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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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제 자신이 말썽이 나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은 별로 없었는데,
부모님, 동생, 와이프에다가 처가 식구까지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아서...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 응급실에 관련한 추억과 경험이 꽤 풍부한 편입니다.
이번에 메르스 사태가 한국을 대표하는 S 그룹이 운영하는 병원 응급실에서
사실상 대분화를 일으켰다고 하고 그 내용이 자못 흥미롭게 시사하는 바도 많은데,
제 경우 지금까지 보고 겪었던 응급실의 풍경과 거기서 제가 오갔던 경험을 생각해 보니
큰 문제를 얼마든지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게 한국 대형병원 응급실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저희 부모님들도 포함되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일단 어르신들은 몸이 안좋으면 다짜고자 대형병원으로 찾아가 응급실에 드러누워서
"나 몸 아프니 하여간 문제를 해결해 달라" 이렇게 조르는 게 통상적인 모습입니다.
본래 동네 의원을 먼저 찾아가서 그 곳에서 해결이 안될 경우 대형병원에 보내는 게 순서인데,
한국의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제 부모님도 포함됩니다) 무조건 대형병원에 가서 응급실을 찾습니다.
응급실은 (진짜 응급환자가 실려 올 수도 있으므로) 동네 의원을 거치지 않아도 일단 환자를 받거든요.
그 바람에 진짜로 급한 응급 환자와 지병이 좀 더 안좋아져서 아프다고 온 환자가 구분되지 않고,
선입선출식으로 응급 환자들을 진료하다보면 진짜 급한 환자가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응급실에 누워서 조르면 응급실의 구급의가 한 번 보고 각 병동으로 진찰을 다시 맡기는 데,
어르신들은 이렇게 동네 의원을 거치는 것보다 그냥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서 다시 재검을 받는 것을
오히려 더 선호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 병원비가 당연히 더 많이 나오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하여간 어르신들은 대형병원 의사에게 조금이라도 더 병을 보여 주고 진찰받는 게 치료에 유리하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한 시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다짜고짜 대형병원 응급실로 직행하는 게 습관이죠.
그리고... 일단 응급실에 드러누우면,
자식들과 친지들에게 연락하고 빨리 뛰어오기를 기다립니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관습인데, 응급실에 부모님이 가 계신다고 하면
천리 밖에서도 일단 최선을 다해 뛰어가서 안위를 살피고 인사드리고 나와야 합니다.
저 역시 서울시 곳곳의 대형병원 응급실의 위치와 병원 내 미로같은 복도, 지리를 꿰 정도로
응급실 경험이 매우 풍부합니다 - 하도 많이 불려 가서 간병하고 밤에 같이 자고 그랬으니까요.
그 결과...
한국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불야성이고,
수 많은 환자들과 병문안 온 사람들이 마구 오가며,
일일히 다 통제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아무리 난다고 해도 그냥 밖에서 온 사람이 척척 들어와 환자 손을 잡고 위로하고,
그렇게 환자들은 가족과 친지들의 손을 잡으며 위안을 얻고 더불어 수많은 세균과 교류도 합니다.
그 바로 옆에서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교통사고 환자, 추락한 환자 등에 대한 응급 처치도 이루어지고,
이런 게 얽히고 섥혀서 수 백병이 왔다갔다하는 공간이 한국 대형병원 응급실의 모습이죠.
제가 겪은 대부분의 응급실은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입구에서의 통제도 딱히 없고, 제대로 된 입원실이 아니므로 야전침대에 대충 누워 있으며,
다른 환자가 쓰던 침대를 그냥 시트만 슥 갈고 (별다른 소독 없이) 또 다른 환자를 눕게 합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병원 응급실을 대부분 다녀봤지만, 특별나게 잘하는 곳을 본 적이 사실상 없습니다.
메르스 이전까지 딱히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다 뿐이지,
응급실은 2차감염이 되기에 최적의 여건을 아주 잘 갖춘 곳입니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심야에 열려 있고, 그 곳에 환자들이 그냥 누워 있는데,
응급실 입구서부터 딱히 제지받는 일도 없고 간병인 또는 친적들이 그냥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환자가 뭐 먹고 싶다고 하면 사다 주고, 자기가 먹고 싶으면 아무거나 사 와서 환자 옆에서 먹고,
온갖 음심냄새, 음식 찌꺼기도 얼만든지 바글바글한 곳이 병원 응급실이죠.
