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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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판사 북바이북과 함께 '판타지 개론서'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아직 제목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판타지 장르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쉽게 살펴보는 책자로서 작성했지요.
"판타지 장르를 모르는 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쪽에 초점을 맞춘 입문 도서로서, 장르의 정의와 특성, 하위 장르들의 특성, 그리고 다양한 판타지 작품에 대한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소설만이 아니라,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 대해서도 언급하려고 했는데, 조금 지나치게 많은 걸 넣은 것은 아닌가도 생각되더군요.
사실 이런 종류의 책자를 집필하다보면 조금이라도 많은 지식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그래도 '책'인지라 남들이 모르는 것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하지만 모든 책이 그럴 필요가 없을 뿐더러, 단순히 정보가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읽히면서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서 그 내용을 충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요.
100의 정보를 주어서 10을 얻게 하기보다는 5의 정보를 주어서 모두 느끼게 하는 쪽이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한 것입니다.
원고는 모두 마쳤지만,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모두 수정하려고 다시 보는 중입니다. 출판사의 편집자만이 아니라 아내나 지인에게도 부탁해서 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죠. 돈을 받고 파는 책인만큼 보는 사람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마치고 나면 다음에는 SF에 대한 책을 쓸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SF의 재미를 전하고 싶으니까요.
여담) 제가 글에 대해 좀 더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것은 작년에 '원더랜드'에 수록될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의 일입니다. 평소처럼 글을 쓰고 의견이 궁금해서 아내에게 보여주었는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해주더군요. 그래서인지 그 글은 SF를 모르는 분들도 재미있게 보았다고 얘기해 줍니다. 지금보면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제게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 탓에 한동안 그 글을 넘어서기 어려워서 고생한 일이 있습니다.^^ 비슷한 글을 쓸 때마다 그 글의 문장이나 내용이 다시 떠올랐거든요.)
다른 이의 관점에서 글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후로는 가능하면 글을 쓰고 프린트를 해서 읽어보고, 아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전과 비교해서 글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
확실히 복거일 선생님의 책에서 '반지의 임금님'이라는 대목에 놀랐습니다. 이게 오래 전에 나왔나 했더니 영화 [반지의 제왕]이 나온 다음해에 선보인 책이더군요. 여러가지 많은 걸 담으려고 노력한 것은 보이지만, 그 밖에도 걸리는 부분이 좀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이번에 쓰는 책은 원고지 200매 정도의 작은 책이라서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처음에 쓰고 나니 400매가 나와서 놀랐죠. 줄이고 줄이고 줄여서 220매... A4로 23매다보니 영화, 게임 등에 대해서 각각 2쪽 정도 밖에는 할애할 수가 없더군요. 워낙 많은 내용이다보니 거의 언급으로 그치고 있습니다.
위 의견을 보니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좀 더 강화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게임에 대한 항목을 어느 정도 할애했지만, 아무래도 살짝 언급하는 정도였기 때문이죠. 판타지 게임에서만 가능한 표현 방법의 특징이라던가, 미디어에서의 특징 등을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해 봐야 겠습니다. 사실 소설가 분들께 게임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할때 가장 어려워하는게 그 부분이거든요.
복거일의 책은 끝내주는 작명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아는 책 이름을 곧이 곧대로 직역해서 낮설게 만들어 놓고,
그게 맞다고 하니 오히려 더 헷갈리게 되더군요.
대표적인 사례로는...
<멋진 땅에서의 앨리스의 모헙>이 있습니다. 이 책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흡혈귀와의 대담>은 오히려 이해할 만 할런지도 모르죠.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 인터뷰>입니다.
<빌리는 자들> 이렇게 해 놓으면 뭔지 모를 겁니다. 메리 노턴의 <마루 밑의 버로우즈>입니다.
<다시 하기> 이 책은 켄 그림우드의 <리플레이>입니다. 이 쯤 되면 환장할 노릇이죠.
복거일 선생이 "영어 공용론자"라고 해서 친미파네, 영어를 한글보다 우선시하네 뭐 이러는데...
실제로 그가 쓴 책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외래어를 죄다 없애버리고 한국어로 바꾸어 사용합니다.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 보듯이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 한국어를 가장 깊이 연구한 사람임에 틀림 없죠.
하지만... 복거일 작가의 한국어에 대한 고집이 너무 세서, <세계 환상문학 사전>이 꽤 좋은 책이지만
널리 알려진 책 제목과 동떨어져 있어서 실제로 활용하기에는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아쉽다는 겁니다.
복거일의 한국어 구사에 대한 고집은 지나치게 강하다 못해 도를 넘어서고 있고,
이건 거의 반 미친 똘아이 레벨이 아닌가... 심지어 이런 생각마저 들기도 하거든요.
특별히 다른 책을 열심히 더 애써 찾아볼 것도 없습니다.
그냥 복거일이 쓴 장편 시간여행 SF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그리고 팬터지 개론서로 집필한 <세계 환상문학 사전>...
이렇게 딱 두 편을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한국어 연구에 미치다시피 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와 같이
16세기 중세 조선어를 단어 하나하나 고증해서 작품 속 모든 대사에 집어 넣는 일은
감히 시도조차 못할 겁니다 - 사실상 정신나간 작가의 뻘 짓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복거일은 실제로 그렇게 작품을 썼습니다. 한국어 연구에 미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겁니다.
시간여행물을 쓰는 동서고금의 작가 중 이렇게 글을 쓴 사례가 해외에 있기는 한 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 시대의 한국어를 정확하게 고증해서 사용하겠다는 집념과 고집은 결과를 떠나서 대단한 것이고,
그런 모습은 확실히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미치기는 했는데 나름 가치있게 미친 것이죠,
결과물이 크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16세기 중세 조선의 어휘를 접하는 것을 통하여
당시 시대상을 십분 맛볼 수 있습니다 -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얼마간 효과가 있죠.
