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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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업무상 관계를 맺은 사이라면, 그런 경향이 훨씬 심해집니다.
전공이나 업무 분야에 대한 지식이라면 모를까, 다른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만한 상대는...
바쁘게 뛰어다니며 일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기는 무척이나 어렵죠 - 그건 행운입니다.
그래서 저는 취미가 직업인 사람을 평생 부러워하고, 높게 평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가다가 그런 상대를 만날 수는 있습니다.
대략 2년 전에 컨설팅을 하러 들어간 기업에서 카운터파트로 함께 일하게 된 현업 부장이 있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부장님께서는 일본 추리문학에 대한 골수 매니아였습니다.
매년 휴가 때마다 일본에 가서 책 구경하고, 한 보따리 책 싸들고 오는 게 연례 행사인 사람이었죠.
이 분과 문학에 대한 이해도를 매개로 하여 친해진 이후... 컨설팅 업무가 엄청나게 즐거워졌습니다.
어제는 세계 최대의 글로벌 컨설팅 펌 중 한 곳이라는 A사의 부사장님을 만나 뵐 일이 있었는데...
이 분께서 "일이나 전공에 대한 지식 말고, 혹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있나요"라고 묻더군요.
저는 대뜸 "문학"이라고 했습니다 - 너무 좋아해서 책 몇 권에 해설도 썼고, 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고 말했죠.
실은 '천리안 멋신'에서부터 '월간 SF 웹진', 'JoySF'와의 인연 때문에 얻었던 기회였고, 그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는 분의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나는 신춘문예 평론에 가작 입선된 적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지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창작의 결과를 공유하는 구름 위의 레벨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도 어려운 일이죠.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하고,
젊은 시절에는 반 미치다시피 몰두했고,
때문에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속에 한 가득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대를 나왔고 수학과 프로그래밍이 주전공이었고 이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면...
업무 현장에서 문학에 대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인연은 더더욱 소중하게 간직할 수 밖에 없죠.
[사족]
문학을 무척 좋아하시면서,
글로벌 컨설팅 펌에서 일하기를 소망하는 컨설턴트 또는 컨설턴트 지원자라면...
"문예평론가"를 지망했던 분이 직원들을 이끄는 리더 부사장으로 있는 A사를 추천합니다.
(한국에서 활발하게 비즈니스하는 A자로 시작하는 글로벌 컨설팅 펌은 두 곳 밖에 없고,
그 중 규모가 더 큰 회사라고 보면 됩니다)
취향을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자기 취향이 오인되는 것도 애석한 일이죠. 장르 문학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참 낯설거든요. 책을 안 읽는 사회에서 문학이라는 건 어쩐지 고루하거나 추상적인 취미입니다. 그리고 장르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 유치하거나 혹은 너무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죠. 이 두 가지가 결합한 장르 문학은 아주 다양하게 오해를 받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업무 환경에서 취미 이야기를 안 꺼내는 편입니다. 이런 걸로 별나다는 인상이 굳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닌 터라…. 좀비 드라마는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 왜 종말 문학은 그렇게 안 읽는 건지.
(오히려 요즘에는 장르 소설보다 슈퍼 히어로 만화책이 더 자연스러운 취미처럼 보입니다. 유행이 참 많이 변한다는 생각도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