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펑크에서 종종 쓰이는 소재가 섹스입니다. 신체 조작이 등장하는 창작물도 더러 섹스를 이용하죠. 여기서 섹스는 단지 이성끼리 하악하악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에 관련된 전반적인 걸 다룬다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생명은 번식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 겁니다. 생명체는 유한하고, 보다 나은 후손을 낳아야 하고, 결국 섹스가 탄생했죠. 오죽하면 성 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이건 변형되거나 조작된 생명체도 마찬가지죠. 오히려 그런 생명일수록 번식에 집착할 겁니다. 그러니 바이오펑크 창작물이 성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건 당연하겠습니다. 성을 다루는 방법은 다양한데, 단순히 정사 장면을 진하게 묘사하는 것부터 개조 생명체가 기괴한 번식을 추구하거나 성을 이용해 멸종을 꾀하는 등 작품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진화했든 실험실에서 탄생했든 생명체는 대를 잇고 싶어하고, 그러려면 이성과 결합하는 게 손쉽고 편리한 방법이니까요.
최초의 SF이자 최초의 바이오펑크라는 <프랑켄슈타인>부터 이런 조짐이 보입니다. 빅터 프랑케슈타인 박사가 만든 크리쳐는 막판에 창조주에게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자기 신부를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신부를 만들어주면, 그 여자와 함께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서 오손도손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피조물 입장에서는 인간과 어울리지 못하니, 자신을 이해해줄 동족이 필요했습니다. 그것도 동성이 아니라 이성 반려자라면 훨씬 좋겠죠. 프랑켄슈타인은 이를 수락했으나, 생각해보니까 문제가 커지리라 예상했습니다. 만약 피조물끼리 결합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들이 다시 아이를 낳고, 인조 생명체의 후손이 계속 불어난다면? 어쩌면 그렇게 불어난 인조인간들이 현생 인간들과 마찰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피조물 하나만 있어도 프랑켄슈타인 일가를 몰락시킬 뻔했으니까요. 박사는 신부 제작을 거부하고, 여기서 갈등이 첨예해지며 결말까지 빠르게 치닫습니다. 신부가 갈등의 최초 계기는 아니지만, 종족 번식은 인공 피조물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고, 갈등에 불을 지폈죠.
<시리우스>도 이런 사례에 부합하는 작품일 겁니다. 시리우스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났는데, 자신을 만든 박사의 집에서 죽 자랐습니다. 강아지 시절부터 박사의 자녀들과 함께 먹고, 배우고, 놀았습니다. 자연히 박사 가족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쌓았는데, 그 중에서 박사 딸인 플랙시와의 관계가 상당히 미묘합니다. 시리우스가 사람이었다면, 평범하고 식상한 연애물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수캐이므로 플랙시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설 수 없고, 플랙시 역시 함부로 감정을 내비치지 못합니다. 시리우스는 유전자 조작 때문인지 꽤 매력적이고 늠름한 개였던 것 같습니다. 마을 여인이 시리우스에게 흑심을 품고 유혹하는 장면도 나오거든요. 밤이 외로워서 침대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했죠. 거기다 플랙시는 애인이 있음에도 결국 시리우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허락합니다. 여인을 수캐의 신부라고 소개하는 농부의 농담이 농담 같지 않죠. 절로 거시기한 상상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지성적인 개라도 수간처럼 보일 수 밖에요. 실제로 그런 오해 때문에 화를 당할 뻔했고요.
뉴 위어드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도 그냥 넘어갈 수 없죠. 정사로 시작해서 성폭력으로 끝나는 소설입니다. 기괴한 이야기의 대가답게 차이나 미에빌은 온갖 변태적인 섹스를 집어넣었습니다. 인간과 다른 종족이 교제하는 거야 흔한 설정이지만, 여기서는 벌레 머리를 한 인간형 종족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몸뚱이는 멀쩡한 인간인데, 머리는 딱정벌레입니다. 눈 앞에서 딱정벌레가 꿈틀거리는데, 어떻게 정사를 치르는지 모를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징그러워서 발기를 못할 것 같지만, 작중 배경인 뉴크로부존은 평범한 동네가 아니니까요. 그런 주제에 이종족간의 교제를 금기시하는 걸 보면 골 때리고요. 게다가 여기에는 슬레이크 나방이라는 놈이 나오는데, 이름처럼 절지류 괴물입니다. 이들도 생명체인 이상 교미를 하는데, 그것도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벌레 종족이나 나방 괴물보다 제일 끔찍한 건 개조 인간들입니다. 고객들의 온갖 병적 취향을 만족시키려고 개조한 인간들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바이오펑크와 페미니스트가 결합한 소설도 성이 빠질 수 없습니다. 패트리스 앤 머리가 쓴 <채소 마누라>가 그런 식입니다. 어느 농부가 아내를 대신할 목적으로 채소 아내 씨앗을 구입합니다. 밭에 심고 작물처럼 키우는데, 성장하면 인간 여성처럼 자랍니다. 식물처럼 보이지만 몸은 사람과 비슷하며, 당연히 인간 남성과 섹스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채소 마누라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 한편,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채소 마누라는 농부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합니다. 원래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농부가 너무 거칠게 대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후자 같긴 한데, 농부는 어쨌든 이유를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의 관계는 육체적으로 이어지고, 그 이상 나가지 못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 그러니까 수동적인 여성을 비유하는 셈이죠. 섹스에만 몰두하는 농부는 당연히 폭력적인 남성일 테고요. 여성은 역사적으로 성적 약자였고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페미니스트 바이오펑크가 성을 이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째째파리의 비법>도 엇비슷하죠.
