하여간 중국은 공산정권 수립 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공계를 집중적으로 지원해 왔죠,
지금도 국가에서 예산을 대서 SF가 작품이 연재될 수 있는 잡지를 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은 교통공대 출신의 강택민, 칭화공대 출신의 후진타오 등이 이공계 출신으로 집권했고,
현재 중국 정부의 핵심 요직의 과반 이상이 이공계 출신이므로... 이런 모습도 무리는 아닙니다.
한국이 1970~80 년대에 "공업입국"을 부르짖고, "공학자"를 정책적으로 양성했던 것과 마찬가지죠.
국가에서 정책적 의도를 가지고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 <아이디어회관 SF 전집>이 나왔던 것이구요.
중국은 지금도 그런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려 있고, 젊은이들이 이공계에 투신하는 나라입니다.
왕년의 중국 SF는 <복우번운>을 쓴 "황역"라든지, 김용과 친구였던 <육지금마>의 "예광"같은 작가들이
홍콩에 거주하면서 무협지를 주로 쓰면서 SF 계열 작품들도 같이 창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광"은 <위슬리(위사리 : 衛斯理) 전기>와 같이 [X 파일]처럼 외계인이 벌인 일의 부작용을 캐는
일종의 "이공계 탐정물"과 같은 성격의 SF 시리즈를 많이 써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위슬리 전기>의 원작 소설은 미번역이지만, 이연걸 주연의 <모험왕>처럼 영화는 꽤 많이 소개되었죠.
(이연걸 주연의 <모험왕>에서는 주인공 이연걸이 "위박사(위사리)"로 나옵니다. 실상 활극뿐이지만...)
최근에는 "황역", "예광"과 같은 무협 창작을 겸하는 작가들의 모험 활극 위주의 SF보다는,
진짜로 SF를 진지하게 대하는 작가들이 대륙에서 국가의 지원하에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SF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크게 변화한 것이죠.
과거 홍콩에서 활동하던 "황역"과 "예광" 등이 내 놓은 소위 인기 SF 소설이라는 물건이
애당초 "엔터테이먼트"용 글을 쓰다가 "새로운 소재"로서 SF의 외계인 컨셉을 선택한 정도였다면,
요즘에는 이공계 출신들이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질을 잘 알고, 진지하게 글을 쓰는 겁니다.
<삼체>를 쓴 작가도 대륙 출신이고, 본래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굳이 일본 SF 문화에 비유하자면...
중국 SF는 과거 라이트 노벨류의 "엔터테이먼트"가 목적이었던 작품 위주였다가,
최근에는 <일본 침몰> 레벨의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엄청난 변화죠. 그리고 크게 부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라이트 노벨도 없고, <일본 침몰>도 없습니다.
예광도 황역도 없고, 류츠신도 없어요. 엔터테이먼트도 없고, 진지함도 없죠.
무려 20 동안 한국에서 제대로 된 SF 작가라고는 복거일, 듀나 밖에 없었고,
최근 5년 사이에 박보영, 배명훈, 장강명 등이 나타나서 활약하는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삼체>의 휴고상 수상을 보며 번역의 중요성도 물론 중요 이슈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탄탄한 저변 자체가 큰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중국 SF는 모수 자체가 많은 겁니다.
일단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 중 번역된 한 작품이 미국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이죠.
한국 SF 중 영어로 번역되면, 휴고상 장편부문을 따낼만한 레벨의 작품이 과연 있을까요?
그나마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정도가 얼마간 수준에 달한 작품일 수 있고,
김장환의 <굿바이 욘더>라면 최종적인 수상까지는 모르겠고, 후보작 정도로는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이상 꼽질 못하겠네요. 한국산 SF를 제대로 영어로 번역할만한 역자는 더더욱 없을 것 같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복거일도 그렇고 김장환도 그렇고 작가 본인이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므로,
과거 안정효처럼 자기 작품을 스스로 영어로 옮겨 미국에서 출간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