물론 청소를 열심히 하지만, 기본적으로 위험하고 통제가 잘 안됩니다.
더 나아가, 응급실은 심야에 범죄에 노출되기도 매우 적절한 곳이기도 하죠.
범죄자가 응급실에 뛰어들어 환자를 위협하거나 간병인에게 강도질이라도 하면
막을 방법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 응급실 문은 항상 만인에게 열려 있으니까요.
이번에 메르스 사태를 거울 삼아 앞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 이것저것 꽤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응급실에 대한 허술한 관리만큼은 확실하게 손을 봐서 바꾸어 나갔으면 합니다.
응급실에 아무나 막 돌아다니고 그것을 막거나 통제하는 사람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고,
심지어 선진국에서는 감염 우려 때문에 못들어오게 하는 나이어린 유아들까지
할아버지께 문병가야 한다면서 마구 응급실에 데리고 들어오는 모습만큼은...
이제 좀 못하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되니까요.
PS)
개인적으로 부모님께서 혜화동 S대 병원에 하도 여러 번 많이 입원하셔서,
복잡하기로 유명한 이 병원의 구석구석 길을 꽤 잘 알고 찾아다니는 편입니다.
제가 과거 개념이 좀 없을 때는... 심지어 "응급실"을 밖에 빨리 오가는 통로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메인 입원실에서 밖으로 나갈 때, 응급실을 통하면 시간을 좀 단축해서 빨리 오가는 게 가능하거든요.
조금 웃기는 일이지만, 제가 응급실을 지름길 통로로 이용했던 과거의 흑역사를 다시 복기해본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S대 병원 응급실의 관리 및 통제 수준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환자의 친척들이 그냥 입원실과 밖으로 오갈 때 천하의 "응급실"을 지름길로 사용할 정도이니,
병원 측에서 응급실이 오염되는 것에 대해 예방 대책 없이 손 놓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2008년에 아버지가 복통으로 동네 병원 갔다가 그대로 바로 강남 삼성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셔서 그 다음날 오후에 응급수술 받으셨는데.. 응급실에서 사람 왔다갔다 하는거 통제하던데요.
2010년에 같이 바이크 타던 지인이 사고나서 그대로 119 구급차 타고 원주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는데, 한번에 2명씩만 면회시켜주더군요.
문제는 응급실 통제가 없는게 아니라 통제고 뭐고 밀어붙이는 분들이 아닐까요.
아 그리고.. 응급실 치료는 선입선출이 아니라 증상이 중하냐 경하냐로 먼저 하고 나중에 하고 합니다. 4시간 기다린 할아버지가폭발하시는거 봤는데, 저정도 폭발할 기운 있으면 응급실 안와도 되는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벌거지님이 클럽에서 말하시는 추억 = 지금도 해결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문제.
이런 공식을 제기합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http://www.joysf.com/4613887 벌거지님께서 쓰셨던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에 대한 추억'담을 접했던 느낌과 아주 흡사합니다. 벌거지님께서는 추억으로 말하시는 얘기를 지금도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기억'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감상을 나타냅니다.
응급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자기 식대로 우기고 고집을 피우는 노인들은 별로 낯설지 않네요. 노인들은 일단 뭔가 크고 화려하고 떠들썩한 걸 좋아하는 데다가 어떻게든 우기면 결국 통한다고 믿으니까요. 공공 질서나 규칙 같은 건 그리 신경 쓰지 않죠. 자신의 신념이 우선입니다.
워낙 그런 식으로 오래 살아오신 분들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머리가 굳어서 판단이 좁아지죠.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비롯되는 각종 민폐와 안전 문제는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사람이 늙으면 골로 가야 한다는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 또한 한국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의 한 단면이지요.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비용이 피해를 입은 후의 복구 비용을 훨씬 상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순전히 사람 목숨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는가 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됩니다.
자원에 비해 인구가 넘쳐나고 인간이 목적이 아닌 노동력이자 소비 시장이라는 수단으로 취급받는 대한민국에서, 이걸 해결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오직 자신과 남들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지요.
서민들이 새벽 2시에 부담 없이 치킨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나라는, 또 다른 누군가가 새벽 2시에 최저 임금을 받고 배달을 다니는 나라입니다.
인격, 감정, 노동력, 그 외 모든 면에서, 나 만큼 남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