아예 한 걸음 나가서 <인간 종말 리포트>에는 '환희이상'이라는 신약이 등장합니다. 천재 유전 공학자가 만들었는데, 어떤 성병도 걸리지 않으며, 정력으로 천원돌파까지 가능한 알약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비아그라를 비롯한 정력제가 신나게 팔리는데, 이걸 극단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니요. 당연히 세계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겠죠. 하지만 유전 공학자의 진짜 목적은 다른 것이고, 이 알약은 그저 만렙 비아그라가 아니었습니다. 글렌이라는 사람이 만든 '환희이상'은 어디까지나 섹스가 하도 잘 먹히는 상품이라 정력제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글렌은 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인간의 습성을 연구하다가 결국 섹스야말로 어디서나 빠꾸당하지 않는 인기 상품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범세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구촌 어디에나 통하는 수법을 써야 했죠. 순수한 연애부터 아동 포르노까지 지켜본 후, 섹스야말로 자기 목표에 적합하다고 여깁니다. 만약 저런 알약이 진짜 등장한다면…. 해외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매일 품절일 듯하군요.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쓴 <와인드업 걸>은 제목처럼 인조인간 여인이 주인공입니다. 사실 작중에서 와인드업 걸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식품 대기업 직원인 칼로리맨, 생태와 환경을 책임지는 경찰 화이트 셔츠, 민족 분쟁 때문에 눈치 보며 살아가는 황색 카드가 훨씬 커다란 사건을 저지르거든요. 그럼에도 와인드업 걸이라고 제목을 지은 건 그래야 뭔가 있어 보이니까… 그런 게 아닐 테고, 모든 비극을 인조인간의 숙명으로 집약시키시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식량 부족과 자원 고갈로 허덕이는 세상이니까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 공학과 생명 조작이 극단적으로 발달했는데, 당연히 성 노예도 탄생했죠. 대신 인간과 달리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그래서 시계 태엽 여인으로 불립니다. 소설은 시계태엽 여인 에미코가 성 노예에서 탈출해 자유인이 되기까지를 그립니다. 누군가의 노리개가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기까지 과정을 보여주고, 결국 그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작품들과 섹스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소 다릅니다.
<듄>에 나오는 베네 게세리트 마녀는 유전 공학 결과물은 아닙니다. <듄> 자체는 복제인간을 만들어내거나 스파이스 때문에 신체가 바뀌는 등 바이오펑크 요소가 충만하지만, 베네 게세리트는 어디까지나 초인에 속하죠. 그러나 엄정한 훈련으로 신체 일부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특기할 사항이 바로 음부 조절입니다. 일종의 방중술이라고 할까요. 베네 게세리트는 마녀라고 불리는 것처럼 죄다 여성입니다. 그래서 남자와의 잠자리에서 황홀경을 제공하거나 이를 이용해 상대를 각성시키기까지 합니다. 골라라는 인조인간을 만들 때 잠재의식을 심어놓고, 마녀가 그 인조인간 남자와 섹스를 하면, 오르가즘을 느끼는 와중에 각성 상태에 이른다는 겁니다. 실제로 잠재 상태의 소년을 각성 상태의 지휘관으로 유도했죠. 게다가 베네 게세리트의 궁극적 목적은 각 가문의 유전자를 조합해서, 그러니까 섹스를 통해서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 정도면, 신체 조작과 유전자 개조와 섹스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할 소설이겠죠.
몇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섹스를 이용하는 SF 하위 장르가 꼭 바이오펑크만은 아닙니다. 사이버펑크든 디스토피아든 이런 요소들은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성 노예와 다름 없는 섹스 로봇과 정부가 강제하는 결혼 제도 같은 게 그렇죠. 하지만 섹스의 목적이 결국 유전자 향상과 후손 생산이므로 바이오펑크만큼 섹스와 잘 어울리는 하위 장르가 없다고 봅니다. 만약 SF 포르노그라피를 쓰고 싶다면, 바이오펑크를 열심히 탐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해요.
※ 저 중에서 <퍼디도 정거장>은 따로 이야기해도 될 만큼 섹스나 정사 장면이 넘쳐나죠. 음, 아예 저 소설에서 어떻게 상열지사를 불태우는지도 한 번 이야기하면 좋겠군요.
하악하악