<세계 환상문학 사전>은 이러한 복거일의 한국어 제일주의가 극한에 치달아 나온 책이어서,
솔직히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다기보다는 한국어에 너무 몰입하여 소통이 안되는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위에도 예를 들었지만 <리플레이>를 <다시 하기>라고 소개해 놓으면 그 책은 찾아보기 참 어렵습니다.
그것도 한국에 두 번이나 <리플레이>로 번역출간되었고, 그 소설을 원작으로 일본에서 나온 만화도
<리플레이 J>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출간된 바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복거일은 일부러 그 책을 소개하면서 <다시 하기>라고 적고, 그게 맞다고 우기면서 책을 썼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한국어 사용에 대해 고집이 센 작가는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겁니다.
과거 장용학이 자신의 작품에서 한자로 쓴 단어에 대해 한글화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실상 똥고집이었죠. 한자를 옆에 병기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을 때도, 장용학은 펄펄 뛰며 막았습니다.
심지어 모 출판사에서 한자를 먼저 적고 옆에 조그마하게 한글을 병기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장용학은 한국어의 대부분은 한자 조어이고, 실제로 생각하고 말할 때 한자로 사고하는 데,
그것을 음성문자인 한글로 적어 놓으면 의사소통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으므로...
한자 단어를 한글로 적는 것은 절대로 크게 잘못된 언어 사용이라고 굳게 믿었죠.
대한민국 전체에서 오로지 장용학 혼자서 그렇게 우겼고, 똥고집의 대명사로 굳어졌습니다.
복거일의 사례는 지나친 한글 사용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 똥고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용학처럼 반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저런 고집을 부릴 수가 없는데, 끝끝내 고집을 부립니다.
한국어를 깔보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지독하게 깊이 한국어를 연구하고 고증하려 애쓸 수 없습니다.
실은 한국어 연구에 미친 사람이고, 한국어 사용에 대해 너무 엄격한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별로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광기에 가까운 노력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거일은 한국어를 깔보고 영어에 미쳐 있는 똘아이라기보다,
지나치게 한국어 연구에 몰입하고 오로지 한국어를 고집하면서 외래어를 배격하는 똘아이입니다.
현재 말기암으로 가망이 없어서 투병조차 포기하고 죽기 전에 책을 쓰는 데 전념하고 있다니까,
아마도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복거일 작가의 생은 끝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 그처럼 독하게 한국어를 연구하고, 한국어 구사에 고집을 부릴 작가는 다시 없겠죠.
앞으로는 아무도 그런 모습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겁니다.
판타지는 전통적인 텍스트 중심의 문학도 중요하겠지만
오늘날에는 게임이나 영화와 같은 멀티미디어 컨텐츠가 더 접근성이 좋고 중요하게 되었죠.
문학으로서의 판타지에 대한 접근은 왕년에도 꽤 있어 왔고 문학 평론가도 얼마간 할 수 있겠지만,
판타지라는 장르의 모습을 문학은 물론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포괄하여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판타지 문학도 잘 알아야 하고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모두 해박하고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게임업계에 있는 분이 아니면 판타지 문학과 RPG,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죠.
2002년 한국이 월드컵 광란에 빠져 있을 때 저는 "한국에 나온 모든 판타지 목록을 만들어보겠다"고 덤볐는데,
문학은 나름대로 좀 아는 편이지만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등을 너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으로 소개된 작품이 알고 보니 외국에서 영화나 게임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었고, 그 관계를 잘 몰랐던 것이죠.
2010년 무렵 조카들이 한참 초등학교 다닐 때 책을 선물한다고 아동문학을 한 바퀴 섭렵하였는데,
그 때 다시 한 번 제가 판타지라는 장르의 방대함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동문학 시장에 깔린 책은 거의 절반 이상의 작품이 판타지였고, 환상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죠.
2002년 만들었던 판타지 목록은 제가 "무식해서 용감했기 때문에" 멋모르고 덤벼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이고,
실은 제 자신이 판타지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못했던 것입니다 - 장르의 넓이와 깊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한 책을 쓰고 계시다니, 건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멀티미디어에 대한 지식과 문학을 함께 아는 분이 작업하고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서가에는 이런저런 판타지 개론서, 판타지 비평서가 좀 있습니다,
캐서린 흄의 <환상과 미메시스>, 로즈마리 잭슨의 <환상성>, 츠베탄 토도로프의 <환상문학 서설>,
복거일의 <세계환상문학사전>,존 로 타운젠드의 <어린이 책의 역사>, 프랑수아 레이몽의 <환상문학의 거장들> 등...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이 없습니다. 모두 앙꼬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 크다고나 할까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나온 판타지 개론서는 멀티미디어 컨텐츠에 대해서는 백지상태나 다름 없습니다.
츠베탄 토도로프가 제아무리 뛰어난 비평가라고 한들 RPG를 구경해본 일조차 없기 때문에 당연히 고리짝 얘기고,
복거일은 게임이나 영화는 관두고 <반지의 제왕>을 <가락지의 임금님들>이라고 소개하고 이게 맞다고 고집합니다.
분명히 문학과 게임과 영화에 애니와 만화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같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판타지 개론서나 비평서들은 이러한 관계에 대해 파헤치거나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하더군요.
표도기님께서 쓰고 계시는 책이
그동안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려 온 갈증을 한 방에 해소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한 길잡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